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53)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53화(453/599)
[453화] 불경不敬도끼쟁이가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딘다.
나름 열심히 뒤로 물러서며 벌려놓은 거리를 부질없는 것으로 만드는 그 큼직한 한 걸음이, 옷과 갑옷을 쫄쫄이로 만들어버릴만큼 비대해진 놈의 다리 근육을 한 번 더 팽창시킨다.
이변을 눈치챈 이단 심판관들과 성녀님이 한 차례 더 성법을 펼치며 나를 보호했지만 정작 나는 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 외의 기운에 놀라 펼친 성법을 유지하는 것조차 실패할 뻔했다.
성녀님의 말대로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건 분명 신성神聖이었다.
한없이 미약하기 그지없는 편린片鱗에 불과하지만 확실하게 피부로 느껴지는 신성은 지금까지 내가 느꼈던 것들과 달리 이질적이면서 불쾌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날 놀라게 만든 것은 그 불쾌함 속에서 아련하게 느껴지는 익숙함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착각하는 건가 싶어서 성녀님에게 진위여부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틈도 없이 놈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겨우 발 한 번 내딛는 것만으로 최고속도에 달한 놈의 거구가 나를 지키려는 교단의 방진을 향해 대포처럼 쏘아졌다.
-콰아앙!
한 번의 충돌로 방패가 우그러지고 이를 지탱하고 있던 이단 심판관들의 팔이 부러졌다. 성법과 가호는 놈이 흩뿌리는 기이한 신성과 접촉하여 상쇄라도 되는 것처럼 흩어졌다.
그 짧은 틈조차 허투루 놓치지 않으며 성녀님이 휘두른 메이스가 놈의 안면에 틀어박혔지만 녀석은 피하거나 막기는커녕 얼굴로 공격을 받아낸 뒤 거칠게 목을 터는 것만으로 그녀의 메이스를 저 멀리 날려버렸다.
나라고 별반 다를 건 없었다. 충돌과 동시에 놈이 휘두른 주먹을 검으로 받아내자 트럭에 치이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삐그덕거렸다.
여섯 명의 사람들을 한데 뭉쳐 날아가게 만든 업적을 달성한 씹새는 추가타를 날리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며 포효했다.
“크어어어어어!!”
눈동자가 맛이 가거나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이성이 날아간 건 확실해 보였다. 다른 놈들한테 물러나라고 한 건 뵈는 게 없어지는 부작용 때문이 아니었을까?
진형이 붕괴되고 사방팔방 날아가는 우리들을 보면서도 추가타를 날리기는커녕 좀 더 거리를 두려는 놈들과 마법사를 보면 내 추측이 틀리진 않을 거다.
“사격 금지! 내가 상대한다!”
놈들의 반응을 참고해서 혹시나 모를 아실리에의 지원사격을 막기 위해 목청 껏 외치며 자세를 가다듬는다. 누나라는 살가운 명칭을 썼다간 괜히 찾아다가 인질로 잡겠다는 발상을 하는 놈이 튀어나올 수 있기에 명령조로 이야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성녀님. 저거 뭡니까?”
나름 열심히 쐈지만 놈의 몸에 생채기를 내는 선에서 그친 양손 도끼를 회수하며 물어보자 빠르게 태세를 정비한 성녀님이 방패를 들고 옆에 붙었다. 슬쩍 흘겨본 그녀의 얼굴은 당혹감과 분노로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사람 하나 그대로 잡아먹을 것처럼 인상을 쓰고 있는데도 이쁘다는 게 조금 웃겼지만,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악신의… 찌거기로 사료됩니다. 심지어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에파가 님의 신성을…”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도 존나게 심각한 내용이었다. 악신의 신성 찌거기와 에파가 님의 신성을 섞었다고? 세상 아주 잘 돌아간다.
분노로 목소리가 떨리며 말도 제대로 끝맺지 못하는 그녀의 한쪽 손이 허전해 보이길래 슬쩍 양손 도끼를 내밀었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당연하다는 듯 한손으로 받아 든다. 차라리 검을 달라고 할 거라 예상하고 분위기 전환이나 할 겸 농담 삼아서 건넨 건데 저렇게 태연하게 한손으로 받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역시 이 성녀님, 만만치 않다.
“어차피 죽는다는 말과 저 단검을 저한테 찌르려고 했다는 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라는 뜻이겠죠?”
한 큐에 날아간 우리가 우습고 만만한 것인지, 짐승 새끼같은 그르렁 거림과 함께 몸을 비척인 (구)도끼쟁이가 우리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는 것을 바라보며 물어보자 성녀님은 별다른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황 상 그게 맞겠죠. 그리고 저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겁니다.”
“저딴 형태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신성이라는 건 만만하지 않으니까요.”
“그걸 알고 있기에 용사님을 찌르려고 했겠죠. 자멸할 테니까. 이해가 빠른 학생의 모습을 보고 있자 하니 교육자로서 대견하기 그지없군요. ”
어쭈, 먼저 농담을 던질 정도로 여유가 있었을 줄이야. 피식 웃는 나와 성녀의 곁으로 이단 심판관들이 다시 모이는 것을 곁눈질로 확인하며 그녀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찌꺼기라 하더라도 신성은 신성. 어떤 변수를 자아낼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 것 치고 저 새끼 너무 여유 넘치지 않습니까?”
제 힘에 취한 것인지 과시하는 것인지.
