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61)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61화(461/599)
[461화] 소환 용사는 전생의 꿈을 꾸는가.메시나 왕녀의 이번 방문은 나에게 있어 참으로 달갑지 않은 이벤트였으나, 그와 별개로 그녀의 준비성이 매우 철저하다는 것만큼은 잘 알게 되었다.
그녀가 지크프리트와 함께 했던 기사가 제출한 보고서의 사본마저 챙겨 와서는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올려 뒀기에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지금 눈앞에 대동한 호위 둘뿐만 아니라 저 밖에서 아실리에에게 고기를 받아 먹는 자가용을 구경하며 감탄하고 있는 수행원들까지 포함해서 아주 정치적인 행보를 보여주시기에 내린 평가다.
이 거창한 방문은 사실 그냥 오그웬의 영주인 베렉트 남작에게 공문 하나 보내 도움을 요청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끝날 문제였다.
비록 여러 가지 특수와 우연의 산물을 누리며 발전하고 있는 오그웬이라고는 하나,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 알아서 잘 커질 정도로 영지 운영이라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영지를 키우는 건 엄연히 영주의 능력이고, 그런 의미에서 베렉트 남작은 제대로 된 늙은 영주다. 왕실에서 내 도움을 얻고자 하는 의사만 타진했어도 다른 투구걸이들과 달리 제대로 된 대응을 하여 내가 씨발씨발 거리며 왕실로 향하게‘는’ 만들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뜻이다.
그걸 굳이 메시나 왕녀가 행차했다. 그것도 협조를 요청하는 형태로. 왕족의 엉덩이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감안했을 때,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이건 말건 이 방문 사실만으로도 왕국에서 내 공식적인 위치는 굉장히 견고해진다. 무려 왕족이 직접 달려가서 도움을 요청하는 인물인데 왕국 안에서 그 누가 대가리 뻣뻣하게 들고 지랄할 수 있겠어?
그녀는 설령 내가 이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호의를 베풀 것이라는 의사를 심플하게 보여 준 것이다. 오그웬에 도착하자마자 영주를 건너뛰고 내게 달려온 건 그런 이유도 포함된다.
덕분에 나는 단순히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것만 할 줄 아는 찰거머리라는 개인적인 평가를 정정하며 앞으로 이 아가씨를 좀 더 경계하기로 한 뒤, 라이카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며 새삼 심각한 표정으로 문서를 바라봐야 했다.
“혹시 이거 읽으면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든가…”
“분명 중요한 사안이지만 그렇게까지 강압적으로 나갈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순수하게 부탁을 하고자 온 거니까요.”
젠장, 조금이라도 찔리는 기색이라도 보이면 핑계 삼아 거들떠도 안 봤을 텐데. 칼같이 대답하는 바람에 결국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문서를 읽어볼 수밖에 없었다.
보고서는 지크프리트가 적과 조우하여 교전한 뒤 복귀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었기에 꽤 긴 편이었지만, 이전에 레비엥 공방전을 도우며 기사단의 보고서 작성 양식에 나름 익숙해진 덕에 핵심 내용이 어디에 틀어박혀 있는지는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덕분에 문서를 쥐고 수십 초도 지나지 않아 지크프리트가 조우한 마왕군이 내가 만난 놈들과 다른 부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구성원.
마법사 하나에 나머지는 전사였던 이쪽과 달리 지크프리트와 조우한 것은 마법사 부대였다. 그것도 기사의 소견과 이후 정황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전장에서 써먹기 애매하다고 평가받는 환영 계열의 마법사 부대.
이놈들이 왜 애매한 놈들인고하니, 한 시간짜리 전투를 위해 한 달 동안 함정을 파두고도 일 분 만에 무력화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 바로 환영 마법이기 때문이다.
제국 아카데미에서 겪었던 대련장? 모든 준비와 지속적인 관리의 산물일 뿐이다. 그런 마법을 아무 준비없이 화염구 날리는 수준으로 막 쓸 수 있었다면 세상은 훨씬 더 개판이었을 거다.
애초에 전쟁에서의 실전성을 염두에 두고 발전해 온 마법조차 아닌지라 후방 전선이면 몰라도 최전방은 얼씬조차 하지 않을 텐데… 어째서인지 이번에 지크프리트가 마주한 게 바로 그놈들이었다.
“특이하네요. 환영 마법이라니.”
“네,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도 모두 그리 여기고 방심했다고 합니다.”
동행한 이들이나 지크프리트 파티가 안일했다고 평가하긴 힘들다. 당장 나였어도 상대가 환영 마법사인데 준비마저 미흡하다 여겨지는 상황이었다면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전장에서의 실전성이 있는 환영 마법이라는 건 그만큼 비현실적인 것이다.
“방심했다는 것치고는 피해 경미, 적은 퇴각… 마왕군의 구성원들을 보면 적들이 전멸하지 않았다는 것 외에 특이사항이 없어 보입니다만.”
