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05)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05화(405/599)
결국 정말 얼굴만 비추고 친절하게 경고해주는 게 목적이었던 지크프리트는 잠깐의 대화를 끝으로 한창 북적이는 인파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긴장이 좀 풀렸을지는 알 수 없지만, 사실 쟤 주변에 달라붙을 제국군을 생각하면 긴장하더라도 별문제는 없을 거다. 애당초 쟤보다 내 앞길이 더 문제인데 누가 누굴 걱정하겠어.
그렇게 지크프리트와 헤어진 우리는 한창 축제 분위기인 사람들 사이에서 적당히 이것저것 구경하고 놀다가 귀갓길에 들어섰다. 갑작스러운 지크프리트의 등장 이후로 조금 묘한 반응을 보이던 셰릴이었으나, 돌아갈 때쯤엔 그래도 기분이 다 풀린 듯했다.
“그래서 그 도끼에도 네 검과 같은 금속을 씌우기로 했다고?”
“응. 도끼 자루 중간 정도 위치에 적당히 두르면 무게 중심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거라고 하더라고.”
상대가 셰릴인 탓에 이동하면서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 검술이나 전투 그리고 무기에 관한 거였다.
주로 셰릴이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내가 대답하는 형태에 불과했는데, 도끼에 귀소본능을 추가한 게 상당히 흥미로웠던 것인지 그녀는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나와 함께 드워프 지구로 향했다.
“안 그래도 요즘 대장간들이 전부 바쁘다고 하던데, 그런 작업을 반나절 만에 끝내준다고 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눈에 들었나보군.”
“얼굴 비출 때마다 선물도 사갔으니 좋게 봐주시는 거 아닐까?”
놀랍다는 듯한 셰릴의 반응도 이해는 됐다. 나도 이번엔 한 사나흘은 지나야 받을 수 있을 거라 여겼으니까. 내 덕을 많이 봤으니 그 정도는 당연한 거라며 자진해서 해주시는 거니 거절하기도 좀 그렇더라고.
“침선장도 그렇고 참 여러모로 재주가 좋… 아, 병사들이다.”
얘가 왜 새삼스럽게 병사에 반응을 하나싶어서 시선을 따라가니 드워프 지구에 누가 봐도 기사와 병사라고 할 만한 이들이 꽤 많이 몰려 있었다. 여지껏 수도에서 살아오며 처음 보는 광경에 의아했는데, 그들이 입고 있는 장비가 하나같이 아까 퍼레이드에서 봤던 것들이다.
“귀환한 병사들이네? 왜 완전 무장까지 하고 여기에 있는 거지?”
“…전혀 모르겠는데.”
혹시 뭔 일이라도 터졌나 싶었는데 웃고 떠드는 걸 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설마 여가 시간을 즐기는 건데 완전 무장을 하고 나온 건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린 셰릴이었지만 정작 듣고 나니 꽤 그럴싸한 가설이었다. 중요한 작전에 투입하게 될 베테랑들인 만큼 전선에도 오래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오히려 장비를 벗는 것이 어색하거나 불안할 가능성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을 셰릴에게 이야기하니 그녀도 미처 생각 못했다는 듯 눈을 살짝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말 그럴 경우 너무 바라보는 것도 실례겠군. 빨리 가지.”
하하. 예의바른 녀석. 나 처음 만났을 때도 그 정도만 예의 발랐으면 참 좋았을 텐데.
갑자기 떠오른 오래된 기억에 낄낄 웃으며 그녀와 함께 병사들을 스쳐 지나가자 웃고 떠들던 이들의 시선이 아주 잠깐 우리에게 꽂혔다가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아니, 셰릴에게 살짝 시선이 갔다가 나를 바라본 뒤 마치 약속이라도 하듯 자연스럽게 흩어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과민 반응인가…?”
뭔가, 어색하다.
의도적으로 관심이 없는 척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드워프 지구엔 다른 사람들도 많았지만 병사들도 많았다. 그렇다고 병사들이 다 뭉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거리를 둘러보는 것처럼 대충 흩어져 있을 뿐이다. 그중 대다수는 아예 우리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우연히 시선이 움직인 이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시선을 돌렸다.
자신과 같이 있는 병사들에게 신호를 주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행동이 세 번 반복되면 결코 우연이 아니겠지. 방금 전까지 풀어졌던 신경이 바짝 조여지며 등줄기부터 뒷목까지 싸한 기분이 타고 올라온다.
동시에 여유롭던 셰릴의 입가에서도 미소가 사라졌다.
“엘드미아. 포위되고 있다.”
