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5)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5화(45/599)
장비 수선을 맡기고 라그니스의 자택에 도착하기까지 꽤나 서두른 덕에 시간은 그렇게 많이 흐르지 않았다.
시간적 여유가 생겼으니 마차도 아니고 사람을 통해 날 불렀다고는 생각하나, 단순히 강해지기만 하면 되는 나와 달리 라그니스가 짧은 시간 동안 익혀야할 것들은 너무나도 많은 상태다. 용무를 조금이라도 빨리 해결해서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게 도와주는 정도가 지금의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이었다.
라그니스의 자택은 본디 그녀의 가문이 수도에 들릴 때나 쓰던 별장이었기에 그리 크지는 않다. 물론 어디까지나 귀족의 감각에 맞춘 것이긴 하지만, 내 감각으로도 귀족치고는 상당히 아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긴 하다.
그런 별장에서 라그니스는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적은 사용인들과 지내고 있었던 게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변경백께서 모셔오라고 한 손님입니다. 별도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다른 방문자들은 들이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레니사 경.”
하지만 지금은 뭔가 심히 달랐다. 열 걸음만 걸어들어가도 도달할 수 있는 대문과 정문 사이에 각각 두 명 씩 지키고 서 있었으며 벽돌담 밖을 순찰하는 병력까지 존재했다.
병사들만 놓고보면 무슨 군 지휘부라도 지키는 듯한 모양새였기에 나도 모르게 살짝 위축되어 버렸다.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마지막 기억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군요.”
엄격 근엄 진지 그 자체인 모습으로 경비를 서고 있는 이들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며 레니사에게 물어봤지만 만족스러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최근 여러모로 이목이 집중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변경백께서 직접 말씀을 나누고 싶어하실 것 같군요.”
그렇게 낯이 익은 하인과 하녀들을 지나 2층에 있던 집무실에 이르자 레니사가 걸음을 멈췄다.
“변경백께서 여기까지만 안내하라 하셨습니다. 그럼.”
손님을 향한 예우는 하지만 명령을 수행함에 있어 일절 질문을 받을 의향이 없는 것인지 내가 제대로 반응하기도 전에 목례를 한 레니사는 그대로 몸을 돌려 왔던 길을 홀로 되돌아갔다. 최근에 봤던 그 어느 기사들보다도 딱딱한 인상이라 불편했는데 차라리 잘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 생각하며 문을 두드리자마자 열어버렸다.
“들어…아니, 그럴 거면 대체 문은 왜 두드린거야?”
“한낱 문 따위로는 엘드미아 에가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진짜…간만에 봐도 허튼 소리로 시작하는구나.”
어이없다는 표정 위로 헛웃음을 터트린 라그니스는 진행 중이던 업무를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수하면서도 고급스럽기 그지없는 붉은 드레스는 수도에 온 뒤로 길게 기르기 시작한 그녀의 머리카락과 한 세트인 것마냥 잘 어울렸다. 사실 어울리는 것과 별개로 저런 걸 입고 책상에 앉아 일을 하는 건 상당히 고역이 아닐까 싶어서 나도 모르게 코르셋을 가리키며 조언 했다.
“야. 코르셋 하지 마. 갈비뼈 나가.”
“마, 만나자마자 무슨 소릴 하는거야. 귀족에겐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도 일이라고.”
“그거 하나 했다고 차이가 날 아름다움은 아니니 그냥 빼는 걸 추천한다.”
“…흐, 흐응. 이런 거 없어도 예쁘다는 건가?”
“어.”
옛날의 못 먹고 못 지내던 라그니스가 아니다. 짧은 시간도 아니긴 했지만 이미 수많은 집중 케어를 받으며 건강도, 미모도 예전과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가꾸어진 그녀의 모습은 영락 없는 귀족 영애다. 코르셋 하나 얹거나 뺀다고 차이가 날 수준은 이미 옛날에 지나쳤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헤, 헤헤. 그, 그럼 뭐 나중에 다 버리지 뭐.”
“그래라. 그거 진짜 몸 상하게 하는 거니까. 싹 다 버려라.”
탈장에 내출혈에 정말 온갖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는 물건인데 아무리 힐러가 존재하는 세계라 하더라도 지인이 저런 위험한 걸 입고 다닌다고 생각하면 눈살이 찌푸러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똑똑한 애답게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걸 보니 마음이 놓였기에 소파에 앉으며 본론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나저나 정말 오랜만에 시간이 난 거 같네. 어쩐 일로 불렀어?”
“네 말대로 오랜만이니까. 얼굴도 볼 겸, 최근 있었던 큰 일로 이야기도 할 겸.”
맞은편 소파에 앉으며 테이블 위에 있는 종을 흔들어보인 라그니스는 길게 기지개를 켜면 말을 이었다.
“공부들은 수월한 편이었는데, 최근 제국 신성회에서 이것저것 시끄러운 탓에 너무 바빴거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름이 나오네. 걔네가 왜?”
살면서 제국 신성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라고는 옛날에 용사가 발탁되었다는 이야기를 아실리에가 듣고 왔을 때 정도였던 거 같다. 그래도 용사라는 걸 신탁을 통해 직접 점지할 수 있을 정도인 거 보면 매우 규모가 클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막상 또 이게 라그니스와 연이 닿아있다고 하니 신기한 기분이었다.
“스승님의 제자 중 한 분이 용사의 교육을 위해 제국에 파견을 갔는데, 거기서 내 이야기가 나왔었나봐.”
