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43)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43화(443/599)
[443화] 개화開花졸지에 마신교의 용사가 되어 버리는 대형 이벤트가 있었지만, 그로 인해 당장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바뀐 거라고 해봤자 처음 예정과 달리 유적에 체류할 이유가 늘었다는 것 정도?
세네란과 스승님은 모처럼 신성을 느낄 수 있는 사제들이 있으니 최대한 도움을 받으며 조사를 이어 나가고자 했고, 나는 나대로 성녀님에게서 성법을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자꾸 성법을 무슨 마법이나 기술처럼 대하시는데, 그러한 태도는 불경입니다 용사님. 경건한 마음가짐을 잃지 마십시오.”
그나마 흉흉했던 우리 마을 사건 때문인지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은 곳이라 다행이었다. 나는 내 주관에 태클을 거는 성녀님을 보며 궤변을 펼쳤다.
“에파가 님께서 점지한 용사가 그리 대하면, 그게 맞는 게 아닐까요?”
세네란의 자본력은 한겨울의 야영조차 감성 캠핑으로 만드는 힘이 있었기에 교단의 사람들은 장기 투숙을 하게 되었음에도 아무런 불편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편의성을 떠나서 한창 전쟁 중인 인족의 영토라는 것만으로도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고대의 성유물을 보관했던 신전이자 현대의 용사가 천명된 장소라는 여건들이 일종의 성지 순례같은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는지 오히려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매일 매일 즐겁게 신전을 조사하고 기도를 올리는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그리고 그건 데오니 성녀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에파가 님의 화신化身이 아닌 이상 그런 발상조차 불경이지요. 그저 이를 바로잡기 위해 직접 신성을 발현하셨다간 다른 무고한 이들에게 화를 끼칠 우려가 있기에, 그러한 불경을 저지르지 않도록 교육하라고 성녀를 점지하시는 것입니다.”
즉, 저는 용사님의 올바른 종교관을 위한 교사와도 같은 위치인 것입니다. 그리 말하며 성녀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넘겼다.
겨우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내 농담과 궤변에 익숙해졌고 이제는 처음과 달리 어지간한 말로는 심드렁한 반응만 보일 뿐이다.
“그러니 허튼소리 마시고 성법이나 다시 쓰시지요. 제대로. 집중해서.”
조용히 타이르는 듯한 지시에 따라 자리를 털고 일어난 나는 내려 두었던 방패를 고쳐 쥐며 자세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성녀님이 휘두른 둔기가 방패를 강타하며 쇠끼리 부딪쳐서 자아내는 소음이 고요한 숲속에 울려 퍼졌다. 이 공방에서 내게 허락된 건 방어뿐이었기에, 나는 열심히 이틀간 배운 성법을 통해 방패를 강화하고 충격을 완화하며 그녀의 공격을 막아 냈다.
데오니 성녀님의 가르침은 거의 스파르타식 훈련에 가까웠다.
알고 보니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이단 심판관들 사이에서 전투를 익혀 오던 예비 성전사였다. 어쩐지 첫 만남부터 둔기질이 예사롭지 않더라고.
덕분에 기도문이나 줄줄 읊게 만들지는 않을까 싶었던 내 우려와 달리 그녀는 ‘용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내가 공격력 과잉이라고 진단을 내림과 동시에 방어와 회복 관련 성법들을 억지로 주입시키기 시작했다.
내 기준에서도 정말 가차 없는 강도의 수업이었지만 내 편을 들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실리에와 세네란 그리고 스승님은 내 명줄이 길어질 수 있는 기회를 쌍수 들고 환영했고, 교단의 사람들은 성녀님의 뜻이 그러하면 그게 맞다는 확신에 차 있었으니까.
그렇게 단련해 놓고도 겨우 성녀님 공격 막는 걸로 찡찡거리냐고? 당연히 이유가 있으니 힘들다고 하는 거다.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가라앉히십시오!”
오롯이 내 몸뚱이와 비실거리는 신성력만으로 상대해야 하거든.
심지어 마력은 이미 내 몸과 하나라고 해도 좋은 수준이었기에 나에게는 마력을 쓰기 위해 신경을 기울이는 것보다 안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게 곱절로 힘들다.
“마력은 바닥날 수 있지만 신앙은 바닥나지 않습니다! 기운이 빠지고, 몸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신앙은 항상 흘러 넘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처음엔 진짜 뭔 미친 광신도같은 소리인가 싶었는데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성법을 발현하기 위한 신성력은 바닥나지 않는다. 그저 신성력이 흘러나오는 구멍이 바늘구멍만한 약수터의 그것이냐 폭포수냐의 차이일 뿐. 아무리 고위 성법이라 한들 주구장창 신성력을 모으면 어떻게든 발현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하지만 결국 이 역시 신성의 편린이기에 사람의 몸에 먼저 무리가 온다. 성법을 남용하여 사용자가 지치는 건 신성력의 고갈 때문이 아닌, 신성 과잉 노출에 의한 피로인 것이다.
