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399)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99화(399/599)
이름도 알 수 없는 마족을 돌려보낸 뒤, 나는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주변의 시체들을 살펴보며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었다.
물론 아무 계획없이 곤죽이 된 시체들을 뒤적이며 돈되는 걸 얻고자 움직인 건 아니다. 나름 특수 작전 한다고 달라붙은 놈들이니, 지도나 중요 문서들은 기름 먹인 가죽 주머니 같은 곳에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찾기로 한 건 바늘에 팔이 날아가며 떨어진 마법사였다. 살아남은 마족이 대장이었으니, 그 뒤에 딱 달라붙어 있던 녀석도 평범한 병사는 아닐 것이라 여겼기에.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매우 처참한 몰골의 시체 속에서 나는 원하는 물건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지도 하나 새로 장만하려고 했는데 잘됐네.”
녀석의 품에서 찾아낸 지도는 세 장이었다. 축척이 정확한지는 알 수 없지만 꽤 다양한 도시와 지명이 적혀 있는 적당한 크기의 지도와 이티스엘 해안선 인근을 기준으로 굉장히 세밀하게 표시 되어 있는 군용 지도, 마지막으로 어디 펼쳐 놓고 보지 않으면 보기 힘들 정도의 크기를 지닌 대신 디테일이 상당한 지도.
군용 지도는 어떨지 몰라도 나머지 두 지도는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게 만드는 큰 수확이었다. 특히 큰 지도는 돈 주고도 못 사는 물건이다. 이런 거 함부로 구하려고 하면 어느 날 갑자기 군대에 끌려가서 심문 당할 게 분명하다.
무슨 지령서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좀 더 찾아 봤지만 그 뒤로 나온 건 은화가 들어 있는 돈주머니 정도가 고작이었다. 장비같은 것들은 그들의 시체만큼이나 박살이 난 상태였기에 건질 게 없었다. 그렇게 최대한 깔끔하게 털기 위해 조심스레 움직이다 보니, 작업을 마쳤을 땐 벌써 시간이 꽤나 흐른 뒤였다.
동시에 저 멀리서 급하게 날아오는 도시의 비룡들이 길게 울부짖으며 사건의 끝을 알렸다.
죽은 비룡의 두개골에 단단히 박혀 있어서 쉽게 찾아낸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 바라본 그 광경은 꽤나 장관이었다.
◈
모험가와 병사들을 태우고 날아온 비룡들이 도착한 뒤로는 모든 일이 빠르게 해결 되었다.
만델리에서는 이번 마왕군 침투 사건을 해결한 공로라며 많은 상금을 쥐어줬지만, 사실 이 모든 게 나 때문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아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는 그걸 도시 재건 비용에 보탠다는 명목으로 반납했다.
덕분에 얼마 되지도 않은 돈으로 쓸데없이 영웅적인 서사를 만든 게 되어 버렸으나, 어차피 전선으로 향했다가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사그라들 게 분명했기에 적당히 넘어가기로 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공식 석상에서 낭독될 칭찬 한 줄이 더 추가되었다는 걸 알게 된 건 수도로 돌아온 뒤에도 한참 후인 행사 당일 날이었다.
“아니, 그게 거기 추가된다고?”
“마족 몇 명이었다고는 해도 일대를 불안하게 만들고 만델리에서 돈을 쓰게 만든 사건이었으니까.”
그 사실을 알려 준 것은 라그니스였다.
지난번 오크 게이트 사건 이후로 확실하게 자신의 입지를 펼치기 시작한 그녀는, 나를 수도로 데려온 장본인이라는 것을 빌미 삼아 이번 행사에서 내게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역할을 자청했다.
몰라보게 튼튼해진 어깨가 다 드러나는 붉은 드레스를 입은 채 오늘 있을 예정을 하나하나 말해주는 것을 듣고 있자 하니 새삼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뭐가 이렇게 많아? 그냥 공로 인정 좀 받고 겸사겸사 방랑 기사 서임까지 마치는 거 아니었어?”
분명 레스롬 공작에게 최대한 간략하게 진행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조금도 간략하지 않다. 수도에 있는 주요 귀족들은 다 모이고, 왕실의 주요 인사도 다 모이고, 수도에 있는 왕의 10검 잔류 인원도 다 모이고, 아카데미 주요 인사도 다 모이는데 이게 어딜 봐서 간략이야?
하지만 돌아온 것은 라그니스의 싸늘한 시선 뿐이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불만 가득한 얼굴로 팔짱을 끼자, 그녀의 상완 이두근이 부풀어 오르며 드레스에서 억눌린 비명이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예카트리나처럼 엄청난 근육질이 된 건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 미적인 것을 우선시하여 최대한 맞춤 형식으로 제작된 드레스라 그런지 저런 단순한 동작조차 버거워하는 듯했다.
