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93)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93화(493/599)
[493화] The Stowaways Guide to the Demon’s territory칼 칸시는 스스로의 삶을 반추한다고 했을 때 후회할 일이 얼마 없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스스로의 욕구에 충실하게 살아왔다. 강해지고 싶어서 힘 썼고, 지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공부했으며,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세상을 떠돌았을 뿐만 아니라 틈틈이 세속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덕분에 어지간해서는 이야기거리가 끊이지 않는 축에 속했으며, 그 사실에 나름대로 자부심도 느끼는 편이었으나… 최근 들어 그 자부심에 살짝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저 정도면 흔한 도적들이지.”
“씨발 흔하다고? 저게?”
원인은 최근 동행하게 된 입 험한 손님에게 있었다.
욕이 좀 잦긴 하지만 질 낮은 모험가 나부랭이라든가, 용병은 아니다. 오히려 별일 없을 때나 다른 모든 행동에 있어서는 묘한 격식이 묻어 나오는 편에 가깝다.
인격적으로 파탄이 난 것도 아니다. 당장 자기 갈길 급하다고 돈을 펑펑 쓰면서도 우연히 마주친 다른 상단이 도적들에게 당하는 걸 보며 걸음을 멈출 정도니까.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쌍욕이 튀어나온다는 점과 대조해보면, 도의적으로 하자가 있는 상황에 분개하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손님이 묘하게 사건 사고를 끌어들이는 운명이기라도 한 것인지, 하루가 멀다하고 저런 상황을 마주하는 탓에 시도 때도 없이 분노에 휩싸인다는 점이다.
“몬스터를 이용해서 상단을 털어먹는 짓이 흔해? 진짜?”
“어… 마족령에서 전문적으로 도적질 해먹는 놈들이 애용하는 방법인데…”
“아주 지랄이 풍년이군.”
분명 길은 칼 칸시가 정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할 수 있으나, 칼 칸시는 칼 칸시대로 억울했다.
콴살라가 안겨주는 두둑한 돈 주머니에 만족해 장기 투숙을 하기 전에는 엄연히 ‘개척자’라고 불릴 정도로 전문 길잡이로 살았던 그였다.
‘개’에 유독 힘을 실어 언어유희를 시도하는 몹쓸 종족차별주의자들이 좀 있긴 했어도 그런 호칭은 아무에게나 달아주는 게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손님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안내했기에 붙었고, 그러면서도 원하는 일정에 최대한 맞출 수 있었기에 붙은 명예였다.
그런 그였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리 손님의 요청대로 빠른 길을 선택했다고는 하나, 사건에 엮이는 비율이 너무나도 높다. 심지어 그렇게 엮인 것들이 하나같이 굵직하다.
처음엔 단순히 마족령이 그만큼 혼란스러운 거겠거니 했는데…
“이 개… 씨, 씹새끼들아!!”
…대뜸 소리를 지르며 행상을 습격한 도적들과 몬스터들의 시선을 끈 뒤 무기를 뽑아들기가 무섭게 박차를 가하는 손님을 바라보고 있자하니 전혀 다른 쪽에 원인이 있는 것이 분명해보였다.
“딱히 개새끼라고 외쳐도 상관은 없는데 말이지.”
욕하면서도 오묘한 배려를 일삼으며 달려드는 손님의 뒤통수를 보면서 칼 칸시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딱히 손님의 뒤를 따라 달린다거나 당황할 필요가 없다는 건 이미 일주일동안 함께 여행하며 깨달았기에 칼 칸시는 십수 명의 도적들과 십수 마리의 고블린들이 손님을 향해 달려드는 광경을 보면서도 천천히 말을 몰았다.
손님에게 설명한 것처럼 고블린이나 오크 등을 작정하고 조련해서 도적질에 써먹는 놈들은 마족령 지천에 널려 있다. 당연히 그게 가능할 정도로 강한 놈들이고, 그래서 마족령에서 도적들을 상대한다는 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기 마련이다.
