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30)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30화(430/599)
[430화] 피리 기사보고서를 작성하고, 술집에서 백여명의 기사들과 와인 한잔을 기울이고.
그러다가 어디서 귀신같이 맥주통을 구해와서 맥주는 술이 아니라 물 좀 많이탄 곡물 스튜라는 되도않은 궤변을 늘어놓는 기사들을 못 본 척하며 술집을 벗어나니 이미 밤이 깊어져 뼛속까지 추위가 엄습했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전쟁의 중심인 도시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다. 도시는 무너진 곳보다 멀쩡한 곳이 더 많았고, 보이는 사람들은 이미 완전하게 도시를 탈환한 것처럼 밝기 그지없다.
연전 연승의 승전보를 올리고 있다는 소리니 그러한 분위기를 싫어할 이유는 딱히 없었지만 그런 분위기에 취해 있는 거리를 거닐다보니 간만에 속에서부터 스멀스멀 불안감이 기어올라 온다.
이유는 당연히 물소 뿔 때문이다.
놈은 강했다. 난 할 수 있는 걸 싹 다 동원했음에도 버티는 게 고작일 정도로. 같은 마력을 이용해서 그런지 엔벨데처럼 기습이 통하지도 않았으며, 무기에 마력을 두르는 것조차 즉흥적인 판단과 실력으로 대처할 정도로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스스로에게 심취한 적은 없지만, 갈 길이 멀다는 걸 정말 오랜만에 실감하게 되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요 며칠 동안 자는 시간마저 줄여가며 공수 부대들의 출격을 전부 따라갔던 것 역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거였으나…
…정작 그 많은 전투를 치뤘음에도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나마 승룡술은 많이 늘었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려나.
“낄낄, 이래서 상태창이 치트키인 건가?”
뭐가 얼마만큼 강해졌고 강해질 것인지 볼 수 있다는 건, 그게 100%의 정확도를 지녔다는 가정하에서는 참 대단한 능력인 거 같다.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건 정말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데, 상태창 하나만 깔고 가면 견적이 바로바로 나오니까.
그렇다고 있지도 않은 능력을 바라며 손가락만 빨 수는 없으니 가지고 있는 거나 열심히 단련해야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자기 전에 마법 좀 공부해 봐야겠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거리를 지나며, 이십 여분은 더 걸어가야 하기에 지루함을 달래고자 기억에 있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건 전생의 음악이 아니라 모험가 길드에서 한 음유시인이 부르던 음악이었다.
분명 전생의 삶이 현생보다 더 길었음에도, 이제는 많은 기억들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느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득한 추억을 되새기며 그땐 그랬지라고 웃어 버리는 기분인 거 같기도 하고… 한 많고 아쉬움 많았던 기억을 되씹으며 슬픔을 느낀 것 같기도 하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내 주의가 좀 산만해졌다는 점이다. 나는 시간이 흘러 숙소에 거의 다 왔다는 것도, 그런 내 앞을 가로막는 누군가의 인기척을 자각하는 것도 늦었다.
“엘드미아 에가 경?”
“음?”
처음 듣는 목소리, 눌러 쓴 로브.
날씨를 생각하면 딱히 이상할 게 없는 복장이었으나, 전생을 추억하고 있었던 탓에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생각은 참 암살자스러운 복장이라는 감상이었다.
그리고 그 감상이 날 살렸다. 열 걸음은 족히 벌어져 있던 거리를 순식간에 치고 들어온 놈이 로브 속에서부터 단검을 찌르고 들어오는 걸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 시답잖은 감상 덕에 습관적으로 긴장한 덕이었으니까.
단편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소감은 굉장히 숙달된 일격이라는 것. 마치 이 공격 하나만을 위해 갈고 닦은 듯한 찌르기가 내 옆구리를 향해 날아오는 걸 머리로 이해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큭!”
내가 그 일격을 피했다는 사실에 적잖게 놀라면서도 놈은 바로 자세를 고쳐잡으려 했으나 그것보다는 내 손발이 튀어 나가는 게 더 빨랐다.
오른손으로 단검을 쥔 놈의 왼손을 받치며 그대로 왼 손바닥을 휘둘러 손목을 탈골 시키고, 급하게 뒤로 빠지려는 놈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대로 팔뚝을 잡아채며 로우킥을 갈기자 앞으로 나와 있던 놈이 오른 다리가 불가능한 각도로 꺾이다 못해 터져 나간다.
손속을 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배후? 이미 알아차린 것도 늦은 마당에 안일하게 대응하다가 죽는 것보다 모르는 게 낫다.
그랬기에 난 놈이 비명을 지를 틈조차 주지 않으며 놈의 팔을 쥐고 있던 오른손을 휘둘러 놈의 명치에 어퍼컷을 때려 박았다. 확실하게 죽이려면 목 위를 공격하는 게 나았지만 붙어 있다가 자폭 같은 거라도 하면 답도 없었기에 놈을 떨쳐 내기 위함이었다.
‘우드득’ 하는 뼈가 박살 나는 감각이 건틀릿 너머로 확실하게 전달되며 암살자의 몸이 뒤로 날아가기까지 5초 남짓 걸렸을까. 예기치 못한 기습 때문에 잔뜩 긴장하긴 했어도, 반복 숙달을 통해 몸에 박아넣은 기술들이 기대에 보답한 덕에 상처는 없었다.
“크륵, 컥!”
바로 심장이 터져 죽을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암살자가 꿈틀거리며 피를 토해냈다.
“생각보다 튼튼하네.”
