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63)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63화(463/599)
[463화] 소환 용사는 전생의 꿈을 꾸는가.이건 또 한밤중에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가만히 둬봤자 예의를 갖추기 위해 천막 안으로 들어오지도, 큰 소리를 내지도 못 하는 전령의 나지막한 목소리만 반복해서 울릴 뿐이라 잠깐 시선을 교환한 끝에 에셀루아가 나서기로 했다.
“용사님. 급…”
“용사님은 기침하지 않으셨습니다. 전언은 나, 에셀루아가 대신 전달하죠. 무슨 일입니까?”
그녀가 아무리 대외적으로 이름뿐인 황녀라 한들 엄연히 제국의 황녀였다. 어중간한 사안이라면 그녀에게 말하기에 충분할 텐데, 천막 밖의 전령은 크게 주춤거리면서도 물러나지 않았다.
“…엘드미아 에가 경께서 반드시 용사님께 직접 전달해야 한다고 하여 왕명으로 전달된 전언입니다. 황녀님의 권위를 무시하려는 처사가 아니라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니 부디 용사님께 직접 전해드릴 수 있도록 윤허해주셨으면 합니다.”
우습게도 엘드미아라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엔티레와 에셀루아는 주춤거린 반면, 테네아시는 반사적으로 지크프리트를 흔들어 깨웠다.
그로 인해 이제 막 다시 잠들었던 지크프리트가 잠에서 깨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보다도 테네아시의 반응에 더 놀란 두 여인이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테네아시는 대답 대신 눈치만 볼 뿐이었다.
“뭐야, 무슨 일 있어?”
“…에가 경이 지크한테 전언을 부탁했다고 해요. 왕명으로 왔다는 거보면 중요한 내용인가 봐요.”
“허, 이 밤에 잠까지 깨워야 할 정도로? 동생이 그렇게 서두르다니 괜히 불안한데.”
잠에 취할 법도 했지만, 지크프리트는 금방 정신을 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터운 외투만 걸친 채 전령이 있는 입구로 향한 그는 방금 자신이 입에 담은 말과 달리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래도 그간 머릿속에 박힌 인식이 있는 터라 ‘그래도 뭐 별일 있겠어? 동생인데.’ 라는 생각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막을 걷고 전령을 마주할 때까지도 지크프리트의 생각은 변함없었으나, 자신을 마주한 전령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물건을 공손하게 건네며 고개를 숙였을 땐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았다.
“이건 또 뭐야?”
“우산입니다.”
“…아니. 우산인 건 나도 아는데, 동생이 이걸 보냈다고? 왜?”
무슨 수수께끼도 아니고 뜬금없이 검은 우산을 보낸 이유가 뭐란 말인가?
“이거 뭐 마법의 우산이나 그런 건가…?”
“평범한 우산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젠 뭔가를 암시하는 거라 믿어 볼 수밖에 없겠군. 지크프리트는 어깨를 으쓱이며 쓸데없는 추측만 이어 나가는 것을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이해가 안 되네. 그래서, 전언은 뭔데?”
그리고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던진 질문의 대답이 돌아오자마자 굳어 버리고 말았다.
“유모 메리 포핀스가 곧 갈 테니, 기다릴 것.”
상황을 뒤늦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팽팽 돌아가기 시작한 머리가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며 가벼운 현기증을 일으켰다.
분명 엘드미아의 투사체 무기를 보고 메리 포핀스라 이야기를 꺼냈던 적은 있다. 자신이 봤던 영화와 추억을 떠올리며 웃었던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하지만 지크프리트는 메리 포핀스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려 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장난삼아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속였지.
당연히 엘드미아는 메리 포핀스가 유모라는 것도 모르고 검은 우산을 들고 다닌다는 것도 몰라야 했다.
“……수고, 했어.”
비틀거리거나 다른 이상 증상을 보이지 않은 건 용사의 강인한 육체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최대한 자연스럽게 반응하려고 해도 우산을 쥐기 위해 뻗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겁이 나거나, 불안해서가 아니라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몸이 놀란 것에 가까웠다. 어찌저찌 우산을 쥐고 전령을 등진 채 천막을 내리면서 침대에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 지크프리트는 자신이 또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탑을 쌓는 자라는 마족을 만난 뒤로 그를 괴롭혀 온, 지구에서의 삶과 관련된 꿈을.
“지크?”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우산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서 이상함을 느낀 에셀루아가 말을 걸어왔지만 지크프리트는 상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컴퓨터, 핸드폰, 영화, 대중 교통, 인터넷을 비롯한 온갖 의식주 등등.
군 입대 전 미처 다 마시지 못하고 들어갔던 콜라 한 모금이 머릿속에 남아 훈련소 내내 고통스러웠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아쉬움과 갈망 속에서 참으로 부단히 노력하여 힘겹게 이 세상에 정을 붙여 왔다.
가족들과 친구, 주변 지인들에게 말 한마디조차 남기지 못하고 왔기에 좋은 감정같은 건 있지도 않았었다.