“알아. 근데 이유를 모르겠어.”
전선에서 돌아온 군인들이 갑자기 나한테 반응하는 이유가 뭘까.
작정하고 판을 깔았다고 하기엔 아예 우리에겐 관심도 두지 않은 이들이 너무 많았고, 민간인도 많았을 뿐더러 장소도 이상했다. 애초에 지금 여기에 온 것부터가 셰릴의 변덕이었으니까.
내가 엘드미아라서? 당장 짭드미아들이 지랄 똥을 싸는 것도 구분 못 하는 세상인데 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날 단번에 알아볼 방법은 없을 것이다.
“설마 마력인가…?”
“그걸 같은 인족이 어떻게 눈치채?”
“나도 모르지.”
근데 어쩌냐. 당장 떠오르는 가능성이라고는 그거 하나밖에 없는데.
저들이 내가 마력을 쓴다는 걸 눈치챘고, 잠정적인 적으로 인식했지만 수도 한복판인 만큼 민간 피해를 신경 써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면 아귀는 들어맞는다. 어떻게 그걸 알아차렸냐는 그 다음 문제지.
그래도 당장 뭔가 행동을 취하는 것 같진 않기에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발쿤 씨의 대장간 앞에 도달한 우리를 막아선 것은 조금도 익숙하지 않은 병사와 기사들이었다.
망토같은 걸 두르고 있지 않았음에도 기사들을 구분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좀 더 말도 안 되게 무거워 보이는 갑옷을 입은 녀석들이 기사일 테니.
“이곳에서 아는 얼굴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군요.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셰릴 아가씨.”
구면이라고?
먼저 아는 척을 하며 입을 연 건 기사들 중에서도 꽤 젊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가 앞으로 나오자 지금까지 우리 뒤를 따라왔던 이들과 눈앞에 있는 자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포위망을 구축했다. 그러자 다른 일반인들은 무슨 일이 터졌다고 여기고 황급히 자리를 비키기 시작했고, 일부는 가게 안으로 몸을 피하기도 했다.
“기사 루베르. 무탈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만, 그전에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여쭤보고 싶군요.”
셰릴도 나름 예를 갖춰 대답을 했지만 완전히 예의를 갖췄다고 하기엔 미묘했다. 하긴, 느닷없이 포위를 당했으니 귀족 입장으로 보면 저것도 상대방을 많이 존중한 거긴 하다.
루베르라 불린 기사도 그걸 잘 알기에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가며 대답했다.
“전장에서 보낸 세월이 조금 길었지만 예의를 잊진 않습니다. 허나 사태가 시급할 수 있기에 의도치 않은 무례를 범한 점, 사과 드립니다.”
“그 시급한 사태가 무엇인지부터 듣고 판단하도록 하죠.”
“지당한 말씀입니다. 우선 일행분이 누구신지 알 수 있을까요?”
돌직구를 날려주는군. 덕분에 내가 원인인 게 맞다는 걸 알게 되어 매우 고맙기 그지없다.
“적어도 그대들이 이렇게 느닷없이 포위하고 정당하다 주장할 수 있는 이는 아닙니다.”
“죄송하지만 그건 당장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으로 사료됩니다.”
“기사 루베르. 전 4년 전과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본론부터 꺼내십시오.”
흠, 저 친구가 전장으로 향한 게 4년 전인 가보군. 4년 전의 셰릴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2년 전의 셰릴과 지금의 셰릴은 한결같은 성질머리의 소유자이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시답잖은 감상에 빠진 나와 달리 루베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게 있어서는 살짝 오싹한 내용이었다.
“하하, 그랬었죠. 그게… 전장에서 마족들을 오래 상대하다 보면 좀 묘한 느낌이 오거든요. 아, 뿔이 안 보여도 저 녀석은 마족이구나. 뿔이 있는데 영 마족같지 않구나. 뭐 이런 쪽으로 말이죠.”
진짜로 마력을 감지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뉘앙스의 대답이 튀어나왔으니까. 어디까지나 직감에 의존하는 것에 불과한 듯했지만, 그런 게 집단으로 가능하다는 것부터가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루베르 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이들이 내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대응하기 위해 바짝 긴장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직접 칼을 뽑지는 않았지만, 내가 공격 의사를 내비치면 당장 튀어나올 게 분명했다.
그런 그들의 반응을 확인한 셰릴이 미간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이 자는 엘드미아 에가입니다. 그대들은 아직 듣지 못했겠지만 수많은 업적을 세워 최근 왕실의 서훈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제국과 왕실이 공인한 방랑 기사가 되었습니다. 지금 그런 사람을 마족이라고 말하는 겁니까?”
