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32)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32화(432/599)
[432화] 피리 기사엘드미아는 주저 없이 수도로 귀환했다. 자신이 전장에서 노획한 비룡을 타고서.
애초에 개인적으로 나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왔었기에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그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너무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준 탓에 ‘아, 그랬었지.’ 라는 반응은 넘쳐흘렀지만 그런 감상에 얽매일 정도로 여유로운 사람들은 없었다.
정작 가장 여유롭지 않은 사람 중 하나인 나만 저 멀리 사라져가는 비룡에 미련을 가질 뿐이다.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아.”
엘드미아 암살 미수 사건 이후로 항상 곁을 지켜 주는 레니사는 내 퉁명스러운 대답에 웃음으로 대답했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모든 걸 던져두고 달려와 준 충신은 내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레니사도 봤잖아. 사단장이라는 마족과 엘드미아가 싸우는 거.”
“처음엔 ‘아, 저 사람도 인족이긴 했구나.’ 싶었다가 ‘어라? 이제 갓 성인이 됐는데 마왕군 사단장의 발을 붙잡고 있는 게 말이 되나?’ 라고 생각하게 만들던…”
“아, 진짜! 알아! 나도 안다고!”
알고 있는 듯한 게 아니라 너무 잘 알았다. 불만스럽게 쏘아봐도 레니사는 그저 미소 지을 뿐이었다.
“그에겐 저도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가주님이 계시지도 않았겠지요. 제가 이럴진데 당사자인 가주님의 마음은 말할 것도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불안하겠죠.”
맞다. 불안하다. 엘드미아가 죽을까봐 불안하다.
그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연스럽게 위험을 찾아갈 게 너무나도 뻔해서 불안해 죽을 것만 같다. 이번 원정은 차라리 엘드미아 없이 치렀어야 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성벽을 타고 오르는 묘기로 전쟁을 말도 안 되게 단축시킨 것과, 비룡을 통해 적의 후방을 기습한 대가로 그는 너무 많이 노출되었다.
보고에 따르면 적들은 아군의 비룡이 날아들 때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로 위협의 정도를 판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탓에 도시에 상주하고 있는 비룡 강습 부대는 수신호보다 휘파람으로 신호 보내는 걸 더 선호하게 되었다.
그만큼 적들의 사기를 떨구고 혼란을 주는 역할을 제대로 한다는 의미다. 이런 내용이 마왕군 내에서 퍼지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엘드미아가 다음 전장에 섰을 땐 꽤 많은 적들이 그를 알아볼 것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작은 엘드미아’ 라는 묘한 호칭의 생포 및 사살 대상이 아닌, 피리 기사 내지는 성벽 파괴자와 같은 전장의 위협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게 에가 경의 길이라는 걸 아시잖습니까.”
“…알고 있으니까 못 잡은 거잖아.”
엘드미아의 곁에 있고 싶다. 그렇다고 그의 발목을 붙잡을 수는 없다. 그가 나를 놓고 갈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내가 그의 발목을 잡음으로써 그를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을까 두럽다.
“그는 영웅심에 심취한 아이가 아니라 전사입니다. 그리고 전사의 곁에 서기 위해서는…”
“나도 전사가 되어야 한다는 거지.”
그러지 않기 위해, 오히려 필요할 땐 돕고 지키기 위해, 나 역시 강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마법으로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었던 건 굉장히 기분 좋은 기억이었다.
엘드미아는 물러나라고 하지 않고 나의 도움을 원했다. 항상 도움만 받던 이와 잠시나마 합을 맞출 수 있는 위치까지 성장했다는 깨달음은… 생각보다 중독성이 있었다.
“맞습니다. 사실 물리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신적인 의미로 드렸던 말씀이지만 말이죠.”
레니사는 그런 내 의중을 또 꿰뚫어 보았는지 슬쩍 붙어서 자연스럽게 내 팔뚝 두께를 확인했고, 나는 웃으며 그녀의 손을 떨쳐 냈다.
어릴 적… 그러니까 고향을 뺏기고 가문을 등진 채 도망쳐 오그웬 뒷골목에 이르기도 전에,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잠들면서도 가문과 영지를 되찾겠다는 꿈을 꾸며 잠들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런 계획도, 지식도 없었기에 과정은 없었다. 어떨 땐 용사처럼 부대를 직접 이끌고 적장을 무찌르기도 했고, 또 어느 날엔 멋지고 강한 기사님의 도움으로 되찾기도 했다.
하지만 그 끝은 당시의 아이들처럼 희망과 사랑이 넘치는 형태가 아니었다. 꿈속의 나는 항상 부모님의 초상화를 보거나 붙든 채 오열하며 깨어나야 했다. 그리고 꿈과 현실의 괴리는 빠르게 내 마음을 좀 먹었었다.
그런데 막상 한낱 꿈에 불과할 줄 알았던 상황이 닥치니 슬플 겨를도,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었다. 매일 매일 배워야하는 것 투성이고 해결해야 하는 것들은 더 많았다.
그 속에서 삶을 지탱하던 슬픔이 다른 형태로 대체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생각보다 덤덤한 법이네.”
“예?”
