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91)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91화(491/599)
[491화] The Stowaways Guide to the Demon’s territory넉살좋게 대화의 물꼬를 튼 칼 칸시는 우리가 쉴만한 자투리 공간을 얻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이들과 함께 모닥불을 쬐는 것을 허락받았다.
대신 아침에 문이 열릴 때까지 불침번들과 수다를 떨어야 했지만, 추위에 떨며 야영을 준비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치는 것보다 백번 나았기에 불만은 없었다. 그렇게 동이 터오를 때까지 이야기 상대가 되어준 대가랍시고 아침도 얻어먹으며 유쾌한 분위기를 만끽하는 사이 성문 쪽이 부산해지면서 반복적인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문 열린다!”
마치 복명복창이라도 하듯 퍼져나가는 외침 속에서 짐을 챙기는 이들과 달리 우리는 아무것도 깔아둔 게 없었기에 적당히 빠져서 새치기 아닌 새치기를 할 수 있었다. 칼 칸시는 여기까지 예상한 것인지 싱글벙글 웃으며 걸음을 서둘렀고, 난 녀석의 넉살에 다시 한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둘러 움직인 끝에 대충 10번째 정도 순서에 선 다음에야 슬쩍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를 가진 칼 칸시는 어김없이 작은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속삭였다.
“손님. 오러를 쓸 줄 아는 건 지금처럼 계속 감추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래도 아무것도 못하는 척 하려고.”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내뱉은 말이었으나 내게는 찔릴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그 탓에 잠깐 주춤하긴 했지만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었다.
칼 칸시와의 주먹다짐 때는 마족 청정지대인 이티스엘이었으니 아무 부담없었지만, 내가 평범하게 숨 쉬듯이 마력을 쓰는 것만으로도 마족들이 눈치챈다는 건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이었기에 성녀님과 접선하기 전까지는 내가 열심히 단련해온 인족의 신체 능력만으로 버텨야 했다.
“씀씀이도 후할 뿐만 아니라 신중하기까지 하다니, 최고의 손님이로군.”
만족스럽다는 듯 낄낄 거리는 칼 칸시와 함께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조금 더 떠드는 동안 대기열은 빠르게 줄어들었고, 그럴 때마다 나 역시 묘한 긴장감을 느껴야 했다.
제국에서 제공해준 위조 신분이 못 미더운 건 아니었다. 그저 한평생 숨 쉬듯 사용해 온 마력과 최근에 쓰기 시작한 신성력을 티 안 나게 잘 갈무리한 게 맞는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쪽에서는 그냥 ‘묘하게 마족스럽다.’ 라는 감각으로 내 마력을 인지하는 사람들만 있었기 때문에 ‘아, 확실히 마력이 안 느껴진다.’ 라는 확답을 얻을 방법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신성력은 성녀님들을 통해 검증 받았지만, 요실금처럼 슬쩍 흘러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었기에 마찬가지로 불안 요소였다.
차라리 마족 하나라도 생포해서 실험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는데 라는 뒤늦은 후회를 하는 동안에도 줄은 계속 당겨졌고, 내 차례에 이르렀을 무렵엔 어지간한 전투보다도 더 바짝 긴장한 채 경비병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면밀히 살펴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안녕하십니까 끝자락 경비 나리들! 아침부터 수고가 많으십니다!”
“…뭐야, 칼 칸시였나. 한동안 안 보이더니?”
“떠돌이가 다 그렇죠. 이번엔 이 친구 길잡이 좀 하고 있습니다.”
어김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나가는 칼 칸시의 손과 시선을 따라 경비가 나를 바라보았다. 전장에서는 투구를 써 왔던 덕에 얼굴까지 알려질 일은 없었기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시선을 받으며 고개를 까딱이자, 경비가 시큰둥한 표정을 오묘한 표정으로 바꾸며 되물었다.
“분위기만 놓고 보면 길잡이가 필요한 수준은 진즉에 넘어간 거 같은데?”
“놀라지 마십쇼. 이 친구 길치입니다.”
“…농담이지?”
“반은 진담입니다. 저도 깜짝 놀랐다니까요.”
칼 칸시가 대체 언제부터 구상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거짓말로 경비병 하나의 눈과 귀를 막는 사이 그의 옆에 있던 다른 경비병은 심드렁하게 손을 뻗어 내 신분증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 별것 아닌 행동에 내 긴장 수치는 급격한 속도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오러 사용자인가?”
내게서 마력이나 신성력을 느끼지 못했음이 분명한 태도로 신분증만 보고 있었기에.
“아뇨. 간단한 마법 정도밖에 못 씁니다.”
“그런데도 모험을 하다니, 배짱이 두둑하군.”
제대로 먹힌다는 확신이 생기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지는 모르겠으나 딱히 부정적이지는 않았던 게 분명하다. 앞에서 다른 팀들이 검문을 지나쳤던 것처럼 매우 평범한 반응만 돌아왔으니까.
“이상없음. 혹시나 싶어서 말하지만 도시에서 괜한 분쟁에 휘말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경비대를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 뭐, 그것도 좋지만 평범한 인족 정도는 한주먹에 죽여 버리는 놈들이 드글드글하니까 몸 사리라는 거야.”