성수기 때는 용병일을 하다가 비수기에만 도적으로 전환하는 놈들이라도 만나면 어지간한 상단들은 차라리 통행세로 마차 하나를 포기하는 게 손해를 덜 본다고 할 정도다. 정의감에 눈이 멀어 이쪽엔 관심도 두지 않는 놈들에게 달려드는 건 미친 짓과 다름 없다.
“뭐야?! 저 새끼 뭔데?!”
“죽여 씨발! 어딜 인족 새끼가!”
그런 인식이 팽배해서인지 몰라도 능수능란하게 행상을 습격하던 도적들도 갑작스러운 손님의 등장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이내 검은 머리와 망토를 흩날리며 달려드는 손님이 인족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고블린을 채찍질하고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저들이라고 오러를 볼 줄 아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오러 유저라면 말을 타고 달릴 시간에 제 발로 뛰어들 거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도적들의 눈에 손님은 그저 정의감 넘치는 미친놈 정도로 보일 게 분명하다.
우선 그 판단이 아주 틀린 판단인 건 아니었다. 실제로 손님은 마족령에 넘어 온 뒤로 보는 눈이 있을 땐 오러를 쓰지 않았다.
몬스터들을 상대할 땐 가차없었지만 한 명이라도 생존자가 남게 될 상황이면 철저하게 자신의 육체만으로 승부를 봤다. 오러 못 쓰는 척 하라고 말은 했지만 저렇게까지 성실하게 따라 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내심 고맙기까지 할 정도였다.
지금도 멀쩡히 행상인들이 살아 있으니 손님은 오러 없이 싸울 것이다. 그러니 싸움에 오러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뒈져 이 새끼들아!”
문제는 그딴 게 없어도 저 인족 손님이 더럽게 강하다는 것이다.
고블린을 짓밟으며 다가오는 말의 돌진을 피해 손님을 떨구려고 창을 휘두른 마족은 분명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제대로 들어가기만 했다면 승모근에서부터 갈비뼈를 정확히 대각선으로 후려쳐 나자빠뜨렸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손님은 상체를 과감하게 뒤로 눕힘으로써 대각선으로 휘둘러지는 놈의 창을 피할 뿐만 아니라 그 자세 그대로 아래에서 위로 검을 휘둘러 창을 쥐고 있던 마족의 목을 날려버렸다. 창은 허공을 갈랐고, 그마저도 미처 다 가르기 전에 손님의 오른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할 게 없어서 몬스터랑 붙어먹고 사람을 습격하냐! 에파가 님께서 피눈물을 흘리겠다 씨발것들아!”
튕기듯 제자리로 상체가 돌아오는 것과 함께 빙그르르 돈 창이 순식간에 손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며 도적에게 날아든다. 말도 안 되는 묘기로 공방을 소화해내는 광경에 입이 떡 벌어진 탓에 미처 반응조차 못하고 있던 도적 하나가 그렇게 창에 맞아 죽었다.
그 모든 동작에 오러가 없다. 오로지 육체 능력인 것이다.
“비상! 씨발 비…!”
“네놈들 대가리가 비상飛上이다!”
범상찮은 실력인 건 알았지만 기본기마저 탄탄할 줄은 몰랐기에 매번 보는 맛이 새로운 손님의 전투였다. 거기엔 틈틈이 쉬지 않고 주둥이를 놀리는 것도 한몫했다.
말하는 것만 보면 분노에 눈이 돌아간 것같은데 정작 검술과 행동은 예리하기 그지없다.
포위가 될 거 같다고 느끼자마자 말에서 뛰어내리며 적을 덮쳐 포위망을 꿰뚫고, 적을 죽이면서 그들이 지니고 있던 단검이든 사용하고 있던 무기든 뭔가를 빼앗아 다음 적을 견제하는 데 사용한다. 대체 어느 틈에 저걸 다 파악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그것만으로 열넷은 되어보였던 도적 중 반이 죽었다. 짐승처럼 조련되어있던 고블린들은 말과의 충돌에 서넛이 죽은 뒤로 슬쩍 눈치만 보고 있다가 도적들이 일방적으로 죽어나가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친 지 오래다.
