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38)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38화(438/599)
[438화] 성유물聖遺物사제 멘데르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세네란에게 합류하게 된 것도 성녀님의 계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연히 파면당한 제국신성회의 사제같은 부류일 줄 알았는데 계시같은 게 끼어들 줄이야. 스승님과 세네란하고는 이미 이야기가 끝난 것인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는데, 오히려 그 반응 때문에 의문이 생겼다.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시는 겁니까? 고용주는 세네란이잖습니까.”
“그건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예?”
이게 뭔 소리야? 내 표정이 기괴해지자 옆에 있던 세네란이 부연 설명을 위해 입을 열었다.
“처음 계약할 때부터 그런 조건이었어. 멘데르 사제가 도움을 주되 특정 상황이 오면 데오니 성녀의 개입을 엘드미아, 네가 판단하도록 하는 것.”
“…그 말대로라면 마치 이런 상황에 놓일 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뭔가 계시를 받은 거 같은데, 그렇다면 차라리 번거롭게 할 거 없이 직접 오는 게 맞지 않냐고 물어보기도 했어.”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거절이었다고 한다.
“‘계시란 그런 것이다.’ 성녀는 그리 대답하더라. 내가 딱히 신학에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라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하하, 걱정 마시지요. 신학에 몸바친 저희도 항상 그리 느낍니다.”
계시라는 게 항상 그 모양이라고? 그런데 이렇게 태연하게 하하 호호 돕고 있는 거였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던 멘데르 사제는 내 의문 어린 시선을 느꼈는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어찌 한낱 필멸자가 신의 뜻을 온전히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이 친구가 여기 파견된 건 저 유들유들한 성격 덕인거 같은데… 그들의 말대로 이 두리뭉실하고 의구심 가득한 상황은 대충 넘어간다고 쳐도 내 상황이 바뀌진 않았다.
혹시라도 왕국군에게 걸리면 최악의 경우 사상 최초로 밀입국하다가 죽은 성녀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인데 내가 오라고 하면 오고, 아니면 안 온다는 소리잖아? 대체 무슨 계시를 받았길래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일단 제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부터 보고 판단해야 할 거 같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성녀님도 엘드미아님의 판단에 따르라고 했을 뿐, 그게 언제인지는 말씀하지 않으셨으니까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멘데르가 손짓하며 앞장서자 스승님과 세네란 역시 그의 뒤를 따라 신전 안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우리는 짧게 시선을 교환하고는 그들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내부는 마법으로 만들어진 구체가 일정 간격을 두고 횃불처럼 배치되어 있었기에 움직이는데 불편하진 않았다. 바닥에 무너진 석재가 많아 라이카가 조금 고생하는 듯했지만 딱 그 정도 불편함 뿐이 전부였다.
그렇게 세네란이 고용한 다른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선두에 서서 걷고 있던 멘데르 사제가 천천히 운을 뗐다.
“가는 동안 상황을 설명드리려고 합니다만, 세네란님께 어디까지 이야기를 들으셨는지요?”
“대충 제가 성유물의 영향을 받았는지 확인하려고 한다는 것까지는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확인할지 알려드려야겠군요.”
그리 말하면서 멘데르 사제는 잠시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는데, 딱 봐도 이걸 어떻게 쉽게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음, 우선 이미 존재하지 않는 성유물의 존재를 저희가 알아차릴 수 있었던 이유는 짐작이 되십니까?”
“강대한 성유물일수록 신성력이 일종의 잔향殘香처럼 남는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기반으로 눈치채신 거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세상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마력과 달리 신성력은 인위적人爲的이거나 신위적神爲的인 현상이기에 강력할수록 짙은 흔적이 남습니다. 그 흔적이 더 짙어지면 성역화聖域化가 이루어지고, 과도하게 넘칠 경우 일시적으로 신역화神域化가 되는 것이지요.”
성법의 증폭같은 이로운 효과가 발생하는 성역과 달리 신역은 아무리 선신善神에 의한 것이라도 경계 대상이다. 아니, 단호하게 말해서 위험 지대다.
당장 신성에 직접적으로 아주 조금 노출되는 것만으로 사람이 혼절하는데 그 효과를 광역으로 뿌리는 신역화가 이루어지는 게 필멸자들에게 이로울 리가 없잖은가.
“역사에 남은 신역은 전부 좋지 않은 결과를 야기했다고 들었습니다.”
“박식하시군요. 실로 그러합니다. 무엇이든 과하면 독이 되는 것처럼, 신들의 자비마저 연약한 저희에겐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귀중한 기록들이죠.”
그렇기에 피조물들을 사랑하는 신들은 세상에 간접적으로 개입한다. 그딴 건 좆도 개의치 않아 하는 악신들이 범람하던 시기가 혼돈 그 자체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상식이지만, 어느 세상이나 상식이 결여된 사람들은 있는 법인지라 멘데르 사제는 내가 이러한 이야기들을 알고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마력과 마법보다 구분짓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물에 물을 섞는 것과 물에 잉크를 섞는 것의 차이죠.”
