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44)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44화(444/599)
[444화] 개화開花최근 줄창 정신없는 나날을 보낸 탓인지 몰래 밀입국한 마족들을 위해 장을 봐야 하는 상황임에도 내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했다.
평온하다못해 느긋할 정도다. 되려 내 유쾌한 반응에 세네란이 불안해할 정도였다.
“진짜 괜찮은 거 맞지? 내가 널 못 믿는 건 아닌데, 엄연히 몰래 하는 일이다 보니 좀 신중해질 수밖에 없거든?”
“사람도 밀수해온 분이 새삼스럽게 이런 곳에서 쫄고 그러십니까.”
“그거야 내가 직접 한 거니까.”
결국 못 믿는다는 거잖아.
굳이 입 밖으로 꺼낼 것도 없이 눈으로 말하자 세네란도 뻘쭘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뭐,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그래도 여기 토박이니까.”
“토박이라고 해도 물자가 움직이는 건 눈에 보여서 힘들긴 할 텐데…”
“이래 봬도 오가토르프 가문에서 집사장님의 총애를 받았던 몸입니다. 그리 불안해 하시니 어떻게 빼낼지 설명이나 좀 해드려야겠네.”
전생의 집사들이 당연하다는 듯 일삼는 부업 중 하나가 집안에서 남는 부산물들을 몰래 정리해 내다 파는 것이었던 것처럼 이곳 역시 그런 문화가 존재했다.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오가토르프 가문의 집사장이란 위치가 워낙 고급 인력이다 보니 굳이 부업을 할 필요가 없어서 그렇게 챙긴 수익을 가문의 재산으로 편성하고 사용인들에게 일종의 성과금처럼 나눠 주며 충성심을 관리했다는 것 정도지.
비록 그 과정이 아무런 불법적인 요소 없이 매우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이루어졌다고는 하나, 이런 일이 으레 그렇듯 몇 번 하다 보면 ‘어? 이러면 몰래 해먹을 수도 있겠는데?’ 라는 게 눈에 보이기 마련이다.
“하루아침에 다 옮기려고만 안 하면 별 문제없습니다. 걱정 마세요.”
심지어 오그웬은 아직도 한창 몸집을 불리고 있는 중인지라 움직이는 돈과 식량이 많아 물자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리하기도 쉽지 않다. 규모가 커지면서 식구도 많아진 알리샤 여사님의 도움을 받는다면 식자재 조금 추가로 떼어다 받는 건 일도 아니다.
부가 비용이 들기야 하겠지만 비밀 유지 비용이라는 명목하에 그 정도는 세네란도 손해로 취급하지 않으니 더더욱 어려울 게 없는 문제였다. 그렇게 짧은 설명을 통해 세네란을 납득시킨 나는 선수금으로 쓸 돈을 받아 든 채 수레딸린 말을 몰아 오그웬으로 향했다.
라이카도, 아실리에도 없이 느긋하게 마차를 몰고 있으니 정말 요양이라도 온 기분이 들어서 묘하게 들뜨기 시작하는 가슴을 안고 오그웬에 도착하니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외곽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성벽을 보수하는 사람, 오그웬으로 들어가는 사람, 나오는 사람 등등 다양한 목적을 지닌 이들이었으나 대부분이 모험가였다.
겨울에 밖으로 나가기엔 실력이 부족해서 공사판에서 일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적지 않은 편이다 보니 그런 이들에게 오그웬은 꽤 괜찮은 도시다. 장비를 다 내려놓고 왔음에도 묘하게 석공들과는 분위기가 달라 쉽게 구분 지어지는 모험가들을 구경하며 도시에 들어선 나는 예정대로 익숙한 얼굴들에게 인사를 돌리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도시는 바뀌었어도 기존에 있던 사람들은 그대로… 아니지, 오히려 더 번성하여 풍족하게 지내고 있었다.
헌옷만 모아 팔던 텍스 아저씨의 의류점은 바다 건너 라단에서 공수해오는 비단으로 만들어진 옷 한 두벌 정도는 과시용으로 둘 수 있을 만큼 커져서 며느리인 레미리가 분점을 운영할 정도로 대성했고, 밀레나는 오그웬 북쪽 지구에 위치한 식당들 대부분에 식자재를 납품하고 있었다. 얀스의 대장간은 아예 모험가들을 상대로 장사하기 위해 위치를 옮기면서 규모와 도제들이 배로 늘었으며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심부름꾼 꼬맹이들은 그래도 봐줄 만한 수준의 몰골을 유지하고 있다.
마족과의 전쟁이다 뭐다 하면서 세상이 난리법석인데 여기는 별 세계라도 되는 것처럼 풍족해지고 있는 꼴이 여러모로 신기했지만 어쨌든 내게는 좋은 일이었다.
몇 년 밖으로 싸돌아다녔음에도 오그웬의 사람들은 여전히 날 솜씨 좋은 심부름꾼 엘드미아로 봐주었고, 그들의 성공만큼이나 나의 성장을 기뻐해줬으며, 이것저것 따지는 것 없이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줬다.
“그래서 누나네 식재료 좀 훔쳐가야 할 거 같아.”
“이 새끼야!! 그런 건 좀 미리 말을 하고 해!!”
실상 핵심이 되는 알리샤 여사님조차 한바탕 욕을 쏟아부으며 등짝을 후려칠 뿐 거절하진 않았기에 내 용무는 꽤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었다.
