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79)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79화(479/599)
[479화] Apostate may care, but I don’t멀리서 봤을 땐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당장 옷 좀 갈아입혀서 오그웬 시장 가판대에 세워두면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못하고 가게 주인으로 여길 정도로 평범하게 생긴 중년 여성이다. 가벼운 갑옷과 허리에 차고 있는 한 자루 검을 빼면 투구조차 쓰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더 시선을 끌지 않을까.
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평범하기 그지없는 외형 때문에 분위기나 기세에 압도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체감할 수 있었다.
오러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나조차 그녀가 품고 있는 오러에 압박감을 느낄 정도다. 저 선으로 그은 듯한 반원은 그녀를 마주하는 이들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위압감의 경계일지도 모른다.
새삼 에카프 경이 얼마나 일상생활에서 오러를 갈무리하고 지내는지 감탄하며 그녀의 위를 날고 있었더니, 뜬금없이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친 제국의 소드 마스터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듯 고개를 까딱거린 뒤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잘 봐두라는 듯이.
산책이라도 하는 것처럼 여유롭게 전장을 거닐던 그녀는 검을 뽑는 것조차 여유로웠으나, 이후에 이어진 동작은 하늘에서 보고 있는 나조차 따라잡기 힘들었다.
원래부터 그 속도로 움직였다는 듯한 걸음을 떼자마자 최대 가속에 돌입하여 순식간에 적들과의 거리를 좁힌 소드 마스터의 주변에 빛무리가 일렁인다 싶더니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던 마왕군들 사이로 핏줄기가 솟구친다.
명백히 검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쓰러지는 적들에게 의아함을 느낄 틈도 없다. 남들은 소울라이크 장르에서 살고 있는데 혼자서 핵 앤 슬래시 장르인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잡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급이 다르다는 건 반박이 불가능한 사실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아 보였다.
그 움직임을 흉내 낼 수 있고 없고는 차치하고, 그녀가 보이는 모든 움직임은 결국 인간의 육체로 따라 할 수 있는 검술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에.
처음엔 너무 빨라서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위에서 몇 번이고 보다 보니 알 수 있었다. 단순한 내려 베기도 누구보다 빠르고 강하게 시도할 수 있다면 필살의 일격이 되는 것처럼 지금 그녀의 모든 움직임이 그러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지만… 당장 내게 필요한 깨달음이나 보고 싶었던 경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저 정도는 나도 마력 응용에 능숙해져서 신체 능력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면 충분히 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열심히 중량을 치면 근육이 붙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거였으니까.
양민 학살에서 뭔가 배울 점을 찾는다는 게 참으로 쉽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왕군이 뭐라도 하겠지 싶어 소드 마스터의 뒤만 열심히 쫓아 날아다니던 차에 마왕군 진형 쪽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
아군 진영에서만 날아다니고 있다 하더라도 고도를 과하게 낮추면 견제가 들어올 게 뻔해서 좀 높게 날고 있었던 탓에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으나 마왕군쪽이 시끄러워졌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육성으로 시끄러워진 게 아니라 누군가 물리적으로 대지를 박차고 달려오느라 시끄러워진 거였다. 땅에 서 있었으면 울림까지 전해졌을 것 같은 광경 속에서 소드 마스터 주변에 있던 아군들이 빠른 속도로 산개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했기에 자가용에게 지시해서 고도를 낮췄다. 그와 동시에 넓은 평원을 일자로 자로 잰 것처럼 똑바로 달려 온 무언가가 소드 마스터와 그대로 충돌하며 엄청난 굉음을 자아냈다.
액션 만화나 영화에서처럼 엄청난 먼지 구름이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기엔 긴 시간 사람의 피를 마셔온 전장은 너무 축축했기에.
