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17)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17화(417/599)
[417화] 서부에서부터 흘러넘친 악몽비룡은 영리하다.
비단 가축화 된 종 뿐만 영리한 건 아니다. 야생의 비룡이라고 해서 그 전제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영악해지고 나름의 꾀를 쓰는데 능숙해질 뿐.
하지만 그런 비룡의 지능과 별개로 유독 잘 알려지지 않은 특성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마력에 민감하다는 점이다. 인족은 마력을 쓸 수 없으니 모르고 마족은 비룡을 사용한다는 발상을 최근에 채용했기에 아직 체계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그 특성은 비룡의 태생과 연관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조금 번거로운 몬스터로 취급받고 너무나도 대수롭지 않은 존재로 여겨질지언정 아주 옅게나마 마력과 마법의 시조始祖라 할 수 있는 용의 피를 잇는 짐승들이다. 오히려 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게 이상하다고 할 수 있다.
비룡이 마법을 쓰거나 마력을 응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본능의 영역에서부터 마력을 지닌 존재를 두려워할 뿐.
그랬기 때문에, 엘드미아에게 마력을 두른 주먹으로 얻어맞은 비룡은 그를 두려워했다.
두려움이 복종으로 변하고,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명령을 따르며 엘드미아가 손을 놓더라도 도망치지 않게 되기까지 겨우 열 번도 채 안 되는 주먹질이 있었을 뿐이었지만 비룡에게는 그걸로 충분했다.
그리고 수 차례 하늘을 비행하면서 비룡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기를 던져서 죽이고, 뭔가 폭발시켜서 모조리 죽이고, 느닷없이 다른 비룡으로 뛰어내려서 직접 죽인다. 그저 날기만 했을 뿐인데도 살아 있는 적보다 죽은 적이 더 많다는 사실은 비룡에게 참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발톱으로 찍을 필요도, 부딪칠 필요도, 물어뜯을 필요도 없다.
그냥 날기만 하면, 무서운 인간이 알아서 한다.
그리고 안전해진다.
이티스엘의 비룡 조종사나 기사들은 수 년에 걸친 비룡과의 교감을 통해 학습시키는 핵심 과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신뢰감 형성이 주먹질만으로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이리 와!”
오묘한 깨달음 속에서 졸지에 해탈 비스무리한 지경에 이른 비룡의 귀에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오기가 무섭게, 허공에서 원을 그리며 인간을 기다리던 비룡은 자연스럽게 그 부름에 따라 움직였다.
◈
머리 위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까마귀처럼 빙빙 돌던 비룡을 보며 외치자, 놈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빠른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뭔데 이렇게 말을 잘 듣지…?”
솔직히 놈의 등에서 뛰어내려서 다른 비룡을 강습한 순간 도망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 했었는데…
도망은 무슨,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한 10년 키운 애완동물로 여길 것처럼 말을 잘 들어서 오히려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인드로 타고 잇던 비룡을 죽이며 옮겨 탄 뒤에 돌아본 하늘은 깔끔했다. 저 멀리 내성에서부터 날아오르는 또 다른 비룡 부대가 눈에 들어오긴 했으나 일단 군대가 진격하여 외성에 진입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
확실히 지난번 하이재킹 때 느낀 것처럼 마왕군의 공중 전력은 비룡도, 탑승자도 비룡 기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물론 이딴 마력 폭탄을 사람 머리 위에서 뿌려 마법사들의 주문 간섭을 무력화시킨 뒤 마법을 박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인 건 사실이었지만 비룡 기사는 그딴 수준이 아니니까.
그나마 가장 잘 버티던 놈이 방금 올라탄 비룡의 주인이었는데 걔도 다이브를 시도하니 온 세상의 억까를 다 당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흐으음, 어떻게 할까.”
어찌 됐든 일단 열심히 제공권을 장악하고 난 뒤 내가 달리 지시를 내리지 않자 당연하다는 듯 제자리에서 고도를 유지하는 비룡의 똑똑함에 감탄하며, 나는 팔짱을 낀 채 고민에 빠졌다.
내 수중에 남아 있는 마력 폭탄은 단 하나.
그냥 박살 낸다고 해서 막 터지는 위험천만한 물건은 아니었던지라 아무 거리낌 없이 마왕군의 비룡 부대를 추락시킨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러다 보니 당연하게도 리필이 안 됐다
거의 500ml 패트병 만한 크기라서 일단 세 개만 챙겨 왔던 게 후회될 정도로 발군의 성능을 자랑하는 판타지식 수류탄의 덕을 톡톡히 보고나니 겨우 이거 하나 들고 또 스무 마리에 달하는 비룡들과 싸워야 한다는 게…
…많이 귀찮다.
“이 정도면 내 역할은 차고 넘치게 한 게 맞긴 한데…”
이대로 제공권을 마저 장악해서 아군을 돕느냐, 아니면 일단 물러나서 예상을 아득히 초월한 전리품인 비룡을 점검하느냐의 기로에 서게 된 나는 30초 정도 더 고민한 끝에 다시 도시를 향해 비룡을 몰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 폭탄은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대처가 불가능하다.
심지어 나조차도 이게 발동하는 것 자체는 못 막는다.
발동하면 정령술이나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마도구같은 경우 지속적으로 일대의 마력을 흡수하고 방출하기에 내 능력으로도 무력화 시키는 게 가능하지만, 이건 밖으로 마력이 흘러나오지 않고 자가 발전하는 것에 가까운 구조라서 먹히질 않더라고. 내 능력은 외부에서 전력을 공급받는 가전제품의 코드를 끊는 것에 가깝다보니 배터리로 돌아가는 물건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하다.
