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04)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04화(404/599)
최전선을 지키고 있던 역전의 영웅들이 수년 만에 수도를 밟는다. 그것도 왕국의 방패였던 레비엥 변경백령을 수복하기 위한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그 사실만으로도 수도는 알아서 축제 분위기를 만드는 중이다. 겨우 부대 하나가 다른 작전을 위해 잠깐 귀환하는 것임에도 이 지경인 이유는 단순했다.
중요한 작전을 위해 부대를 따로 뺄 정도로 전선에는 여유가 있다. 우리는 밀리지 않는다. 왕국은 지지 않는다. 오히려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일 여력도 있다. 등등.
대대적인 프로파간다가 행해지는 것이 아님에도 그런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음은 눈 감고도 알 수 있을 지경이다. 찻집에 앉아 들려오는 이야기들마저 그랬으니까. 일부는 마치 레비엥 변경백령을 되찾음과 동시에 왕국군이 파죽지세로 마족령의 수도까지 밀고 갈 게 분명하다는 소리까지 하고 있었다.
당장 의식주에 아무런 하자가 없이 겨울을 지내고 있어서 그런지 대체로 그런 분위기였다. 시간을 때우기엔 나쁘지 않은 장소였지만, 나나 셰릴이나 그런 낙관적인 이야기를 편하게 흘려 들을 수 없는 입장이다 보니 결국 퍼레이드가 시작될 무렵 적당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분명 한적하게만 보이던 대로는 저 멀리서 군대의 귀환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리기가 무섭게 사람들로 들끓기 시작했다.
“이거 제대로 구경이나 할 수 있으려나?”
“으으음…”
셰릴의 키가 작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큰 것도 아니었기에 여러 장정들이 모여 벽을 세우자 살짝 난감한 눈치였다. 그 모습이 마치 모험가 게시판에서 의뢰를 뜯기 위해 바둥거리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어 웃음이 터져버린 나는, 내 웃음소리를 듣고 즉각 도끼눈을 뜨는 그녀를 들어 어깨에 앉혀주기로 했다.
평소보다 조금 격한 저항이 있었지만 그것도 잠깐 뿐이었다. 갑자기 솟아오른 그녀에게로 주변의 시선이 살짝 쏠리긴 했지만 머지 않아 모습을 드러낸 위풍당당한 기사들이 모든 시선을 강탈해주었고, 우리는 느긋하게 그들의 귀환을 구경할 수 있었다.
사방팔방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과 군악대가 함께하는 행렬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대충 부대 하나를 끌고 온다고 들었지 구체적으로 병력이 얼마나 오기로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는데, 상당히 많은 기사들이 말을 타고 선두에 선 상태였다. 사람 뿐만 아니라 말조차 일반적인 갑옷보다 훨씬 두꺼운 걸 걸치고 있었는데, 기사들 뿐만 아니라 군대가 지닌 장비들이 평균적으로 그러했다.
저번에 에스뮈에가 데려왔던 유사 파워드 슈트 기사들만큼은 아니지만 기사들의 풀 플레이트 아머 못지않은 걸 병사들이 걸치고 있는 걸 보고 나니 전선의 장비 평균이 어떤지 감이 왔다. 오러가 없는 이들도 저런 장비를 갖추고 버틸 수준이 된다라.
그때 내 옆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왔다.
“워, 예상했던 것보다 파워 인플레이션 좆되겠는데?”
“미친 씨발 깜짝이야!”
너무 깜짝 놀라 셰릴을 떨어트릴 뻔 했기에 황급히 어깨에서 내리며 품에 안아 들었다. 그러자 나 못지않게 놀란 셰릴 역시 오이 본 고양이처럼 펄떡였고 우리에게 밀쳐진 다른 행인들은 쌍욕을, 나를 놀라게 한 인물은 박장대소했다.
“이야, 보기 드문 모습이라서 그런가? 동생 놀라게 하는 재미가 쏠쏠하네. 잘 지냈어?”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지크프리트는 불과 몇 개월 사이 키가 꽤 커져 있었다.
◈
갑작스러운 지크프리트의 등장에 결국 우리는 다시 적당한 찻집을 찾아 들어가게 되었다.
다행히 제국의 용사를 알아보고 기겁을 하는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왕국에는 아직 얼굴을 몇 번 비추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마실 차를 주문하는 동안에도 태연하게 밖의 인파들을 구경하는 지크프리트는 참으로 평온했지만, 문제는 놈의 직책이 용사라는 거였다.
여기가 적진인 건 아니니 혼자 다닌다고 딱히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엄연히 제국에 있어야 할 인간이 이러고 있는 건 뭔가 좀 그렇잖아?
“이런 곳에서 혼자 뭘 하고 계신 겁니까?”
덕분에 정말 정말 엄청나게 노력하고 순화해서 질문을 내뱉었는데, 오히려 지크프리트가 의외라는 듯이 되물었다.
“엥? 못 들었어? 이번에 군대가 움직이면서 생긴 구멍에 제국이 조금 손을 보태기로 했는데.”
“…그런 건 군사 기밀 아닙니까?”
“그런가? 뭐 어때, 이쪽은 그 가문 아가씨고 동생은 동생인데.”
참으로 굉장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지크프리트였지만 그래도 아예 생각이 없는 건 아닌지 조용한 어조에 나름 단어도 선택하며 말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찻집임에도 불구하고 방금 전 군대의 행진을 구경한 뒤 한껏 기분이 업된 사람들의 목소리 속에 당연하다는 듯이 파묻혔다.
