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23)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23화(423/599)
[423화] 서부에서부터 흘러넘친 악몽“돌격!”
마상용 랜스를 치켜든 기사 다섯이 오러를 두르고 달려든다.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땅이 파이고, 그렇게 세 걸음을 뗀 순간 이미 최고 가속에 들어간 기사들의 돌진은 기마병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파괴력을 지닌다.
아무리 실력에 자신이 있다 하더라도 저렇게 준비된 공격에 동시다발적으로 대응하는 상황은 피하는 것이 맞았다. 수년간 마족을 상대하며 합을 맞춰온 기사들은 합을 맞춰 그 이상의 실력을 내는 게 이골이 난 존재들이었으니까. 호흡마저 맞춰서 시도하는 공격에서 빈틈을 노리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접근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라프는 쉬이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자신이 낸 결론을 입에 담자마자 엘드미아가 보인 반응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기에.
그 짧은 순간에 맥락을 파악하고 자신을 당황시키기 위해 연기를 한 게 아닌 이상 저건 진짜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이라프의 머릿속을 한 가지 의문이 지배했다.
사령부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가?
‘당장은 알 방법이 없지만, 아닐 것이다.’
수년 전에 치러진 작전의 세부 내용은 마왕군 내부에서도 극비였기에 이라프 역시 완전하게 파악하고 있진 못했다.
지금이야 사단장의 위치까지 올랐지만 당시엔 백인대장에 불과했던 그는 잘나가는 군인이긴 했어도 기밀 부대나 작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한 작전이 있었다는 것조차 사단장이 되고 한참 시간이 흘러 우연히 주워들은 것에 가까웠으니, 그 경위를 되집어 볼 때 마왕군 내에서 이를 알고 있는 이는 극히 소수일 것이다.
그나마 알려진 거라고는 과거 마족의 영토였던 곳에 위치한 마신의 신전에서 유물을 찾아 돌아오는 작전이 있었다는 것 정도. 하지만 그마저도 소문만 무성해서 무엇을 회수했는지, 어떠한 과정이 있었는지, 어떻게 비밀리에 움직일 수 있었는지는 전부 두리뭉실했다.
딱 하나. 인족의 마을을 궤멸시켰다는 것만 빼고.
“…아무래도 너는 이곳에서 죽어야 할 것 같군.”
마왕군이 무엇을 노렸는지 아무도 모르게 하기 위해, 하필 인근에 있었던 작은 마을을 지도에서 지워 버려야만 했다.
겨우 그 정도만 알려졌지만 이라프가 결단을 내리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군인은 명령을 따라야 하는 법이지 않겠냐.”
애초에 몰살의 목적이 기밀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는데 생존자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문제다.
혹여 살리려다가 놓쳐서 그 작전에 대한 실마리가 잡히면 비밀을 위해 몰살 당해야 했던 군인도 아닌 인족들과 그들을 학살했다는 죄책감을 충성심으로 버텨야 했던 이들은 뭐가 된단 말인가.
기만이고 자기만족일지라도 마왕군의 일익을 담당하는 자로서, 엘드미아의 명줄을 여기서 끊는 것만이 그가 이미 죽은 적국의 백성들에게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예의였다.
비록 그 작전에 가담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은 이 기나긴 전쟁을 이끌어 나가는 자였기에, 그럴 책임이 있었다.
“마왕군과 이미 죽어 간 자들을 위해… 여기서 죽어다오.”
부러진 투창을 기사들을 향해 전력으로 던진다. 그것만으로 결사의 의지를 담아 달려드는 이들을 저지할 수는 없었지만 아주 약간의 어그러짐을 만들 수는 있었다. 누군가는 아주 간발의 차이로 피하고, 누군가는 요령 좋게 갑옷으로 받아 흘렸지만 이라프에겐 충분한 틈이었다.
다리로 바닥을 내려찍어 균열을 일으켜 흐트러짐을 만들고, 그대로 달려들어 미세하게나마 가장 앞서고 있는 이의 랜스를 옆으로 밀쳐 빈틈을 만든 이라프의 손과 발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기사들의 갑옷을 우그러 뜨린다.
-콰드드득!
한 방 한 방이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공격이었지만 기사들의 갑옷은 제 주인에게 잠깐이나마 유예를 줄 정도로 튼튼했고, 기사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자마자 몸을 날려 최대한 충격을 완화함으로써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그 대가로 두 자루의 랜스가 멀쩡히 이라프의 손에 쥐어지게 되었지만, 기사들은 기적과도 같은 업적으로 자신을 알린 엘드미아를 믿었다.
그의 실력이라면 이 짧은 순간조차 엄연히 ‘빈틈’이다.
“개지랄 옆차기 하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씨발것이.”
그리고 엘드미아는 그들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죽어 간 자들을 위해 죽는 건 너희가 될 것이다!”
방금 기사들이 보여줬던 돌진의 배는 될 법한 속도로 달려드는 엘드미아와 함께 사방팔방에서 바늘과 잘린 투창들이 이라프를 향해 날아들었다.
◈
사람은 분노로 각성 못한다.
뭐… 순간적으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는 있겠지만, 그거 한 번 발휘한다고 죽일 수 있는 상대였으면 이미 팔다리 잘라서 심문에 들어갔지. 분노로 각성할 수 있었으면 난 이미 골백번은 더 각성해서 신이 되었을 테니, 이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을 강하게 할 수 있는 건 언제나 반복 숙달과 응용력 그리고 재능 뿐이다. 분노가 유발하는 좆같음은 오히려 이성적인 사고에 걸림돌이 되어 죽을 확률만 높인다.
