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95)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95화(495/599)
[495화] The Stowaways Guide to the Demon’s territory칼 칸시는 유능한 길잡이였고, 우리는 마족령의 개판 현재진행형에 가까운 치안에 개탄하면서 여행한 끝에 목적지에 다다르게 되었다.
“저기가 손님이 고대하고 또 고대하셨던 마신교의 총본산, 렌기에 에파가시에라야.”
참으로 기념비적인 순간이라는 듯 두 팔을 벌리며 기쁘게 알리는 칼 칸시에겐 미안한 일이었지만 빠르게 도착했다고 해서 거기에 동조해 줄 정도로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미 공격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서두른 것이잖은가.
저 멀리 위치한 성벽 인근에 검푸르딩딩한 돌덩이 같은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광경과 아련하게 울려 퍼지는 쿵쿵거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도 명확했기에, 나는 칼 칸시에게 미리 준비한 돈주머니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일정보다 훨씬 일찍 도착할 수 있었어.”
“뭘 벌써부터. 손님도 저기 성벽에 붙은 요상한 덩어리들 보이지? 저거 뚫고 도시에 진입하기까진 방심하면 안 돼.”
“잘 보이고, 잘 알지. 그래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의뢰하려고.”
“…엥?”
고개를 갸웃거리며 귀를 쫑긋 세우는 칼 칸시에게서 익숙한 라이카가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역시 그런 감상에 빠질 시간은 없었기에 일단 박차를 가하며 외쳤다.
“성문이 열리면 내 말이랑 같이 도시에 진입해! 그리고 혹시라도 엄호 병력이 튀어나오면 막고 지켜보라고 해!”
“뭐, 뭐? 잠깐? 손님?”
그대로 돈주머니만 받고 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의 직업 정신을 믿기로 했다. 실제로 여기까지 오면서 그 정도 신뢰는 줄 수 있을 만큼 열심히 맡은 바를 완수한 그였다. 지금은 그의 말대로 성문에 들어가기 위해 잠깐 주변을 정리할 때였다.
우선 성법을 펼쳐 말의 육체를 강화하자 갑자기 넘치는 힘에 당황한 말이 잠깐 투레질한다. 하지만 금방 고삐에 순응하고는 더욱 힘차고 빠른 속도로 질주한다.
숲을 지나 드넓은 평원에 진입하자 오른쪽 끝자락에 위치한 숙영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도시 너머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와 시리도록 맑고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참으로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광경이었으나 저게 마왕군의 부대일 게 뻔했기에 그 감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평원은 깔끔하다. 그 어떠한 공성전의 흔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깔끔한 탓에 부러진 병장기와 사람들의 시체 그리고 뒤틀린 언럭키 헐크들의 사체가 유독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살아서 움직이는 괴물들은 열 마리. 죽은 괴물은 여덟 정도.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싸운 것치고는 괴물의 사체도, 아군의 시체도 적은 편이다.
“말려 죽이려고 하고 있었군.”
마신교와 렌기에의 병력을 무시하려는 건 아니지만 언럭키 헐크 18마리가 동시에 날뛰었으면 절대 저 정도만 죽고 안 끝난다. 하물며 소드 마스터 급의 강자가 도시에 있었다면 진즉에 다 몰살 시켰을 테니 더더욱 숫자가 안 맞는다. 차라리 마왕군 쪽에서 순차적으로 괴물들을 투입해서 압박을 주고 있으며, 도시는 이를 알고 수성에 들어갔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저 열 마리를 다 죽여도 또 다른 괴물만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나서 괴물들을 싹 다 죽인 나에 대한 보고가 마왕군 상부로 들어가겠지.
마음 같아서는 싹 다 죽여 버리고 시작하고 싶지만 성녀님 쪽의 준비가 아직 만전이 아닐 경우 괜한 경계심만 불러일으켜 적들이 대응할 시간을 만들어줄 뿐이다.
그리 판단이 끝남과 동시에 투구를 꺼내 쓰고 말에서 뛰어내렸다. 다행히 다른 곳으로 빠지는 일 없이 말은 도시의 입구를 향해 계속 달렸고, 나는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괴물들을 바라보며 마력과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당장 해야 할 일은 칼 칸시가 도시에 진입하기 전까지 괴물들의 시선을 끈 뒤, 한 마리는 확실하게 죽여 버리는 것.
마력시로 훑어보았지만 주변엔 감시 마법조차 없다. 저 멀리 떨어진 마왕군은 언럭키 헐크가 죽었다는 건 알지언정 내가 얼마나 일방적으로 죽이는지는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성벽에 올라 있는 이들은 다르다. 그들은 놈들의 정신나간 회복력과 괴력을 알 것이고, 그렇기에 내가 한 놈을 확실하고 빠르게 죽여 버리는 게 뭘 의미하는지 잘 이해할 것이다. 저딴 놈들에게 포위되어 사기가 좆박았을 이들에게 내가 당장 해 줄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검을 허리에 둬서 랜스 차징하듯 자세를 잡고 한층 더 마력을 끌어올린다. 그러자 최근 순수 근력만으로 움직이던 몸이 납덩이라도 벗어던진 것처럼 가벼워지며 힘이 넘쳐나기 시작한다. 그동안 마력 기관도 휴식을 취한 것인지 어째 더 힘차게 가동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건 마력뿐만 아니라 신성력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뭔가에 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잘 움직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족쇄를 끊어내는 것처럼 빠르게 휘몰아친다.
조금 광신도같지만 순간 에파가 님께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에, 나를 발견하고 달려오는 언럭키 헐크를 마주하면서도 애써 미소 지으며 외쳤다.
“에파가 님! 한 놈 더 올라갑니다!!”
그런 내 외침에 반응하듯 검조각이 터져 나갔다.
