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19)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19화(419/599)
[419화] 서부에서부터 흘러넘친 악몽외성 돌파의 업적 때문인지 내가 다시 부대에 합류해 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투력 측정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외성 돌파와 제공권 확보를 동시에 이뤄낸 개인을 일개 병사처럼 운용하는 대신 군대처럼 여기기로 한 모양이다. 전공을 세웠으니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한 뒤 또 한 건 해 달라는 느낌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어차피 비슷비슷한 수준의 마족과 싸우는 건 내게 별 의미가 없는 행동이기도 했고, 열심히 이곳으로 오고 있는 본대와의 전투를 대비하고 싶은 것도 있었기에 순순히 호의를 받아들이고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 결과, 나는 지금 장군이나 쓸 법한 천막에서 야전 침대 같지 않은 야전 침대에 누워 편안함을 만끽하는 중이다.
“어째 군대하고만 엮이면 취침의 질이 올라가는 것 같단 말이지.”
여기까지 오는 동안은 따로 특별 대우를 받는다는 인식을 주고 싶지 않아 내가 직접 챙겨 온 텐트로 생활했었지만 공적을 세우고도 보상을 받지 않으면 병사들에게 본보기가 되지 않는다길래 거절할 수 없었다.
전장임에도 불구하고 사치스럽게 씻고 누워서 쉰 것까지는 좋았으나, 생각보다 피곤하지 않다보니 결국 슬금슬금 일어나 장비를 다시 갖춰 입고는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밖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반쯤 박살나 있는 외성 벽에 굉장히 인접해 있는 터라 저 멀리서 들려오는 전장의 소음도 생각보다 잘 들려오고, 전장과 거리가 있는 지휘소라지만 하나같이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열심히 뛰어다닌다.
덕분에 이게 마왕군과의 전선에서 수년간 버텨 온 은수리들의 일상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라그니스가 있는 쪽의 병사들은 상대적으로 얼빠지고 정신이 피폐해졌다는 느낌이 강해서 더 부각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라, 그만한 공을 세웠는데 쉬지도 않고 어디 가십니까?”
라그니스에게 가기 전엔 아무도 나를 아는 척 할 일 없다고 여겼는데 뜬금없이 나타난 란제가 내 예상을 깨버렸다.
“전장이다보니 영 안심이 되지 않아서 좀 움직이려는 중입니다. 란제 경도 휴식인가 보군요.”
그녀의 앞에는 아까 공성추 곁에서 봤던 익숙한 얼굴들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완전 무장 상태로 돌아다니는 주변과 달리 보는 것만으로도 무거워 보이던 갑옷을 싹 다 벗어던지고 옷만 입고 있는 모습은 굉장히 눈에 띄었다.
“맞습니다. 공성추 부대의 몇 안 되는 특권이죠.”
“목숨 걸었다가 살아 돌아오면 쉬는 건데 그걸 특권이라고 해도 되는 겁니까?”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그녀의 말을 들은 다른 기사가 뒤에서 어이없다는 듯 태클을 걸자 란제는 돌아보지도 않고 뒷발질을 해 정확히 그의 정강이를 걷어차 버렸다.
“어차피 숙영지 산책 말고는 할 수 있는 것도 없으실 텐데 같이 식사나 하시렵니까? 그렇게 뛰어 다니셨으니 배가 고프실 거 같은데.”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식사를 제안했다. 여기까지 행군하면서 한 번도 없었던 권유였다.
그녀의 제안이 의미하는 바가 의미심장할 수 있어서 다른 기사들의 눈치를 봤지만 다른 이들 역시 걸음을 멈추고 멀뚱히 보고만 있을 뿐 딱히 반발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여줬는데 식사 좀 같이하는 거로 뭐라 할 놈들은 진즉에 다 죽었습니다. 가시죠. 웃기는 소리라는 거 아는데, 저희 애들 요리 솜씨가 꽤 그럴싸한 편입니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애초에 다른 부대라는 빌미로 연대장 뺨까지 때린 인간이었지만 란제를 비롯한 기사들은 정말 개뿔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계속 나만 뻘쭘해하는 것도 분위기를 흐리는 일이었기에 최대한 당당하게 란제와 걸음을 맞추며 지휘소 한 켠에 위치한 취사장으로 향했다.
그렇다. 취사장. 놀랍게도 은수리 여단은 여타 보편적인 군대와 달리 식재료를 병사들에게 뿌려서 알아서 만들어 먹는 구조가 아니라 후방 부대가 전투 병력들의 식사를 만드는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전문 요리사같은 비전투원을 고용해 움직이는 건 아니고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부족한 병사들이 진지를 구축하며 겸업하는 것에 가까웠지만 전생에서도 현대에 이르러서야 겨우 생긴 게 취사병이라는 걸 감안하면 진짜 말도 안 되게 독특한 환경이라는 건 확실했다.
“마왕군과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병력이라는 게 워낙 소수이다보니 편제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좀 많이 바뀐 편입니다. 특이하죠?”
“특이한 정도가 아닌 거 같은데… 전선의 군대들은 다 이런 식입니까?”
“최전방은 그럴겁니다. 저희도 모든 전선을 다 돌아다닌 건 아니라서 확답은 못 하지만… 이러지 않으면 유지가 안 될 겁니다.”
“유지요?”
“전선에서 오래 살아남는 녀석들이 가지는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상당히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유예를 주고 물어 봤더라도 답이 떠오르진 않았을 만한 질문이었기에 난 잠깐 고민하는 척만 한 뒤 순순히 모르겠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란제도 딱히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쉬이 대답해주었다.