근데 이런걸 외성에서 적의 진입을 막겠다고 막 터트린다? 전투로 죽는 병사보다 폭발이나 잔해에 휩쓸려 죽는 이가 더 많을 수 있다. 그나마 내 손에 명을 달리한 선발대는 군대가 개활지에 남아있었기에 접근하느라 제때 쓰지 못 한거지, 도심에서 놈들이 작정하고 터트릴 경우는 정말 얄짤 없을 것이다.
이게 뭐 오늘 처음 모습을 드러낸 신 무기는 아닌 듯하니 전장의 베테랑들이라면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겠지만…
문제가 터지기 전에 해결할 수 있는 걸 굳이 터트린 뒤 정리하는 건 좀 비효율적이지. 외성과 달리 내성 공략은 내가 시도한 꼼수도 불가능할 테니 아군의 피해는 최소화하는 게 맞다.
그리 결단을 내린 나는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후속 비룡 부대 중 가장 사람이 많이 뭉친 곳을 체크한 뒤 속도를 올렸다.
이번엔 반드시 리필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건 덤이었다.
◈
지휘소에서 예상과 다르게 너무나도 빠르게 박살 나버린 도시의 외성을 바라보던 알트는 짧은 고민 끝에 명령을 내렸다.
“지휘소를 이동한다.”
“위치는 어디로 염두하고 계십니까?”
“외성문 앞. 내부까지는 들어가지 않는다.”
본디 한번 위치를 잡고나면 공성전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는 일이 없는 게 지휘소였지만, 마왕군과의 오랜 전투로 인해 그들의 야전 교범은 기존의 상식과 달라진 점이 많았다. 그리고 그중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바로 공성전에서의 지휘소 이동이었다.
마족은 강력한 병력을 절대 도시 하나 지키겠다고 고정시켜두지 않았다. 어떻게든 최대한 움직이게 하며 그걸로 이득을 보다가, 거점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수비 병력이 버티는 동안 회군하여 가세 및 후방을 노린다. 그렇기에 마왕군을 대상으로 하는 공성전은 높은 확률로 외성을 돌파한 다음부터가 시작이다.
인족은 감히 엄두도 못 내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대응이 가능한 건 순전히 그들이 마족이기 때문이었다.
마력을 쓰기에, 그리고 그런 마력을 기반으로 인족들보다 훨씬 다채롭게 게이트를 응용하기에 가능한 일. 심지어 개개인의 강함이 인족보다 월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보니 이동하는 병력도, 물자도 상대적으로 적은데 화력은 오히려 뛰어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전쟁 초기엔 저 말도 안 되는 기동성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던가. 후방에서 관망하는 것에 가깝던 지휘소가 조금이라도 더 전장에 가깝게 붙으며 1분 1초라도 더 빠른 명령 하달을 목적으로 하게 끔 변질된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로 인해 지휘소가 위험에 노출된다는 의견도 처음엔 많았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반론이다. 마족을 상대로하면 지휘소가 어디에 있든 위험한 건 똑같았기에.
하지만 이번 외성 공략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방향으로 흘러 갔기에 적들도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알트는 이로 인해 얻어진 막대한 이득을 허투루 흘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후방의 도시들에게 연락해서 병력을 움직이라고 알려라. 왕실에도 상황을 보고하도록. 어쩌면 이번엔 레비엥만 취하는 게 아니라 전선을 조금 밀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엘드미아가 이룬 업적은 엄청나다.
혼자서 외성을 뚫고, 폭격을 시도하는 적의 비룡 부대마저 역공을 취해 사상자가 거의 없다. 왕국 역사를 통틀어도 유례가 없는 공성전일 거라고 생각하며 알트는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지휘소를 벗어나는 부하들을 뒤로한 채 침착하게 전장의 지도를 살펴보고 있는 레비엥 변경백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걸 예상하신 겁니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마족과의 공성전에서도 저런 짓이 가능한 인간이라면 인족끼리의 전쟁에선 말할 것도 없다. 추후 레비엥 변경백을 필두로 왕실과 귀족들이 다른 국가를 공격할 경우 얼마나 신속하고 빠르게 정복이 이루어질지 알트조차 감이 안 왔다.
단순히 강한 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저런 기존의 상식을 박살 내는 형태로 강한 이는 소수다. 심지어 엘드미아는 이제 막 성인이 되었으니 앞으로 더 성장할 여지가 차고 넘쳤다.
‘저건’ 전략병기다. 일개 귀족이 쥐면 파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전략병기. 이 모든 걸 정녕 레비엥 변경백이 예상했다면 알트는 왕실에 경고의 글귀가 적힌 보고서를 올릴 생각이었다.
“아무런 피해도 없이 외성을 돌파하는 것 말이신가요? 아뇨.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데에 능숙한 귀족 소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 덤덤한 어조와 달리 눈에는 생기가 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예상대로의 결과물을 얻고 만족하는 지휘관의 그것인지, 아니면 가문을 잃고 영지를 빼앗겼던 과거를 설욕 중인 자의 희열인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 가문을 잃다시피한 소녀에게 오늘의 전투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마족의 전술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속공으로 밀려 버린 당시의 사건은 왕국에게도 치욕스럽고 뼈아픈 과거였다. 이번엔 이쪽에서 적들을 속공으로 밀어 버렸으니 어쩌면 복수를 달성했다는 성취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름 긴 시간을 함께 했지만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거든요.”
말을 마치며 웃는 레비엥 변경백의 모습을 바라보며 알트는 생각했다.
어째 란제가 사건과 성과를 동시에 터트렸을 때의 자신을 보는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