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74)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74화(474/599)
[474화] Apostate may care, but I don’t마왕군에 용기 있는 자들은 많았지만 난전亂戰 한가운데에서 바늘로 시도하는 기습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의 실력자들은 얼마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일반 병사 중에서는 마력 폭주를 이용해 도핑을 하는 게 아닌 이상 내 공격에 제대로 된 반응조차 하지 못하는 놈들이 더 많았다. 그나마 방금 내가 날리는 바늘의 위협을 확인하고 빠르게 결단을 내린 녀석을 필두로 접근해 오던 녀석들이 이 근처에서는 가장 쓸만한 수준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 쓸만한 놈들 중 마지막 녀석이 내 도끼에 등뼈가 쪼개지며 명을 달리하는 것과 동시에, 저 멀리 마왕군 진영 쪽에서 하늘로 치솟는 신호탄을 확인한 누군가가 외쳤다.
“적 신호 확인! 진형을 정비해라! 곧 환영 마법사가 나타난다!”
아직 밝은 하늘에서도 또렷하게 구분이 되는 신호를 바라보며 놈에게 박힌 도끼를 회수하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사들을 뒤로하며 지크프리트가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방팔방에서 격전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착란에 빠진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도망쳐준 덕인지 우리의 주변에는 믿기 힘들 정도로 싸늘한 정적이 흐르고 있다.
내가 사용하는 마력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아군들과 달리 저들은 확연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일까. 마지막으로 죽은 병사가 외친 용사라는 단어 하나가 거대한 족쇄가 되어 그들의 발목을 붙잡는 것처럼 보였다.
결코 믿기 힘든 추측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눈앞에 가설을 뒷받침하는 유사 증거물이 멀쩡히 존재하니 마냥 부정할 수도 없는 묘한 기류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한 번 더 휘저어서 머릿수를 줄이고 싶었지만 궁지에 몰린 쥐와 같은 심정으로 덤벼들 경우 기껏 조성한 공포 분위기가 깨질 우려가 있어, 휘파람을 불어 바늘을 회수하는 선에서 그쳤다.
다행히 아군들은 그런 마왕군과 상반된 행보를 보여줬다. 적들이 주저하고 물러나는 동안 과감하게 칼빵 한 번 더 놓았다는 소리다. 가만히 있어도 칼은 피해가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 적들은 공포가 번지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퇴각하기 시작했다.
지크프리트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결국 전략적 후퇴에 불과할 테지만… 무기조차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튀는 녀석들도 있는 거보면 나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나름 크게 작용하긴 했을 것이다.
“동… 형, 말하는 게 아주 기깔나던데? 어디서 따로 배우기라도 했어?”
“교단 사람들하고 같이 싸울 때 몇 번 주워 들은 거 대충 짜맞췄지. 그보다, 우리 쪽 기사들은?”
이미 성직자들이 내 신성력을 알아본 시점에서 신성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숨길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마신교의 용사라고 대놓고 말하며 설득하고 납득시키는 것도 시간 낭비였기에, 일단은 인족 한정 신원 보증 수표와도 같은 지크프리트의 도움을 받아 내 개별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용사 지크프리트가 직접 계획을 듣고 동의했으니 내 돌발적인 행동에 일단 발을 맞춰달라는 일방적인 요구가 굉장히 무난하게 통과되었다는 것 정도. 레비엥 공방전 때 지휘소에서 깽판을 친 것과 내 방문이 왕녀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겹쳐지면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난 모양이다.
“그냥 교란 작전인가 보다 하는 정도? 몇몇은 형이 섬기는 신이 뭐라 하진 않을까 진심으로 걱정하던데.”
뭐… 에파가 님께서 여러모로 걱정이 많은 편이시긴 하지. 이런 문제로 뭐라 하지는 않으시겠지만.
군인답게 명령은 따를 테지만 속내는 다를 수도 있는 노릇인지라 미리 이야기해서 대충 봐달라고 부탁한 거였는데 이번에도 예상보다는 반응이 평범했다.
“그렇게 마왕군 작전에 초를 치고 다녔는데 아군이 의심할 게 걱정되는 거야? 쟤들은 이제 형이 용사라고 밝혀도 ‘아, 그런갑다. 그래서 마왕군은 언제 썰러 가십니까?’ 하고 넘어갈걸?”
