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56)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56화(456/599)
[456화] 응징膺懲성녀님을 필두로 이단 심판관들이 이름도 모르는 마법사놈을 기절시켜 유적으로 끌고 가는 동안 나는 아실리에와 함께 마왕군들의 소지품을 수색했다.
나름 구린 일을 처리하는 놈들이니 정보가 되었든 장비가 되었든 얻을 게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일을 크게 벌린 탓에 필연적으로 오그웬과 왕실에서 조사가 나올 테니 미리 털 수 있는 건 싹 다 털어야 했다. 그때가 되면 우린 ‘밀입국한 마족들의 내분’에 우연찮게 끼어들게 된 무고한 피해자 행세를 하며 아무런 연관도 없음을 주장해야 했으니까.
“뭐 좀 찾았니? 이쪽은 시원찮네.”
“이쪽도 마찬가지야. 그나마 쓸만한 단검 하나씩 들고 다니는 건 좋은데… 아, 누나도 거기 있는 단검들은 좀 모아줘. 내가 좀 써야 할 거 같아.”
뜬금없이 단검 수집자가 된 내게 의문을 시선을 보내는 아실리에게 내 개쩌는 발상에 대해 설명하자, 그녀는 일부러 상처를 헤집기 위해 만들어진 화살촉과 같은 용도로 쓰기 위해 평범한 단검을 분질러 먹겠다는 내 의도에 기겁하면서도 그게 꽤 유용할 거라는 점에는 공감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엘디가 쓰는 무기들은 전부 튼튼했지. 용케 그런 발상을 했네.”
“저놈 단검 보니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마장금으로 만들어졌다는 마족놈들 무기랑 열심히 부딪치면서 느끼는 거지만 발쿤 씨는 단순히 마장금을 녹이고 검으로 다시 만든 것에 그치지 않고 뭔가 가공을 더 한 게 맞았다. 물소뿔이 쓰던 투창도 그렇고 도끼쟁이의 손도끼도 그렇고 마력을 잘 받아들이는 건 맞지만 강도에서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덕분에 이번에 돌아가면 좀 돈 써서 비싼 술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악신의 찌꺼기라고 했지?”
비싼 술을 넘기면서 작살난 검에 대해 어떻게 해명을 해야 할까 고민하려던 찰나, 약간의 텀을 두고 들려온 아실리에의 목소리가 내 생각을 막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왕군의 시체에서 회수한 단검들을 든 채 근심걱정 가득한 시전으로 도끼쟁이의 시체를 바라보는 아실리에가 있었다.
“에이, 뭘 또 그렇게 걱정해 누나.”
“지금 걱정이 안 되게 생겼니? 악신이라는데.”
뤼밍스와 있었던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음에도 악신의 위협이라는 걸 전설로만 치부하지 않아서 그런지 아실리에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저 단검에 찔렸으면 엘디가 저 꼴이 되었을 거라는 소리잖아? 이번에는 좋게 끝났지만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노릇이잖니.”
“아… 그건 뭐라 할 말이 없긴 한데…”
칼꽂이가 된다한들 결국 악마와 비스무리한 무언가가 될 뿐이니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다운그레이드라 할 수 있지만 저거에 직접 찔리는 건 별개의 이야기이긴 하다.
당장 내가 흘린 마력의 연결고리조차 역으로 타고 넘어오려는 힘이다. 몸에 직접 찔렸을 때 안전하게 밀어낼 수 있을지 당장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성녀님과 함께 훈련하면서 신성력을 느끼는 게 익숙해져서 눈치는 금방 챌 수 있어. 이번에야 처음 보는 거라 저게 뭔지 감을 못 잡았던 거지, 주의만 기울이면 저거에 당할 일은 없을 거야.”
“정말?”
“내가 아무리 누나를 안심시키려고 해도 거짓말로 안심시키지는 않아. 내가 아무리 자살 희망자처럼 보여도 엄연히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니까?”
세상 억울한 척을 하며 어깨를 으쓱하자 살짝 웃음을 터트린 아실리에가 단검들을 쥔 채 가볍게 주먹을 뻗어 어깨를 건드렸다.
“누나도 봐서 알겠지만 적에게 쓰지 않을 경우 저렇게 자기 몸에 박아서 사용할 텐데, 저 상태는 악마와 다를 바 없어. 그리고 악마는 내게 아무런 위협도 안 되지. 대악마도 죽여 버린 악마 사냥꾼 엘드미아 에가라고?”
나보다 월등히 뛰어난 전사가 저걸 무기 삼아 휘두르는 최악의 상황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아실리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그런 놈이 있어도 내가 걸음을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체념하는 것에 가까운 반응이었기에, 이번에는 슬쩍 먼저 다가가서 가볍게 안아주었다.
“뭐니? 지금 애교부리는 거야?”
“미안해서 그러지.”
“푸훗, 미안한 상황이라는 걸 알긴 알고 있나 보네? 용사님이 되면서 눈치도 빨라졌나 본데… 혹시 내가 모르는 용사님의 특별한 힘이 또 있는 걸까?”
딱히 내 손길을 거절하지 않으면서 가슴팍에 가볍게 고개를 댄 아실리에가 위를 바라보며 내뱉은 말은, 귀여운 그녀의 반응과 달리 꽤 뼈가 있는 질문이었다.
가벼운 농담이라기보단 뭔가 짐작하고 있는 게 있음이 분명 했다.
