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31)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31화(431/599)
[431화] 피리 기사어쩌다 보니 무난하게 극복했지만 마왕군이 인족을 통해 암살을 시도했다는 건 가벼이 넘길만한 사안이 아니었던 만큼 레비엥 변경백령은 한동안 어수선해졌다.
알트 여단장은 회의를 통해 검문을 강화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결론을 내렸고, 거기엔 일반 병사들뿐만 아니라 마왕군의 치밀해지는 대응 덕에 할 일이 없어진 공수 부대원들이 자연스럽게 불려 나가게 되었다.
나중에 기사들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몰래 맥주통을 깐 게 결국 들켜서 차출되었다는 것 같다. 물론 그 불행에 나는 포함되지 않았기에 가끔씩 산책을 하며 마주치는 공수 부대원들을 즐겁게 구경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레비엥을 사이에 둔 전투가 소강상태에 이를 때까지 놀고먹기만 한 건 아니다. 지금까지 계약에 따라 습격을 진행해 오며 내게 떨어질 명예와 보상 같은 것을 전부 마왕군에 대한 정보로 치환한 나는 숙소에 틀어박혀서 물소 뿔에게 들었던 특작부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군인도 아닌 내가 열람할 수 있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왕실과 귀족원은 나라는 미친개를 적당히 풀어놓는 게 전선에 이득이라고 판단했는지 여러 가지 공훈을 핑계 삼아 아슬아슬한 선까지 정보를 제공해주었고, 덕분에 내 숙소에는 집에 쌓여 있던 성광십자회의 자료들 만큼은 아니어도 꽤 두께가 있는 보고서와 자료들이 쌓이게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쓸모없는 내용들이었다. 나를 엿 먹이기 위해 이런 정보만 줬다기보다는 그냥 특작부를 대하는 방침 자체가 다르기에 취급하는 정보도 다르다는 느낌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왕국군에게 특작부란 찾아서 박살 내야하는 대상이 아니라 기피 대상이었다.
대외적으로 어느 정도 모습을 드러낸 전적이 있는 전투 부대에 대해서만 정보를 공유하고 있으며, 실력이 미달일 경우 최대한 버티거나 도주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실력이 있더라도 아군과 합류해서 상대하는 것을 방침으로 삼는다.
적혀있는 바에 의하면 강함의 기복이 종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천차만별일 뿐만 아니라 모습을 드러낸 것부터가 특작부가 계획중인 작전의 일부일 수도 있다는, 매우 매우 의심병 가득한 이유 때문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기만 전술에 당한 게 많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일부 전투 병력의 외관을 제외하면 도움되는 게 얼마 없었다.
왕국도 마왕군의 심부까지 전진한 적 없기 때문에 정보는 한정적이다. 마족이 스파이나 교란 부대를 심는 것처럼 시도해 보려 했다는 기록이 있었으나 자체적으로 게이트를 이용해 멋대로 다닐 수 있는 놈들과 달리 물리적인 수단을 통해 침투해야하다 보니 결과가 영 좋지 않다.
일해라 왕실 정보부…!
결국 수도에서부터 정보를 받는 데 나흘, 전부 읽어보는 데 또 나흘을 소비했음에도 소득은 미미했다. 그러는 사이 은수리 여단의 승전보는 계속 이어졌고 공수 부대와 나를 향한 찬양도 마찬가지였다.
적들이 기어이 공수 부대를 견제하기 위해 후방에 힘을 쓰기 시작하면서 전방이 약화된 것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거의 노이로제에 걸릴 수준이라서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부대도 있다고 하는데, 사기 진작을 위한 프로파간다가 어느 정도 섞였다고 하더라도 꽤 긍정적인 결과였다.
아예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알트 여단장에게 이야기를 직접 전해 들은 라그니스가 해 준 말이었으니까.
“알트 여단장은 이대로 갈 경우 빠르면 한 달 안에 레비엥을 완전 탈환하고 요새 도시로 구축할 수 있을 거 같다고 결론 내렸어. 적들의 공세가 그렇게까지 완강하지 못하다더라.”
간만에 라그니스의 집무실에 앉아 티 타임을 가지며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 그런 내용들이었다.
왕실에서 이민자를 모집한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풍족하게 보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등등.
몇 년을 마족 손에 넘어가 있던 도시인만큼 점령 초기에 마왕군뿐만 아니라 민간인도 많았고, 그들이 쌓아 올린 삶의 흔적들은 더 많았다. 민가부터 시작해서 상권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급작스러운 외성 돌파로 인해 제대로 회수조차 못하고 남겨졌다. 굳이 소문을 퍼트리지 않았는데도 대략적인 소문을 전해 들은 상인들이 벌써부터 입점과 개발을 위해 앞다투어 움직이는 중이라는 게 라그니스의 부연 설명이었다.
“덕분에 머리가 터질 거 같아.”
8일간 뒹굴거리며 쉰 나와 달리 라그니스는 여전히 다크서클과 이별하지 못한 상태였다. 업무 책상 위에 한가득 쌓인 서류들은 보기 좋게 정리되어있었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높고 견고한 성벽이나 탑처럼 느껴져서 더 많게 느껴졌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란다.”