지크프리트와는 그리 오래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셰릴은 나를 보며 ‘원래 이런 인간인가?’ 라는 눈빛을 보냈고, 나는 거기에 ‘실로 그러하다.’ 라는 눈빛으로 대답한 뒤 다른 질문을 던졌다.
“저희는 어떻게 발견하신 겁니까?”
사실 이게 핵심이었다. 길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것도 아니고 아예 날 찾고 있었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는데 설령 어디서 내가 퍼레이드 구경갔다는 걸 들었다 해도 이렇게나 빨리 만나는 건 말이 안 됐으니.
이번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굉장했지만 지크프리트는 어김없이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테시가 알던데? 뭐 신성력으로 찾는 방법이 있다는 거 같던데 구체적인 건 나도 몰라.”
순간 이 빌어먹을 자폭성녀가 기어이 내 심기를 한 번 더 긁나 싶어서 핏줄이 설 뻔 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이 담은 신성력을 추적한 것에 가까운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이런 별거 아닌 일로 그 성녀가 자신의 신성력을 추적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아냈으니 오히려 이득이었다.
나와의 환장할 만한 만남은 여전히 지크프리트가 모르고 있는 눈치였기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것도 잊지 않으며, 나는 화제를 전환했다.
“저도 모르는 사이 그런 추적을 당한다는 게 영 마땅찮지만 일단 넘어가죠. 굳이 이렇게 움직이실 정도로 급한 일이 있어 보이진 않는데 뭘 이렇게 급히 찾아오신 겁니까?”
한 켠으로는 자폭성녀의 심상치 않은 정신 머리에 대해 언질이라도 줘야 하나 싶었지만… 공식적으로는 대악마 사건 이후로 만난 적도 없는 년에 대해 뒷담을 까는 것도 모양이 이상해서 좀 더 두고 보기로 했다.
나를 찾아와서 그 지랄을 친 것도 궁극적으로는 지크프리트의 안전을 위한 거였으니 가만히 냅둔다고 해서 딱히 녀석에게 해를 입힐 것 같지도 않고, 나에게 한 번은 데여 봤으니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 한들 조금은 생각을 하고 움직이겠지. 그러지 못한다면 뭐 나 없는 어딘가에서 폭발은 예술이다를 외치며 지가 섬기는 신 님 곁으로 갈 거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며 지크프리트의 대답을 기다렸더니 지크프리트가 묘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동생 말대로 뭐 바쁜 용건이 있어서 온 건 아니야. 일차적으로는 훈장받고 방랑 기사된 거 축하하는 게 목적이었고, 이차적으로는 겸사겸사 얼굴도 보는 게 목적이었지. 아카데미 지하에서 했던 약속은 아직 유효하잖아?”
악마들 모가지를 쳐 냈던 걸 말하는 거로군.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지만 지크프리트의 반응이 그리 밝지만은 못했다. 마치 아직 이유가 남았다는 표정이었는데, 실제로도 뒷말이 더 남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로는… 이게 좀 긴가민가한데, 많이 쎄했었거든. 그래서 조심하라고 알려주고 싶어서 왔다.”
“…조심하라구요? 무엇을 말입니까?”
“동생도 그 아가씨 따라서 원정에 참여한다며? 원래 거기에 내가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느낌이 되게 강하게 왔었거든. 지금은 좀 흐리멍덩해졌는데 가끔 이럴 때가 있어. 직감이라고 해야 할지, 계시라고 해야 할지. 테시는 후자로 보는 편이긴 한데.”
아니, 용사라는 인간이 저런 말을 하면 한 귀로 듣고 흘릴 수가 없잖아. 실시간으로 내 표정이 기괴해지는 걸 본 지크프리트가 살짝 얼굴을 피며 설명을 덧붙였다.
“막 엄청 심각한 건 아닐 거야. 그건 느낌이 다르거든. 오히려 알아서 흐지부지됐으니 아무 일도 없을 수 있어.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도 없는 법이니까요.”
“바로 그거지. 동생이야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만, 방심했다가 그 아가씨가 다치는 상황이 나오면 이야기가 다르잖아?”
과연 여자 셋을 한 번에 끼고 다니는 남자답게 잘 아는군. 솔직히 갑자기 등장했을 땐 또 지랄병이 도졌다고 생각했는데 순수한 호의에서 비롯된 기행이었다니 절로 숙연해지기 시작했다.
“그럼 이대로 동부로 나아가시는 겁니까?”
“맞아. 아마 내일모레? 정도면 움직이겠지. 사실 이것도 몰래 나온 거에 가깝지. 마빡귀신이 알면 노발대발할걸?”
낄낄 거리면서 웃는 지크프리트였지만 그 미소는 예전에 보여주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리고 억지로 지어 보이는 듯한 그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뻔했다. 이런저런 전투를 치러왔다고는 해도 실상 마족과의 전면전이 펼쳐지고 있는 전장은 처음이다 보니 긴장하는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사실상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와도 같은 것들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과정이니 복잡미묘한 심정일 수도 있지.
그래도 ‘나는 용사니까 무적이야!’ 라고 나대다가 작살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태였기에, 나는 기특함을 가득 담아 용기를 북돋아주는 마법의 주문을 입에 담았다.
“하루 이틀 싸웁니까? 뭘 쫄고 있습니까.”
“아이 씻팔, 안 쫄았어!”
주문은 효과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