평생 살아오면서 성법에 대해 공부할 생각도, 기회도 없었던 터라 굉장히 생소하고 유쾌한 깨달음이었지만 그걸 알아차리는 과정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다.
치유의 성법을 알려주겠다며 진짜 복날의 개맞듯 얻어맞은 뒤 성법을 발동할 때까지 계속 몽둥이찜질을 당해야 했던 이틀 전을 떠올리면 아직도 이가 갈린다.
“역시 용사님은 직접 움직여야 쉽게 깨닫는군요. 치유의 성법을 익혔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독심술이라도 익히셨습니까? 안 그래도 지금 그때를 떠올리며 치를 떨고 있었는데.”
내가 그 불합리한 폭력 속에서도 욱하지 않고 마력을 운용하지 않은 건 에파가 님을 향한 신앙과, 성녀님이 내게 분풀이로 잘못된 가르침을 할 이유가 없다는 굳건한 믿음 덕분이었다고 자부한다.
물론 나중에 교단의 사람들에게 몰래 물어서 그게 정말 속성으로 성법을 깨우치는 방법이라는 확답을 받아 내지 못했다면 옹졸한 복수 정도는 꿈꿨을 테지만. 내 뚱한 대답을 들은 성녀님은 공격하다 말고 빵 터지며 쾌활하게 대답했다.
“뭐, 그럴 때 아니면 제가 언제 용사님을 일방적으로 때려보겠습니까?”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먼저 농담을 던지는 모습이 참으로 간악하게 느껴졌다.
“성법은 마법과 달리 구조가 복잡하지 않습니다. 정답이 없다 여겨지는 마도魔道와 달리 신앙의 길은 불변이기 때문입니다. 신성력을 깨우치지 못한 자들은 이를 종교인의 두리뭉실한 헛소리 정도로 취급하지만 용사님은 이제 이게 무슨 의미인지 확실히 이해하고 계시겠죠.”
명확하게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으나 사실이었다.
직접 하나부터 열까지 마법식을 구상하고, 계산하고, 마력을 유도하는 등의 모든 과정을 거쳐 발동되는 마법과 달리 성법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주형鑄形에 신성력을 부어 굳히는 것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뭐 하나라도 능력이 부족하면 사용할 수 없는 마법과 달리 신성력이 있고 성법을 알고만 있다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설령 그로 인해 몸이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종종 성법을 익히는 과정이 우악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자제력을 잃은 성법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에 고행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상황까지 반강제로 떠미는 경향이 있죠.”
좀 더 점잖은 형태로 익히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쪽은 몇 개월에 걸쳐 지루하기 그지없는 신앙에 대한 마음가짐을 새겨 듣고 성서를 필사하는 과정을 통해 절제와 경각심을 터득한다고 하니, 차라리 좀 처맞는 게 백 번 나았다.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가 결국 또 한바탕 성녀님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어찌 됐든 교육은 순조롭게 이어졌고 나도 성법에 익숙해져 갔다.
덕분에 이제는 성력이 가득 담긴 일격에 방패가 튕겨나가고 바로 추가타가 들어오더라도 한 번은 성법으로 막아낼 수준이 됐다.
-터엉!
“크흡!”
충격을 완전히 흘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보니 이를 악물고 버텨 내야하긴 하지만 원래대로라면 맞고 뒈질 공격을 버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지.
“흐음… 빠른 건 맞지만 치유의 성법을 사용할 때와 비교하면 묘하게 느리군요. 이것도 용사의 능력과 연관이 있는 걸까요?”
하지만 성법 일타 강사 데오니 성녀님의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나보다.
내가 뒤로 다섯 걸음 이상 밀려나는 것을 가만히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 그녀는 아직은 확신이 안 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손을 털었다.
“그래도 충분히 빠른 습득이니 너무 조바심 낼 필요는 없겠죠. 며칠만 더 반복하다보면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에도 익숙해져서 제 도움 없이도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그,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보통은 이런다고 신성력이 늘어나는 게 아니죠?”
“당연하죠. 신성력은 신앙의 증명입니다. 전쟁과 투쟁의 신을 섬기는 이들조차 그건 불가능하죠.”
‘니가 용사니까 그런 겁니다.’ 라는 말을 매우 완곡하게 돌려 말해주는 성녀님께 감사함을 느끼며 나는 멀리 날아간 방패를 주워 오고 주변을 정리했다.
억누르고 있던 마력이 다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몸에 활력이 돌았기에 뒷정리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성녀님이 말하는 성서의 내용을 듣는 게 더 고역이었다.
“그러고 보니 슬슬 도시에서 물자를 추가로 구입할 시기라고 세네란 씨가 말씀하시더군요. 이번에는 용사님의 도움을 좀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 도움을요?”
“예. 실상 저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다 해고했는데 구입하는 물자가 비슷하면 의심을 살 수 있다면서 사람 좀 소개시켜 달라고 하더군요.”
“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였다.
가끔 나사 빠진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역시 똑똑한 사람이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