“세상일 모르는 거 아니겠냐. 당장 우리만 하더라도 한국 출신 이세계인끼리 만나게 될 줄 알았겠어?”
“누가 봐도 존나 특수한 경우라서 예시는 안 될 거 같지만 뭔 소리인지는 알겠네.”
같은 세상 출신끼리 만나니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기엔 참 좋았다. 그냥 한국말로 떠들면 우리 외에는 아무도 알아듣질 못하니 목소리만 좀 낮추면 누가 우리 이야기를 몰래 듣는 걸로 걱정할 필요조차 없네.
“근데, 진짜 마신의 용사야?”
“어허. 마신’님’.”
“옘병 진짜 더럽게 신실하네. 전생에도 그랬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났는데 심지어 그게 신의 은총이면 없던 신앙심도 생기는 게 예의 아니겠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지크프리트였지만 어디까지나 내 상황은 이해했다에 가까운 반응에 불과했다. 그렇게 우리끼리 실없는 대화를 하며 잠깐 몸을 푸는 동안 주변은 바쁘게 움직였다.
잔뜩 앞으로 튀어나와 있었던 우리의 뒤를 받쳐주기 위해 움직인 아군들은 진형을 서둘러 진형을 정비하고, 마왕군은 뒤로 물러나면서도 다시금 군기를 다잡으며 방어선을 구축한다. 그 기세가 방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하고 비웃을 수 있는 수준은 또 아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옥같았을 전장에서 몇 년 이상 구른 자들이다. 혼란을 어느 정도 수습하고 나니 기계적으로 싸울 정도의 침착은 되찾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다시 돌격하는 일은 없길 바라는 찰나, 그들의 뒤편에서 이질적인 존재감이 확실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크야.”
이에 목을 풀며 도끼를 내려 두고 검을 뽑자 지크프리트 역시 노퉁을 고쳐 쥐며 덤덤히 대답했다.
“어, 맞아. 저 새끼야.”
외견은 딱히 인상적일 게 없다. 그냥 뿔 달렸고, 팔다리 멀쩡하고, 이목구비 다 붙어 있고 전장에 서는 마법사치고 방어구가 빈약하다는 게 전부다.
하지만 놈’들’이 두르고 있는 기운은 그 찌꺼기라는 것과 매우 흡사했다.
“허, 씨벌 것들이.”
문제는 그 위로 확실하게 에파가 님의 신성력이 느껴진다는 점에 있었다.
“지크야, 죽은 신의 사체를 되살려 싸우는 것도 사령술의 범주에 들어갈까?”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미쳐 날뛰는 찌꺼기와 연결될 뻔했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확신할 수 있었다.
놈들은 악신의 잔재를 병기화하는 것에 성공했고, 어떤 구조인지까지는 알 수 없어도 그렇게 만들어진 병기를 가동하기 위한 자원으로 에파가 님의 신성력을 마력에 섞어 강제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환영 마법사들은 죄다 그걸 쓰고 있었다. 출력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안정적인 양산화는 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저리 당당하게 사용한다는 것부터가 굉장히 위협적인 상황이다.
혹시라도 저것들이 죄다 양산형 폭주 도끼쟁이가 된다거나, 적들을 그렇게 만들 수 있다면 대참사가 일어날 테니까.
“저거 똥색 머리 계집년. 쟤가 대장이냐?”
“…암갈색을 말하는 거면 맞아. 쟤가 한국말 하더라.”
간만에 전투 외의 영역에서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기분이다.
지금 느껴지는 건 에파가 님의 신성력이 더 크다. 하지만 찰거머리 왕녀는 분명 지크프리트가 악신의 권능을 쓰는 이들과 조우했다고 말했으니, 저것들이 실질적으로 능력을 발동하면 신성력은 양분이 되어 찌꺼기에 먹히고 그걸 기반으로 악신의 권능이 놈들에게 이로운 형태의 무언가가 발현될 것이다.
“제국의 환상공조차 전선에서는 자신의 가치가 없다고 여겨서 제국의 영토 내에서만 설계하고 마법을 사용하지.”