책에서 보면 보통 이런 경우 ‘저희가 영웅을 몰라보고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같은 반응이 나오던데, 아쉽게도 이들은 달랐다.
루베르는 셰릴의 말을 다 들은 뒤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마족은 마물이 아니라 사람이죠. 그리고 사람은, 더 큰 대의를 위해 얼마든지 주변을 속일 수 있는 법입니다.”
“그게 굉장히 무례한 발언이라는 것을 모르진 않겠죠.”
“그렇습니다.”
두 번 놀랐다. 그래도 마족을 사람 취급하긴 한다는 점에 한 번, 자신들이 공유한 직감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점에 또 한 번.
내 정체를 듣고 아주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긴장을 늦추지도, 주저하지도 않는다. 수년간 전장을 구르며 자신을 먹여 살린 감각을 믿을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존중할 만한 자세라고 여겼기에 난 간만에 마음속이 아닌 진짜 박수를 쳤다.
비록 그로 인해 그들의 경계가 더 심해졌지만 내가 검을 먼저 뽑지 않는 이상 저들도 먼저 뽑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기에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저들은 심증만으로 움직였다. 정말 구체적으로 마력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셰릴에게 대답하며 허락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지금 바로 물증을 제시했겠지.
그것만으로도 이미 상황은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전장의 영웅들의 직감을 존중하도록 하죠.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저들은 내가 마력을 사용한다는 걸 절대 입증하지 못한다. 끽해봤자 변신 마법을 의심하거나 뿔을 잘라서 숨기고 있을 것을 대비해 머리나 만져 보는 게 전부겠지. 그냥 시비를 터는 거였다면 아주 개망신을 주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수도에 마족이 침투했을 가능성을 염두한 것이니 좋게 좋게 끝내기로 했다.
어차피 라그니스와 함께 움직이게 될 이들이니, 나하고도 마주치게 될 사람들이다. 굳이 척을 져서 피곤해질 필요는 없지.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그러면 저희 쪽 마법사가 디스펠을 시전하고, 다음으로는 머리에 뿔이 자란 흔적이 있는지 확인할 것입니다.”
루베르가 제시한 방법은 내 예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고, 나는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물론 좋게 끝내긴 할 거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끝낼 생각은 없었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당연히 내 머리에는 뿔같은 건 달려 있지 않고, 변신 마법따위는 써본 적도 없었기에 루베르를 비롯한 병사들은 검증을 마침과 동시에 머리 위로 갈고리를 수집하게 되었다.
거기까지는 예상했던 반응이었지만 이어진 행동은 조금 달랐다.
“전선의 법도를 수도까지 끌고 와 결례를 범하고 소란을 피운점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럴 리가 없다는 반발도, 현실 부정도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무릎을 꿇고 사과할 줄은 정말 몰랐거든. 심지어 내가 마족이 아니라는 것에 진심으로 안도하기까지 했다. 솔직히 누구 하나 정도는 자신들이 전선에서 버틴 병사라는 것에 엄청난 자부심같은 걸 지니고 있을 테니 살짝은 마찰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기색은 전혀 없어서 놀라울 따름이었다.
덕분에 원래는 전선에서 얻은 생명 수당을 싹 털어먹으려던 계획을 살짝 수정하고 말았다.
“왕국 수호를 위해 헌신하는 마음으로 행한 조치이니 이를 충분히 감안해서 반만 받겠습니다.”
이렇게 투철한 직업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하고는 그래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레비엥 변경백령을 탈환하는 데에도 보탬이 되지 않겠어?
내 관대하기 그지없는 처우에 셰릴은 경악하고 루베르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예?”
“주머니에 든 거 반만 받겠다는 말입니다.”
주변의 다른 병사들뿐만 아니라 셰릴마저 감탄을 금치 못 하는 상황 속에서 서두르라는 의미로 내 돈주머니를 흔들어 주자, 가장 감격하고 있었던 루베르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주머니를 기꺼이 열었다.
그렇게 모인 돈은 꽤 쏠쏠했다. 우리를 포위한 스물 중 다섯이 기사인지라 그들의 주머니가 두둑했던 것도 이유였지만, 전선을 지키느라 그간 주머니를 가벼이 둘 기회가 없었던 것도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는 듯했다. 나는 그들이 내놓은 합의금을 확인한 뒤 금화 한 개를 빼서 루베르에게 돌려주었다.