“…맞는 말인 거 같은데 왜 네가 말하니까 기분이 이상하지?”
오묘한 표정으로 도끼눈을 뜨는 라그니스였지만, 이 상황이 나름 안정된 결과라는 걸 알았기에 나는 대놓고 낄낄거렸다.
알트 여단장은 유능했다. 그의 뒤를 따르는 군대도 유능했고, 그 뒤에 이어진 후방의 지원 역시 아낌없다.
“이제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다 한 거 같다.”
싸우는 것만 할 줄 아는 내가 할 일은 거의 다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 여기며 입을 열자 라그니스가 쌍심지를 켰다.
“뭐야? 지금 날 이 위험한 곳에 혼자 덜렁 내버려 두고 귀환하겠다고?”
“네. 제대로 들으신 게 맞는데요.”
“…조금이라도 당황하거나 미안한 척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내 당당함에 고개를 내저으며 표정을 푸는 라그니스를 보며 난 한 번 더 웃었다.
어차피 그녀가 가는 길엔 라드넬반데스 경이 함께 한다. 이번엔 전장이 겹치지 않아 활약을 못 봤지만 첫날 공성전 때 그가 보여 준 마법은 굉장했다. 비록 마왕군에게 막혔다고는 하나 혼자서 너댓 명의 고위 마법사들만큼의 역할을 해냈으니 나 하나 없다고 해서 그녀의 목숨이 경각에 이르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내가 없는 게 더 안전해.”
“왜?”
“악명 높은 피리 기사잖아.”
암살 시도는 오롯이 나 하나만을 노리고 이뤄졌다. 동시다발적으로 주요 인사를 노리는 게 아니고 나 하나만.
그런 내가 한층 더 경계가 삼엄해진 레비엥에 남아 있으면 놈들이 과연 포기할까? 오히려 그걸 뚫기 위해 더 치밀해지고 강한 인력을 투입할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더 이상 공수 부대와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뒤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작전을 진두 지휘하거나 뭐라도 된다고 여기며 일단 죽이려고 들겠지.
불과 며칠 사이에 내 악명은 거기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그만큼 치명적인 타격을 줬기에 알트 여단장도 전선을 굳힐 수 있었던 거고.
“내가 수도로 가면 알트 여단장이랑 함께 알아서 같이 정보를 흘려. 피리 기사가 이동했다고. 그런데도 비룡 부대는 멀쩡히 남아서 틈 날 때마다 후방을 노리면 놈들은 아마 내가 다른 전선에도 같은 짓을 하기 위해 이동했다고 여기겠지. 너한테 말할 기회는 없었지만 그 정도로 내 악명이 드높아졌거든.”
책상 업무만 하느라 미처 몰랐을 그녀에게 새롭고 놀랍기 그지없는 정보를 말해줬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라그니스는 가소롭다는 듯 눈을 흘기며 한심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고 내게 물었다.
“너 성벽 파괴자라고 불리는 건 알고 있어?”
“아니 진짜, 그건 또 뭔데? 내가 뭘 부쉈다고 파괴자야?”
“그럴 줄 알았다. 비룡 타고 놀러 다니는 네가 소문에 대해 뭘 알겠니.”
못났다는 듯한 차례 혀까지 차는 그녀의 모습에 난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고, 라그니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당연하다는 듯 내 무릎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변경백님? 갑자기 이러시면…”
“왜? 여긴 에스뮈에 지정석이야?”
“…불편하실 수 있으니 편하게 앉게 해드리려고 그랬죠.”
지은 죄가 많으니 할 말이 없었다. 슬쩍 자세만 고쳐 앉자 표독스럽게 나를 쏘아 보던 라그니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가볍게 포옹했다.
“고마워.”
“새삼?”
“이번 원정 말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다 말이야.”
하나부터 열까지 내 변덕이었고 자기만족이었던 일에 고맙다는 말을 들을 이유는 딱히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입에 담지는 않았다.
“다 네 노력의 결과지. 기억나? 난 기회만 줄 뿐이라고 했던거.”
“어떻게 잊겠어.”
포옹을 마치고 나를 응시하는 라그니스의 눈에는 여전히 피로가 가득했지만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보여주었다.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테니까 잘 보라고.”
같이 있고 싶고, 도움받고 싶다고 해서 막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에스뮈에와의 만남 이후로 라그니스도 많은 심경의 변화를 겪은 듯했다. 꽤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형태로 말이지. 그녀의 팔뚝만큼이나 굵어진 멘탈과 자신감이 나에게도 느껴졌다.
“그 노력을 앞으로는 내 영지에서 해야 하느라 자주 못 본다는 게 한이지만.”
“어차피 수도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잖아. 나도 이 특작부라는 녀석들 찾아 다니려면 한동안 바쁠 테니 겸사겸사 라고 생각해.”
“…무모하게 굴면 안 된다?”
짐짓 걱정된다는 투로 말하는 그녀의 반응에 나는 헛웃음과 함께 뻔한 대답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무모하게 굴어서 해결될 문제였으면 진즉에 그랬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그러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쉽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