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34)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34화(434/599)
[434화] 성유물聖遺物저녁 늦게 집에 돌아온 아실리에는 내가 와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세네란의 편지 때문에 오그웬에 가야 할 것 같다는 말에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가, 자가용을 타고 날아갈 거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경악했다.
“비, 비룡을 주웠다고? 그걸 또 왕실에서 허가했고?”
그간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며 무사히 돌아온 걸 기념하며 푸짐한 저녁 만찬을 즐기며 술을 마시는 와중에 아실리에는 참으로 많은 감정적 변화를 보여 주었다.
놀라움이 잦아들며 점점 침착해지는 그녀에게 이야기를 계속하며 나는 최대한 열심히 별일 없었다는 식으로 포장하고 숨기려고 들었지만, 이미 예견된 아실리에의 추궁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재밌는 소문이 들리더라.”
“어떤 소문?”
“엘디가 혼자서 레비엥의 외성을 돌파하고 전쟁을 단축시켰다는 소문이었어. 재밌지 않니? 대체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겠어.”
‘하.하.하.’ 하고 웃는데 눈이 웃고 있질 않다. 그녀의 말마따나 정말 허무맹랑하기 그지없는 헛소문에 가까운 내용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간 내가 질러왔던 기행들로 인해 이미 사실이라 확신하고 있음이 분명했기에 반박조차 못하고 굳어 버렸다.
“누나가 하지 말라는 건 다 한 거 같던데?”
“아, 아니야 누나. 지휘관 친다고 달려들진 않았어.”
“진짜?”
“어… 대신 지휘관이 날 치려고 지휘소로 달려들긴 했…”
거의 뒷목을 잡을 뻔한 아실리에였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저녁 식사는 무난하게 이어졌다.
오해라고 할 것도 없는 오해를 풀고, 그래서 무사히 돌아왔음에 감사하며 식사를 마친 아실리에는 내가 건네준 세네란의 편지를 보며 귀를 까딱였다.
“인근 숲은 나도 나름 열심히 수색했다고 여겼는데 그런 신전이 있었다니, 심지어 세네란 씨가 네가 직접 와야 한다고 할 정도의 무언가가 있다고?”
“그러게. 오그웬에 숙소까지 잡고 움직이는 거보면 그리 멀리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이미 물소 뿔에게 들은 정보를 다 들은 아실리에였기에 적당한 추임새 외의 부연 설명은 필요 없었다.
“비룡으로 갈 거지? 나도 탈 수 있어?”
“응. 덩치가 좀 있는 편이라서 안장만 바꾸면 가능해.”
“하아… 그래, 위험하면 뭔가 다른 경고가 적혀 있었겠지. 언제 출발할 거니?”
“일단은 정비 한 번 마치고 갈 생각이라서 내일모레 정도?”
빠르게 사라지는 음식만큼 중요한 이야기도 빠르게 정리됐다. 납득한 아실리에는 피곤할 테니 쉬라는 말과 함께 식기만 남은 식탁을 티에와 함께 치우기 시작했고, 나는 그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양치질을 마치고 침대에 누우면서도 스승님과 세네란까지 있는 마당에 위험 요소라고 할 것도 없는 상태일 거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세상일 어떻게 돌아갈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 준비는 철저하게 해야 했다.
혹시 알아? 또 요상한 게이트 같은 거에 휩쓸려서 이번엔 마족령까지 날아갈지. 마왕군 사단장 매운맛을 본 이상 그런 상황은 결단코 사양이다.
◈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오그웬으로 떠나기 위한 채비를 마친 우리는 티에의 배웅을 뒤로한 채 집을 나섰다.
말로 이동할 때와 다르게 훨씬 가벼워진 짐이 나뿐만 아니라 아실리에마저도 자꾸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지만 우리는 그간의 경험을 믿고 움직이기로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짐에 한정된 이야기고, 비룡이 짊어져야 하는 짐은 말보다 많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녀석에겐 불만을 토로할 자격따위 없다. 다 지가 먹을 식량이니까. 약간의 잔금을 치르고 바꾼 안장 뒤쪽에 족히 100kg은 될 법한 고기를 싣고 단단히 고정시킨 관리인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설명했다.
“오그웬 방면으로 가시는 거면 이걸로 충분할 겁니다. 느긋하게 날아도 이틀이면 도착하는 데다가 동물들도 많은 곳이니까요. 사냥을 보내면 30분도 안 되서 사슴 한 마리를 물어와 알아서 먹을 겁니다. 아, 식사 시키는 법에 대해서는 배우셨습니까?”
“자발적으로 사냥을 하도록 하되, 실패해서 돌아올 경우 평소보다 부족하게 배분해서 줄 것. 맞죠?”
조련되어 안전하게 사람을 태우고, 명령을 이해하고, 가끔은 영악하게 게으름을 피울 수도 있다는 건 당연히 그게 가능할 정도로 머리가 좋다는 의미다.
내 자가용은 아직까지 그런 기미조차 보이지 않지만 의외로 훈련 중에는 사람이 주는 고기에 맛이 들려 대충 사냥하는 시늉만 했다가 돌아와서 먹이를 챙겨 먹는 비룡들이 적지 않다는 게 공수 부대원들의 증언이었다.
그들의 가르침이 틀리지 않았는지 관리인도 내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정확합니다. 배고파질 경우 난폭하게 구는 녀석들도 있지만… 이놈은 워낙 에가 경의 말을 잘 들으니 그럴 거 같진 않네요.”