느닷없이 자신들이 내놓았던 돈의 약 2할 정도 되는 돈을 돌려 받게 된 그가 대체 이게 뭐냐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을 마주하며, 나는 밝은 미소와 함께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이런 의도치 않은 마찰이 있었던 것과 별개로 여러분들이 왕국 수호를 위해 헌신하신 점은 한 명의 백성으로서 감사히 여기는 바, 이는 여러분들을 향한 제 감사의 표시이니 부디 기나긴 여정에서 쌓인 여독을 푸시는데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애써 대답하는 루베르의 표정은 퍽 볼 만했다.
그래도 댁들이 너무 뛰어나서 생긴 문제니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주머니가 거덜날 수 있다는 선례 정도는 만들어야 남들도 조심하지.
물리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목이 날아가는 것보다는 낫잖아?
아무튼 모든 일이 원만하게 해결된 덕에 푼돈으로 목숨을 연명한 병사와 기사들뿐만 아니라 부수입을 얻은 나도 행복해진 세상 속에서 두둑해진 주머니로 도끼 개조 비용을 지불한 뒤 발쿤 씨의 가게를 벗어난 우리는 묘하게 피곤했던 하루를 마무리 지으며 귀갓길에 올랐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전선의 병사들에게서 금품을 갈취한다는 발상이 가능한 거지…?”
정작 옆에서 구경한 셰릴은 모두가 행복해졌다고 여기는 나와는 사뭇 다른 의견을 내비쳤지만 말이다. 물론 꿀릴 건 없었기에 어이없어 하는 셰릴의 중얼거림에도 당당하게 대답했다.
“금품 갈취가 차라리 낫지. 자칫 잘못하면 생명 갈취가 되어 버리잖아.”
“그건… 그렇지만.”
아무리 방랑 기사가 준기사와 평기사 사이의 어딘가로 취급된다고는 하지만, 왕실과 황실에서 동시에 승인한 존재라는 점에서 이미 나는 일반적인 방랑 기사들과 위치부터가 다르다.
심지어 이번에 받은 훈장까지 더해져서 어지간한 기사나 귀족은 함부로 하대조차 못 하는 기막힌 방랑 기사가 된 상태인데 거기에 대고 마족 혐의를 씌웠으니, 그게 아무리 최선의 판단이었다고 한들 진짜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왕국의 위협을 배제하겠다는 신념을 지킨 것과 다름없었다.
“당사자인 나야 간담이 서늘해졌지만 어느 미친놈이 직감만으로 의심하는 걸 정당하게 인정해주겠어. 그냥 돈으로 해결되는 사소한 일이었다고 정리한 뒤 유야무야 하는 게 오히려 저 사람들을 위한 일이야.”
정식으로 항의했으면 저 사람들 주머니는 지켰을지언정 정치적으로도 굉장히 골치 아파졌을 것이 뻔하다. 수도의 권력자들은 왕국법을 무시한 채 직감만으로 무고한 사람, 그것도 훈장까지 받은 인물을 공격했다고 지랄할 거고 전선의 군부는 저들의 직감이라는 게 결코 무시할 만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정당한 대응이었다고 피력하겠지.
거기까지 말하고 나니 셰릴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주장에 대한 소감을 입에 담았다.
“그냥 단순히 괘씸해서 돈이나 뜯으려고 한 줄 알았다.”
“……”
어째, 요즘 들어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너무 각박한 것 같다.
◈
기사 루베르는 최전선에서 3년 하고도 반년 가량을 더 근무한 베테랑이었다.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남작 가문의 막내가 아카데미를 어렵게 졸업한 뒤, 전장에서 활약하며 살아남아 평기사가 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으나 루베르는 어떻게든 해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요령과 실력이 괜찮은 기사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그런 평가가 쌓인 끝에 이번 레비엥 탈환 작전에 차출될 수 있었다.
최정예는 아니어도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참여하게 될 거라고 소문만 들려오던 작전 참가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땐 잊고 있었던 자긍심이 살짝 고개를 들 정도였다.
시작은 귀족의 의무를 다하고 왕실에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함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그저 살아남기 위해, 동료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저 마족들의 무자비한 폭력이 왕국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하루하루 버티는 것에 가깝던 군생활의 새로운 전환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올라온 수도는 그를 비롯한 전선의 병사들을 성대하게 환영해주었고, 3년간 전장에서 다 사그라든 줄 알았던 영웅심이 잔불처럼 일렁이는 기분 속에서 휴식을 명받은 루베르는 간만에 수도 구경에 나섰었다.
분명 거기까진 참으로 즐거웠는데…
어쩌다가 지금은 달밤의 연병장에서 대가리를 박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유는 잘 알았지만 억울했다.