모든 인간들이 오러 없이 저만큼만 싸울 수 있었으면 전쟁이 훨씬 일방적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이 개새끼가!”
순식간에 동료들이 죽어나가자 눈이 돌아간 마족 하나가 몸을 뒤틀며 달려든다. 불거진 혈관과 이상하리만치 빠른 속도로 인해 마력을 통한 일시적인 신체 강화라는 걸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지만 칼 칸시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어제 마주친 도적들이 저 짓거리를 했을 땐 손님의 안전을 걱정하며 적잖이 당황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왈! 왈! 아르르르!”
…조금 당황하긴 했다. 다른 의미로.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손님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종베기를 시도하는 도적의 공격을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으로 파훼하며 놈의 심장에 정확하게 검을 찔러넣는다.
“꺽!”
아차할 틈도 없이 도적의 어설픈 가죽 흉갑은 날카로운 찌르기를 견디지 못하고 주인과 함께 꿰뚫려 버렸다. 가히 예술에 가까운 거리 측정이었으나, 눈을 부릅 뜬 채 마지막 단말마를 토해내는 도적을 옆으로 밀쳐내며 녀석의 검을 빼앗은 손님은 시큰둥하기 그지없다.
“기본도 안 된 병신이 빨리 움직여봤자 거기서 거기지.”
그리고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도적의 검을 투창처럼 집어던져 등을 보인 채 도망치던 도적의 명줄을 끊어버렸다. 이쯤되니 도적들도 단순히 종의 차이를 넘어 기술과 경험의 차이를 이해하고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사, 살려…”
“무기부터 내려놓고 비는 게 예의 아니냐?”
손님이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인 채 쏘아붙이기가 무섭게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다섯 도적들의 손에 들려 있던 병장기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러자 손님은 그렇게 떨어진 무기를 멀뚱히 바라본 뒤 여전히 기울어진 시선을 다시 도적들에게 옮기며 입을 열었다.
“예의차려도 살려줄 생각은 없는데?”
이번엔 도적들뿐만 아니라 행상인들조차 경악하고 말았다.
“이, 이 악마같은 새끼!”
너무나도 당당한 한 마디에 순간 벙찐 도적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다시 무기를 쥐려 했지만 그러는 동안 이미 두 놈이 죽고 말았다. 급하게 무기를 쥐느라 자세도 제대로 잡지 못한 다른 셋도 다를 건 없었다.
“손님. 갈 길 서두르자면서 매번 이렇게 엮이면 어떻게 해?”
“이딴 걸 눈뜨고 방치할 수 있을 정도로 인성이 썩질 못해서 어쩔수가 없다. 적당히 합쳐서 계산해줄게.”
“됐수. 어차피 이제 코앞인데 뭐.”
결국 싸우는 시간보다 행상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는 게 더 오래걸렸다. 약간의 사례만 받고 미련없이 행상과 시체들을 뒤로하는 손님을 보며, 칼 칸시는 요 며칠 꾸준하게 느껴온 의문을 입에 담았다.
“손님은 마족에게 반감 없어?”
비단 마족만이 아니다. 첫대면부터 다른 종족을 대하는 데 있어 아무런 주저도 보이지 않았다. 마족령에서 살아온 인족처럼 태연하게 행동할 수 있었기에 검문조차 빠르게 넘어갔을 것이라는 게 칼 칸시의 판단이었다.
억양만 놓고보면 영락없는 이티스엘 토박이인데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할까.
“어.”
그런 의문을 담아 일주일간의 고심 끝에 던진 질문이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허망할 정도로 단순했고, 칼 칸시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 내일이면 렌기에 에파가시에라에 도착하고 고용도 끝날 텐데, 이 인족 손님은 매일 매일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결국 간만에 자극되는 호기심 속에서 칼 칸시는 이 유쾌한 고용 관계가 좀 더 유지될 방법이 없을지를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