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35)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35화(435/599)
[435화] 성유물聖遺物열심히 길 안내를 마친 꼬마에게 동화 몇 개를 용돈 삼아 쥐어 준 뒤 도착한 숙소는 역시 우리의 기억에 없던 건물이었다.
제국 수도 한복판에 박혀 있어도 이상할 게 없을 규모의 큼지막한 4층짜리 여관은 최근에 생긴 고급 시설이라는데, 변방의 촌동네에 불과하던 오그웬에 이렇게 사치스러운 건물이 들어섰다는 게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인족은 정말 빠르게 바뀌는 거 같아.”
이번만큼은 아실리에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내부로 들어가니 정말 ‘고급’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만큼 깔끔한 홀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처음엔 바캉스 비스무리한 걸 온 귀족들이나 상인들이 묵는 곳인가 싶었는데 의외로 모험가처럼 보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환영합니다 손님. 무슨 용무로 내방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마치 귀족이라도 된 것마냥 홀에 비치된 의자에 앉아 차나 커피를 홀짝이는 이들을 지나 카운터에 다가서니 일반적인 여관과는 궤를 달리하는 멘트를 날린 남자 종업원이 완벽한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응대했다.
“지인이 이곳에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만, 혹시 아직 투숙 중인지 알 수 있을까요?”
“손님들의 입, 퇴실은 명부에 기록되기 때문에 충분히 확인 가능합니다. 투숙 중이신 손님의 성함을 알려주시겠습니까?”
“어… 성은 모르는데 일단 이름은 세네란입니다. 장기 투숙일 텐데, 얼마나 머무르고 있는지는 이야기를 듣지 못해서 알 수가 없네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라는 말을 끝으로 두꺼운 책 하나를 펼쳐 글귀를 확인하는 종업원에게는 현대적인 냄새가 유독 강하던 제국에서나 볼 법한 정갈함이 있었다.
나라를 차별할 생각은 없지만 어쩔 수 없다. 꾸준히 다른 세계의 용사를 소환하고 그들과 함께한 역사가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국은 정말 인프라가 남다르니까. 나홀로 오버 테크놀로지라는 느낌까진 아니지만 당장 서부 왕국 지대와 제국 수도를 비교하면 거의 10세기 중세와 르네상스 급으로 차이가 날 지경이다.
서부가 하루가 멀다 하고 저들끼리 치고받느라 개판인 것도 한몫하겠지만, 인족 국가 중에서는 아마 최첨단인 게 맞을 것이다.
“아, 여기 있습니다. 황금의 마법사 세네란 님. 마침 자리에 계시는 데다가… 자신을 찾는 이가 내방하시면 안내를 부탁한다고 따로 요청도 하셨군요. 엘드미아 에가 님이신가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벽 쪽에 붙어 서 있던 벨보이 같은 직원을 불러 내 안내역을 부탁했다.
“뭔가 굉장히 독특하지 않아? 이런 여관 처음 봐.”
“묘하게 제국스럽다는 느낌이긴 하네.”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건지 직원은 우리를 안내하면서도 마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조용하고 정중한 태도로 안내를 이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올라온 4층은 슬쩍 지나쳐왔던 2, 3층과는 달리 굉장히 넓은 간격으로 배치된 고급스러운 문을 통해 이곳이 일종의 VIP 룸이라는 것을 드러냈다.
잘 해봤자 6개? 대충 아래층의 방 두 세 개는 합친 크기일 거라 계산하며 도착한 방은 고급스러운 테두리로 장식된 4-3이라고 적혀 있었다. 종업원은 마치 여기까지라는 듯 가볍게 인사를 한 뒤 멀어져 갔고, 나는 아실리에와 한 번 시선을 마주친 뒤 어깨를 으쓱이고는 문을 두드렸다.
“세네란. 안에 있습니까?”
-우당탕!
격렬한 소음과 함께 뭔가 무너지는 소리, 흩날리는 소리가 동시에 틀려오고 누군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까지 들려 얼핏 들으면 기습이라도 당한 게 아닐까 싶은 수준이었지만 문으로 급하게 달려오는 발소리도 함께 들렸기에 난 침착하게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왜 이제 와!”
아니나 다를까 덜컥 문이 열리면서 모습을 드러낸 건 언제나의 세네란이었다. 그녀는 서둘러 나와 아실리에를 방으로 이끌었고, 열었을 때만큼이나 시끄럽게 문을 닫은 뒤 서류의 바다 위를 휘적휘적 걸어나아갔다.
“예상보다 조사할 게 많아서 사람도 좀 고용하고 캠프도 세운 상태야. 위드라는 마신전 인근에 있고, 고용 인력들과 함께 번갈아 가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지.”
세네란의 숙소는 내 예상대로 넓었고, 내 예상을 초월한 개판이었다.
대체 그 잊혀진 마신전에서 뭘 그렇게 알아내고 찾아낼 게 많았기에 이 모양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서류 더미와 책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고 안경 너머로 빛나는 그녀의 눈은 퀭하기 그지없었다.
“휴식을 취했다구요? 거울을 보긴 하는 겁니까?”
“이건 그냥 어젯밤을 새서 그런 거란다 엘드미아야. 이렇게 갑자기 올 줄은 몰랐지.”
되려 내탓을 하면서 탁자 위를 싹 훑어 위에 쌓여 있던 책들을 우르르 떨어트리는 만행을 저지른 세네란은 레스롬 공작의 집무실에서 봤던 마석 티포트와 찻잔을 꺼내 커피를 우려내기 시작했다.