“이 씨발 내가 너희 출타자들한테 뭐라고 말했냐?”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하는 여인의 질문에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여인의 심기는 매우 불편했고, 보통 이럴 땐 ‘대답 안 해?’ 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괜히 대답했다가 욕만 먹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래, 루베르 뿐만 아니라 함께 머리를 박고 있는 스무 명의 기사 및 병사들 모두 말이다. 비록 뼈 아픈 지출 후에 적선 받듯 받은 돈으로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는 걸로 억울함을 풀어낸 뒤라고는 하나, 그들의 정신까지 삐뚤어진 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몸은 좀 삐뚤거리고 있지만.
“씨발, 대답 안 해?”
“전선의 개처럼 굴지 말고! 처맞는 한이 있더라도 사고 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걸 기억하는 새끼들이 이런 대형 사고를 쳐?!”
참으로 오묘한 상황이었다. 억울한데, 억울하면 안 되는 상황. 루베르 뿐만 아니라 머리를 박고 있는 이들 모두가 그랬다.
아니, 씨발. 진짜로 마족 느낌이 났다니까요?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한마디를 머금고 우물거리는 그들의 머리 위에서 여인은 계속 호통치며 윽박질렀다.
“이 똥강아지 같은 새끼들아! 마족 느낌이 난다고 해서 대낮의 드워프 지구 한가운데에서 사람을 포위해? 그것도 오가토르프 소가주와 수도에서 한창 유명세를 타고 있는 따끈따끈한 방랑 기사를? 아주 그냥 배때기에 칼도 쑤셔보지 그랬냐? 뒤지기 직전에 변신하는 새끼들하고 안 싸워 봤어? 왜 그건 왜 확인 안 해? 왜 안 했냐고!!”
까앙! 여인의 발차기가 누군가의 옆구리를 걷어차며 맑은 쇳소리를 자아냈다. 오러를 실어서 찬 것도 아니고, 모두 갑옷을 찬 상태로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에 타격은 없었다. 그저 억울함만 쌓일 뿐.
전선에서는 세 명만 촉이 맞아도 무조건 마족이었다. 근데 스물이 확신을 가지고 잡은 사람이 진짜 평범한 인족일 거라고 감히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솔직히 루베르는 셰릴이 그를 옹호할 때까지도 뭔가 착오가 있어서 속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서 문제였지. 아니, 아니라서 다행이긴 한데… 아무튼 억울했다.
그리고 그들은 미처 모르고 있었으나 상관인 여인도 지금 아주 억울한 상황이었다.
“니네 씨발 그 인간이 뭘로 방랑 기사가 됐는지 알고는 건드렸냐? 엔벨데 그 씹새끼 모가지 딴 게 그 인간이라더라. 근데 그걸로 끝이 아니라 제국의 철… 제 1 황녀까지 구하고, 우리가 이번에 돕게 될 레비엥 변경백도 구하고, 씨발 아카데미 지하의 쥐새끼들도 모르게 박혀 있던 사룡 모가지 따서 아카데미도 구하고! 이번에 있던 오크 새끼들의 대침공조차 씨발! 그 인간이! 게이트를 박살 내서! 수도를 구하고!! 아주! 씨발! 존나! 구한! 인간이라고! 이! 새끼들아!!”
부하들의 촉을 왜 못 믿겠는가.
전선에서 2년 이상 버텼을 뿐만 아니라 여러 공훈도 세운 부하들이다. 여인은 어지간한 귀족보다 자신의 부하들을 더 믿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근데 그건 어디까지나 칼싸움 실력에 한해서였을 뿐, 정치적인 면이나 영악하게 대가리를 쓰는 쪽으로는 문제가 있다는 걸 하필 오늘에서야 알게 된 게 문제였다. 그것도 아주 거하게 터트려서 알게 되었으니 어디에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무리 씨발!! 마족 같아도! 보고부터 했어야지! 막말로 그 인간이 씨발 마족이었다고 해도!! 니들이 보고하고 경과를 파악하는 그 짧은 사이에!! 2년 이상 수도에서 머물고 있던 작자가 갑자기 미쳐 돌아가서 문제를 일으켰겠냐! 그쪽에서 좋게 끝내주지 않았으면 니넨 죄다 형벌부대 행이였어 이 새끼들아!! 형벌부대! 이런 개쪽이 어딨어?!”
-까앙!
수 년 만에 평온하게 낮잠을 즐기다가 느닷없이 끌려가 귀족원과 왕실 모두에게 말로 두드려 맞아버린 여인의 발길질은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이어졌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