아무리 용사로서의 삶이 현대 사회에서의 사축 생활보다 낫다고 하더라도 말 그대로 ‘다른 차원’에 떨어졌다는 사실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고, 그로 인해 왜 하필 자신이냐고 여신을 원망했던 적도 있다.
그 모든 것이 지나간 이야기가 되고, 정을 붙이고, 사랑을 하며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일단 용사의 소임을 다 하자고 마음먹었을 뿐. 차원 단위의 고독감 속에서 여신을 원망하던 어두운 감정을 완전히 잊은 건 아니다.
그래서 마족이 어눌하게나마 한국어를 내뱉었을 때 지크프리트는 저도 모르게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해외에 나갔을 때 같은 나라 사람을 보고 느끼는 반가움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감정, 왜 하필 적으로 만나는 것인지 납득하지 못해 생겨난 분노,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감언이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그를 괴롭혔다.
그 괴로움이 커지는 나날과 함께 마족은 점점 말에 능숙해져 갔다. 마치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쓰지 않아 서툴던 말에 다시 익숙해지는 것처럼, 혹은 처음 쓰는 언어에 갈수록 능숙해지는 것처럼.
그렇게 익숙해진 언어로 자신이 여신에게 속고 있음을 끝없이 설파하며 괴롭히니… 솔직히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왜 자신이 믿어왔던 모든 게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흔한 클리셰에 당면한 작품 속 인물들이 충격을 먹었던 것인지 이제야 납득이 갈 정도로 힘들었다. 그럴수록 전생을 되새김질 하듯 꿈은 더욱 생생해졌고, 상대가 환영 마법사라는 사실을 억지로 되내이며 이 모든 게 적의 개수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지려고 하면서도 흔들렸다.
근데 마치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덜렁 우산 하나 보낸 것 같은 엘드미아 때문에 이제는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 진짜!! 괘씸하네!!”
“지, 지크?”
하도 어이가 없으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법이라고 했던가.
갑자기 주마등처럼 과거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며 이 인간이 걸어왔던 모든 태클이 사실 작정하고 걸어왔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마족이 한국어로 떠드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하… 그래, 일단 기다려 준다.”
덕분에 잠이 확 깨버렸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엘드미아와 달리 저 마족은 한국어만 쓸 수 있을 뿐 뭔가 구체적인 증거라 할 만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먼저 언급한 적은 없었다.
지구, 고향, 가족, 문화 등등 추억을 자극할 만한 다양한 이야기를 던진 건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건 없다. 하다못해 콜라 치킨이 그립지 않냐는 말만 들었어도 이야기가 달랐을 텐데… 여러모로 두리뭉실했다.
의외로 사기꾼이 사기 치는 수법과 비슷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언어에만 신경 쓰느라 이런 단순한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충격 요법 성능 확실하구먼.”
요 며칠 잊고 있었던 진심 어린 미소를 지어 보인 지크프리트는 들고 있던 우산을 대충 옆에 던져놓으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
자가용을 타고 수도로 날아가자마자 술을 사 들고 발쿤 씨의 공방에 도착한 나는 더없이 정겨운 태도로 나를 맞이해준 발쿤 씨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보며 형언키 어러운 죄스러움을 느꼈다.
술이 담긴 나무 상자를 볼 때까지만 해도 귀에 입이 걸릴 것처럼 웃어 보이던 발쿤 씨의 표정이 내 박살 난 검을 보자마자 조각처럼 굳어 버렸기 때문이다.
“대, 대체 검에 무슨 짓을 한 겐가…?”
“그… 어쩌다 보니…”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될 물건은 만들지도 않아!!”
강렬한 기시감이 느껴지면서도 뭔가 다른 상황 속에서 저절로 숙여지는 고개를 가까스로 붙잡으며 검을 건네자, 마치 전장에 나갔다가 초주검이 되어 돌아온 자식을 바라보는 것처럼 허망하게 검을 살피던 발쿤 씨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음? 어라?”
“그, 혹시 고치기 힘든 지경까지 손상된 겁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건 절망감보다는 당혹감에 가까웠다. 하지만 사람이 갑작스럽게 충격을 받으면 감정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법이라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방금까지 보여줬던 망연자실함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진지한 얼굴을 한 채 검을 훑어보고 마법을 사용해본 발쿤 씨가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힘겹게 되물었다.
“자네 대체 뭘 죽였나?”
“예?”
“핵이 변질 되었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변하는 중이고. 심지어 이젠… 뭔 이상한 걸로 회로가 굴러가는군. 용이라도 죽이지 않고서야 왜 이런…”
지난번에 봤던 액체 상태로 검을 되돌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발쿤 씨의 의도와 달리 다이내믹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검을 바라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뒤틀린 황천의 도끼쟁이부터 목뽑기를 시도할 때 역으로 타고 오려던 악신의 신성력뿐만 아니라 에파가님의 신성까지.
짐작 가는 게 너무 많아서 문제다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