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66)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66화(466/599)
[466화] 소환 용사는 전생의 꿈을 꾸는가.전초 기지의 사령부에서 들은, 전장까지와의 거리는 이틀.
겨우 그 이틀의 거리를 날아가는 동안 나는 수도와 오그웬 언저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온갖 몬스터들을 구경하게 되었다.
사실 대부분의 시간을 하늘에서 보내다 보니 절대다수는 말 그대로 ‘구경’에 불과했으나, 야영을 위해 땅에 발을 딛자마자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부류는 꼭 있는 법.
덕분에 뤼밍스의 투구가 정말 오우거의 대가리보다 단단하다는 걸 증명할 기회를 얻게 되었지만 내 생각보다 이티스엘이 은근히 마굴魔窟이었다는 실감이 들어서 그다지 기분이 좋진 않았다. 질렸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실리에의 시선은 덤이었고.
그래도 이제 곧 전초 기지에 도착한다고 방심하던 지금 이 순간보다는 어제의 오우거 습격이 나은 편이었다.
“내 살다 살다 하피한테 에워싸이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사령부 사람이 미리 경고하기는 했다. 전선에 가까워질수록 몬스터가 늘어나서 날아다니기 힘들 거라고.
근데 그 ‘힘듦’의 기준이 마법을 빵빵 쏴제끼는 비룡 기사 한정일 줄은 몰랐지. 아실리에와 나라는 조합이 아니었다면 이건 힘든 정도가 아니라 날아 오르자마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어쩐지 그 흔하디흔한 새 한 마리를 찾아보기 힘들더라니.
조금 고도를 낮추기가 무섭게 날아다는 수십 마리의 하피 떼보다는 오우거 한두 마리가 상대하기 편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추운 날 바들바들 떨며 놈들의 사정거리 밖으로 날 수도 없는 터라 선택지도 없다. 이딴 일로 정령님들께 부탁했다가 삐지면 진짜 필요할 때 도움 못 받을 수도 있으니까.
가능충들로 하여금 가능을 부르짖게 만드는 인간 형태가 아니라 인면조라 부르는 게 맞는 형태라서 그런지 빠르기도 더럽게 빠르다. 처음 만난 하피들은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달려드는 타이밍을 잘 노리지 않으면 아실리에가 쏘는 화살도 아슬아슬하게 피할 정도로 신체 능력이 좋았다.
자가용을 노리고 놈들이 날아들 때마다 먹이를 낚아채는 매가 떠올라서 조금은 감탄…
“아니! 저건 명백히 쟤네가 이상한 거거든! 엘프의 화살을 하피 따위가 피하다니! 말도 안돼!”
…뭐, 비록 내 평가는 아실리에의 강한 반박으로 인해 열렬히 부정당하는 중이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하피들은 그녀의 해명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기에 쉬이 믿음이 가진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섬광탄으로 죄다 추락 시켜 버리고 싶었지만, 지금 그랬다간 자가용도 함께 추락할 게 뻔해서 끈덕지게 달라붙는 것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며 얼마 남지 않은 목적지까지 날아가는 중이었다.
“끼에에에에엑!”
“와, 진짜 더럽게 시끄럽네 저거.”
문제는 이 반갑지 않은 동반자들이 유발하는 소음공해가 얄짤없다는 것. 틈틈이 전력으로 바늘도 날려가며 머릿수를 줄이고 있는데도 하피들은 도무지 포기할 줄 몰랐다.
처음엔 먹이가 부족해서 눈이 돌아갔나 싶었는데 지금 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몬스터들 특징이 동족 포식인데, 이놈들은 죽어 나가는 하피들의 시체엔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았으니까.
인면조답게 대가리는 좀 똑똑한 것인지, 나와 아실리에에겐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걸 파악하고 자가용의 눈을 노리려는 망할 새끼의 몸통에 바늘을 날려 차에 치여 날아가는 비둘기 꼴로 만들면서 한 차례 더 생각을 정리해 보았지만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결국은 화살이 빗나가서 묘하게 심통이 나 있는 아실리에에게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누나, 하피들이 원래 이렇게 집요해?”
“…글쎄. 하늘에서 상대해 보는 건 처음이라 확답은 못 하겠지만 땅에서는 이 정도까지 끈질기지 않을 텐데.”
농담이 아니라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로 틈만 나면 지랄이라서 슬슬 열이 뻗친다. 아예 착지해서 싹 다 죽여 버릴까 싶기도 했지만 괜히 다른 몬스터까지 엮일 게 뻔해서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비행에 집중했다.
“끼에에에에엑!”
“씨발.”
정정.
솔직히 집중은 못 하겠다.
“이 빌어먹…”
“엘디! 기사들이야!”
층간 소음 때문에 살인사건도 발생하는 세상에서 온 자의 분노를 표출하려던 찰나, 옆에서 날아온 하피의 미간에 정확하게 화살을 때려 박아 넣은 아실리에의 한 마디가 나를 멈춰 세웠다. 아실리에의 시선을 따라 지평선 언저리를 바라보니 그녀의 말대로 야전 기지에서부터 다섯 마리의 비룡들이 날아오르는 중이었다.
잠깐. 그러고보니 여기 전선이잖아? 제공권이 왜 이 모양이지?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내 의문에 대답하듯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우리에게 다가온 비룡 기사들이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는데…
-피이이익!
…그 신호가 심히 익숙하다.
뭐지? 왜 레비엥에서 내가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었던 신호가 여기서 쓰이고 있지?
-피익! 피이익!
“끼에에에엑!”
신호에 맞춰 움직이는 비룡 기사들의 행동을 면밀히 살펴봤지만 역시 내가 만들어서 썼던 게 맞다. 조잡하게 급조한 신호라서 본격적으로 사용하기엔 불편한 게 많을 텐데?