껄껄 웃으며 여전히 힘이 넘치는 알리샤 여사님의 스매시를 몇 번 맞는 동안 내가 아픈 척도 하지 않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폭력을 멈춘 그녀는 어김없이 주방으로 들어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요리를 준비하며 내게 말했다.
“앓느니 죽지 아주 그냥. 볼일은 그걸로 끝이야?”
“당장은? 왜? 뭐 도와줄 일 있어?”
“넘치는 게 일손이다. 딴 게 아니라 진이 한 번 시간 좀 내 달라고 하더라.”
“진? 어디 있는데?”
“요즘은 모험가 길드 마구간에서 주로 일하던데. 어차피 저녁엔 여기로 오니까 없으면 돌아와.”
비록 시작은 외노자였으나 이젠 오그웬에서 알아주는 1등 신랑감이라 할 수 있음에도 어째 결혼은커녕 제대로 된 거처조차 잡지 않은 채 알리샤 여사님의 고아원 방 한 칸을 꿰차고 있는 녀석이 왜 나를 찾는 것일까.
요즘 하도 스펙타클한 일들을 많이 겪은 터라 또 뭔가 알 수 없는 신묘한 사건에 엮이는 건 아닐까 잠깐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럴 경우 녀석에게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기에 서둘러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라그니스랑 처음 데이트했던 곳도 지나치고, 추억의 갤럭티카 팬텀을 갈겼던 거리도 가로지르며 도착한 모험가 길드를 빙 돌며 마구간을 둘러본 나는 어렵지 않게 진을 찾을 수 있었다.
“아, 형님 오셨습니까.”
“오냐. 알리샤 누나가 나 찾는다고 알려주더라. 무슨 일이라도 있어?”
마구간에 녀석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나이가 어린 녀석들인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진이 최고참에 속한 듯했다. 말에게 건초를 먹이던 녀석은 옆에 붙어 있던 꼬맹이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한 뒤 웃으며 내게 다가왔으나, 그리 안색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다름이 아니라… 형님 집 근처에서 진행 중이라는 유적 탐사, 혹시 불법적인 일입니까?”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지만 놀라거나 당황하지는 않았다.
내가 완벽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기보다는 녀석이라면 이 정도는 알아차려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 탓이 컸다. 하지만 그 의중까지 확실히 파악할 수는 없었기에 대답 대신 턱을 긁적이며 진의 반응을 두고 보았고, 그런 내 모습을 본 진은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이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바닷가 쪽에서 밀항 및 밀수 관련 정보를 좀 자주 듣는 편이거든요. 주머니에 여유가 생긴 뒤로 좀 꾸준하게 듣다 보니 나름 신뢰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는데, 거기서 그 유적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불법적인 소식을 의도적으로 자주 접하고 있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는 진도 진이었지만, 얘가 나쁜 일을 하기위해 그쪽 소식을 모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게 더 웃겼다. 애당초 대체 어쩌다가 저 바다 건너 라단에서부터 내륙 끝자락까지 오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는 녀석이니 제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거니 라는 생각만 들 뿐이다.
“뭐라는데?”
“황금의 마법사가 유적 탐사를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그랬다가 지금은 갑자기 고용한 인력을 전부 잘랐다. 그런데 아직도 거기 있다 등등의 이야기였습니다. 뭔가 감출 게 있어서 황급하게 고용했던 인력들을 다 쳐 낸 거라는 식으로 소문이 도는 중이라더군요.”
혹시라도 세네란에게 각인당했던 반푼이들이 목숨을 걸고 소문을 퍼트린 건가 싶었는데 그냥 정황만 놓고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인 것을 보면 그렇진 않은 모양이다.
나름 믿을 만한 녀석이긴 해도 이걸 어디까지 설명해줘야 문제가 안 생길까 고민하는 찰나, 진은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는지 목소리를 낮췄다.
“그런데 며칠 전에 그 소문의 뒤를 캐는 사람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돈이 아니라 폭력으로 말이죠.”
그리고 이어진 건 절로 미간이 구겨지는 내용이었다. 마치 두 번은 그쪽에 얼굴도 안 비출 것처럼 휘젓고 다녀서 소문이 쫙 퍼졌다는데, 진이 말해 준 정황만 대충 들어 보면 무조건 마왕군이었다.
“구체적인 정황까지는 알 수 없지만 이와 관련해서 귀족 내지는 왕실까지 움직이려는 조짐이 보인다고 합니다. 혹여라도 뒤가 캥기는 일이라면…”
“조심하라는 거구만.”
“그렇죠. 뭐, 형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냐마는.”
그냥 겸사겸사 이야기가 들려서 경고하려는 게 목적이었다는 소리다. 굳이 먼저 날 찾아오지 않은 건 혹시라도 꼬리가 밟힐 경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인가?
지금까지야 그냥 눈치 좀 좋은 녀석이라 여겼는데 여기까지 오고 나니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너 대체 뭐 하던 녀석이냐?”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참 신묘하고 비범한 녀석이었다. 마치 이런 일이 익숙한 것처럼 눈치도 빠르고, 아는 것도 많다. 그렇다고 뭐 비밀 임무를 지니고 이티스엘로 넘어와 활동하는 첩보원같지도 않다. 내게 보이는 호의에 뭔가 다른 계획이나 노림수가 있어 보이지도 않고 말이지.
덕분에 수년간 묵혀왔던 의문을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었지만 진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 반응이 괜히 아니꼬와서 한 대 쥐어박아주고 싶었으나 미리 경고까지 해준 녀석에게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참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