“넌 이번만큼은 즈위네라 공작에게 엄청 고마워해야 해. 귀족원의 영향력을 위해 열심히 움직인 거겠지만, 만약 그쪽이 나서지 않았으면 수도에서 일주일간 축제가 열렸을 거야.”
“…진짜?”
“진짜.”
그녀의 말로는 나를 두고 이루어진 회의에서 귀족원의 반발이 엄청났다고 한다.
처음엔 어느 정도 논리적인 억지를 부렸지만 가면 갈수록 되도 않는 트집을 잡아가며 행사를 축소해야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고 하는데, 나중에 결국 국왕이 그들의 억지를 어쩔 수 없이 수용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지금의 ‘간략한’ 행사가 준비된 거라고.
공작과 왕실의 관계를 모르는 라그니스가 보기엔 죄다 불만스럽기 그지없는 행위였겠지만 나로서는 레스롬 공작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하고 싶어질 정도의 대사건이 나도 모르는 사이 치러졌었다.
“게다가 면밀히 따지고 보면 행사가 그리 복잡한 것도 아니잖아. 그냥 참가하는 사람들의 체면이 있다 보니 조금 더 공식적으로 대할 뿐이지. 왕실에 모인다, 모인 사람들 앞에서 왕실과 제국의 인사가 네 공을 치하한다. 네가 나온다, 훈장을 받으면서 겸사겸사 서임도 받는다. 얼마나 단순해?”
“아니, 그래도 세상 어느 방랑 기사 서임식에…”
이번엔 말조차 다 내뱉지 못했다. 라그니스가 빠르게 팔짱을 풀며 아직 건틀릿을 차지 않은 내 손등을 찰싹 때렸기 때문이다. 반동과 스냅을 이용해 날아온 손바닥은 불과 몇달전의 그녀는 상상도 못 했을 정도로 빠르고 깔끔하게 목표 부위를 타격했다.
“엘드미아 에가의 방랑 기사 서임식이라고 보면 과하겠지. 하지만 제국의 용사와 대련하여 승리하고, 왕국 변경백의 명예를 위해 정정당당한 대결에서 루드라의 젊은 사자를 단칼에 죽인 기사의 귀감이자 제 1 황녀를 마왕군의 음모에서 구해 낸 영웅일 뿐만 아니라 왕국의 반역자를 직접 처단한 영웅이 그 후 성광십자회의 성녀를 사교도로부터 구해 냈으며 그 과정에서 악마를 물리쳐 백성을 지킨 것도 모자라 지방에 있던 반란군의 잔당을 토벌했음은 물론, 수도 지하에 숨어 있던 사룡마저 토벌하고 수도를 위협한 오크들의 공세를 끊어내는 지대한 공로를 펼친 뒤 자력으로 귀환하여 만델리 항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던 마왕군의 잔당마저 박멸한 공을 치하하는 자리라고 하기엔 조촐해도 너무 과도하게 조촐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그야말로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내면서도 한 번도 버벅이지 않고 어눌한 발음 없이 또박또박 말하고도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는 그녀를 보며 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디 한 번 반박해보라는 듯 턱을 까딱이는 라그니스에게 진심어린 질문을 던졌다.
“그거 설마 방금 생각해서 말한 거야? 대본이 아니라?”
“아! 좀! 그게 중요해!?”
덕분에 괜히 한 대 더 맞았다.
그래도 나름 진지하게 각 잡고 물어본 게 웃겼는지 웃음을 터트리는 그녀의 모습에 만족하며 건틀릿을 차고 나니 가벼운 노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슬슬 시작된다고 한다. 준비는 다 끝났나?”
“방금 막 레비엥 변경백님의 엄청난 말빨을 확인한 차였지. 조금 더 일찍 들어왔으면 셰릴 너도 같이 듣고 놀랐을 텐데 아쉽다.”
어김없이 날아온 주먹이 내 견갑을 퉁 하고 때리는 것을 보며 문을 열고 들어온 셰릴은 코웃음을 쳤다. 에카프 경은 왕의 10검으로 행사에 참여해야 했기에 오가토르프 가문의 소가주로서 이번 행사에 참여하게 된 그녀는 평소엔 잘 묶지 않던 머리를 곱게 땋아 옆으로 내린 상태였다.
“넌 긴장도 안 돼? 여유롭기 그지없군.”
“긴장할 게 뭐 있겠어. 죽는 것도 아닌데.”
셰릴은 내 유일한 가족 자격으로 행사에 참석하게 된 아실리에의 치장을 돕기 위해 자리를 비운 거였다. 잘 마무리 됐는지 물어보자 그녀는 아무 문제없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과연 침선장 굴라의 작품은 다르더라. 근데 그하고는 대체 언제 안면을 튼거야?”
“아…우연히? 어쩌다가?”
