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85)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85화(485/599)
[485화] God knows다 읽고 나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집 근처에서 도끼쟁이와 싸울 때 이단 심판관들이 보여줬던 모습이었다.
그들은 숙련된 전사였고, 강했으며, 집단전에도 능숙했으나 뒤틀린 도끼쟁이의 목숨을 태운 괴력엔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정공법… 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이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당장 지크프리트도 환영 마법사 놈이 변형한 거 잡는데 시간이 걸리는 와중에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일반인 기준에서는 상당히 답이 없는 새끼들이다.
그런 놈들이 마족령 내에서 마왕군의 병력으로 운용되며 성녀님과 마신교를 억압하고 있다. 수성전조차 답이 없다는 데오니 성녀님의 결론이 충분히 납득되는 상황이다.
“…교단과 성녀님이 왕국과 제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마신교는 마족의 뿌리와 함께 해 온 종교입니다. 그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이번 전쟁은 인족과 마족의 전쟁이 아닌, 배교이자 이단인 마왕군과 대륙의 전쟁이 되겠죠. 당연히 최선을 다해 작전에 응하고자 수도에서부터 방법을 구상 중입니다.”
탁상공론만 하며 시간을 떼우는 이들은 아닐 테니 최대한 빠르게 결론을 낼 거라는 건 확실했다. 문제는 그런 확신이 있음에도 데오니 성녀님이 계신 곳의 상황은 위태롭기 그지없다는 것이지.
하다못해 그 뒤틀린 괴물 새끼들만 없어도 이 지경까지는 안 왔을 텐데, 아쉽게도 지금 놈들의 대항마라고 할 수 있는 건 나 정도밖에 없는 모양이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성녀 측에서는 계획을 구상하고 결행하기까지 최소 보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그때까지는 버틸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 듯합니다만, 악신의 잔재라는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니까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그마저도 어디까지나 버티기를 기반으로 하는 것일 터이니 피해는 꾸준히 일어날 것이다.
사실 고민이 길어질 이유는 없다. 지금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내가 할 일은 명확했으니.
“정보원이 사용하는 밀입국 경로, 저도 쓸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건 지크프리트도, 에셀루아 황녀도 같은 의견이었던 게 분명하다. 에셀루아 황녀는 오히려 내가 자진해서 질문을 하자 묘하게 안도하는 눈치였다.
그런 그녀가 뭐라 말을 이으려는 찰나 잠깐 손을 들어 제지한 지크프리트가 새삼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형. 마족령에는 엘프와 드워프가 없는 거 알지?”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마족령에는 지크프리트의 말대로 두 종족이 살지 않는다.
그냥 살지 않는 정도를 넘어서 전쟁이 아닐 당시에도 왕래가 전무한 수준에 가깝다. 리저드맨이나 수인, 풀링같은 다른 종족은 다 있어도 유독 두 종족은 마족령 자체를 꺼려한다고 아실리에에게 배웠다.
그녀조차 그냥 내키지 않다는 이유로 마족령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고 말이다. 지크프리트가 지금 그러한 사실을 언급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형이 거기로 가면…”
아실리에는 여기 남아야 한다. 마족령에서 엘프가 돌아다닌다는 건 그만큼 소문이 빠르게 나고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이니까.
엔티레의 부상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는 녀석이었기에, 내가 없는 사이 아실리에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 보여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괜찮아. 되려 나 혼자 가는 거 때문에 등짝 맞을 게 더 걱정이다.”
◈
다행히 내가 우려한 아실리에의 등짝 스매싱은 날아오지 않았다.
“뭐라고 할까… 엘디가 용사인 게 확정되고나니 묘하게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쉬워진 거 같아.”
스스로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인 아실리에는 그저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할 뿐이었다.
아실리에가 자기 앞가림을 못 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내가 엔티레를 도와준 것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 지크프리트가 자진해서 특별히 신경 쓰겠다고 했으니 별일은 없을 것이다.
[주인, 또 가?]“그렇게 됐다. 너도 어지간히 눈에 띄니까. 아실리에랑 잘 붙어 있어. 비룡도 잘 관리하고.”
라이카뿐만 아니라 기껏 정들기 시작한 자가용도 두고 가야 한다는 게 좀 아쉽긴 했지만 데오니 성녀님이 계신 곳까지 최대한 은밀하게 이동해야 하는 터라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겸사겸사 이번엔 이거 좀 차고 있어 봐.”
시무룩하게 꼬리를 내리고 있는 라이카의 목에 채워준 것은 적당히 얻은 가죽끈에 내 검의 파편을 붙인 임시 개 목걸이었다.
무려 마왕군 진지에서부터 이곳까지 신성과 마력을 담은 채 자율비행을 시도했던 것에 영감을 얻어 만들어 본 물건으로, 의도대로 작동만 한다면 라이카의 마력 공급이라는 애로사항이 손쉽게 해결될 게 분명했다.
[오…?]“어때? 뭔가 느낌이 와?”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흠. 바로 효과가 체감되는 수준은 아닌가보군.
