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82)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82화(482/599)
[482화] God knows검집에 붙어 덜그럭거리는 쇳조각이 거슬려서 검을 뽑았더니 제 집 찾아 기어들어 가는 동물처럼 비어 있던 위치로 다가가서 정확하게 맞물렸다.
그렇게 완벽하게 들어맞음과 동시에 집나갔던 쇳조각에 담겨 있던 힘이 검 전체로 퍼져나간다. 육안으로 구분이 될 정도로 은은한 빛이 검신 전체에 퍼져나가서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다.
나도, 지크프리트도 서로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그 얼척없는 광경을 한참 동안 말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내 살다 살다 검이 알아서 진화하는 꼬라지를 보게 되네.”
“그러게나 말이다.”
결코 이해하고 싶지 않지만 이해하고 말았다. 이 검 쪼가리가 아까 봤던 대참사의 원흉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건 지크프리트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무슨 원리야?”
“모른다니까 그러네. 그냥 발쿤 씨가 마장금으로 만든 검이었다고.”
내가 여기다가 한 일이라고는 집 근처에서 찌꺼기에 침식당한 도끼쟁이와 싸우다가 쪼개먹은 게 전부였다.
그 과정에서 마력 좀 둘러서 믹서기로 써먹긴 했지만, 그런 방식으로 검을 깨먹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성력을 빨아먹는 요상한 무언가가 탄생할 리가 있나.
“방법이라도 명확하게 알았으면 양산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지크프리트의 이야기에는 나 역시 고개를 주억거렸으나, 설령 양산을 한다고 해도 마력과 신성력을 동시에 쓸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제대로 발동조차 시킬 수 없으니 부질없는 가정이라는 걸 조금 뒤에야 깨달았다.
“열화 카피판이라도 만드는 게 아닌 이상 쓸모없겠다. 마력이랑 신성력 둘 다 필요하거든.”
“혹시 알아? 마왕군 중에서 귀화하는 사람이 나오면 쥐어 주고 싸우게 할 수 있을지.”
“…그럴싸한데?”
데오니 성녀님께서 숙청 후 성전을 일으키면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내용인지라 새로운 가능성에 신나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갑자기 천막이 걷어지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 또 방음 마법을 사용한 채 깜빡하고 있었군요!”
어쩐지 주변의 소리가 잘 안 들린다 싶더라. 집나갔다가 돌아온 검쪼가리에 집중하고 있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처음 들어올 때 지크프리트가 펼친 방음 마법 때문이었다.
천막을 거두고 있는 에셀루아 황녀의 뒤를 보니 똥 마려운 개처럼 어쩔 줄 몰라 하는 시종들과 덤덤한 두 성녀 그리고 엔티레가 눈에 들어왔다. 천막에 있는 건 확실한데 수 차례 불러도 대답이 없으니 말 그대로 똥줄이 탔던 모양이다.
“아, 아니야! 이번엔 정말 중요한 이야기 중이라서 그랬어!”
에셀루아의 말대로 까먹고 있었던 게 분명했지만 그래도 반 정도는 진실이었기에 나는 곱게 고개를 끄덕이며 지크프리트의 발언에 힘을 실어 주었다.
그러자 가벼운 고개짓으로 인사를 마친 에셀루아 황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지크프리트의 손이 가리키고 있는 내 검을 바라보았고, 그녀의 뒤를 이어 천막에 들어오기 시작한 두 성녀들 역시 뭔가 싶은 눈으로 내 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경악했다.
“서, 서, 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벨레시카의 모습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자폭 성녀였다.
한 손으로 벨레시카의 입을 틀어 막은 그녀는 다른 손으로 빠르게 엔티레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그게 뭘 의미하는 지까지는 모르는 듯했지만 바로 상황을 파악한 엔티레가 서둘러 안에 들어오며 걷어져 있던 천막을 빠르게 훑어내렸고, 그로 인해 다시금 정막이 내려앉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벨레시카의 입에 두었던 손을 뗀 자폭 성녀가 큰소리로 외쳤다.
“어째서 성검이 여기 있는 겁니까!?”
벨레시카는 여전히 말도 못 한 채 격렬히 고개를 끄덕이고, 에셀루아 황녀와 엔티레는 방금 전까지 성녀들이 보였던 것처럼 경악했으며, 나와 지크프리트는 검과 서로를 두고 수 차례 시선을 교환한 다음에야 ‘아.’ 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머지가 말이 되는 거 같기도 하네.”
“그러게.”
의문이 한 방에 해소된 건 좋았지만 별 미친놈들 다 보겠다는 네 여자의 시선을 나눠 받는 건 그리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었다.
◈
통째로 쇠붙이로 만들어지는 무기라는 것 자체가 엄청난 권력과 부의 상징이던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과 상징성 때문에 유독 특별한 취급을 받을 뿐이지, 사실 성검이라는 건 어느 교단이나 서너 개 정도 쥐고 있는 성유물의 일부에 불과하다. 성창이나, 성방패같은 게 성검을 대신 하는 곳도 꽤 있는 편이고.
하지만 뒤집어 말하자면 결국 어느 교단에서나 죽고 못 사는 신의 증명 그 자체인 귀한 물건이라는 뜻이다.