레스롬 공작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적당히 둘러대자 돌아온 시선이 싸늘했다. 다행히 하도 싸돌아다니고 저지른 게 많다 보니 그 과정에서 얻어걸렸나보다, 라는 인식이 있는 것인지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그렇게 짧게 잡담을 나눈 방을 벗어난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연기하며 행사가 진행될 홀로 향했다.
이윽고 분주히 움직이는 사용인들 사이를 지나며 그녀들과도 헤어지게 된 나는, 미리 예정된 자리로 가 메이드들에게 마지막 복장 점검을 받았다.
대화 하나 없이 사락사락 옷 부딪치는 소리만 들려서 그런지 묘하게 침착해지면서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 차곡차곡 쌓이고 정리되는 것들 대부분은 지금까지 겪어온 온갖 사건 사고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었다. 의도치 않게 정말 다사다난한 7년을 보내고 드디어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고나니, 아주 약간 기분이 고양됐다.
신나고 즐거운 건 아니었다. 피바람이 난무하는 길을 걷게 될 게 뻔한데 한없이 즐거우면 미친놈에 불과하겠지. 오히려 약간의 불안이 엄습했다.
이후 정리가 끝난 머릿속에 남은 건 두 단어 정도였다. 유년기의 끝. 최소 백병장 수준.
정말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던 에파가님의 비호는 끝이 났고, 수만의 군세를 거느린 마왕군에서 내 실력은 최소 백병장 급이다. 그 사실을 기반으로 지금까지의 경험을 복기하니 새삼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이세계의 강함은 역시 뭔가 어긋나 있다.
마왕군과의 전투가 이어지는 전장은 더럽게 강한 놈들이 즐비한데, 후방은 그런 놈들 보는 게 쉽지 않다는 게 직접 겪고도 쉬이 믿기지 않는다. 어쩌면 뤼밍스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균형과 연관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곧 겪게 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런 미지의 영역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난 이제 그 사이로 파고들어 가야 했으니까.
“에가 님.”
메이드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상념이 깨졌다.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니 고개 숙인 메이드가 자신의 뒤쪽 커튼을 가리키며 정중히 말을 이었다. 벌써?
“준비를.”
커튼 너머는 어느새 이런저런 목소리로 소란스러워진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제국과 왕실의 영광 등을 운운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아하니 내가 정신줄을 꽤 오랫동안 놓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여, 영웅적인 업적을 남긴 엘드미아 에가를 이 자리에서 제국과 왕실의 이름 아래 치하하고자 하노라.”
힘 있는 중년남성의 목소리를 신호 삼아 메이드들이 커튼을 걷었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쉰 뒤, 커튼 사이로 나아갔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갈채 속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처음으로 보는 아실리에의 드레스 차림과 그 곁을 지켜 주고 있는 셰릴과 라그니스였다.
참 예쁘기도 하지. 키 순으로 정렬한 것처럼 서 있는 모습에 웃음이 나올 뻔 했지만 가까스로 참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스승님의 얼굴이 지나가고, 갑옷을 차려입은 에카프 경과 레스롬 공작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지나 에스뮈에와 국왕이 서 있는 자리까지 가면서 든 생각은 역시 더럽게 많이들 모였다는 가벼운 감상뿐이었다.
형식적인 치하와 대답이 이어지며 나에게 내려진 훈장은 레스롬 공작의 말대로 작으면서 튼튼해 보였다. 대충 망토에 달면 브로치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디자인도 무난했고 말이지.
근엄한 얼굴로 국왕인 이티스엘 7세가 직접 훈장을 달아준 뒤 뒤로 물러나자, 한없이 진지한 얼굴을 한 에스뮈에가 들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아, 저거 무조건 경량화 마법이 걸린 의장검이겠구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이 에스뮈에가 내 앞으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그의 족적은 사욕이 아닌 인류을 위한 헌신 위에 남아 있으니, 그가 기사의 소임을 다하며 약자들을 두루 돕기 위해 방랑 기사의 길을 걷고자 한들 아무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으리라.”
그녀가 든 검이 기울어지며 내 얼굴 앞에 멈췄다.
무식한 폭력 신고식을 막고자 어깨와 머리를 툭툭 치는 걸로 퉁치게 변한 전생의 기사 서임과 달리, 이곳의 서임은 칼날에 입을 맞추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지금 그녀의 행동은 나보고 검에 입을 맞추라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걸 왜 국왕이 아니라 에스뮈에가 진행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당황하기엔 이미 늦기도 했고 국왕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에 난 곱게 입을 맞췄다. 그러자 그녀가 쥐고 있던 검이 이번엔 국왕에게로 넘어갔고, 그제야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에 제국과 왕실은 그의 여행길을 축복하기로 하였으니.”
“나, 제국의 하얀 별이자 제 1 황녀 에스뮈에 비스팀 텔 누아와.”
“나, 이티스엘의 왕 이티스엘 7세는.”
“그대를 제국과 왕국의 방랑 기사로 임명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