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71)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71화(471/599)
[471화] Apostate may care, but I don’t마왕군 내에서 환영 마법사의 입지가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특수 작전 사령부의 등장 이후였다.
이전까지는 아무리 뛰어난 환영 마법사도 전장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론이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신설된 비밀 조직이 시도한 신성모독적인 연구와 조사를 통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핵심은 신역神域. 이전까지는 몰이해沒理解의 영역에 존재했었던, 강림과 동시에 일대를 자신의 권역으로 바꾸는 신들의 힘에 답이 있었다.
대체 어디서 악신의 신체神體를 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죽은 신성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나온 수많은 결과물 중 하나는 환영 마법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고, 수년간의 연구 끝에 신들의 권능을 흉내 내어 본디 환영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 필요했던 수많은 사전 단계를 신역처럼 한순간에 발현하기 위한 술식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한 파급력은 굉장했다. 고정된 함정에 불과했던 짐 덩어리가 직접 적을 쫓을 수 있는 무기가 된 격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환영 마법사가 술식을 발동함과 동시에 범위 안에 있는 이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마법에 걸린다. 심지어 그 본질은 마력일지언정 술식 발현에 신성력이 쓰이는 탓인지 숙련된 마법사조차 미리 알고 있지 않으면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은밀하다.
물론 세상 모든 일에 대가가 필요하듯 아주 약간의 걸림돌이 존재하긴 했으나 그 역시 마법의 규모를 조절하는 것으로 충분히 대처가 가능했기에, 연구 성과를 육안으로 확인한 고위 관료들이 당장 전선에 투입하길 원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특수 작전 사령부와 환영 마법 연구의 첨단尖端에 서서 발전을 주도해 온 ‘탑을 쌓는 자’ 칼레시 비시스는 이 획기적인 성과를 전선에서 바로 보이지 않고 철저하게 숨기기로 했다.
오로지 용사를 상대하기 위한 비장의 수로 쓰기 위해.
‘그리 거창하게 포장한 것치고 신들의 본질은 마력에 있다는 가설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부산물에 불과했지만.’
정돈되지 않은 암갈색 머리카락을 대충 묶어 뒤로 넘긴 채 짙은 피로가 눌러앉은 눈으로 과거를 회상하던 여인은 귀 위로 활처럼 휘어져 자라난 뿔을 긁적이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눈에 들어온, 과거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꾸며진 숙소와 시종들은 쉬이 적응되지 않았다.
밖에서는 전쟁이 한창이지만 이 안은 귀족이 심심풀이 소풍을 나왔다고 해도 믿을 만큼 별세계 그 자체다. 강자를 우대하는 마족의 특성 때문에 이전의 환영 마법사라면 꿈도 꾸지 못하는 호사였다.
“용사의 움직임은 아직 없나?”
“예.”
시종이라고 고개 숙이고 있는 두 남여조차 어지간한 백인 대장은 우습게 제압할 수 있는 실력자들. 그런 이들을 호위 겸 시종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자각한 칼레시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별로 있지도 않던 신앙심을 버리고 신성모독을 강행한 대가로 이런 대우를 받는다라, 몇 번을 생각해 봐도 매우 괜찮은 거래였다.
“부대원들의 상태는?”
“침식의 조짐이 보이는 이는 없다고 보고되었습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바젤라드 부관이 별도로 확인까지 거쳤다고 합니다.”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충실하게 따라온 부관은 칼레시 자신만큼이나 신중했다. 애초에 신중하지 못한 이들은 침식에 당하거나 폭주하여 죽었으니 관련된 이들은 대부분 믿을 만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식사를 마치고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일정을 조정한 칼레시는 빠르게 식사를 마친 뒤 천막을 벗어났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달라진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막을 지키고 있던 호위에게 질문했다.
“…뭔가 병력이 줄어들지 않았나?”
“긴급하게 이동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레비엥의 피리 기사가 전선에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피리 기사? 그 비룡에서 뛰어내린다는 미친놈?”
처음 들었을 땐 틀어박혀서 연구만 하느라 세상이 바뀌는 걸 못 따라간 것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저 혼자 다른 세상에서 사는 놈이었다. 결국 놈을 따라 하는 기습 부대가 생겨나는 걸 보며 일각에서는 일종의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나오는 중이라지만, 칼레시의 관점에서는 아무리 봐도 미친놈의 기행 중 우연찮게 하나가 얻어 걸린 것에 불과했다.
“사령부는 녀석에게 전선에 대대적인 변화를 줄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이 있다고 보는 건가?”
“상황이 여의치는 않았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빛을 쏘는 자를 이겼으니까요. 사령부에서는 그보다 외성을 단독으로 돌파한 능력과 기습 부대의 창설을 변수로 여기고 경계하는 모양입니다만…”
“…하긴, 저지른 일만 놓고 보면 그놈이 더 용사같기는 했어.”