“…전자가 신성력이군요.”
내 말에 멘데르 사제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럽게 대답했다.
“정확히는 신의 의지가 강하게 담긴 신성력이지요.”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바로 마법은 다양한 형태로 ‘습관’이 남는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지문과도 같다. 같은 지문이 있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극히 희박한 것처럼 마법 역시 그러하다. 그리고 그 습관을 기반으로 펼쳐진 마법이 자연 상태의 마력 위에 남게 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흔적이 변질되기 때문에 누가 사용한 마법인지 추적하기가 힘들어진다. 멘데르 사제가 말했던 것처럼 물과 잉크만큼의 차이가 나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신은 다르다.
이미 완전성을 취득한 초월의 존재이기에, 그들의 흔적은 항상 똑같다. 10년 전의 흔적이든, 100년 전 흔적이든 비교해보면 한결같이 똑같기에, 아무리 섞여도 티가 안 나는 물과 같다.
“이곳에 있던 성유물은… 비록 추측에 불과하지만 신화시대의, 그러니까 악신이 판을 치던 시기이거나 그보다도 오래된 시절의 물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필멸자들이 얼마나 연약한지 신들께서도 이해하지 못해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정확하지 않던 시절이다 보니 유독 강력한 성유물들이 모습을 드러냈었거든요. 제국 신성회가 보관 중인 유물또한 그런 것이지요.”
“그래서 용사도 점지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신 거군요.”
“네. 신성모독적인 발언이나, 그만한 힘을 지니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멘데르 사제의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길게 이어지던 회랑도 끝이나며 둥그런 동공洞空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많은 신전들을 보고 다닌 건 아니지만 전생의 기억까지 총동원해서 비교해봤을 때 굉장히 독특한 구조였다.
“신전이라기보단 봉인을 위한 제단 같죠?”
마치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정확하게 치고 들어오는 멘데르 사제의 질문에 난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강대한 성유물이 잠들어 있는 곳은 대부분 이런 식입니다. 섬기는 신의 축복이니 감히 함부로 대할 수는 없으나, 필멸자에겐 해로울 수 있으니 실제로 봉인을 위한 제단처럼 지어졌죠.”
둥근 원형 구조에 맞춰 여러 개의 제단이 정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지만, 단 한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파괴된 석상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비어 있는 제단에 지금은 없는 성유물이 올라가 있음을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로 두 걸음 더 내딛자마자 당장 내 몸이 마력을 과도하게 썼을 때와 비슷한 울렁증을 일으키며 반응하기 시작했거든. 단번에 내 안색이 좋아지지 않는 걸 캐치한 아실리에가 옆에서 거들어 주지 않았으면 조금 휘청거렸을지도 모르겠다.
“젠장, 이거 저만 그럽니까? 마력을 과하게 썼을 때랑 비슷하게 속이 매슥거리는데.”
황급히 뒤로 물러났지만 한번 울렁이기 시작한 속은 도통 가라앉을 줄 몰랐다. 가까스로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눈을 크게 뜨며 놀란 상태였다.
아무래도 나만 이상한 모양이다. 비어 있는 제단으로 걸어가던 멘데르 사제는 황급히 내 곁으로 다가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성법을 펼쳐보았고, 안 그래도 커져 있던 눈을 더 크게 떴다.
“고, 공명 현상입니다. 대체 어떻게 아직도 의식을 유지하고 계신 겁니까?”
“옘병, 그런 질문은 그게 뭔 현상인지부터 설명해주고 하는 게 예의 아닙니까…?”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며 멘데르 사제가 즉각 사과했지만 급체라도 한 것 같아 거기에 반응해 줄 여유가 없었다. 평생 감기 한 번도 제대로 안 걸린 몸이라서 그런지 이런 증상에 영 면역이 없다.
다행히 그는 내가 자신의 사과를 받는 시늉조차 못 하는 상황임을 이해하고 빠르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육체에 내재된 신성력이 외부의 신성력에 반응하는 걸 말합니다. 성자 성녀님들께서 최초의 계시를 받을 때 보이는 증상이죠. 보아하니 성역의 경계에 닿자마자 바로 반응이 온 거 같은데, 혹시 이명이 들리거나 환각 같은 게 보이지 않으십니까?”
무슨 마약도 아니고 이명이랑 환각? 다행스럽게도 더럽게 불편하다는 것 외엔 정상이었기에 고개를 저을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원래는 엘드미아 님의 동의를 구한 후 제가 임의로 공명 현상을 유도하는 게 방법이었는데, 성유물이 없어진 지 수년이 흘렀음에도 이렇게까지 강하게 연결될 거라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일단 넘어간다 치고, 그 말인즉슨… 이곳에 있던 성유물과 제가 연관이 있다는 겁니까?”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지만 물어볼 수밖에 없었고,
멘데르는 아주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 좆같은 출생의 비밀같으니.”
뭔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형태일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