혹시 몰라 마력을 열심히 먹여 똑똑이 상태인 라이카가 자신의 상태를 열심히 확인하는 것을 뒤로하며, 나는 아실리에와 작별하고 에셀루아가 따로 언질을 준 천막으로 향했다.
이번 일은 제국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보니 꽤나 본격적인 준비가 이루어졌는데, 그중 하나는 내가 여기서 모습을 감췄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늦게 알리기 위한 대역을 준비하는 거였다. 전체적인 군의 사기도 유지할 겸 교란의 역할도 할 수 있기에 꽤 괜찮은 계획이라 여겼는데…
“제국의 하얀 별을 구한 영웅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게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빠르고 깔끔하게 미리 진행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기이한 경험이었다. 분명 난 오늘 이야기 듣고 오늘 움직이기로 했는데, 정작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내 대역은 체구도 흡사할뿐만 아니라 갑옷조차 비슷하게 구색을 맞추고 있었으니까. 그가 한손에 들고 있고 있는 투구가 뤼밍스의 투구와 비슷한 디자인이라는 걸 발견하지 못했으면 아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한참 고민했을 것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해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조막만 한 손으로 열심히 내 투구를 만지고 살펴보던 에스뮈에를 떠올리며 그의 인사를 받고 나니, 기사의 뒤에서 익숙한 얼굴의 미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형태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아쉽게도 대화를 나눌만큼 여유도 없어 보이고 말이야.”
훤칠하게 잘생긴 벤데 후작이 뭔 소리를 하는 것인지 잠깐 고민한 나는, 그게 제국에서 이티스엘로 돌아올 때 인사치레로 건넸을 뿐이라고 여겼던 대화를 상기시키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과 그가 간이 게이트라는 제국 기술의 정수를 사용하는 자라는 사실을 동시에 떠올리며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당치도 않군. 제국을 구하고, 제국을 돕는 일에 솔선수범하는 이에게 도움을 주는 게 어찌 신세일 수 있겠는가.”
귀티를 줄줄 흘리면서도 오만한 기색 하나 없이 웃어 보인 벤데 후작은 역시 간이 게이트를 든 채 나의 빠른 이동을 도와주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거였다.
무려 제국의 후작이라는 인물의 엉덩이가 이리도 가벼워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한시가 급할 뿐만 아니라 마족들 간의 분란을 성공적으로 조성하여 전쟁을 단축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충분히 움직일만 하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그의 뒤를 이어 시종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탁자 위에 늘어놓은 물건들은 전부 나를 위한 것이었다.
위장 신분을 위한 신원증명패와 돈, 최대한 모험가처럼 보일 수 있는 심플한 장검 한 자루와 망토 그리고 가방 등등 정말 다양한 물자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 중이었다는 것처럼 줄줄이 나오는 가운데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의외로 내 가짜 신분증에 적힌 가명이었다.
“황녀님께서 직접 지시한 물건일세. 그대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으신 모양이더군.”
“…황송할 따름입니다.”
에단 라비셔.
제국에서는 루드라의 똥개인가 뭔가 하는 놈에게 결투 선언했을 때 한 번 말하고는 말할 일이 없었던 부모님의 이름을 간단하게 섞어 만든 신분패를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 정도뿐이었다.
말하는 뉘앙스로 봐서는 이미 짐작할 거 다 짐작한 모양이었지만 벤데 후작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일 뿐, 그 이상 떠보거나 파고들려 하지 않았다.
그가 게이트를 열기 위한 간단한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시종인지 병사인지 알 수 없는 사람에게서 마족령으로 넘어가기 전에 주의해야 할 사항과 이후 접선해야 하는 사람들의 간단한 인적 사항 그리고 암호 등을 숙지했다.
약도와 함께 다양한 정보들을 기록한 노트같은 걸 같이 넘겨주기는 했지만 되도록이면 최대한 빠르게 암기한 뒤 태워 없애 달라고 신신당부하며 그가 자리를 피하자, 내가 모든 물건들을 챙기는 걸 확인한 벤데 후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 팔을 펼쳤다.
“이미 다 들었을 테니 별다른 말은 하지 않겠네.”
그의 손짓과 함께 정육면체의 큐브가 쪼개지며 엄청난 양의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만으로 게이트가 운용되기 위한 조건을 충족시킨 것은 아니었으나, 그 작은 큐브안에 완벽하게 압축되어 있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이 흘러나오며 주변의 마력과 어우러져 술식을 가동한다.
겉핥기로나마 마법을 공부했기에 벤데 후작의 큐브에 얼마나 예술적인 수준의 술식이 담겨 있는지 이해한 나는 게이트가 완전히 열리며 건너편의 풍경이 보일 때까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내 정신을 되돌린 것은 게이트 너머로 풍겨 오는 짙은 바다내음이었다.
“부디 땅굴에서는 자네의 무용을 발휘하는 일이 없길 바라겠네.”
그와 동시에 생소하기 그지없는 무법자들의 영역 일부가 눈 앞에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