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39)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39화(439/599)
[439화] 성유물聖遺物울렁거림도 가라앉힐 겸 회랑 쪽으로 돌아가 주저앉은 나는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멘데르 사제에게 들은 이야기와 현재 상황을 기반으로 판단했을 때, 내가 마력을 쓸 수 있는 게 유물의 영향이라는 건 기정사실이다.
얼핏 보면 그 유물이라는 게 용사 생성기에 가까운 물건이다보니 이게 가장 큰 문제로 느껴질 수 있지만… 아무래도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닌 것 같다.
어째서 마족령에 위치한 마신교의 총본산과 수많은 유물들을 제쳐두고 하필 인족의 영역 속에서 고이 잠들어 있던 성유물을 통해 이런 결과가 나왔냐가 진짜 존나게 큰 문제지.
왜 하필 마신께서는 마족도 아닌 인족에게 힘을 사용했는가?
굳이 비유하면 탁란托卵에 가까운 행동인데,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탁란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상황이다.
안 그래도 마왕과 용사의 존재로 인해 툭하면 어긋날 수 있는 관계 속에서 마신이 인족에게 은혜를 내린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닐 것이며, 마족에게 이로울 가능성은 한없이 적다.
지금 내가 마력을 다룸으로써 얻은 모든 능력이 사실 마력과 동떨어진 인족의 몸이라서 제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 하는 거라면, 온전한 마족은 정말 지크프리트처럼 용사에 버금가는 힘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런 불확실한 도박을 한 이유는 뭘까. 모종의 큰 뜻이 있어서 의도한 상황이거나, 누군가 악의적으로 신성모독적인 행보를 보인 탓에 원치 않게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신성모독?”
나는 데오니 성녀님과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계시의 내용을 곱씹으며 멘데르 사제에게 물었다.
“멘데르 사제님. 혹시 마족령에는 이런 구시대의 성유물들이 하나도 없습니까?”
“아뇨, 적어도 다섯 개는 넘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닌 이상 외부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적어서 내재된 힘이 어느 정도인지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말이죠.”
성유물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게 확실시 된 탓인지 멘데르 사제는 처음에도 정중했지만 이젠 성자라도 모시는 것처럼 더욱 경건한 태도를 보여줬다. 덕분에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여러모로 물어보기는 편해졌으니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혹시 데오니 성녀님께서 계시를 받을 때 그런 성유물의 도움이 필요합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좀 더 수월해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내가 그녀의 도움을 필요로 할 일은 딱 하나밖에 없다.
계시.
멘데르 사제의 말대로라면… 그녀가 이곳에 왔을 때 분명 에파가 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왜 내게 선택권을 줬는지 까지는 알 수 없으나, 그건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성녀님을 모셔와야할 것 같습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허리 숙여 예를 취한 멘데르 사제는 짧게 대답했다.
“그리하겠습니다.”
결론이 난 이상 계속 유적 안에 머물 이유는 없었다.
멘데르 사제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짐을 챙겨 세네란이 붙여 준 이들과 함께 이동했고, 숲속으로 멀어져 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제는 좀 진정된 속을 달래고 있는 사이 옆에 다가온 세네란은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짧게는 보름, 길게는 3주까지도 걸릴 거야.”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짧군요.”
“불법적인 경로가 돈이 되는 여러 이유 중 하나지. 그 구간에서 실패할 일은 없으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다른 건 걱정할 게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그럴 가능성이 높을 거 같아서 슬쩍 왔지.”
고개 돌려 바라본 세네란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하게 심각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각인 새겨서 돌려보냈던 놈들 때문입니까?”
“아주 연관이 없는 건 아닐 것 같아서. 내가 아까 땅굴이라고 말한 거, 단순한 밀수 경로가 아니라 마족령 한정이거든. 그것도 꽤 규모가 큰.”
그녀가 하는 이야기의 요점을 파악해 보려고 잠깐 머리를 굴리니 앞서 들어왔던 정보의 조각들이 맞물리며 그럴싸한 결론 하나가 튀어나왔다.
“아까 그놈들 배후에 마왕군이 있을 가능성을 우려하시는 겁니까?”
상상 이상으로 큰 비밀이 있던 고대의 신전. 그 신전을 털어먹었던 전적이 있는 마왕군. 거기를 조사하며 비밀 엄수를 위해 세네란이 뿌렸다고 하는 막대한 돈. 그리고 그 돈에 눈이 멀어서 규칙을 무시할 정도의 반푼이들과, 놈들을 종용한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세네란의 추측.
스승님조차 유물의 존재를 놓치고, 그로 인해 왕국은 감조차 못 잡고 있던 해묵은 과거를 갑자기 헤집는 존재가 나타날 가능성을 과연 마왕군이 고려하고 있었을까?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진 아닐거라 생각하고 싶은데 무려 제국 한가운데에서 테러를 일으키고 성공 직전까지 갔던 놈들이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기도 하다.