전형적인 삼류 악당처럼 여유를 부리는 놈의 모습은 정말 타임 어택이 있는 게 맞는지 살짝 의구심이 들 정도로 여유롭긴 했다. 하지만 성녀님은 모멸감 가득한 비릿한 미소로 놈을 바라보며 씹어 내뱉듯이 대답했다.
“한낱 필멸자가 감히 신성을 품었으니, 이성을 잃었다 하더라도 전능감에 심취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과연. 합리적인 추론이군.
“버티십시오. 전 좀 붙어봐야겠습니다.”
하지만 저런 게 나타날 때마다 매번 시간을 끌며 소모전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성녀님의 의견에 동조할 수는 없었다.
“예?! 그게 무슨…”
내 대답에 당황한 건 성녀님만이 아니었으나 의견을 굽힐 생각은 없었다. 오기가 아니라 저 지랄맞은 게 결코 오늘로 마지막일 리 없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저놈들 반응 보면 저게 뭔지 분명 알고 있습니다. 한 번 쓰면 뒈지는 물건인데 그로 인한 결과를 알고 있는 것도, 그런 물건을 고위 간부도 아닌 특수 작전 펼치는 병사에게 지급한 것도. 결코 가벼이 여길 사안이 아닙니다.”
“…저런 게, 하나가 아니라는…”
“예.”
성유물 수집. 성녀님은 알고 있는 듯한 악신의 찌꺼기라는 무언가. 그리고 전쟁.
제발 아니길 바라지만 이런 건 양산형의 전조라는 게 국룰 아니겠어?
“그러니 뒤는 부탁합니다.”
차라리 저런 게 하나만 으스대는 지금이 기회다.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놈을 향해 달려 나갔다.
“크아아아아!”
“지가 투명드래곤인 줄 아나 씨벌놈이.”
눈동자는 변함이 없는 거 같은데 비대해진 몸만큼이나 얼굴도 뒤틀려서 표정을 파악하기 힘들다. 어떻게 보면 웃고 있는 거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뒤틀린 육체에 고통받아 일그러진 것 같기도 하다.
좀 더 면밀히 뜯어보며 대체 어떤 상태인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기에, 내게 반응하듯 또다시 돌격하는 놈을 마주하며 검에 마력을 부여하고 대바늘을 꺼내 할 수 있는 최대한까지 압축하여 사출을 준비했다.
지능이 좀 많이 떨어진 건 맞는지 놈은 이번에도 몸통 박치기를 시전했다. 유효타를 먹였기에 자신만만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두 번 당해 줄 생각은 없다. 무리 좀 하면 반응 못할 속도도 아니니까.
“크하악!”
우렁찬 고함과 함께 어깨빵을 시전하기 위해 돌격하는 놈의 무릎을 향해 대바늘을 쏘며 한껏 자세를 낮춘다. 동시에 놈의 우측 무릎을 노리며 검을 휘둘렀다.
지성없는 짐승을 상대하는 데 검술은 필요 없다. 눈 깜빡이는 것조차 두려울 정도로 빠르게 줄어드는 거리와 타이밍에 맞춰 온 힘을 다해 휘두르기만 하면, 남는 건 알아서 베어달라고 다리를 들이미는 괴물만 있을 뿐이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씨발?!”
문제는 가볍게 다리 몽둥이를 잘라버릴 거라 믿었던 것과 달리, 강한 저항 속에서 파고들던 검이 절반 정도 되는 지점에 틀어박혀 버렸다는 점에 있었다.
졸지에 덜컥 제동이 걸려버린 나는 검이 틀어박힌 놈의 무릎과 내 머리를 터트리기 위해 휘둘러지려는 놈의 주먹을 번갈아 보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옘병할 악신도 신이라는 거냐!”
놈의 무릎을 베는 힘이 약했던 게 아니다. 폭발적인 신성력이 그걸 상회하는 속도로 상처를 회복하고 있을 뿐.
참으로 좆 같은 광경에 충격을 먹고 동작이 느려질 뻔했지만 다행히 놈의 주먹에 맞기 전에 손을 놓고 빠져나올 수 있었고, 놈의 주먹은 내 머리가 아니라 바닥을 쪼갰다.
-콰앙!
짜증이 나고 화가 났지만 일단은 검을 회수하는 게 우선이었다.
놈과 거리를 벌린 뒤 마력 그라인더를 최대까지 발동시키고 강하게 끌어보았지만 검이 빠져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놈이 뜻모를 괴성을 지르며 비죽 튀어나온 검 손잡이를 후려쳤지만 저 넘치는 회복력은 자의가 아닌 것인지 놈의 비명만 더 커질 뿐이다.
“젠장, 이걸 어떻게… 음?”
그 틈을 노려 다시 한번 성녀님과 이단 심판관들이 놈을 노리며 시선을 끄는 사이 검을 뽑아낼 방법을 찾던 내 눈에, 놈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과 신성력이 묘하게 익숙한 형태로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교수실에서 사과를 쪼갰을 때 세네란이 보여줬던 격한 반응과 설명이 불현듯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쉽진 않겠지만 저기까지 확연하게 신성력과 마력이 뿜어져 나온다면 목 뽑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이거 돌아가면 인사 좀 돌려야겠군.”
세네란에게는 감사의 인사를.
지금 놈의 다리에 박혀 있는 검을 뽑기 위해 극단의 조치를 취하고 나면 싹 다 갈려 있을 검을 보고 경악할 발쿤 씨에게는 사죄의 인사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