-피익! 픽!
-픽!
혹시나 싶어 저들의 마법에 휩쓸리지 않도록 미리 하강한다고 신호를 보내자 동의를 표하는 휘파람 소리가 돌아왔다. 투구를 꾹 눌러 쓰고 있어서 표정을 살펴볼 수 없다는 게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그 정도 아쉬움을 대가로 하피들을 떨궈낼 수 있으면 싸게 먹히는 거겠지.
살짝 고도를 올렸다가 그대로 수직 낙하를 시도하여 하피들과 거리를 벌리기가 무섭게 비룡 기사들의 포화가 쏟아졌다.
폭발 섞인 화염계 마법이 폭죽처럼 터지며 일대를 불사르는 것까지는 하피들이 반응하지 못했는지 징글맞던 괴성이 뚝 끊기며 정말 오랜만에 정적이 찾아왔다. 어쩌다보니 운 좋게 마법의 범위 밖에 있던 하피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잠깐 경악하는 듯한 표정을 흉내냈지만, 이내 다시 흉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비룡 기사들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역시 이해할 수 없는 공격성이다. 보통 저렇게까지 떼죽음을 당하면 도망치는 법인데.
당연히 얼마 남지 않은 하피들이 위협이 되는 일은 없었다. 간단한 전격계 마법으로 대여섯 마리밖에 남지 않았던 하피들을 전기 통구이로 만들어버린 비룡 기사들은 이내 선회 신호를 보내며 내 쪽으로 접근했다.
자연스럽게 고도를 맞추며 쓰고 있던 투구의 바이저를 올리니 꽤 젊은 축에 속할 것 같은 청년이 아직은 어색해 보이는 콧수염과 함께 얼굴을 드러내며 외쳤다.
“강습 1군 소속 기사 바첸 필시레 라고 합니다! 어느 전선에서 오셨습니까!”
일반적인 비룡 기사단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부대 이름뿐만 아니라 내가 쓰던 신호까지 사용하는 것을 보아하니 레스롬 공작이 말했던 신설 비룡 부대가 분명했다.
나름 열심히 체계를 만들어서 실전에 투입할 거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었지만, 방금 보여 준 마법도 그렇고 속성으로 만들어진 부대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숙련된 모습이었기에 영락없이 왕실 소속 비룡 기사라고 여겼던 나는 내심 놀라면서도 침착하게 대답했다.
“엘드미아 에가! 소속은 따로 없습니다! 왕실의 요청에 따라 제국 신성회의 용사 지크프리트 님을 뵙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이미 명령이 전달되었을 테니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이티스엘의 하늘을 비룡타고 당당하게 날아다닌다는 것부터가 신원을 증명하는 행동이기도 하고 말이지.
하지만 자신을 바첸이라 밝힌 기사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내 대답의 다른 포인트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 피리 기사이십니까!?”
덕분에 뒤통수에 박히는 아실리에의 시선이 따가워졌다.
◈
기사 바첸을 필두로 하는 비룡 부대의 호위를 받으며 도착한 야전 기지의 병사들은 우리의 등장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오랜 시간을 머무르다 보니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도 무감각해진 건지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미 전초 기지에서 경험해 본 반응이었기에 덤덤히 바첸을 따라 자가용의 주차를 마치고 나니, 내가 피리 기사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 아주 호의 넘치는 태도를 보이는 기사들이 물어보진 않았으나 궁금했던 내용을 알아서 이야기해주며 지휘소까지 안내해주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몬스터들의 공격성이 나날이 심각해지는 중입니다. 지상도 지상이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들은 말도 못 할 지경이죠. 사령부에서는 마왕군이 몬스터들을 자극할 수 있는 수단을 찾아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는 모양입니다.”
역시 하피들의 공격성은 비정상인 게 맞았다. 심지어 앞뒤 안 가리는 공격성 때문에 움직임도 과감해져서 초기엔 방심했다가 당한 이들도 꽤 있었다는 모양이다. 어차피 전선에서 날아다니는 건 대부분 비룡 기사들이니 대처가 가능해서 쉬쉬하고 있지만, 이렇게 후방에서부터 날아오는 사람이 있을 경우 바첸 같은 5분 대기조가 출동해 돕는다고 한다.
그렇게 의문을 해소하고 속이 편해지는 기분을 느낀 것도 잠시, 나는 묘하게 들뜬 모습으로 심각한 말을 내뱉는 바첸의 모습에 순간 귀를 의심해야 했다.
“그나저나 역시 왕실의 대처는 발 빠르군요. 용사님 일행 분이 중상을 입었다고 보고한 지 얼마 안 된 거로 아는데 벌써 이렇게 든든한 지원군을 보내주시다니.”
뭐? 용사파티에서 중상자가 나왔다고? 자폭 성녀가 있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되물어볼 뻔 했으나, 괜히 ‘그거 때문에 온 거 아닌데요?’ 라는 말을 꺼내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기에 태연한 척 다른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어느 분이 다치신 겁니까?”
“아, 엘프 분입니다. 엘프 검사 엔티레. 용사님의 뒤를 보필하다가 마왕군의 사술邪術에 당했다고 하는데, 제국 신성회의 성녀님뿐만 아니라 성광 십자회의 작은 성녀님조차 방안을 찾지 못해 걱정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좀 많이 힘들었다.
성광 십자회의 작은 성녀님? 그 꼬마 아가씨도 지금 전장에 있다고? 심지어 자폭 성녀랑 같이 힘을 썼는데도 중상?
“그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군요.”
어째 가는 곳마다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 폭풍의 엘드미아가 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