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72)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72화(472/599)
[472화] Apostate may care, but I don’t이티스엘의 동부 전선은 몇 년째 똑같이 이어지는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특정 전선에서 초인의 반열에 들어선 이들이 날뛰고, 이에 대응하고, 그 외엔 지지부진한 소모전이 이어지는 피폐한 나날은 사람의 정신을 좀 먹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양측 병사들이 정신을 붙잡고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전쟁이 인족과 마족, 마왕과 용사라는 형태로 종족의 명운命運을 건 대전쟁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지쳐 쓰러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한정된 전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전력을 쏟아야 하는 상황 속에서 자국의 영토에 사방팔방 퍼지는 마왕군을 상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여기서 막아야 한다. 그 의지 하나만으로 기나긴 전쟁을 유지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이를 두고 문제 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많은 이들이 행동으로 증명하고, 실제로 유지하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건 용사 지크프리트가 전장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뒤로도 달라지지 않았다. 전장에서 오랜 시간 단련되어 온 병사들은 전설 속의 용사라 하더라도 전장에 극적인 변화를 불러 올 수는 없다 여겼고,
그나마 하루가 다르게 전장에 적응해나가며 강해지는 모습 덕에 과연 용사는 용사라며 사기가 오를 뿐. 당장 전선에서 이름을 날리는 초인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용사 역시 아직은 뒤로 빠지고 다른 이가 나서야 한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며 실망하는 이는 없다. 용사는 어디까지나 마왕을 상대하기 위한 대적자對敵者일 뿐, 세상을 홀로 구할 수 있는 반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결전의 날까지 용사를 보필하고 마왕과 싸울 수 있도록 강해지게 만드는 게 자신들의 과업이라 여기면서 전장의 병사들은 오늘도 전투에 임하려고 무기를 들었다. 부디 이 지겨운 전장이 후대에 이르기 전에 끝나길 바라면서.
그 전장의 선두에, 오늘은 지크프리트와 엘드미아가 서 있었다.
“땅이 붉네.”
“수년간 피로 물든 대지잖아. 이 정도면 뭐 양호한 편이지.”
용사와 피리 기사.
처음엔 용사만 신경 쓰던 이들조차 피리 기사의 명성과 함께 한 양손 도끼와 투구를 알아보고는 술렁이기 시작한다. 며칠 전에 중상을 입고 회복 중이던 엔티레까지 모습을 드러내며 용사파티의 부활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그들의 곁에 평소보다 더 많은 기사와 성기사가 배치되었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눈치챈 이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드리워졌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신호탄이 올라갈 거야. 놈들이 그거에 반응하고 대처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20여분 안팎이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푼 엘드미아가 도끼를 고쳐 쥐는 모습은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어지간한 기사들보다 주먹 반 개는 더 큰 장신에 단순한 듯하면서도 굉장히 견고하게 만들어졌음이 분명한 갑옷이 합쳐지자 석상이 움직이는 것 같다. 앞이 보이는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세밀하게 얼굴부터 목까지 보호하는 투구는 대체 어떻게 바이저가 열리는 것인지 짐작도 되지 않아서 투구가 아니라 다른 존재의 머리처럼 느껴질 정도다.
“잊을 수 없는 20분을 선물해 줘야겠군.”
투구 속에서 흘러나오는 엘드미아의 한 마디가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후방에서 진격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용사와 피리 기사는 달리지 않았다.
전설 속의 한 장면처럼 대뜸 적진에 달려들어 전열을 붕괴시키는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지크프리트는 언제나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침착하게 앞으로 나아갔고 엘드미아 역시 그 옆에 서서 덤덤히 나아갔다. 초인의 반열까지는 들지 못했으나 머지 않아 도달할 것이 분명한 두 사람이 보이는 침착하고도 평범한 모습은, 오히려 평범했기에 주변을 잔뜩 긴장시키는 힘이 있었다.
