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40)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40화(440/599)
[440화] 성유물聖遺物멘데르 사제와 함께 도착한 데오니 성녀님은 혼자가 아니었다.
세네란이 붙여 준 동행 넷은 물론이고 지난번에 악마 숭배자들을 털 때 함께 했던 이단 심판관같은 이들로 짐작되는 네 명이 추가로 따라온 탓에 무려 열이나 되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나름 뿔을 가리기 위해 후드를 눌러썼다고는 해도 마족들의 뿔이라는 게 워낙 각양각색인지라 울룩불룩한 머리 모양은 여러모로 이목을 끌기 딱 좋아 보였다.
덕분에 ‘이티스엘의 국경,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같은 기사 제목같은 의문이 잠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완벽한 감시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었으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당장 저 위쪽 서부 왕국들만 하더라도 오크들에게 무기 팔아먹는 또라이들이 넘치는데 뭐.
“오랜만입니다 성녀님. 혹시 이번이 그때 말씀하셨던 계시의 때이려나요?”
나름 전우라고 할 만한 경험을 했기에 살갑게 맞이하자 후드를 뒤로 넘겨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멋들어진 뿔을 드러낸 성녀님이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직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헌데… 더 강해지신 것 같군요. 신성력도 느껴지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과연. 정신 나간 자폭성녀도 알아차리는 걸 우리 성녀님이 모를 리가 없지. 하지만 지금은 보는 눈이 많았기에 일단 웃어넘겼다.
“가서 이야기하시죠. 저도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아무리 집 근처라고 해도 비무장으로 다니긴 좀 그래서 허리에 바늘 주머니 정도는 차고 있었지만 그 외엔 아무런 장비도 없는 상태였기에 일단 성녀 일행을 마신전으로 보낸 나는 오두막으로 돌아와 무구를 챙겼다.
성녀님이 도착했다는 말에 아실리에도 채비를 마쳤고, 이제는 완전히 길을 외워 마음 놓고 앞장서는 라이카를 따라 신전으로 향하니 원래라면 내부에서 한창 작업 중일 열댓명의 사람들이 모두 밖에 나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멘데르 사제의 호위를 맡았던 이들 역시 밖에 있는 것으로 보아 관계자들끼리만 이야기하고 싶다는 세네란의 언질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이제는 나름 안면도 텄기에 적당히 인사하며 내부로 들어서자 심각한 표정으로 신전을 살펴보던 성녀님과 다른 사람들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오는 동안 멘데르 형제님을 통해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제단으로 가보죠. 형제님이 말씀하신 대로라면 계시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허나… 다른 분들은 여기서 기다려주셨으면 합니다.”
계시를 받는 동안 대상은 무방비해진다.
갑옷과 무기를 갖춘 채 시도 때도 없이 돌아다닐지라도 엄연히 한 교단의 성녀인 만큼 최대한 엄격하게 보안을 유지할 수밖에 없으리라.
보아하니 멘데르 사제도 동행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오기 전에 이미 스승님과 세네란하고도 이야기를 마친 것인지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아실리에도 충분히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적당한 바위에 앉아 라이카를 안아 들었기에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준 뒤 성녀님의 뒤를 따랐다.
제단으로 이어지는 회랑에 들어서자 경호원처럼 따라붙던 넷 중 둘이 걸음을 멈추고 입구를 막아섰다. 남은 둘은 제단에서 성녀님을 보호하겠거니 싶었는데, 그들은 열 걸음 정도만 더 안으로 들어온 뒤 몸을 돌려 자리 잡았다.
“저분들은 안쪽까지 같이 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의아해하며 질문하자 성녀님은 되려 자신이 더 의아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대답했다.
“에파가 님의 계시를 받은 이상, 엘드미아 님은 경계의 대상이 아닙니다. 외부의 침입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굳이 병력을 나눌 이유는 없죠.”
물론 해를 끼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별다른 검증도 없이 이렇게 신뢰할 줄이야.
“…흠.”
잠깐 생각해 보니 그녀와 다른 이단 심판관들에게 계시란, 내게 있어 ‘계셨군요 씨발년아.’ 만큼 확실한 증명일 테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제단에 도착한 나는 지난번의 경험을 떠올려 신성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선에서 걸음을 멈추었고, 이미 멘데르 사제에게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성녀님은 별다른 의문 없이 제단에 다가가 눈을 감았다.
“저희 교단만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성녀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건 신성력에 반응하고 교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조용한 어조로 물어보지도 않은 내용들을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선대 성녀, 성자께서 동시대에 존재한다면 그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렇지 않다면 교단에 남은 지식을 통해 꾸준히 자신의 능력을 개화시켜 나가는 과정을 거치죠.”
“처음부터 계시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군요?”
“받기는 합니다만… 그건 계시가 아니라 신탁이죠. 제가 성녀라는 신탁.”
계시는 유동적이지만 신탁은 불변이라 흔하지 않다고 들었는데, 처음으로 받는 신탁이 무조건 성녀로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라면 여러모로 싱숭생숭하지 않을까.