주변에 따로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었기에 휘파람 없이 바늘을 뽑아 놈의 사지에 박아넣자 다 죽어 가는 와중에도 놈이 신음을 흘렸다. 설령 놈이 최후의 발악을 하며 내게 달려든다 하더라도 바늘로 어느 정도 행동에 제약을 줄 수 있으니 거리낌 없이 거리를 좁히자 암살자는 바들바들 떨면서도 적의가 가득한 눈동자를 굴려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게 고작이었다. 혹시나 싶어 마력시를 사용했지만 녀석에게는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뿔을 깎고 숨어든 마족인가 싶었는데 그냥 인족이었다. 하긴, 마족이었으면 굳이 내 이름을 되물어볼 것도 없이 그냥 마력만 보고 판단했겠구나.
내 진심어린 공격을 맨몸으로 맞고도 바로 죽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나름 오러를 수련한 인물인 것 같지만 이대로 가면 곧 죽을 것이 분명했다. 순간 포션이라도 써서 얠 반 정도 살린 뒤 배후나 알아볼까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는데 다행히 놈이 먼저 입을 열어서 내 수고를 덜어줬다.
“피리 기사… 이 빌어먹을 괴물 새끼… 마신께서 네놈을 심판하실…쿨럭!”
놈은 조금도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나를 저주하기 위해 내뱉은 그 한마디는 생각보다 많은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이티스엘 한복판에서 나를 습격했던 마왕군 특수부대원도 그렇고, 여기서 신명나게 털었던 마왕군도 그렇고 허구한 날 입에 담는 말이 ‘자유를 위하여’라서 최근에 대체 이놈들이 무슨 자유를 위한다는 건지 궁금하던 찰나였거든.
왜, 흔히 있잖아. 신의 폭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기를 드네 뭐네 하며 신으로부터의 자유를 부르짖는 레퍼토리 같은 거.
이 녀석이 하는 말만으로 마왕군 전체의 의도를 확인할 수는 없겠으나, 최소한 일반 병사 내지 요직에 앉아 있지 않은 이들은 그런 초월적인 규모의 자유를 원하고 전쟁에 참여하는 건 아닌 듯하다. 만약 그런 거였으면 괘씸죄를 첨가해 혼내줄 요량이었는데.
“고맙다 야, 덕분에 여러 가지 의문이 해소됐네. 겸사겸사 물어보는 건데 너 혹시 특수작전사령부 소속이니?”
격하게 피를 토해내는 순간 놈의 눈에 비춰진 것은 경악이었다.
그 뒤로는 계속 피와 함께 삶을 토해내느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암살자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했기에 나는 사지에 박아두었던 바늘을 회수한 뒤 미간에 바늘을 날림으로써 놈을 고통에서 해방 시켜주었다.
그리고 놈의 로브 뒷덜미를 쥔 채 막사를 향해 다시 나아갔다. 음유시인의 음악을 흥얼거리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횃불을 밝혀둔 막사 앞에 도착하니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경비병 둘이 나를 알아보고는 가볍게 경례를 하며 인사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에가 경. 손에 그건 뭡… 사람?”
어둑어둑해서 놈이 흘리고 있는 피가 보이지 않은 것인지 경비들의 얼굴엔 별다른 긴장감이 없었다. 흠, 이런 거보면 길에서 날 습격하기로 한 암살자에게 고마워해야할지도 모르겠다. 막사에 침입하거나 했으면 사람 여럿 죽었을지도.
“암살자 였던 것.”
그런 감상을 속으로 밀어 넣으며 대충 시체를 던지자, 경비병들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암살자요!?”
“마왕군에 귀의한 인족인 거 같다. 소지품은 하나도 안 건드렸으니 사람 불러서 확인해 봐. 방심하고 있었던 탓에 뭐 물어볼 틈도 없이 죽이고 말았거든.”
“어,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갑작스러운 기습에 놀란 내 가슴을 제외하면 멀쩡하니 걱정 말고.”
가벼운 농담을 던져 보았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나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시체와 뒤처리를 경비들에게 넘긴 채 숙소로 돌아왔고, 피 묻은 장비를 닦고 점검하며 잘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방문객을 맞이하게 되었다.
“엘드미아! 괜찮아!?”
사색이 된 라그니스의 얼굴은 과도한 업무로 인한 다크서클와 시너지를 일으켜 오히려 내가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정말 당황했는지 허겁지겁 방에 들어온 라그니스는 어디 상처라도 있을까 내 몸을 살펴보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그녀를 조심스럽게 만류하며 진정시켜야 했다.
“진짜 괜찮아. 무리도 하지 않았고, 다치지도 않았어. 마족이었으면 모르겠는데 인족이더라고. 암살자로 키워진 건지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첫 공격 이후로는 별거 없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암살자라니? 지금 레비엥 일대의 소탕이 다 끝나가고 있는데 암살자라니!”
그래도 내 실력을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겨우 암살 시도 정도로는 크게 놀라지 않을 거라 여겼는데 전혀 아닌 모양이다.
정면으로 싸우는 것과 기습을 당하는 걸 별개로 취급하는 마음가짐은 참으로 바람직했으나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손도 살짝 떨고 있기에 난 짐짓 쾌활하게 웃으며 그녀를 달랬다.
“오히려 그러니까 인족을 통해 암살이라도 시도한 거겠지. 능력 주의인 놈들이 인족을 앞으로 내세우는 일이 얼마나 있겠어? 오히려 날 노린 게 다행이야.”
진심이었다.
라그니스나 다른 사람들을 노리는 것보다 깔끔하게 끝난 것도 이유였고, 사람이 나태해질 틈을 주지 않고 특작부 소속의 마왕군을 빨리 찾아내 조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줬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