이는 마왕군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 멀리 다가오는 인족의 군대와 제국의 깃발 그리고 용사를 알아차린 일부는 스스로의 재수 없음을 한탄하며 신호를 보냈다.
봉화처럼 이어진 신호는 순식간에 사령부에 전달되고 최근 전장에서 꾸준히 용사를 막아준 부대의 등장으로 이어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전장을 이동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용사의 움직임에 대응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보다 반드시 한 수 늦게 움직인다는 소리고, 그렇게 늦게 움직이는 동안 피를 보는 건 언제나 병사들이었다.
마왕군 곳곳에서 한숨이 나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지가 꺾이는 일은 없었다. 아직은 초인보다 용사가 낫다. 근 몇 달간 계속 그렇게 이어져 온 전투가 또 펼쳐질 뿐이다. 모두가 그리 여기며 진형을 갖추며 마력을 끌어올려 용사와의 전투를 대비했다.
“배교자에게 충성하지 않는 자! 무기를 버려라!”
그렇게 똑같은 일상이 반복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뜬금없이 터져 나오는 외침에 모두가 당황한 것일지도 모른다. 흔한 함성과 욕설이 아닌 이상한 권고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고개가 기울어지며 의문이 맴도는 와중에도 외침은 계속 이어졌다.
“진정으로 마족의 운명을 걱정하는 자! 악신의 유혹에서 벗어나 나에게로 와라!”
용사의 옆에 서 있는 도끼 든 기사에게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그나마 머리가 좀 빠르게 돌아가는 일부만이 ‘변절자인가?’ 라는 추측을 했으나 머리를 견고하게 보호하는 투구에 뿔은 없었다.
“에파가 님의 비호에서 제 발로 벗어난 자! 죽음으로 속죄하게 되리라!”
그래서 동시다발적으로 비웃었다. 이젠 하다 하다 별 미친놈이 다 나타나는군. 아니지, 미친놈을 용사 곁에 붙이진 않을 터이니 저것도 일종의 교란 작전인 건가? 그런 반응이 전열에서 퍼져나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대륙의 안녕과 마신의 영광을 위하여!”
-피이이익!
정체를 알 수 없는 휘파람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지는 그 순간까지도 마왕군의 대부분은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진짜 별 미친놈이 다…”
그리고 그 대가로 전열에 있던 방패병들이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갑자기 앞에 서 있던 동료가 픽픽 쓰러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는 와중에 묘하게 익숙한 신성력으로 구성된 성법이 그들의 시체 위로 날아드는 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배교자에겐 죽음을!”
그 광경을 목도한 마왕군들은 확신했다.
뭔가, 뭔가 잘못됐다.
◈
전장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는 걸 누구보다 빠르게 눈치챈 것은, 당연히 최전선에서 싸우는 병사들이었다.
“전열이 뚫렸다! 돌격병! 돌격병!!”
마왕군 쪽에서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전선이 압박되기 시작하고.
“밀어! 뿔쟁이 새끼들 방진이 얇아졌다! 오늘에야말로 사슴꼬리 언덕에 왕국의 깃발을 꽂는다!”
왕국군 쪽에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돌파력을 따라잡지 못해 하마터면 전선에 구멍이 날 뻔한 긴박한 상황이 펼쳐진다.
누가 봐도 명백한 왕국군의 호재好材였으나 미리 예상한 결과가 아니었기에 긴박한 상황인 건 피차일반이었다.
못 따라 가면 아군이 고립된다. 병사들은 오랜 시간 전장을 겪어오며 쌓아온 경험을 기반으로 무의식중에 그 상황을 이해하며 상부의 명령보다도 빠르게 정체불명의 돌파력을 내비치는 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달렸다.
지원을 위해 기병이 길을 열고, 보병이 막아서며, 기사들이 내달리는 광경은 최근 전선에서 있었던 그 어떤 전투보다도 시원시원했기에 일부 병사들은 고양감에 취해 환호성까지 질렀다. 어쩌다가 상황을 직접 보고 이해한 이들은 감격에 겨워 신을 찾았다.