덕분에 나는 거대한 쇳덩이처럼 느껴지는 묵직한 갑옷을 입은 마족이 소드 마스터를 향해 거대한 도끼창을 휘두르는 장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땅도 쪼갤 기세로 휘둘러진 도끼창을 막아 냈음에도 소드 마스터의 검은 멀쩡했다. 오러를 검에 담을 수는 없는 세상이니 더럽게 좋은 무기임이 분명했다.
잠깐 무기를 맞댄 채 움찔거리는 것 같던 두 사람이 행동에 나선 것은 어느 정도 고도가 낮아졌다고 판단한 뒤 자가용 위에서 내가 뛰어내릴 무렵이었다.
그 움직임을 보고 내가 느낀 감정은 암담함이었다.
3층 건물 정도밖에 안 되는 높이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소리치는 마왕군을 그대로 덮치며 바닥에 안착하기까지 걸린 몇 초 되지도 않는 그 짧은 순간에 오고 간 공방이 더럽게 빨라 눈으로 좇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분명 빠르긴 했으나 멀찍이서 보는 입장이었기에 놓치지 않을 정도는 됐다.
하지만 공격 한 번, 방어 한 번이 보여주는 기술적 완성도의 격이 달랐다. 똑같은 움직임인데 왜 차이가 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두 사람의 공방은 완벽에 가까웠다.
저들의 능력뿐만 아니라 무구마저도 최상급이다. 당장 내가 본 것만 소드 마스터의 검이 마족의 흉갑을 네 번은 그었으나 모두 막아 냈고, 바위도 부술 것만 같은 마족의 도끼창은 소드 마스터의 검에 흠집조차 내지 못하는 중이다.
일신의 무력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자들끼리 싸우며 펼쳐지는 수 싸움은 보이는 게 반, 짐작도 가지 않는 게 반이다. 바둑 기사들이 몇십 수 앞을 내다보고 바둑을 두는 것처럼 저들은 바둑알 대신 무기를 휘두른다.
저 공격 하나하나가 나에게 날아올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 보면 나오는 결론은 하나뿐이다.
저런 사람을 마주하면 안 된다.
아직까지는.
-콰앙!
숨막힐 듯한 긴장감 속에서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던 공방 도중 소드 마스터의 검에 흘려 넘겨진 도끼창이 거칠게 바닥을 깎아 먹으며 굉음을 자아내자, 마치 그게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전장이 다시 움직였다.
조금 더 보고 싶기도 했지만… 이미 이 짧은 시간 동안 본 것을 복기復棋하는 것만으로도 뇌용량에 한계가 올 것이 확실했기에 깔끔하게 포기하고 나 역시 아군과 합류해 검을 휘둘렀다.
싸울 상대들이 많으니 당장 몇 개 정도는 시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
바젤라드는 긴 시간 동안 칼레시를 보좌하며 조수 겸 부관으로 활동해왔다.
그는 천재의 광적인 집착이라는 것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지만, 굳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해도 도울 수는 있다는 걸 알았기에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는 편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이해를 포기하고 묵묵히 도왔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여기기도 했다.
“흐흐흐흐.”
하지만 이번엔 그게 좀 힘들어서 저도 모르게 ‘왜’ 를 생각하게 되었다.
칼레시는 결국 팔을 잘라 내고 말았다.
교단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성직자가 없긴 했지만 세상엔 성직자만 병과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니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녀의 팔에 박혀 있던 쇳조각에 있었지.
누군가는 저주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의견을 내놓을 정도로,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어딘가로 날아가려는 쇳조각은 철저하게 그녀의 팔을 ‘죽여’ 놓았다.
“이것만 있으면 연구가 새로운 궤도로 오를 수 있어. 이것만 있으면…”
잘린 팔 대신 의수를 다는 과정조차 귀찮고 시간낭비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작업을 지시하던 칼레시의 시선은… 다시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처음엔 전장의 패배와 갑작스러운 변수의 등장으로 인해 충격을 받은 건가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녀의 냉철하고 정확한 지시에 따라 준비를 마친 바젤라드는 덤덤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저 눈앞에 놓인 새로운 가능성에 심취했을 뿐이라는 걸.