어쩌면 지크프리트가 느꼈던 불합리함과 비슷한 걸 느낄지도?
“그로 인해 타고난 재능이 폭발적으로 개화하며 이를 갈고 닦을 기반이 다져진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계시를 받을 준비가 되면 신성력에 육체가 먼저 반응하게 되죠.”
“처음 듣는 이야기라 흥미롭네요. 어떤 반응입니까?”
진심 반, 원활한 대화를 위한 가식 반을 담아 물어보니, 데오니 성녀님은 잔잔한 시선을 나에게로 돌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울렁거림 내지는 현기증.”
그러고는 마치 느끼는 바가 없냐는 듯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내 대답을 요구한다.
혹시나 싶어서 몸을 옆으로 살짝 기울여 봤지만 그녀의 시선은 똑바로 나를 따라왔고, 덕분에 난 아주 어처구니없는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설마 지금 제가 계시를 받을 준비가 되었다는 겁니까?”
“이해가 빠르셔서 다행입니다.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제가 돕겠습니다.”
가벼운 끄덕임과 함께 데오니 성녀님의 손이 내게로 뻗어진다.
“이전에는 마력만 느껴졌었으나 지금은 분명하게 느껴지는 그 신성이 증거입니다. 아, 품고 계신 다른 신물에서 느껴지는 신성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혹시나 싶어서 품에 있는 세계수의 씨앗을 꺼내려고 했더니 성녀님이 바로 말을 붙여 원천 봉쇄해 버렸다.
“엘드미아 님의 몸에는 모종의 이유로 타고난 신성이 봉인되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도 이런 경우를 보고 들은 적이 없기에 ‘왜’ 라는 의문이 드셔도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확실한 건… 다른 신물의 도움을 받아 점차 신성에 익숙해지셨고, 그 과정에서 내부의 봉인에 균열이 생겨 신성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어느 정도의 힘인지도 알 수 없지만 말이죠.
어안이 벙벙해진 내가 제대로 반응조차 못하고 서 있자 데오니 성녀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직접 다가와 내 손을 맞잡고 제단 쪽으로 이끌었다.
“이해합니다. 혼란스럽겠죠. 반평생 에파가 님을 섬겨 오며 교단의 지식을 습득한 저조차 이런 경우를 알지 못해 의문이 들 지경인데 당사자는 어떤 심정이겠습니까. 하지만 저희가 엘드미아 님께 아무런 해를 끼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믿고 부디 제 인도를 따라주세요. 계시를 받고 나면 적어도 지금 보다는 많은 의문을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정말입니까?”
“…물론 더 많은 의문이 생길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손을 놓지 않은 채 살짝 눈을 깔면서도 솔직하게 말하는 성녀님을 보며 난 헛웃음을 터트렸다.
세 걸음 걷는 것만으로도 벌써 현기증과 울렁거림이 몰려왔지만, 맞잡은 손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기가 올라오자 아주 조금은 편해지기 시작했다.
“왜 이리 베베 꼬인 안배가 필요했는지 알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저 역시 알고 싶습니다. 그러니 계시를 받고 나면 꼭 알려주세요.”
내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함인지 몰라도 처음으로 웃어 보이는 데오니 성녀님을 보며 나는 심호흡을 한 뒤 제단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배운 대로 기도를 올렸다.
“…성실히 기도해 오셨나보군요. 자세가 잡혀 있습니다.”
의외라는 듯 살짝 놀라는 그녀에게 세계수의 영토에서 있었던 경험을 말해 줄까 싶었지만 지금은 그냥 기도에 집중해서 빨리 의문을 해소하기로 했다.
다행히 한 번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의식은 빠르게 안정되었고, 그런 나의 등에 성녀님의 손길이 닿을 때쯤엔 아주 미미한 감각만이 남아 있는 상태가 되었다.
“에파가이시여. 당신의 뜻에 따라, 우리는 이곳에 당도하였나이다.”
땅을 딛고 있는 감각마저 애매해지는 와중에 성녀님의 목소리만큼은 확실하게 귀에 꽂힌다. 내 숨소리조차 희미해지고 심장의 고동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참 신비한 현상이었다.
“부디 이 자를 위한 안배를.”
짧은 읊조림과 동시에 강렬한 부유감과 추락하는 듯한 감각이 느껴진다.
뒤를 잇는 것은 눈을 감고 있음에도 시야가 트이고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감각.
아무래도 모든 계시는 똑같은 감각과 공간을 공유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이어질 충격에 대비하고자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 세계수 때와 달리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실패했나?
[아니, 성공이다.]아무런 과장도 없이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자 새하얀 공간 속에서 마찬가지로 새하얀 드레스를 걸친 여성이 새하얀 왕좌와도 같은 곳에 껄렁하게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붉은 두 개의 뿔과 흑단 같이 긴 머리를 뒤로 넘겨 길게 내려 땋은 머리카락.
한 번도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에파가 님은 새하얗게 타오르는 것 같은 눈동자를 제외하면 지극히 평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