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67)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67화(467/599)
[467화] 소환 용사는 전생의 꿈을 꾸는가.기사 바첸의 도움으로 도착한 지휘소에서 이곳의 지휘관과 약식으로 인사를 나눈 뒤 향한 지크프리트의 천막은 상당히 큼직했다.
내가 오크들 상대하느라 쓰러졌을 때 레스롬 공작이 챙겨 준 천막보다도 큰 것이 대충 봐도 혼자 쓰는 물건은 아니었다. 네 사람이 같이 쓰면 딱이지 않을까?
지휘관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미 전령을 통해 언질을 넣어 뒀는지, 내가 안내인과 함께 천막에 다다르자 경비로 보이는 제국 기사 둘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여 예를 취하며 내가 지나갈 수 있게 길을 열어줬다.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라는 듯 자연스럽게 빠지는 안내인을 뒤로한 채 들어선 천막 안은 예상했던 것처럼 큼지막했으나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머릿수는 내 예상과 달랐다.
침대에 누워 있는 엘프 엔티레를 두고 네다섯 명의 성직자들이 성법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그 옆에 마련된, 대체 전장에 저런 가구가 왜 있나 싶을 정도로 푹신해 보이는 소파 위에 지치고 초췌해진 모습으로 앉아서 쉬고 있던 자폭 성녀 테네아시와 에셀루아 황녀의 시선이 나에게로 옮겨졌다.
“…오랜만이군요 엘드미아.”
그리고 에셀루아 황녀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온 뒤에야 고개 숙인 채 쎅쎽 숨을 내쉬며 쉬고 있던 벨레시카가 동그랗게 퍼뜩 고개를 들며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엘드미아 님?”
벨레시카… 다 뤼비스였던가?
푸석푸석한 밤갈색 머리카락와 헤진 옷 정도가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마지막 모습이었던 소녀는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예복과 정갈하게 빗어진 머리를 뒤로 묶은 상태였다.
비록 그렇게 양호해지고 건강해진 외견과 달리 그녀의 눈 밑에는 짙은 다크 서클이 내려앉아, 여기까지 오며 주워들었던 이야기가 진짜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몰골과는 별개로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신성력은 막대하다. 그땐 대체 어떻게 이걸 몰랐나 싶을 정도로 확연하게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은, 교단을 물갈이 하기 위해 신께서 직접 점지한 성녀라는 게 어떤 존재인지 절로 깨닫게 만든다.
이러니 악마 새끼가 제물로 받아먹으려고 기를 썼고 부패한 성광십자회의 수뇌부는 미리 제거하려 들었구나. 격이 다르네 뭐네 떠들던 사이비 신도들의 말이 헛소리가 아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황녀님 그리고 성녀님.”
내심 감탄하면서도 겉으로는 평정을 유지하며 다가가니 우왕좌왕 당황하는 벨레시카와 달리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에셀루아 황녀가 착잡한 표정으로 내 인사에 화답했다.
“레비엥 공방전에서의 활약은 익히 들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여유를 가지고 그 무용담을 들었겠으나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네요.”
“오면서 간략하게 이야기를 듣긴 했습니다만,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군요.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입으로는 형식적인 의문을 뱉어냈으나 이제는 신성력을 확실히 느낄 수 있게 되었기에 굳이 대답을 듣지 않고도 얼추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지크의 뒤를 노린 적의 공격을 막아 내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는데 도무지 차도差度가 없습니다. 오히려…”
“…악화되고 있습니다. 마치 상처부터 대상을 좀 먹는 것처럼.”
잠깐 사이에 옷매무새는 정돈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자폭 성녀가 에셀루아 황녀의 말을 이어받으며 누워 있는 엔티레에게 다가갔다. 딱히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마침 교대 시간이 되었던 것인지 거기에 맞춰 성직자들이 뒤로 물러나며 성법을 끊었고, 동시에 테네아시의 두 손이 빛나며 치유의 성법이 펼쳐졌다.
그녀가 만들었다는 치유 구슬이 무색할 정도로 강대한 힘이었다. 어지간한 중상자도 순식간에 살려낼 것 같은 성법에 반응해 엔티레의 어깨에 뚫려 있던 흉측한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참담하기 그지없는 주변의 반응 덕분에, 지금 이 상황이 내가 오기 전부터 몇 번이나 반복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성직자 분들의 치유는 상처가 악화되는 것을 지연시키는 것에 불과했군요.”
“맞습니다. 테네아시와 성녀 벨레시카 님의 도움이 없으면 진즉에 절명했을 상황입니다.”
느릿느릿 아물던 상처가 손가락 두 개 정도는 가뿐히 들어갈 크기가 되자마자 그대로 멈춘다. 넓게 퍼져 엔티레의 육체를 잠식하려 했으나 성법에 막혀 다시 한 곳에 응집되자마자 격렬하게 저항하는 듯한 꼴이었다.
테네아시의 신성력을 게걸스럽게 잡아먹으며 제 형태를 유지하려는 그 모습은, 형태는 조금 다를지언정 분명히 악신의 찌꺼기라 불리던 힘이었다.
“용사님은 어디가셨습니까?”
“전장에 나가 있습니다. 엔티레에게 상처를 입힌 마족을 잡으면 이 사태가 해결될지도 모른다고 여겼거든요.”
무기에 발랐다는 것부터 일종의 독 취급이라는 소리니 해독제 역시 있다고 여긴 것일까? 녀석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도끼쟁이라는 참담한 결과물을 상대해봤기에 확신할 수 있다.
마왕군에게 저걸 치유할 방법은 없다. 그러니 무기에 발라서 적을 찌르는 데 쓰는 거다.