“버릇없이 굴면 그냥 몇 대 쥐어박아주면 되죠 뭐. 처음 노획할 때도 그랬거든요.”
내 대답을 듣고 간만에 유쾌한 농담을 들었다는 듯 웃어 보이는 관리인과 달리 자가용은 마치 내 말을 이해하기라도 한 것처럼 잔뜩 목을 움츠리며 긴장했다. 볼수록 신기한 놈이다.
그렇게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흥미 가득한 시선으로 비룡을 살펴보던 아실리에는 놈의 턱 아래를 쓰다듬어 주며 내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엘디, 얘 이름 정했어?”
“아니. 아직 못 정했어.”
“아직도? 라이카는 빨리 정했었잖아.”
그거야 전생에서 혐간들에게 혐간을 당해버린 안타까운 개가 기억에 남았으니 그랬던 거죠. 와이번은 그런 게 없는걸.
“딱히 떠오르는 이름이 없더라고.”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기에 적당히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자, 딱히 후보에 올릴 만한 이름이 있어서 의문을 가진 건 아니었는지 아실리에도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렇게 내가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겨울 비행의 주의사항에 대해 조언을 받은 뒤 큰 어려움 없이 비룡을 끌고 밖으로 나온 나는 아실리에를 태우고 라이카를 품에 안은 채 관리인들의 안내에 따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레비엥에 있을 때도 다른 비룡들보다 묘하게 속도가 빨랐던 녀석인 만큼 수도는 순식간에 작아지기 시작했고, 이내 적정 고도를 유지하며 날기 시작하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아실리에가 살짝 고조된 목소리로 물었다.
“말타는 것보다 능숙한 거 아니야?”
“그럴지도 몰라. 레비엥에서 뻔질나게 날아다녔거든.”
말은 필요할 때나 타는 정도였지만 자가용은 전투를 위해 사력을 다해 탔으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비록 하늘에서 습격을 받은 전적이 있긴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번 비행에서는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다. 일부러 서두르지 않았음에도 아래로 펼쳐진 풍경은 순식간에 흘러 갔고, 중간중간 적당히 휴식을 취했음에도 해가 질 무렵엔 벌써 절반 가까이 거리가 줄어든 뒤였다.
“비룡이 참 좋긴 좋아. 말을 달릴 때하고는 차원이 다르네.”
자가용의 위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녀석이 성공적으로 사슴 한 마리를 사냥했음에도 짐으로 싣고 있던 고기 덩어리를 큼지막하게 떼어 던져 주었다. 버릇이 나빠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자주 듣긴 했지만 사랑의 매 앞에서 나쁜 비룡은 존재하지 않다는 묘한 확신이 생겼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도적의 습격조차 없는 평화로운 하룻밤을 지샌 우리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점심이 채 되기도 전에 오그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 마지막 기억 속의 오그웬은 비룡 정거장 따위 존재하지 않는 촌 동네였기에 조금 걱정했던 것과 달리 이젠 정말 도시의 면모를 거의 다 갖춘 오그웬의 한 켠에는 하늘에서 알아보기 쉽게 어느 도시나 똑같은 양식을 갖추고 있는 비룡 정거장이 떡하니 존재했다.
정거장의 관리인은 수도와 달리 자가용의 고삐를 받아 쥐고는 자연스럽게 나무패 하나를 건네준 뒤 녀석을 끌고 축사 안으로 향했다. 그 쿨하고 빠른 일 처리에 감탄한 우리는 오랜만에 돌아온 정겨운 도시를 둘러보며 세네란이 묵고 있다는 여관으로 향했다.
솔직히 지금까지 오그웬 토박이라 할 수 있는 삶을 지냈다고 자부했는데, 그녀가 말한 숙소가 어디에 박혀 있는 건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아실리에도 당황할 정도로 오그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우리는 쌍방 동의 하에 숙소 찾기를 포기하고 진정한 오그웬 토박이 알리샤 누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야이 새끼야!!! 살았으면 살았다고 연락을 해야지!!”
“누나한테 지금까지 먹어 온 욕이 있는데 어떻게 죽겠어.”
나한테는 쌍욕을 박으며 아실리에하고는 정겨운 포옹을 마친 알리샤 누님은 놀란 눈으로 나와 아실리에를 번갈아 보는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예의 큼지막한 손바닥을 휘둘러 내 어깨를 한 대 후려쳤다.
“이젠 진짜 칼잡이 다 됐네. 어디 가서 비명횡사할 일은 없겠다.”
“그게 그렇지만도 않아 누나. 마왕군 놈들 더럽게 쎄. 사단장이라는 놈은 기사 열댓이랑 함께 달라붙어서 겨우 이겼다니까.”
“…너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냐?”
어이가 없다는 그녀의 반응마저도 유쾌하고 정겨웠지만 일단 세네란의 숙소를 찾는 게 우선이었기에 이야기는 나중에 풀기로 했다. 다행히 알리샤는 우리가 말한 숙소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고, 떠나기 전에 돌아와서 꼭 이야기한다는 조건 하에 꼬마 하나를 길잡이로 붙여주는 수완을 보였다.
그녀와의 만남도 유쾌했지만, 나와 아실리에의 장비를 보고 혼자서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 소년이 세상 진지하고 웅장한 표정으로 길 안내를 하는 모습은 더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