“과민반응일지도 모르지만 촉이 좋지 않아. 왜, 그런 거 있잖아. 당시엔 별거 아니었는데 하나가 의심되고 나니 줄줄이 수상해 보이는 그런 거.”
“이해합니다. 저도 마왕군하고 몇 번 엮여 봤으니 하는 말인데, 은근히 뒷공작에 정성을 다하는 편이더군요.”
어중간한 사안이었으면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도 있겠지만 자그마치 용사 제조기의 흔적과 엮인 대사건이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그리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거늘 세네란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그런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잖아. 이 일이 정말 커지면 군이 개입하게 될 수도 있어. 시기를 놓치면 그대로 붙잡혀서 알아낸 걸 다 불어야 하는 상황이 올 거야.”
“그렇겠죠?”
“…너는 일단 수도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세네란이 하고자하는 말은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혹여 진짜로 왕국군이 개입했을 때 내가 남아 있으면 성유물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까지 이실직고해야하지만, 내가 없다면 그냥 성유물이라는 게 있었다는 부분까지만 말해도 되는 상황이 나온다는 거겠지.
허나 협상의 여지도 없는 제안이었다.
“아뇨. 마왕군이 개입한다면 성유물 회수를 명령한 배후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어차피 마왕군도 알아서 몸을 사리면서 움직일 텐데 불확실한 왕국군의 개입을 걱정하느라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죠.”
분명 성녀님의 방문을 내가 결정하라고만 했지 반드시 나와 대면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세네란도 그점을 비집고 들어와 내 안전을 확보하려는 거고, 지금 그녀의 관점에서 나는 우연히 성유물의 영향을 받은 것에 불과하니 필요한 질문이나 결과는 자신이 대신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단순히 성녀님하고의 대면만으로 끝낼 생각이 없다.
“무엇보다 에파가 님께 여쭤볼 것도 있거든요.”
“…뭐? 마신한테 물어볼 게 있다고?”
“네. 그건 세네란을 통해서 물어볼 수 없으니 전 여기 있어야 합니다.”
댁한테 아실리에에게도 말하지 않은 내 전생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하겠어.
◈
우려와는 다르게 성녀님 일행을 기다리는 나날은 평온하게 흘러 갔다.
우선 나와 아실리에는 처음 삼 일만 오그웬에서 묵으며 마을 사람들과 회포를 푼 뒤, 간단한 물자만 구비해 오두막에서 묵기로 했다.
쓸데없이 자주 오고 가며 눈에 밟히는 것보다 안전하기도 했고, 우리와 달리 계속 오그웬과 마신전을 반복하는 세네란 일행과 연관없는 척을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돌아온 터라 거의 한나절을 정리해야 했던 것을 제외하면 다행히 크게 상한 곳은 없었기에 거주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오히려 자가용의 주용駐龍공간이 마땅치 않은 게 가장 큰 문제였으나 이건 그냥 돈으로 해결해 버리기로 했다.
집에다가 자가용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목수를 구하는 나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은 없었고, 오그웬의 급성장과 함께 해온 실력 있는 목수들의 노력 속에서 자가용의 거처는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심지어 배보다 배꼽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져서 오두막이 상대적으로 너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인지라, 이 기회에 새로 지을까 여러번 고민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간의 추억이 있다보니 결국 보강 작업만 부탁하고 끝냈지만.
그 뒤로는 정말 오랜만에 휴식이라 할 만한 시간을 보냈다.
매일 같이 마신전으로 향해 세네란과 스승님에게 마법을 배우긴 했으나 그건 겨우 한두 시간 정도였고, 최대 3주가 될 수도 있는 오두막 생활을 위해 사냥을 나가기도 했지만 유능한 사냥꾼인 아실리에가 있는 마당에 그 작업이 오래 걸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결국 혼자 공부하고, 마법을 써 보고, 습관적으로 체력 단련까지 하는 나날을 일주일 정도 반복한 나는 너무나도 할 게 없어 폐허로 내려가 부모님 옆에 엉성하게 만들어두었던 만신전을 다시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게 되었다.
마력 그라인더의 힘 덕분에 돌을 깎는 건 일도 아니었기에 이번엔 에파가 님도 추가해서 좀 더 튼튼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겸사겸사 부모님의 묘지도 흙무덤에서 깔끔하게 돌무덤으로 보강하고 말이지.
적당히 나무를 깎아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숙련도가 필요한 작업이었기에 그나마 봐줄 만한 형태를 만드는 데에만 또다시 일주일 가까이 흘러 갔다.
그렇게 멋이나 정교함은 부족할지언정 정성은 가득 담긴 작은 만신전과 돌무덤을 완성한 날.
익숙한 얼굴들과 함께 성녀님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