“혼잣말이야. 이제 들어가자. 할 일이 많이 남았으니.”
어쩌면 엘드미아도 이런 기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리 생각하니 아주 조금은 그와 비슷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부부는 닮는다고 하잖아?
◈
사람의 감정은 참 재밌다. 자가용自家龍을 타고 전장을 그렇게 많이 날아다녔는데, 전장 외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기분이 고양되니 말이다.
어쩌면 품에 둘둘 말려 안겨 있는 라이카가 내 심리에 크게 작용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다 작아 보여!]“녀석, 재밌냐?”
[응!]달리는 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람을 느끼는 개처럼 세상 즐거운 녀석의 감탄사를 듣다 보니 나도 덩달아 유쾌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덕분에 짧게나마 머릿속에 가득 찼던 고민거리들이 뒤로 밀려나는 기분이다.
그러고 나니 조금은 막막하던 앞으로의 계획도 조금은 정리가 되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정해졌다.
“일단은 마력 기관을 다듬는 데 집중해야 하나.”
강한 놈과 붙을 때마다 강해진다… 솔직히 옛날엔 레벨업 하는 게임도 아니고 그런 형편 좋은 이야기가 있겠냐 싶었지만, 막상 몇 번 겪다 보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리 효율이 좋지도 않고 한시적인 감각의 증폭에 불과하다는 점에 있었지.
게임같은 걸 어려운 난도로 자주 하다 보면 반응도 그에 맞춰 빨라지지만 오래 안 하면 더뎌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강자와의 싸움이 주는 도움은 딱 그 정도다.
아예 스승으로 누굴 모시고 배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하고 따라가며 강해지겠지만… 그 정도 되는 강자는 다 어디 한 자리씩 꿰차고 있어서 머리 숙이고 들어가서 배운다 하더라도 이래저래 얽매이는 게 많아진다. 그렇다고 양아치처럼 얻을 거만 쏙 빼 먹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 보니 그런 상황은 앞으로도 피하고 싶다.
가장 베스트는 정신 나간 엘프 대장장이 뤼밍스에게 배우는 것이겠으나… 그녀가 보여줬던 태도를 떠올려보면 내가 열심히 다시 찾아간다 하더라도 가르침을 하사해 줄 것 같지는 않다. 결국 당장 할 수 있는 건 마력 기관을 좀 더 손보는 것과 스승님과 세네란의 도움을 받아 마법을 좀 익히는 것이리라.
“그런 다음 또다시 전장으로 인가…”
원래는 적당히 마족령으로 넘어가 활동해볼까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전장을 좀 많이 다녀볼 필요성이 생겼다.
물소 뿔 덕분에 대체 왜 전선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인지 납득이 안 가기 시작했거든.
사단장 급 하나 붙잡는데 적잖은 기사들이 달라붙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다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단체로 덤비지 않고 각개 격파 당했다면 줄줄이 죽어 나갔을 정도로 확연한 강자였다.
근데 심지어 10검이면 이길 정도라고 한다. 에카프 경이었다면 속된 말로 아주 복날의 개 잡듯이 두들겼을 거라는 소리다.
“대체 이 씹창난 파워 밸런스는 누구의 작품입니까 에파가 님…”
허공에 속삭여보았지만 당연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마족과의 전투가 알 수 없는 시너지를 일으켜서 성장이 폭주하는 거 같은데… 이마저도 뤼밍스가 말한 균형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딱히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날아가는 비룡 덕분에 멍때리고 딴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수도와의 거리는 착실하게 줄어드니 참으로 편하기 그지없었다. 비록 레비엥으로 향하던 때보다는 상대적으로 심심한 여행길이 되어 버렸지만, 그마저도 비룡 덕분에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다.
물론 나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기겁하고 놀란 시골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기억일 수 있겠으나, 돈 주고 산 돼지 한 마리를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비룡을 볼 땐 동네 사람들이 신기하다고 다 와서 구경할 정도였으니 그들에게도 나름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오락거리가 드물어서 그런지 굉장히 즐겁게 봐서 내가 다 어색할 정도였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겨울 장거리 비행에 익숙해지며 이동한 끝에, 나는 삼 일 째에 이르러서야 지평선 너머에서 아른 거리기 시작한 수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왕실의 인장이 찍힌 비룡 소지 허가증이 제대로 품에 있는 걸 확인하며 천천히 비룡 정거장에 착륙하자 아주 자연스럽게 정거장에 있던 조종사들의 이목이 나에게로 쏠렸다.
안장에는 양손 도끼를 걸고, 품에는 개 한 마리를 품은 채 소속을 식별할 수 있는 흔적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비룡을 타고 내려오는 인간이 바로 나였으니 지극히 타당한 반응이었다. 다행히 내가 여유를 두고 행동한 게 경계심은 풀었는지 창칼을 꼬나들며 접근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내 주위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품고 있던 허가증을 꺼내 들었다.
“레비엥 변경백령에서 온 엘드미아 에가라고 합니다. 비룡 정식 등록을 하려고 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왕실에서 허가증과 함께 동봉한 편지에 적혀 있던 광경이 그대로 펼쳐지는 것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열댓 명의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표정을 짓는 광경은 참으로 신기한 볼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