“도무지 알아서 처먹질 않는다는 점입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극한으로 몰린 상황이니 뭐라도 쑤셔 넣어야 살 수 있는데 그걸 못하죠. 잠 못 자는 놈, 불안증에 걸리는 놈 등등 많은 증상이 있지만 유독 마왕군과의 전선에서는 먹는 쪽에서 많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뀌게 된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식재료를 배급을 해봤자 먹었다고 거짓말하는 놈들이 많으니 만들어 놓고 주워 먹게 한 거죠. 남들과 시간을 맞춰, 규칙적으로.”
일종의 PTSD같은 건가. 왜 하필 밥 먹는 거에서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구체적인 이유까지 알 것 같지는 않았기에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내가 무거운 이야기를 듣고 입을 다물었다 여긴 것인지 옆에 있던 다른 기사가 멋쩍게 웃으며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오늘의 영웅 기운 빠지게 뭘 그리 심각하게 이야기하십니까? 제가 항상 말했잖습니까. 그거 숟가락 들 힘도 없어서 나자빠지는 거라니까요.”
“난 실제로 그랬지. 뒈질 거 같은 상황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다음 직접 불 붙이고 돼지 사료같은 식사를 위해 또 힘을 빼고 싶진 않았어.”
“저 새끼들이 좀 이상한 새끼들이긴 한데, 사실 아주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죠. 실제로 그렇게 먹일 때 안 먹는 녀석들은 또 없었으니까.”
자연스럽게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며 분위기가 풀어지고, 그러는 사이 깔끔하게 준비된 스튜가 나와 한 입 먹어보니 과연 란제가 자신 있게 먹을 만하다고 할 만했다.
나도 사람이 힘들고 지칠 땐 하다 못해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어서 기운을 차려야 한다고 여기는 편인데, 이 정도면 며칠은 충분히 기운이 날 거 같다.
“맛있군요. 요리하는 분들이 공을 많이 들이시는 게 느껴질 정도로.”
“오? 솔직히 이제 막 수도를 벗어나신 귀하신 분 입맛엔 안 맞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장의 군인이 될 자질이 넘쳐흐르는 분이시군?”
그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치 모험가나 용병들처럼 쉽게 농담을 던지는 이들에게서 기사의 엄숙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퍽 마음에 드는 모습이었지만, 그가 내뱉은 말에서 걸리는 게 있었기에 헛웃음을 터트리며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귀하신 분이요?”
“맞잖습니까? 수도에 잠깐 있는 것만으로도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어릴 때부터 오가토르프 가문에 들어가 영재 교육을 받았네 뭐네, 레비엥 변경백의 측근으로 움직이네 뭐네 하면서.”
그리고 빵 터지고 말았다. 틀린 정보가 별로 없는데도 결과가 왜곡되네.
“설마…?”
“예. 전 평민입니다.”
내가 귀족이라니. 지금까지 나한테 처맞은 모험가들이 웃겠다.
그냥 적당히 놀라고 끝날 줄 알았던 것과 달리 반응은 조금 폭발적이었다.
“진짭니까?”
“진짜죠. 서부의 오그웬 인근의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부모님이 전직 모험가이시긴 했지만 당시엔 사냥꾼으로 지내셨으니 굳이 따지면 사냥꾼의 자식이겠네요.”
죄다 밥 먹다 말고 인지부조화가 온 것 같은 표정을 지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것일까. 그중 한 명이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오그웬 인근엔 마을이 없잖습니까?”
순간 나도 모르게 표정이 살짝 썩을 뻔 했다.
사실 우리 마을은 어지간한 지도에도 안 찍힌 곳이었으니 멀쩡히 있을 때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저 사람도 그런 의도에서 말한 거라 여기지만, 막상 이렇게 들으니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있었습니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었죠.”
“아, 그랬군요. 그런데 있었다는 건…?”
“마왕군이 다 박살 내고 가서 이젠 없습니다. 제가 여기 있는 이유죠.”
아는 사람이 별로 없든, 마왕군이 서부 구석까지 왔다가 튄 감춰진 역사가 있다는 걸 비밀로 치부하든 뭐든 내 알 바는 아니었기에 당당하게 말해주자 순식간에 공기가 굳어 버렸다.
귀하신 분이라고 농담을 건넸던 기사는 고개를 처박더니 제 스튜 그릇만 보기 시작했고, 다른 이들은 온갖 감정이 뒤섞인 얼굴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찌르려던 의도가 없었기에 조금 당황한 찰나, 란제가 그 모든 이들을 두루 살펴보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단호하게 숟가락을 빨고는 그대로 농담을 건넨 기사의 이마를 때렸다.
“니가 알고 그랬냐 임마? 에가 경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으면 자연스럽게 넘기고 이야기 돌려야지 입맛 떨어지게 주둥이를 다물고 있어.”
“아, 아무리 저라고 해도 그건 좀…”
“에라이 화상아.”
보면 볼수록 기사와는 거리가 먼 광경이로군. 나도 굳이 전쟁터에서 분위기 작살나는 건 원치 않았기에 적당히 웃으며 호응하고 나서야 분위기가 풀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뻘쭘하다는 듯 말 그대로 먼산 보듯 괜히 레비엥 외성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이 대체 언제쯤 다시 고개를 돌릴까 싶어 구경하던 나는 한창 풀어져 있던 그들의 눈에 힘이 들어가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저거 비룡 아닙니까?”
그 한 마디에 지금까지 풀어져 있던 모든 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레비엥 외성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그건 나도 다를 바 없었고, 덕분에 우린 내성에서부터 날아오르는 비룡 두 마리를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근데… 저거 한 마리가 이쪽으로 오는 거 같다?
“여기로 오는데?”
다행히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