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68)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68화(468/599)
[468화] 소환 용사는 전생의 꿈을 꾸는가.침대를 망가뜨리지 않기 위한 노력같은 건 하지 않았다.
오른쪽은 에셀루아 황녀가 붙잡고 있지만 엔티레의 왼쪽에는 두 팔 올려 성법을 시전하는 성녀들밖에 없었으니까 발작을 막으려면 아예 깊숙이 박는 게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원래 주사 맞을 때도 가만히 있어야 안 다치는 법 아니겠어?
“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악!!”
긴급 치료의 여파로 의도치 않은 이중주가 천막 안을 가득 울리다 못해 바깥까지 소란스럽게 만들었지만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단순히 검만 때려 박는다고 해결될 문제였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아쉽게도 내 검에는 아직 자동으로 찌꺼기를 빨아들이는 청소기능까지 달려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뜬금없이 자다가 칼침을 맞아버린 엔티레가 보내는 경악에 찬 시선과, 소리는 지르면서도 여전히 엔티레의 오른팔을 놓지 않고 있는 에셀루아 황녀의 시선보다도 확연하게 느껴지는 악신의 찌꺼기는 여전히 성녀들의 신성력에만 격렬하게 반응한다.
대체 무슨 구조인지는 모르겠으나, 목뽑기를 시도했었을 때처럼 검에 마력을 흘러 넣고 나서야 슬금슬금 검을 타고 올라오는 걸 보면 이 찌꺼기라는 건 생명력과 마력 그리고 신성력이 있을 때 제 나름의 우선순위를 두고 반응하는 것 같다.
이유가 뭘까? 흡수? 무한 동력 같은 게 아닌 이상 그게 가장 그럴싸한 이유 같은데.
순간 좀 더 고민에 빠질 뻔한 나를 현실로 불러 온 것은 에셀루아 황녀의 다급한 외침이었다.
“엘드미아! 괜찮은 거 맞죠?! 그 검이 깨져서 상처에 들어가 덧난다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게 확실한 거죠?!”
“생긴 건 이래도 멀쩡합… 아, 오랜만입니다 엔티레. 움직이면 더 아프니까 일단 최대한 가만히 있으려고 해 보십시오. 심호흡도 좀 하고.”
“후흑…! 대체! 이게! 무슨…!”
“치료입니다 치료.”
주변 사람들 뿐만 아니라 비명에 놀라 안으로 들어온 기사들조차 어이를 상실할 환경을 조성해 놓고 내뱉는 말치고 참으로 신빙성 없어 보이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사실인데.
실제로 당장 치유의 성법을 펼치고 있는 두 성녀는 내 말에 바로 공감했다.
“저, 정말입니다! 상처가 아물고 있어요!”
혼란과 다급함이 불러 온 착각같은 게 아니다. 검을 타고 기어오르려던 찌꺼기가 검의 코어라 칭하던 것에 역으로 침식되며 사라지는 걸 나도 느끼고 있다.
동시에 검에도 뭔가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다. 이가 빠진 부분이 고쳐지거나, 구멍이 나 있었는데 사라진다거나 굉장히 물리적인 형태로.
뭔가 화려한 빛이 난다거나 특수 효과가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니라서 그런지 마치 검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솔직히 괜시레 불길해 보인다. 역대급 마검을 자체 생산하며 라이카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빨대에 남아 있는 액체 한 방울까지도 쪽쪽 빨아먹는다는 느낌으로 찌꺼기를 탐닉하는 불길한 물건일지언정 지금은 유익하고 유일한 치료 도구라서 선택지가 없었다.
“엘드미아 님, 상처가…”
그렇게 마지막 남은 악신의 찌꺼기마저도 검에 달라붙어 엔티레의 상처에서 떨어져 나오자마자 벨레시카와 자폭성녀가 반응했다. 두 사람도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직접 성법을 시전하며 느끼는 게 있다 보니 금방 침착함을 되찾은 모양이다.
자폭이나 시전하려는 사람이랑 아직 미성년자에 불과한 사람이 여기서 가장 듬직하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끝났습니다.”
그리고 끝났다는 말에 엔티레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보다도 빠르게 냅다 검을 뽑으며 침대에서 물러났다.
한 차례 더 비명이 울렸지만 구경꾼들의 반응은 당사자와 달리 매우 긍정적이었다.
고통 때문에 발작적으로 주먹이라도 휘두르지 않을까 싶어서 서둘러 빠진 거였지만 다행히 엔티레는 생명의 은인에게 주먹을 날리는 몰상식한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젠장! 깨워서 말이라도 해주고 할 수도 있었잖아요!!”
대신 역정을 냈다. 비겁하게도 정정당당한 팩트였고, 나는 순순히 이실직고하기로 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굳이 깨워서 설명하고 납득시키고 마음의 준비를 가지는 시간을 주는 식의 시간 낭비를 할 여력도 없었고 말이죠.”
명백하게 엔티레의 어깨에 박기 전보다 상태가 좋아진 검은 피조차 묻어 있지 않았다. 지난번 아카데미에서 봤던 것처럼 두 성녀의 성법이 최대로 발휘된 결과물일 것이 뻔했기에, 나는 의문을 지니는 대신 서둘러 검집에 집어넣어 미묘하게 수복된 검을 숨겼다.