근데 사람이라는 게 이성적으로는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어도 빡이 칠 때가 있는 법이다.
예를 들어, 가해자인 새끼가 뜬금없이 억울하게 죽어 간 우리 부모님을 비롯한 동네 사람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나보고 죽으라고 할 때라던가.
“먹고 뒈져 씨발 새끼야!”
다른 건 몰라도 그건 못 참는다. 모욕이다. 알아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죽일 수 없어도 죽인다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모욕적이다.
바늘과 투창들을 날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엔벨데에게 검을 날렸을 때 써먹었던 방법대로 꽁무니에 마력을 기폭시켜 가속시킨 공격은 확실히 빨랐다. 기사마저 보지 않고 상대했던 물소 뿔이 눈깔을 돌려가며 파악하고 무기를 휘둘러야 할 정도면 미끼 역할은 제대로 해준 거라 볼 수 있겠지.
이젠 오크 놈들 상대한 뒤 정령님과 면담했을 때의 대화를 믿고 무리하는 일만 남았다.
그렇게 의식하자마자 마력 기관 안에서 마력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동안 조금 더 견고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일까? 느낌으로는 거의 주유구를 열어 기름을 들이 붓는 수준으로 마력을 쓰고 있음에도 느껴지는 저항은 혈관에 항생제를 투여받는 수준에 불과하다.
아카데미에서 지크프리트의 대검을 갈라버렸을 때와 흡사한 감각이지만, 끌어다 쓰는 마력량 때문인지 근육과 피부까지 저릿저릿하다.
그렇게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할 수 있는 저항과 달리 내 움직임과 휘둘러지는 검은 그 어느 때보다 예리했다.
“흡!”
물소 뿔은 빠르게 두 자루의 랜스를 단창 쓰듯이 교차해서 내 공격을 막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마장금도 잘라 냈는데 인족의 무기를 가르지 못할 이유가 어딨겠어?
하지만 놈도 이미 한 번 겪은 터라 이를 예상하고 있었는지 내 공격을 막는 걸 목적으로 삼기보단 무기가 내게 잘리는 그 짧은 순간 잘려 나간 단면을 이용해 검을 밀친다는 형태의, 굉장히 정신 나간 반격을 시도했다.
-터엉!
게임이었다면 진짜 콤마 단위의 타이밍을 맞춰 패링을 시도한 격.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반격 기술에 놈과 대등한 수준으로 성장하면 이딴 짓도 가능한가 보다, 라는 감상과 좆같다는 감상이 동시에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그런 감상보다도 빠르게 반사적으로 휘둘러진 발이 놈의 명치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쾅!
“큽!”
“씨발!”
갑옷도 마장금인 것인지 마력을 두르고 부츠에 철판도 박았는데 되려 내 발가락 뼈가 부러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프다. 다행히 놈도 이번 기습까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크게 움찔거렸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되려 공격한 내쪽에서 빈틈이 생길 뻔했다.
그래, 이렇게 빈틈 한 번씩 보여 주며 주고받는 거지. 그게 인간미고 정 아니겠냐.
“좆 같은 은수리 만세!”
우리 팀하고 말이야.
그 거대한 쇠몽둥이와 갑옷을 걸치고도도 진짜 다람쥐처럼 날렵하게 달려온 란제는 고함과 함께 물소 뿔의 머리를 노리고 무기를 휘둘렀다. 기습은 입 닥치고 하는 게 상식임에도 저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자신의 공격이 먹힐 거라는 확신이 없으니, 빈틈을 유도해서 협공을 노리는 것.
문제는 당장 물소 뿔과 붙어 있는 건 나와 란제 정도인 것에 반해 놈은 우리 둘을 동시에 견제할 만한 충분한 실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놈의 손에 들린 게 창대만 남은 랜스라는 것에 감사할 겨를도 없이 더럽게 빠른 공격이 양쪽으로 펼쳐진다.
당연히 란제의 공격이 통하지 않을 것을 대비해서 휘두른 내 검이 또 다시 놈의 창대를 잘라 내자마자 패링 당하고, 란제의 쇠몽둥이는 놈이 쥐고 있던 창대를 가루로 만들면서 내려 찍다가 거의 손을 뭉개버릴 수 있을 때 쯤 강제로 방향이 틀어진다.
그걸로 끝나지 않고 번개같이 몸을 회전하며 내겐 뒤돌려차기를 날리고 란제에겐 아직 내게 잘리고 남은 창대를 비수처럼 던진 탓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놈과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이 정도면 신모합일身矛合一이라 불러도 되는 수준인 거 아닐까? 그냥 투창만 좆 같은 게 아니라 단창술 자체에 도가 텄음이 분명하다.
이대로 거리를 두면 또 뭔 짓거리를 할지 감도 안 왔기에 다시 달라 붙으려는 찰나.
-퍼버벙!
“크학?!”
란제에게 무기를 던지고 나에게 발차기를 날리느라 열려 버린 놈의 흉갑에 불꽃으로 이루어진 화살 세 방이 동시다발적으로 틀어박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꽤 위협적이라서 나도 살짝 움찔 거려야 할 정도였기에 누가 이렇게 완벽한 타이밍을 노리고 기습을 도왔나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저 멀리 머리 위로 십여 발은 되어 보이는 불꽃 화살을 빙글빙글 돌리며 물소 뿔을 향해 창과 방패를 겨누고 있는 라그니스가 보였다.
“가세한다!”
월계수와 방패 문양이 새겨진 원형 방패를 세우고, 기창을 휘둘러 마법을 운용하는 그녀의 모습은 솔직히 그 어느 때보다도 멋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