아예 신께서 직접 만들어 하사하셨느냐, 신의 뜻을 따르며 대전사의 반열에 이른 자들이 위업을 쌓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승격昇格하게 되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런 물건을 앞에 두고도 이딴 반응을 보였으니 미친놈 취급 받아도 딱히 뭐라 할 말이 없긴 했다.
“이런걸 들고 싸웠는데 아무도 못 알아봤다구요?”
“엄밀히 따지자면 방금 이렇게 된 거긴 합니다만…”
그렇게 네 사람을 추가로 앉히고 상황을 한 차례 설명하자 자연스럽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전장의 판도를 뒤엎은 신벌의 매개체가 된 물건이 코앞에 있다는 사실에 어쩔 줄 몰라 했고, 누군가는 그냥 순수하게 감탄했으며, 누군가는 지휘소에서 열심히 회의 중인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다는 듯 두 눈을 번뜩였다.
그래, 맞다. 성녀들과 엔티레와 에셀루아 황녀 순이다.
“그렇다면 적진에서 모종의 사건을 겪으며 승격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군요.”
자폭 성녀가 말하기를, 기본적으로 후천성 성유물이 만들어진 데에 필요한 건 신성력이라고 한다.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수많은 악종惡腫들을 처단하는 과정은 신들의 눈에 띄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그저 무기가 신성을 온전히 받을 수 있도록 연단鍊鍛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아무리 많은 위업을 달성해도 신앙이 부족하거나 섬기는 신의 뜻과 다른 경우 신성은 내려지지 않고 조금 격이 높은 무기 정도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에파가께서는 지금 온전히 신성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니, 마왕군이 찌꺼기로 마도구를 만들던 것처럼 모종의 개수작을 부리다가 역으로 처맞았다는 에셀루아 황녀의 의견은 매우 타당한 추리였다.
“성유물은 신들께서 이 세상에 최대한 온화하게 영향력을 펼치기 위한 통로와도 같은 겁니다. 그런 물건이 완성되자마자 신벌이 내렸다는 것은…”
“마왕군의 모든 행동이 도를 넘었다는 증거이지요.”
너무나도 거하게 터져서 감출 수도 없을 테니 데오니 성녀님이 움직이는 데에도 꽤 도움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검을 만져보니 전장에서처럼 묘한 울림이 이어졌다.
“이거… 에고 소드Ego Sword라고 봐야 하나?”
“그렇지 않고서야 저 먼 마왕군의 진지에서부터 여기까지 길을 찾아올 수 없었겠죠?”
뭘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듯 반응하는 자폭 성녀의 말은 명백한 팩트였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모두가 이 경악할 만한 사실 속에서 쉬이 말을 꺼내지 못 하는 와중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에셀루아 황녀가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사령관뿐만 아니라 왕국, 더 나아가 제국에도 이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뭘?”
내가 성검을 쥐고 있다는 걸 만천하에 공개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다행히 지크프리트가 먼저 질문해주었다. 그러자 에셀루아 황녀는 묘하게 불타오르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힘을 담아 대답했다.
“마신이 마족을 저버렸다는 사실을.”
“안 버리셨습니다.”
그 내용이 심히 내키지 않아 나도 모르게 심드렁한 어조로 반박하고 말았다. 이에 지크프리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발언을 보강하면 보강했지 철회할 생각은 없었다.
“에파가 님께서는 마족을 저버린 적 없으십니다. 굳이 따지면 마왕군이고, 그마저도 서순이 틀렸죠.”
“서순…?”
“마왕군이 에파가 님을 저버린 게 발단입니다. 이래 봬도 그분께 많은 은혜를 받아 여기 있는 몸인지라… 의도가 곡해되는 건 간과할 수 없습니다.”
딱히 경고의 의미를 담거나 불편함을 드러낸 건 아니었다. 그저 오해를 정정했을 뿐. 지크프리트야 어느 정도 내 사정을 들었으니 그러려니 하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다양한 형태로 나를 겪은 여성진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며 움찔거렸다.
이번에도 먼저 반응한 건 에셀루아 황녀였다.
“…그렇다면 더 좋은 이야기로군요. 마족들을 회유하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니.”
“좋고 나쁘고를 따질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맞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마신교의 성녀님도 대대적인 숙청과 성전을 예고하셨으니까요.”
성검으로 예상되는 물건까지 쥐게 된 마당에 더 숨길 것도 없어서 줄줄이 이야기를 꺼내놨지만 예상보다 반향도 적고,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물어보는 이도 없었다. 대신 이번에도 에셀루아 황녀가 좀 더 계획을 구체적으로 잡기 위한 질문을 던졌다.
“마신교의 성녀와 연락이 가능한 상황이신가요?”
“아뇨. 제가 먼저 연락할 방법은 없습니다. 증표는 받았지만 말이죠.”
항상 들고 다니는 파우치에 크룰의 송곳니와 함께 잠들어 있는 성녀님의 뿔조각을 떠올리며 대답하니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짧게 고민한 에셀루아 황녀가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바라보며 내게 부탁했다.
“저희라면, 연락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증표를 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녀가 말하는 ‘저희’가 제국을 의미한다는 걸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기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뿔조각을 꺼내 건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