“…그게.”
이제는 전생에 대해 말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려고 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비밀을 지켜온 게 미안한 것도 있었지만 어린애 연기를 한답시고 태연하게 저지른 과오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간 것도 이유였으나, 이질적인 존재로 취급받아 거부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가장 크다.
참 우스운 일이었다. 나 방해하는 사람 베어 죽이는 건 아무렇지도 않게 현지화가 된 주제에, 좋아하는 사람 한 명에게 거부당하는 건 전생과 다를 바 없이 똑같이 쫄보라는 게 말이다.
나를 보며 장난스럽게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던 아실리에가 갑자기 입을 연 것은 저절로 말라오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고민할 무렵이었다.
“지금까지 대륙에 있었던 용사들에 대한 이야기 알아?”
“응?”
이미 지크프리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시점에서 용사가 어떤 존재들이었을지 어림짐작하고 있었기에, 사실 그들의 ‘이야기’라고 할 만한 것은 알지 못했다.
평범한 애들이라면 그 영웅적인 일대기에 흥미라도 지녔겠지만 나에겐 개뿔 의미가 없는 기록에 불과했으니까.
무엇보다 그런 건 보통 용사들의 일대기나 전기에 적혀 있기 마련인데, 이티스엘에 용사라는 존재가 나타난 건 수 백 년도 전의 일인지라 제국처럼 꾸준히 이슈가 되는 존재도 아니었을 뿐더러 아무리 인족을 구원하는 존재라고 한들 대부분의 용사들은 제국 소속이었기에 그들을 영웅시한 문서나 서적들은 이티스엘에 얼마 있지도 않았다.
덕분에 이 질문에는 또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주춤거리는 사이, 아실리에는 두 팔을 벌려 내 허리를 감싸주며 말을 이었다.
“전혀 다른 세상에서 온 용사들도 꽤 많았다는 모양이야. 누구는 영혼만 오기도 하고, 누구는 아예 육신과 함께 넘어오기도 했대.”
“그거… 참 믿기 힘든 이야기네.”
“그렇지? 그래도 그들이 남긴 기록이나 행적들을 보면 사실인 모양이야. 제국의 발전이 유독 뛰어난 것도 그런 용사들이 지니고 있던 지식의 일부가 적용된 결과라는 이야기도 있더라고.”
가능성이 차고 넘치는 이야기이고 실제로 나 역시 그럴 거라 짐작했던 내용이다. 당장 제국의 수도에서 내가 본 다양한 인프라들과 서부 왕국 지대만 비교해도 그 수준이 천지 차이라 할 수 있었으니.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할 수가 없었기에 입술을 앙다물며 고개를 숙이자,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아실리에의 눈동자는 한없이 맑으면서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애정이 가득 담겨 있다.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다는 듯, 하지만 내 입으로 듣고 싶다는 의지가 확실하게 담긴 그 시선을 마주하고 있자 하니 전생의 이야기를 꺼냈다가 거부당할 것을 두려워 주저하고 있었던 스스로가 조금 우습게 여겨졌다.
내가 아실리에를 안 믿으면 누구를 믿겠는가.
…물론 이제는 좀 믿을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가장 우선순위는 역시 아실리에니까.
‘어떻게’ 말해야 할까 라는 고민이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로 변한다.
동시에 마음이 한결 편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어중간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고 나니 새삼 각 잡고 이야기할 건 없다는 생각이 들며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다.
“나 사실 정신연령 40대 언저리야.”
내 대답이 어지간히 쌩뚱맞고 이상했는지 이건 또 무슨 소리냐는 듯 눈썹을 휘는 아실리에를 보며 이번에는 기어이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차피 고문에 시간이 걸릴 테니 여유는 있다.
오늘 다 말해야겠다.
◈
대충 시체들을 정리하고 하늘을 선회하며 내 명령을 기다리던 자가용과 함께 집에 돌아온 뒤, 혹시 모를 정신적 충격에 대비해서 라이카를 안아 들게끔 만든 다음에야 나는 아실리에에게 내가 전생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했다.
원래대로라면 있어야 했을 클리셰적인 반응이 몇 개 빠진 아실리에는 굉장히 침착했다. 그녀는 내 말을 그대로 들었고,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거나 내 정신 상태에 의문을 표하는 것이 아닌 여기와는 다른 형태로 발달했다는 세계에 대한 순수한 의문을 몇 개 입에 담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지크프리트랑 같은 세계의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고?”
“가능성이라기보다는 무조건 그럴 거야. 평행세계… 아, 거의 모든 것이 똑같은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식의 이야기인데 아무튼 그런 식으로 지크프리트와 내가 살던 세상이 매우 유사한 다른 세계가 아닌 이상은 말이지.”
그래도 아무런 놀라움도 내비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녀의 손은 마치 내가 용사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연신 라이카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쓰다듬었고, 귀는 연신 불안정하게 움직였다.
저 모습마저도 나를 배려하기 위해 최대한 경악을 자제하는 게 아닌가 싶어 고맙게 느껴질 무렵.
어느 정도 침착을 되찾은 그녀는 느닷없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고, 나는 저절로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이제는 내가 라이카를 받아들어야 할 차례일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그럼 엘디는 정신 연령 서른 무렵에 ‘엘드미아 찬스’를 외친 거야?”
그녀의 입에서 나온 건 내 빌어먹을 업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