“갑자기 무슨… 아, 그럼에도 저 새끼들이 당당하게 나올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지 고민하는 거야?”
“정답이다 연금술사.”
예전에 들었던 드립을 되돌려줌으로써 지크프리트의 헛웃음을 받아낸 뒤, 마력시를 최대한으로 발현시켜 봤지만 역시 환영 마법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환영 마법의 준비 과정은 아무리 마력으로 굴러가는 마족 마법이라 하더라도 스킵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런 새끼들이 당당하게 튀어나오고 신의 권능을 두르고 있다.
신의 권능 중에서 준비 과정을 스킵시켜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
“…신역화神域化.”
“뭐?”
“저 새끼들 악신의 찌꺼기로 유사 신역화가 가능한 도구를 차고 있는 거 같다. 그걸로 신역화가 아니라 지들을 위한 일종의 버프를 즉발기로 깔고 움직이는 거지. 환영 마법 최악의 단점인 준비 과정을 스킵할 수 있으니 전선에서 사람 현혹시키면서 미쳐 날뛸 수 있었던 거야. 그게 아니면 앞뒤가 안 맞아.”
원리를 전혀 모르는 입장에서는 그마저도 말이 되는지 의심스러운 가정이었지만, 악신의 잔재와 환영 마법이라는 걸 조합한 뒤 필멸자도 무난하게 활용 가능한 수준까지 끌어내린다면 그 정도가 고작이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신의 권능을 빌려 쓰는 것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랬다면 환영 마법이라고 아군이 확실하게 명시할 일도 없었겠지. 하다못해 단 한 명만 저 지랄을 쳤다면 여러모로 더 많은 가능성을 염두에 뒀을 거 같은데, 아무리 마왕군이 열심히 전쟁을 준비했다고 한들 저렇게 한 다스로 움직이는 이상 열화 카피판을 찍어냈다고 보는 게 더 가능성 높았다.
졸지에 임시 휴전처럼 경계가 생겨 버린 전장까지도 일말의 주저 없이 태연하게 다가온 똥색 머리가 묘하게 나근한 태도로 지크프리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타라 거세게 모라쳣더군 용사. 내 제아늘 아예 거저라기로 마음머근 거야?”
씨발 뭐라는 거야 저거? 발음이 왜 저렇게 어눌해? 미국 드라마에서 외국 배우가 어색하게 사용하던 한국어가 생각날 정도로 엉망인 발음에 고개를 기웃거리는 나와 달리 지크프리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침을 뱉으며 대답했다.
“그래. 거절하련다. 내 여자 어깨에 좆같은 수작질을 부리지 말았어야지.”
“어차피 이고세서의 이른 너에케 아무고토 아니…”
둘의 태도는 짐짓 진지하기 그지없었지만 난 똥색 머리의 발음에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지크프리트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때리고 말았다.
따악! 하는 경쾌한 소리에 아군과 적군이 놀라고 지크프리트가 경악했지만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수준인지라 후회는 없다.
“갑자기 왜 때려!?”
“야이 씨발. 저딴 발음을 듣고 귀가 팔랑거렸다고?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몰라도 개 못하잖아!”
“뭐? 무슨 소리야? 멀쩡하게 말하고 있잖아?”
“그게 무슨…”
순간 손이 한 번 더 나갈 뻔 했지만, 불현듯 스쳐 지나간 깨달음 때문에 멈추고 말았다.
“너는… 뭐치?”
방금까지 우리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걸 본 똥색 머리의 표정이 기묘하게 뒤틀렸다. 여전히 어눌한 말투다. 설령 좋게 봐줘서 저 녀석이 한국어를 쓰고 있다 하더라도 절대 한국인일 수 없는 발음이다.
그런데 녀석은 지크를 보자마자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고 했다.
차라리 다양한 언어로 대화를 시도해봤으면 모르겠는데, 한국인도 아니면서 무슨 재주로 지크프리트에게 한국어로 먼저 말을 걸었을까?
“나는 엘드미아 에가라고 한다.”
결론이 나오는 것보다 빠르게 몸을 움직인 나는, 바닥에 박아두었던 도끼를 집어 똥색 머리를 향해 집어 던졌다.
저 새끼, 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