“용사님은 이제 성법도 사용할 수 있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어떻게 아셨죠?”
나는 ‘그렇지 않았으면 창에 찔린 순간 흉측한 몰골로 폭주했을 테니까요.’ 라는 눈치 없는 대답을 굳이 입에 담는 대신, 상처를 좀 더 면밀히 살펴보기 위해 열심히 성법을 펼치고 있는 테네아시의 반대편으로 다가갔다.
도끼쟁이는 달리 손 써볼 틈도 없이 순식간에 침식당했었다.
아무리 지크프리트가 성법을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때와 같은 속도로 침식이 이루어졌다면 엔티레는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있지.”
“엘드미아…?”
무슨 차이일까.
도끼쟁이의 단검은 폭주 상태까지 치솟은 프로토타입이고, 엔티레를 공격하는 데 쓰인 무기는 도트 딜로 사망에 이르는 수준까지 개선을 마친 완성품이라서? 그렇다고 하기엔 기어 오는 혼돈처럼 꿈틀거리는 악신의 기운이 너무나도 흡사하다.
치료해 줄 사람의 존재 유무. 치명상과 중상. 도끼쟁이와 엔티레의 차이는 그 정도다.
“벨레시카 아…성녀님? 잠시 테네아시 성녀님 곁에서 치유의 성법을 함께 시전해주시겠습니까?”
“저, 이미 시도 해봤지만 상처가 낫지는…”
“않았겠죠. 완치가 목적이 아니니 괜찮습니다. 힘드시겠지만 부디 조금만 힘내주십시오.”
“기다리십시오!”
혹시 모르니 품에 있던 세계수의 씨앗을 꺼내 엔티레의 왼손에 쥐어 주며 지시하자 주춤거리면서도 다가오는 벨레시카와 달리 잠시 뒤로 물러났던 성직자들은 기겁하며 언성을 높였다.
“당신이 어느 교단 소속인지는 몰라도 멋대로 행동하게 둘 수는 없습니다! 지금 저 상처를 억누를 수 있는 건 성녀님들뿐이라는 걸 당신도 알 거 아닙니까? 두 분이 동시에 성법을 펼친다고 한들 구멍 난 잔에 물을 들이 붓는 격입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침해받았다고 여기며 게거품을 무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 가까운 내게 신성력이 있다는 것까지 파악하고 상황을 이해시키려고 하는 것에 가까웠다.
물론 의도가 어쨌든 내 입장에서는 참으로 불필요한 발언이었다. 그들의 외침을 들은 에셀루아 황녀가 ‘교단 소속…?’ 이라는 중얼거림과 함께 의아함을 내비치는 불상사가 일어났으니까.
일단은 엔티레에게로 다시 주의를 돌려야 했기에 난 손을 들어 그들의 말을 끊었다.
“성녀님들께서 힘이 다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늦든 빠르든 이대로 가면 예정된 결과 아닙니까? 그러니 지금 당장 해결보려는 겁니다.”
“치유할 방법을 알고 있는 겁니까?!”
진흙탕 캣파이트의 수렁이 아니라 안정적인 하렘을 꾸린 지크프리트에게 축복이 있… 아니네. 이미 축복은 넘치겠군. 그녀들의 깊은 우애에 축복이 있길 기도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
성직자들의 외침에 의문을 표하는 것조차 뒤로 미루며 격하게 반응하는 에셀루아 황녀를 바라보며 속으로 안도한 나는 허리 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근데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절묘해서 일단 시도는 해 보는 게 맞을 거 같아서요. 아, 황녀님은 여기로 오셔서 엔티레 님 오른팔 좀 꽉 잡아주십시오.”
“어… 그런데 검은 왜 뽑으시는…”
악신의 찌꺼기는 부상자의 생명력이 약할수록 빠르게 활성화 되는 게 분명하다.
도끼쟁이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다른 곳 다 내버려 두고 굳이 제 목을 찔렀던 거겠지. 그러면 치유의 성법으로 상태가 악화되는 걸 틀어막고 있는 지금의 상황도 납득된다.
하지만 생명력은 어디까지나 찌꺼기에 저항할 수 있는 힘에 불과하다.
강제로 자리 잡은 찌꺼기를 제거하지 않는 이상 완치는 불가능. 백날 성법을 쏟아부어 자꾸만 마이너스로 치닫는 생명력을 정상 궤도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가능해도 악성 종양처럼 상처에 자리 잡은 저걸 제거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근데 저거, 악법도 법인 것처럼 악신의 잔재라고 한들 결국은 신성력이잖아?
난 발쿤 씨의 공방에서 늙은 드워프 장인들이 외쳤던 말을 떠올리며 검을 역수로 쥐고 엔티레의 상처를 겨눴다.
‘뭐?! 신성력 잡아먹는 무기가 있다는 말을 듣고 달려온 건…’
‘…구성 술식이 신성력을 잡아먹고 몸집을 불리는 것에 가깝지 않나! 이건 마검이야!’
그런 내 돌발행동에 주변 사람들의 얼굴에 경악이 번지긴 했으나 그래도 성실하게 나를 믿고 자폭 성녀 옆에서 성법을 펼치는 벨레시카 덕분에 조금은 나은 상황이 연출 되었다.
“엘드미아? 그, 제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닌 거 맞죠?”
그러거나 말거나 갑자기 불안해졌는지 동공지진을 일으키는 에셀루아 황녀를 보며 잠깐 눈을 굴린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농담을 던졌다.
“살살 찔리면 안 아픕니다.”
내 개소리에 에셀루아 황녀가 잠깐 뇌정지에 빠진 틈을 노려 상처에 검을 찔러 넣자마자, 천막 가득 엔티레와 에셀루아 황녀의 비명이 교차로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