“팔이 잘려도 달려! 절대 고립되게 두어서는 안 된다!”
드디어 전선에 새로운 바람이 분다.
그 사실을 피부로 체감한 왕국군은 웃었고, 마왕군은 울상을 지었다.
“인족의 검성은?!”
“신호 없음! 그냥 일반 병력과 용사입니다! 초인은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저 꼴이 나냐고!”
혼란에 빠진 지휘관들이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급하게 움직였지만 충분치 못했다. 용사로부터 비롯된 혼란의 여파는 그들이 짐작할 수 있는 범위를 진즉에 넘어섰다.
아무리 아직은 초인의 반열에 들어서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용사다. 그리고 그 용사를 죽게 내버려둘 생각이 없는 왕국군과 제국이었기에 그 주변엔 확실한 강자들이 함께 한다.
하지만 그건 이미 상정한 범위다. 아무리 병력을 뺐다고 한들 적들의 무력을 무시하고 움직인 건 아니다. 그들은 용사뿐만 아니라 소드 마스터가 최대 둘까지 동시에 모습을 드러낼 상황마저 가정하며 병력을 움직이는 중이었고, 용사가 과욕을 부려 깊숙이 침투하는 긍정적인 상황도 고려한 상태였다.
근데 지금은 그걸 아득히 뛰어넘었다.
용사가 둘이라도 되는 것처럼.
“피리 기사! 피리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이 씨발 비룡 없잖아!!!”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와중에 되먹잖은 보고가 들어와서 저도 모르게 윽박지른 지휘관이었으나 후회는 없었다. 새 한 마리조차 없는 하늘에 비룡타고 하늘에서 뛰어내린다는 미친놈 이야기가 대체 왜 나온단 말인가?
평소였다면 상급자의 외침에 바짝 긴장했을 테지만 점점 돌파에 가속이 붙는 왕국군을 보며 등줄기가 서늘해진 탓에 더 악에 바친 병사는 맞받이치듯 대답했다.
“그 미친 새끼가 이번엔 비룡 없이 오고 있습니다! 용사랑 함께!”
다행히 지휘관은 상식적이었을 뿐이지 무능하거나 멍청한 게 아니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그가 신호를 보내자 옆에 있던 마법사가 전장을 확인하기 위한 마법을 띄웠다.
수정구와 연동되어 나타난 광경은 참담했다. 궁수 하나 보이지 않는데 어째서인지 사방팔방에서 불규칙하게 아군이 죽어 나가고, 그로 인한 공포가 전염되어 움직임이 둔해진 사이 용사를 비롯한 기사들이 군마처럼 치고 들어온다.
그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건, 홀로 양손 도끼를 든 채 아군을 토막치다시피 하는 존재였다.
명령서에 적힌 인상착의였기에 그게 누구인지 알아차리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레비엥의 악몽…!”
피리 기사.
모두가 또 후방을 노릴 거라 굳게 믿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저 미친놈이 전열에서 용사와 함께 날뛰고 있었다.
절로 이가 갈리는 와중에 갑자기 도끼질을 멈춘 피리 기사가 고개를 들었다.
투구에 가려 시선을 알 수는 없었으나 묘하게 그 끝이 하늘에 보이지 않은 형태로 떠 있을 마법을 바라보는 것 같아 마법사와 지휘관 모두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았다.
“저놈, 지금 마법을 보고 있는 건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건 불가시 마법…”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반박하려던 마법사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왼손 검지와 중지를 펼친 피리 기사가 제 눈이 있는 위치를 가리키더니, 이내 검지만을 펼친 채 정확하게 마법의 눈을 겨눴기에.
기가 찬다는 반응 밖에 보일 수 없었던 지휘관과 달리 마법사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물러서다가 수정구를 깨먹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