◈
칼 칸시는 웃었다.
웃지 않고서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에.
처음엔 괴물들의 무서움을 알지 못해 기어이 무모한 짓을 저지르나 싶었던 손님이 범접할 수 없는 속도로 대지를 터트리며 달려드는 모습 이후로 칼 칸시는 계속 그 상태였다.
“용사였다고? 손님이 용사였다고!”
전선의 소문은 땅굴과 이어진다. 밀수와 밀항으로 먹고사는 만큼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칼 칸시는 자신이 들었던 소문과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조합하여 어렵지 않게 정답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제국의 용사와 함께 전선을 뒤흔들어놓았다는 마신의 인족 용사. 그의 손님 에단 라비셔가 바로 그 용사라는 사실을.
저런 움직임을 발휘하고 있는데 오러가 안 느껴질 수가 없다. 인족이 에파가를 찬양하며 신성력을 터트리는 걸 보고 오해를 할 수 없다. 정말 오랜만에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으며 칼 칸시는 빠르게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굳게 닫혀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성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는 걸 보자마자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손님의 마지막 의뢰를 이행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다행히 멋대로 달려나간 손님의 말을 쫓기 위해 힘쓸 필요는 없었다. 녀석은 알아서 잘 성문 쪽으로 달려갔으니까.
하지만 빠르게 열리는 성문 너머에 보이는 병력들은 말이 막아줄 수 없었기에 서둘러야 했다.
“젠장! 제발 너도 알아서 잘 달려와라!”
신성력으로 축복이라도 걸었던 것인지 순식간에 도시까지 뛰어간 에단의 말과 달리 칼 칸시의 말은 평범하다. 이 정도 거리면 차라리 칼 칸시가 전력 질주하는 게 말보다 빨랐기에 결국 칼 칸시는 간만에 네발로 뛰고자 말에서 뛰어내렸다.
말에 짐 대부분과 돈이 실려 있는 건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돈은 또 벌면 되지만 이런 대사건과 엮일 기회는 많지 않으니까.
괴물들의 괴성과 함께 놈들의 발소리와 주먹질이 지축을 울리는 와중에도 칼 칸시는 그저 똑바로 달렸다. 동시에 세 마리나 되는 괴물들이 에단에게 달려들었지만 누구도 그 이상 넘어오지 못하고 있었기에 위험은 없었다. 오히려 힘들게 막는 것도 아니고 되려 괴물들이 밀리는 기색이 역력한 게 신기해서 시선을 빼앗길 지경이다.
가까스로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을 견뎌 낸 칼 칸시는 거의 반쯤 구르다시피 성문 앞에 멈춰 서며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도시의 기병대에게 두 팔을 휘저으며 외쳤다.
“이보쇼! 멈춰! 멈추라고! 엄호 필요 없어!!”
솔직히 스스로 말하고도 험한 말이 돌아올 거라 여겼거늘, 대체 얼마나 많은 제식 훈련을 받은 것인지 기병대들은 투레질하는 말을 진정시키며 침묵할 뿐이다. 그 말도 안 되는 정숙함에 살짝 당황한 칼 칸시가 계속 팔을 흔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 고민하는 사이 기마대가 반으로 나뉘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양 옆 머리에서부터 자라나,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이마를 거쳐 위로 자라난 뿔과 검은 머리. 유독 짙은 검은색으로 점칠된 갑옷과 마갑.
“엘드미아 님께서 언질하신 내용이 있습니까?”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마신교의 성녀였다.
“어… 엘드미아? 저 친구 이름은 에단인데…”
“…용사님을 지칭한 게 맞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역시 용사였고, 역시 가명이었군. 오싹오싹한 기분 속에서 미소 지은 칼 칸시는 자신의 말이 뒤에서부터 달려오는 것에 안도하며 성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기다리고, 지켜보라고 하더군.”
부연 설명은 필요 없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것인지는 칼 칸시도 알 수 없었으나, 괴물 하나가 단말마가 분명한 비명이 들려왔기에.
이에 고개를 돌려보니 반쯤 박살 난 검을 든 채 이제 막 괴물의 목을 친 에… 엘드미아와 남은 괴물들의 모습이 보였다. 투구 때문에 표정을 알 수 없었으나 그는 한 마리를 죽인 뒤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남은 두 괴물들을 뒤로한 채 성문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남은 괴물들은 그런 엘드미아의 뒤를 치지 않았다. 정확히는 자꾸만 자신들의 몸을 뒤척이고 헤집으며 자해와 같은 행동을 취할 뿐이다. 그 기이한 광경조차 엘드미아가 의도한 결과라는 걸 이해한 칼 칸시는 지금 그가 느긋하게 걸어오는 게 뭘 위해서인지 확실하게 이해했다.
저 압도적인 괴물을 압도적으로 유린할 수 있다는 희망.
“…용사님.”
“성녀님.”
말에서 내린 성녀가 우물쭈물 거리는 사이 어느새 성문에 도달해 마법처럼 투구를 사라지게 만든 엘드미아가 태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 인사하자 누군가가 참고 있었던 숨을 토해냈다.
오러는 공부를 통해 느낄 수 있었지만 마력은 별개였기에, 칼 칸시는 마족들의 눈에 마력과 신성력을 품은 인족이 어떤 식으로 보일지 매우 궁금해졌다. 그딴 게 보이지 않아도 전설로 남을 것만 같은 상황에 전혀 연관없는 자신의 심장도 뛰기 시작하는데 당사자들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다행스럽게도 그 의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도우러 왔습니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다시 닫히기 시작하는 성문 너머에서부터 날아든 쇳조각들이 반쯤 부서진 것처럼 보였던 검과 하나가 되며 밝게 빛나자마자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기사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