“거기서 네 이야기가 나올 게 뭐 있다고? 뭐 예쁜 애들 비교라도 했나?”
“예..! 흐, 흐흐. 엘드미아 말재간이 좀 늘었네?”
“칠칠맞게 웃기는. 아무튼 왜 네가 나왔는데?”
“용사의 마법 재능이 나랑 비슷한 거 같다고 하더라고.”
음? 뭔가 차분하게 되게 재수 없는 소릴 들은 기분이다.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해 보자. 그래도 명색에 용사의 재능을 이야기하는데 뜬금없이 평범한 사람 아무개의 이름을 언급하며 ‘당신의 재능은 참 평범하네요.’라고 말할 가능성보다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아무개의 이름을 언급하며 극찬을 날릴 가능성이 더 높은 거 아닌가?
그렇다면 라그니스의 재능이 천재적이라는 소리가 되는 거 아닌가?
내가 내린 결론에 뭔가 좀 어이가 없어서 라그니스에게 되물어보니, 그녀는 자존심이 상한 것처럼 팔짱을 끼며 볼을 부풀렸다.
“이거 왜 이래? 나 라드넬반데스 아크리산의 제자야? 비록 오그웬에 있을 땐 제대로 된 마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도움이 못 되었을지언정 마나의 운용과 마법 이론만큼은 스승님도 감탄했다고?”
“아니, 그 분 그냥 취미가 제자 받기인 물리 마법사 아니었어?”
“그건 또 무슨 마법사인지 모르겠지만 스승님은 왕국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유명한 분이셔.”
“그야 배틀메이지인데 거기까지 강하면 그럴 법하다고 생각은 한다만…”
“그것도 그렇지만, 스승님은 네 말대로 배틀메이지면서 일반적인 마법사조차 쉽게 넘지 못하는 벽을 넘으신 분이야. 제자도 아무나 받는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봐서 가능성이 있어야만 받으시는걸.”
세상에나. 에카프만 대단한 게 아니라 라드넬반데스도 엄청나게 대단한 인물이었나보다. 심지어 그 대단한 인물이 감탄할 정도의 재능을 지닌 게 라그니스라고?
“엘드미아 넌 정말 이상한 데에서 눈치가 좀 없거나 아는 게 없는 거 같아.”
“나도 다른 때였으면 들은 척도 안 했을 텐데 이번엔 좀 그런 거 같긴 하다.”
세상 물정에 너무 관심을 안 가지고 사는 걸까? 나중에 길가에서 팔리고 있는 신문이라도 좀 주기적으로 사 봐야겠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아무튼 그런 너랑 비교될 정도로 용사가 마법도 뛰어나다는거지? 근데 그게 왜?”
“그…용사를 가르치기 위해 모인 교육자들하고 모여서 이야기하다가, 용사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인재들하고의 만남을 주선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더라고.”
뭔 소개팅 어플도 아니고 무슨 만남을 주선하겠다는 거지?
“아무래도 성장에 자극을 줄 정도로 뛰어난 인물들이 비슷한 연령으로 함께 하면, 용사의 교육에 더욱 진전이 있을 거라는 취지의 이야기였다고 해.”
경쟁심을 부추기는 건가? 타당한 발상이기는 하다. 근데 용사라는 놈이 그런 경쟁심을 부추겨야할 정도의 상황에 놓여있을 거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 교육진들이 너무 일반인의 발상으로 대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네.
“그래서 너한테 진짜 오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오고 가서 바빠진 거야?”
“맞아. 내 사정은 신경도 안 쓰고 안 오면 이상한 것처럼 서신을 보내와서 스승님이 펄쩍 뛰고 난리도 아니었어.”
“제국이라는 놈들치고 정상인 놈들이 없는 거 같네.”
당장 집안이 무너져서 그걸 바로 세우기 위해 불철주야로 노력하는 애한테 싱글벙글 신병 훈련소에 놀러오라면 퍽이나 좋아하겠다. 자기들 일이 아니라고 너무 만만하게 보는 거 아닌가?
물론 상대가 용사인 것도 있고, 마왕군이 다 쓸어버리면 결국 남는 게 없다는 발상으로 다가서면 이해가 안 될 것도 없지만…
“걔가 용사로 뽑힌 게 언제인데 아직도 그러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내가 8살? 9살? 그 즈음에 뽑혔다고 소문 났던거 같은데.”
그럼 벌써 6, 7년은 지났다는 말인데, 그렇게 유명한 일타강사들을 모아놓고도 또래를 통한 효과를 이제서야 보려…어?
“잠깐 라그니스. 그거 진짜로 용사의 교육 목적이 맞아?”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다. 용사라고 해도 혼자서 싸우는 게 아니다. 마치 게임의 파티마냥 용사도 당대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 이들과 함께 움직이며 마왕을 노리고 나아가게 된다.
그러니 애당초 용사의 교육을 생각했으면, 이제 와서 다른 곳에 있는 천재들을 긁어모아 자극을 주는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다 같이 공부하는 아카데미 형식으로 운영 하는 편이 이득이었다.
용사에겐 동료가 필요하니까.
어차피 모을 천재 강사들이니 미래의 동료들을 찾아낸다는 느낌으로 다 함께 교육했으면 훨씬 유리했을 것이다. 용사의 동료로 뽑히지 않아도 후보자들은 용사와 같은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지금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쉽게 전투에 참여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제국 신성회는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용사의 힘을 자랑하기 위한 자리에 불과한 거 아니야 이거?”
라그니스의 두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