애둘러 몸조심하라는 말까지 듣고 나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순식간에 정리되는 검문을 끝으로 자신감을 얻은 나는 그대로 칼 칸시를 재촉하여 여행 준비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액수의 상단 금화를 환전하느라 잠깐 트러블이 생기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해가 질 무렵에는 아무 문제없이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일련의 과정을 거친 끝에 하루 묵을 숙소를 정하고 주문한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지도를 꺼내 식탁에 펼친 칼 칸시의 발톱이 특정 위치를 가리켰다.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이 여기야.”
이에 지도를 확인하고, 끝자락이라고 적혀 있는 도시의 위치를 재확인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축척이 엉망인 거 아니야? 얼마 안 온 거 같은데?”
게이트까지 탄 것치고 너무 가깝다.
묘하게 정보는 많이 적혀 있는 거 같은데… 혹시라도 말 그대로 정보만 기입한 수준의 정확도를 가진 게 아닐까 싶어 던진 질문에, 칼 칸시는 어깨를 으쓱이며 내 희망을 짓밟았다.
“손님에겐 아쉬운 이야기겠지만, 비율은 얼추 맞는 지도야. 게이트가 많은 건 사실인데 그리 먼 곳까지 연결되어 있진 않거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었으나… 이어지는 설명을 듣고 나니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게이트를 통해 도주하는 범죄자의 비율이 문제였다. 초장거리 이동을 남발하며 포위망을 벗어나는 범죄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역사가 있었던 마족령은 게이트 사용료를 낮추는 대신 최대 이동 거리에 제약을 두기로 결론지은 것이다.
심지어 일정 구간은 철저한 신분 검사를 통해서만 이용할 수 있었다. 내 신분증이 아무리 그럴싸해도 거기서는 무조건 꼬리가 잡힌다는 게 칼 칸시의 설명이었다.
“거긴 타국의 첩자들조차 피하고 보는 곳이야. 우리같은 일반인은 어림도 없지.”
“…그렇군.”
분명 노트에도 그런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게 떠올라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더니 칼 칸시는 자신의 의도를 오해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매우 만족했다.
의뢰비를 더 뜯어내려는 수작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면서 몇 가지 썰을 푸는 칼 칸시의 신뢰와 안도는 결국 내 사정을 몰라서 생겨난 착각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했지만, 나에게도 나쁠 게 없었기에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오늘 말과 식량을 구해서 내일 출발하면… 대충 3일은 내리 달려야 검문이 무난한 도시가 나와. 거기서 또 게이트를 타고 이동한다면… 여기에 떨어질 수 있겠군.”
“이번에 이동한 것보다 더 짧은 거 같은데?”
“원래는 더 갈 수 있었는데 마신교와 마왕군의 분쟁 때문에 막혔어. 게이트로 이동하려고 했다간 감옥에 들어가.”
노트의 내용을 아직 전부 암기하진 못했어도 핵심이라고 할 것들은 기억에 남아있다 보니 칼 칸시의 판단이 얼마나 정확한지 얼추 알 수 있었다.
보통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정황을 파악하고 다니나 싶을 정도로 구체적인 이야기에 나름 진심을 담아 반응했더니 칼 칸시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자기 혼자 빵터졌다.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다음날 칼 칸시가 준비한 물건들을 챙기고 말에 올라 여행길에 나서고나니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이 녀석이 왜 웃었는지 알 수 있었다.
몬스터가… 많다.
그냥 많은 게 아니라 진짜 더럽게 많다.
“이딴 곳에 사람이 산다고?”
이티스엘이었으면 고블린 다섯 마리일 군락에 스무 마리 이상 뭉쳐 있는 꼴이다.
“하하하. 정확히 따지면, 이딴 곳은 이 모양이라서 사람이 안 살지.”
낄낄거리면서도 태연하게 주먹을 터는 칼 칸시의 주변엔 열 마리의 오크들이 대가리가 깨진 채 죽어있다.
그리고 그건 내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베여 죽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오크 군락을 습격한 게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자주 거니는 일반적인 경로에서 벗어나기만 한 게 이 모양이다.
새삼 이티스엘의 치안에 감탄하면서 이래서는 오히려 도적보다 몬스터가 더 많지 않을까 싶어 이야기를 꺼내니, 칼 칸시는 의외로 굉장히 쉽게 수긍하며 이 꼴이 난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힘을 숭배하니 약자들을 고려하지 않고, 약자들을 고려하지 않으니 몬스터들이 범람하든 뭘 하든 귀찮지 않은 선에서는 방치를 해 버리는 경우가 늘어나. 그리고 그 사실을 오랜 시간에 걸쳐 학습한 몬스터들은 영악하게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면서 마음껏 몸집을 키우지. 이티스엘에서는 오크조차 보기 드물다지? 여긴 아니야. 내 기억에 의하면 여기서 남서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이 오크놈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오우거 군락도 있어.”
어제 경비원이 내게 배짱이 두둑하다고 한 진짜 이유를 이제야 알아차리다니. 인족이 오러도 없이 모험을 한다고 하니 미친 짓이라고 여긴 거였어.
“그래도 손님 실력이면 아무 문제없잖아?”
“그렇긴 하지만… 이게 시간을 가장 단축할 수 있는 길이니까 선택한 거겠지?”
“물론.”
칼 칸시의 대답을 보아하니 편하면서 귀찮은, 역설적인 여행길이 이어질 게 눈에 훤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 한숨조차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즐거운 일이 생겨서가 아니라 한숨 쉴 틈조차 없이 싸워야 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