엔티레의 상처가 완벽하게 아물고 난 뒤에도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두 사람과 달리 뒤늦게 엔티레의 오른팔을 놓으며 한숨을 내쉬던 에셀루아 황녀는, 처음 봤을 때보다 두 배는 피곤해진 얼굴로 멍하니 엔티레를 바라보다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이 사건에 대해 제가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정황 상 앞으로 이어질 마왕군과의 전투에서 저 찌꺼기라는 무기의 등장은 필연이었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 강한 적을 한큐에 보내버릴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두고 안 쓸 이유가 없으니까.
그에 반해 당장 저걸 치료할 방법은 내 검뿐이다. 앞으로 어떤 개고생이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와중에 비밀이랍시고 정보를 꽁꽁 싸매고 있을 생각 따윈 추호도 없다.
왕실이든 황실이든 인력과 자금을 싹 다 갈아 넣어서 빨리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울 생각이었기에, 나는 자리를 옮기자는 에셀루아 황녀의 요청에 따라 순순히 움직였다.
◈
아무런 소득도 없이 전장에서 귀환한 지크프리트는 무거운 발걸음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자신의 숙소인 천막으로 향했다.
숙소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이 묘하게 떠들썩한 게 좀 거슬렸지만, 거기서 자신이 느낀 불쾌감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정도의 침착함은 남아 있었다. 저들이라고 엔티레가 다친 게 신나서 소란스럽겠는가. 걱정이 되니까 저러는 거지.
어째 진짜로 신나 보이는 것들이 많다는 게 아주 많이 거슬렸지만 혹시 모를 기대감에 걸음은 더 빨라졌다. 엔티레의 부상이 조금은 나아졌을지도.
“지크!”
하지만 천막에 들어서자마자 예상을 뛰어넘고 완전히 건강해진 엔티레가 자신을 맞이해줬을 땐 어안이 벙벙해져서 제대로 된 반응조차 못 하고 말았다.
“엔티레?! 상처는? 다 나은 거야?!”
“응!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당장 내일부터 전장에 나가도 문제없을 정도로!”
두 명의 성녀가 치유에 전념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으나, 며칠 전부터 차도가 없던 상황을 기억하고 있는 지크프리트에겐 그저 기적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품에 안겨 신나게 웃는 엔티레를 마주 안으면서 살짝 눈물이 날뻔한 지크프리트는 황급히 시선을 돌려 소파에 축 처져 있는 두 성녀를 바라보았다.
“정말 고생했어 테네아시. 그리고 감사합니다 벨레시카 성녀님.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쌩썡한 엔티레와 달리 두 사람의 얼굴엔 피로가 가득하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너무 뻔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힘겨운 미소와 함께 돌아온 벨레시카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정말 신들께서 보우하셨습니다. 마침 방문하신 엘드미아 님이 아니었으면 방도를 찾지 못했을 겁니다.”
“엘드미아가 도착했습니까?!”
그리고 그건 벨레시카도 마찬가지였다. 에셀루아 황녀나 엔티레의 반응을 보고 용사 파티와 엘드미아가 어느 정도 안면이 있을 거라 여기긴 했지만 마치 세상 정겨운 친구의 소식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격정적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벨레시카 성녀님의 말씀대로예요. 지금은 지휘소 천막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엔티레. 잠깐 다녀올게. 일단은, 두 사람 좀 챙겨줘.”
방금 전까지 중환자였던 사람과 멀쩡했던 사람이 바뀌어 버렸다는 사실에 엔티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고, 지크프리트는 허겁지겁 지휘소 천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어보고 싶은 것도, 확인하고 싶은 것도 굉장히 많았으나… 엔티레가 회복된 것을 보고 나니 대부분은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자신은 어차피 고향으로 못 돌아간다. 설령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곳에서 얻은 인연을 포기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이전까진 갈팡질팡했지만 이제는 확실해졌다.
소설에서 봤던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오고 갈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그게 꿈같은 이야기라는 건 잘 알고 있었기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생각이 정리되니 자연스럽게 엘드미아에게 하고 싶은 질문도 같이 정리되었다. 일단은 감사의 인사로 시작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지휘소 천막 앞에선 지크프리트는 순간 저도 모르게 심호흡을 한 뒤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엘드미아를 보자마자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여유롭게 차를 홀짝이며 에셀루아와 대화를 나누던 엘드미아는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시선을 옮기며 언제나처럼 예의 바른 태도로 인사를 건넸다.
“강녕하셨습니까 용사님. 조금 초췌해 보이시는군요.”
실제로 요 며칠 피폐하게 지내긴 했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자신이 엘드미아에게서 느끼고 있는 것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으니까.
“동생… 그거, 신성력…?”
인족에게 왜 마력이 느껴지고 신성력이 느껴지는지 머리도, 인식도 따라가질 못했다. 고맙다는 말로 운을 떼려고 했던 계획조차 잊게 만드는 충격적인 광경에 어버버 거리는 사이 에셀루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설명했다.
“지크, 잠시만. 그건 우리가 나간 다음 둘이서만 이야기하세요.”
미리 그러기로 합의한 것인지, 엘드미아 옆에 앉아 있던 아실리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간단한 방음 마법을 펼쳐준 뒤 뺨에 키스를 하며 나가는 에셀루아였지만 지크프리트는 제대로 반응조차 해주지 못했다. 자신에게 키스하는 에셀루아를 보고 잠깐 움찔 거린 아실리에가 슬쩍 뒤로 돌아가 엘드미아에게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을 보면서도 웃지 못했다.
지크프리트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아실리에마저 천막을 나가고 엘드미아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입을 연 다음이었다.
“지크프리트 어서 오고.”
심히 껄렁껄렁한 저 자세가 뭘 의미하는 것인지 모를 수 없었기에, 지크프리트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