그나마 특이사항이라고 할 만한 건 부대를 지휘하는 것으로 판명된 마왕군의 선봉이 악신의 힘을 사용했다는 것 정도. 그마저도 동행한 성광 십자회의 성기사들과 테네아시의 뒤늦은 증언으로 추가된 내용이었을 뿐, 교전을 치르던 당시엔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는 모양이다.
혹시나 놓친 것이 있을까 싶어서 몇 차례나 다시 읽어보았지만 그런 건 없었다. 보고서는 정확히 해당 전투를 마무리 짓고 부대로 복귀하는 과정까지 누락없이 받는 거니까.
지크프리트의 상태가 이상해질 만한 건 적혀 있지 않다. 그리 판단하며 메시나 왕녀를 바라보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호위들을 바라보며 나직이 명령했다.
“밖에서 대기하거라.”
아, 이 아가씨 진짜 왕녀였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명령이 신기했지만 호위들은 일언반구없이 예를 갖춘 뒤 오두막을 나갔다. 그리고 메시나 왕녀는 확실하게 오두막 문이 닫히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다시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해당 보고서를 제출한 기사 역시 그리 판단했습니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교전 중에 적 지휘관이 용사를 향해 외쳤던 말을 떠올리고는 구두로 보고를 올렸다고 하더군요.”
“사람까지 물리시는 걸 보아하니 그게 핵심이라 여기신 모양이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모르겠습니다. 그는 그저 이해할 수 없는 대화이기에 기억하고 있었을 뿐이었고,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인 상황입니다. 혹시라도 저주 내지는 즉발성 마법 주문인가 싶어 왕실의 인력을 총동원해 보았으나 밝혀진 게 없습니다.”
그래서 악신과 연관이 있는 무언가가 아닐지 의심하고 있던 와중에 내 이야기를 접한 거로군. 이게 유년기의 끝이 지닌 파급력이었군요 에파가 님. 삶이 참으로 빡빡하게 느껴집니다.
“이미 오그웬 영주를 통해 이야기가 전해졌겠지만, 제가 상대했던 마왕군은 무기를 통해 악신의 힘이라 추정되는 무언가를 사용했습니다. 경황이 없어 후위에 있던 마법사가 외치는 주문까지 기억나진 않지만…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건 모르는 법이니 일단 들어 보는 게 좋겠죠.”
“감사합니다. 발음이 정확하게 전달된 게 아니니 다양하게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예전에 지크프리트에게 힘든 일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대놓고 말했던 것도 있으니 매정하게 모르쇠를 시전할 생각이 없었을 뿐인데, 그런 내막을 알 리 없는 메시나 왕녀는 눈에 띄게 안도하며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내게 자신의 호의가 통했다고 여기는 듯했지만 굳이 정정하진 않았다. 착각은 자유니까.
“용사와 전투를 치른 마족이 외친 말은 ‘지쿠로 토라칼 방버플 아코 시프지 안나’ 였다고 합니다. 그 말이 있은 뒤 확실히 용사의 행동이 이상해졌다고 하여, 마법사들은 주문일 가능성이…”
덤덤히 듣다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혹시나 싶어 다시 듣고, 그러고도 모자라 몇 번을 입으로 중얼거리면 되새긴 끝에야 현실을 받아들인 나는 눈앞에 왕녀가 계속 마법사들의 가설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씨발.”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알고 싶지 않나.
한국어다.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 나도 똑바로 발음이 안 되는 전생의 언어가 왜 쌩뚱맞게 마족에게서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걸 듣고 명백히 지크프리트의 행동이 이상해졌다는 게 문제지.
“에, 에가 경? 뭔가 알아차리신 건가요?”
“이, 아… 하아, 돌겠네.”
너무 당황하니 말이 안 나온다.
지크프리트가 자기를 빙의자로 여기고 있던가? 여자 셋이랑 문란한 아카데미 생활을 즐기는 것보다도 빛의 에테를 향한 좆같음이 더 컸나? 진짜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가고 싶은건가?
추측이 생겨나는 속도보다 의문이 생겨나는 속도가 더 빠르다보니 뇌에 과부하가 오는 기분이다.
“…일단은 정황을 좀 더 파악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뒤 용사님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그냥 간만에 한국어가 들려서 놀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 여기며 물어보자 다행히 지크프리트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말을 내뱉은 마족 지휘관이 지크프리트가 전선에 나설 때마다 한국어로 말을 건다는 점에 있었다.
“전선 어딥니까.”
“예?”
“용사님이 지금 있는 전선. 어딥니까. 직접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메시나 왕녀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과 별개로 내 안의 일천 하고도 하나의 엘드미아들은 똥 씹은 표정을 지은 채 골머리를 썩기 시작했다.
악신이든, 환영 마법의 일부든 간에 그 지휘관이라는 놈은 나도 좀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