직접 제국의 용사를 봤음에도 그런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말도 안 되는 행보를 취하는 요주의 인물이긴 했다. 차라리 이티스엘의 10검에 준하는 강자 한 명이 등장했었다면 사령부도 이리 급하게 움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변수. 언제나 그놈의 변수가 문제였다.
“사령부도 고생이 많군. 부하들을 확인하러 갈 터이니 이변이 있으면 그쪽으로 찾아도록.”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호위를 보며 태연한 척 몸을 돌린 칼레시였지만 실상은 묘한 쾌감에 휩싸인 상태였다.
강함만 놓고 보면 저 자가 자신보다 우위에 있었다. 애초에 사람을 속이는 게 전부인 환영 마법은 강함을 논하는데 끼어들 수준도 되지 못하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지금의 칼레시는 당장 환영 마법을 펼쳐 호위가 제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만드는 게 가능하다. 다른 이들이 알았다면 기겁을 할 만한 발상이지만, 칼레시는 일상에서 그러한 가정을 하며 더할 나위 없이 큰 만족감을 얻고 있었다.
마족에겐 강함이 전부다. 평생을 그 강함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다가 들어왔기 때문인지 이런 상상을 할 때마다 일종의 전능감까지 느껴졌다.
좀 더 안정화되고 힘에 익숙해진 끝에 용사마저 처리한다면 더 높은 곳도 바라볼 수 있으리라. 꽃길만이 가득한 미래를 상상하며 부하들이 머물고 있는 막사에 들어선 칼레시는 자신을 보자마자 각을 잡고 경례하는 이들을 만족스럽게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바젤라드.”
“네, 대장.”
칼레시의 부름에 보기 드문 외뿔이 인상적인 금발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젯밤에 이미 점검을 마쳤다고는 들었다. 만에 하나를 위해 이렇게 찾아오긴 했지만… 이상은 없겠지?”
“아무 이상 없습니다.”
한쪽에만 난 뿔 때문에 고개는 살짝 옆으로 기울어졌지만 자세는 똑바른 그를 바라보며 던진 질문에 바젤라드라 불린 남성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즉답했다.
그리고 그건 이미 사전에 이야기가 된 ‘이상징후’의 보고였다. 미간을 찡그리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으며 태연함을 가장한 칼레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잠깐 나가서 이야기 좀 할까?”
부하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고자 장비의 재점검을 지시하며 바젤라드가 따라나오는 것까지 본 칼레시는 입구의 천막이 내려가기가 무섭게 표정을 굳혔다.
“몇 명?”
“둘입니다. 실력이 가장 부족했던 녀석들인데, 전장에서 침착을 유지하지 못하고 좀 과하게 싸웠던 모양입니다.”
“어떤 형태로?”
“직접적으로 사살에 관여했습니다.”
쯧. 저도 모르게 혀를 찬 칼레시가 검지 손가락으로 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고개를 숙였다.
죽은 찌꺼기에 불과해도 악신은 악신인지 조금만 부주의하면 이렇게 ‘걸림돌’이 됐다. 단순히 상대를 현혹하고 위협하며 착란을 주는 정도면 상관없지만 환영의 방향성을 바꿔 직접적인 살인의 형태로 개입하면 순식간에 선을 넘어 버린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아무것도 못하는 백치에 가까운 상태로 만들거나 지인으로 착각하게 만든 뒤 직접 찔러 죽이는 증상.
침식을 가속화 시키는 짓임과 동시에 침식이 시작된 증거이기도 했다.
“그런 형태의 마법 사용은 비효율적이라고 아무리 강조 해도 결국은 나오는군.”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라고 사료됩니다. 죽기 직전까지 놓여서 어쩔 수 없이 시도한 경우더군요. 그걸 놓치는 바람에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건 별수 없지.”
병사 하나하나 짚어가며 오늘은 무슨 전투를 치렀는지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강적을 만나면 곱게 죽으라고 할 수도 없으니, 차라리 완전히 잠식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많은 적을 죽이도록 조정하는 편이 이득이었다.
“안 그래도 많은 병력들이 후방으로 빠졌다고 하더군. 이번에 용사가 나타나면 둘을 따로 분산시켜서 침식을 가속화시킨다.”
“사령부에 언질을 넣어둘까요?”
“내가 직접 하지. 너는 녀석들이 거침없이 날뛸 수 있도록 미리 위치만 잘 잡아.”
함께 연구 해 오면서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상황을 예견한 바젤라드였기에 불필요한 첨언은 없었다. 혹시라도 정이라도 붙어 주저하면 어쩌나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 그는 침식으로 죽으나 전장에서 싸우다 죽으나 매한가지라고 보는 부류였다.
그리고 그건 칼레시도 마찬가지였기에 그녀 역시 곧 죽을 두 부하에 대해서는 아무런 미련도 가지지 않았다.
칼레시는 그저 이번 기회에 용사를 확실하게 처리하거나 회유할 수 있길 바라며 지휘소로 향했다.
때마침 저 멀리서 용사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 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