“아무튼! 미리 말해 두는데 놀라지마라? 진짜 엄청난 걸 발견했으니까! 이건 위드라가 무능한 게 아니라 내가 유능한 덕이거든!”
그러고는 아주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탕탕 치면서 앉기를 권하는데… 아무래도 물소 뿔이 떠들었던 것과 연관이 있을 것만 같아 먼저 선수를 쳐보기로 했다.
“성유물의 흔적같은 게 나왔습니까?”
“내가 위드라도 발견 못……”
그리고 세네란은 나라 잃은 표정을 지음으로써 내 예상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주었다.
◈
“내가 마법사라서 확신을 가지기까지 돈이 좀 들어갔지만… 성유물이었던 건 확실해…”
자신의 몇 안 되는 활약을 편집 당한 비운의 조연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잇값 못하고 떼를 쓰는 세네란을 진정시킨 뒤 듣게 된 이야기는 물소 뿔이 말했던 가설에 신빙성을 부여할 만한 내용이었다. 비록 그녀의 목소리는 처음과 달리 바람빠진 풍선처럼 기운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게 돈으로 해결이 됩니까?”
“그럼, 당연하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땐 대체로 돈이 부족할 뿐이야.”
마도구는 그렇다 쳐도 신성력마저 알아볼 수 있다니, 마법이라는 학문의 위대함에 놀라려는 찰나 세네란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음을 밝혔다.
“마신전에는 내가 고용한 국경을 넘어 온 마신의 신관들이 있어.”
“…뭐라구요?”
나도, 아실리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폭탄 발언에 제대로 반응조차 못하고 있는 사이 세네란은 여유롭게 커피를 홀짝이며 말을 이었다.
“예전에도 말했었지? 내가 마족령에서 산 시간이 좀 길어서 이런저런 인연이 많아. 거기서 쓰이는 물건들 들여오는 것도 대부분 그쪽 도움을 받아서 가능한 거였지. 마도구가 사람으로 바뀌었을 뿐이야.”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이 시국에 마족령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오는 걸 도왔다구요?”
이 일을 홀로 진행했을 리가 없다. 애초에 스승님과 교대로 움직이는데 어떻게 모르겠는가. 그녀의 말은 두 사람의 합의 하에 마족들의 밀입국을 도왔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왜? 너도 마족들에게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잖아.”
“그게 문젭니까? 왕국에 걸리면 다 교수대 행인데?”
왕국에게 뿔 달린 사람은 죄다 적이다. 그 사람이 왕국의 땅을 밟게 도와준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지. 대체 그놈의 연구가 뭐라고 이런 정신나간 강행군을 펼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세네란은 정말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로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안 걸리면 그만이지.”
아 씨바. 할 말을 잊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마른세수를 했더니 세네란이 아주 약간 눈치를 보며 설명을 덧붙였다.
“당연히 위드라도 동의한 사안이야. 물론 안 걸리면 그만이라는 거에 동의한 건 아니고, 마신전에 얽힌 무언가를 밝힐 수만 있다면 왕국에게도 이득일 거라는 판단에서 동의한 거지만.”
물론 지금까지는 도대체 왜 마왕군이 우리 마을을 작살낸 것인지 이유조차 모르고 있는 상태였으니, 그 원인이라도 알게 되면 놈들이 뭘 꾸미고 있는지 유추정도는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게 전시 밀입국이라는 경악스러운 대범죄에 가담하면서까지 알아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긴 힘들다.
이미 수 년 전에 남긴 흔적만으로 알아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 기껏 성공해도 뭐라도 건질 가능성이 조금 생기는 것에 불과하고 실패하면 말짱 도루묵인데 이걸 어떻게 좋게 본단 말인가.
그나마 지금은 뭐라도 건졌으니 이러고 있을 거라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그 결과, 뭔가를 찾아냈다는 거네요.”
“그렇지. 놈들이 가져간 성유물이라는 게… 대체 왜 여기에 있었던 것인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많이 대단한 물건인 거 같더라고.”
본론에 들어가자 장난기를 싹 빼고 진지하게 대답하는 세네란에 맞춰 나도 허리를 세우며 경청했다.
“성직자들 말로는… 마신의 파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강력한 신성력이 담긴 성유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 적어도 그들은 평생 살면서 그런 물건을 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
“…무슨 효과가 있는데요?”
“글쎄? 그 정도면 어떤 효과가 없는지 물어보는 게 더 빠른 수준이 아닐까? 거기에 대해서는 예전에 제국신성회에 속해 있다가 파문당한 성직자가 첨언했는데…”
“아니, 그런 사람도 끌여 들였다구요?”
돈이 오지게 많은 건 알겠는데 진짜 너무 위태롭게 노는 거 아니야? 나도 모르게 경악하며 고개를 뒤로 빼게 되었지만 세네란은 콧잔등을 찡그리며 손을 휘저을 뿐이었다.
“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 인간은 마신교의 성직자들이 말하는 수준의 물건이면 뭐가 가능한지 대충은 짐작하더라고.”
이번엔 굳이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제국신성회와 강대한 신성력의 유물이 나온 이상, 신성으로 이룰 수 있는 가장 유명한 기적은 하나였으니.
“용사입니까.”
세네란은 내 물음에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그게 있으면… 강제로 용사를 점지할 수 있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