“가동시켜.”
“…검증 절차는 거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이론은 이미 확실하고 후폭풍도 지금까지 겪어온 많은 결과들 덕분에 예측이 가능하지. 성공 아니면 실패인데 시간을 날릴 필요가 있나? 가동시켜.”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 담긴 쇳조각은 결계에 묶여 있었다.
사중으로 펼쳐진 마법진 위로 악신의 찌꺼기와 신성력까지 가미한 뒤에야 겨우 저만한 쇳조각 하나 붙잡을 수 있었다는 게 허탈했지만, 거꾸로 뒤집어서 생각하면 그만한 힘이 있는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어쩌면 성유물, 어쩌면 그 이상. 그랬기에 바젤라드 역시 한 켠으로는 두근거림을 잠재우기 힘들었다.
저 쇳조각은 마법을 끊고 신성력을 먹는다.
죽은 악신의 것이라고 해서 가리는 일도 없이 꾸역꾸역 먹는다. 그리고 그걸 자신의 힘으로 치환한다.
저 힘을 마도구에 담아 사용할 수만 있다면 악신의 잔재가 가져오는 침식 따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시작하겠습니다.”
긴장과 기대로 살짝 떨린 바젤라드의 말에, 주변에 있던 다른 마법사들도 바짝 긴장하며 숨 쉬는 것조차 잊어 버렸으나 칼레시는 그저 쇳조각과 그 아래에 놓인 마도구만 응시할 뿐이었다.
마법이 시전되고, 결계가 풀리며 쇳조각과 팔찌 형태의 마도구를 멋대로 연결시키기 시작했다.
엄청난 바람이 일어나거나 힘이 튀어 나가며 주변을 파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건 힘이 외부로 유출된다는 뜻이고, 준비가 미흡했다는 방증에 불과하다. 그런 미성숙한 실패들은 이미 악신의 찌꺼기를 마도구에 가두는 과정에서 수 차례 지나왔다.
준비는 완벽하다. 칼레시의 말대로 엄청난 성공과 평범한 실패가 있을 뿐.
그렇게 여기는 순간 쇳조각이 갑작스럽게 결계에 담겨 있던 신성력을 미친 듯이 흡수하기 시작했다.
“대장?!”
“결계가 부서지지 않았으니 놔둬!”
칼레시는 그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있었기에 명백한 이상 징후라고 느끼는 바젤라드와 다른 마법사들과 달리 고양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예상보다 힘이 더 커지고 있었다. 아주 안정적이게.
이제 저게 마도구로 옮겨지기만 한다면…
“성공이… 머지않았어!”
완벽한 힘을 얻는다. 어쩌면 전장 전체를 휘어잡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행복한 상상을 하는 사이 신성력과 찌꺼기를 전부 먹어 치운 쇳조각이 움직임을 멈췄다.
모두가 그 찰나의 정적에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 착각하던 찰나,
“어?”
누가 냈는지 알 수 없는 단말마와 함께 쇳조각이 빛나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지, 땅에서 솟은 것인지 알 수 없는 거대한 섬광이 천막과 그 안에 있던 인물들을 세상에서 지워 버렸다.
일순 번개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기에 이를 눈치챈 이들은 극소수였다.
“여기… 있던… 어라?”
하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고 해도 결과는 확실히 남았다. 다 타버린 잿가루 같은 것만 흩날리는 광경을 마침 눈으로 목격한 마왕군 병사들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버벅였지만…
“야, 너도 봤…”
…시리도록 새하얀 섬광은 일격으로 끝나지 않으며 그들까지 지워 버리더니 이내 무차별적으로 일대에 내리꽂혔다.
그리고 머지않아 섬광이 만들어 낸 거대한 혼란이 마왕군 전체를 동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