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499)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99화(499/599)
[499화] 이유있는 폭력데오니 성녀님과 이단 심판관들의 열성적인 호응 아래, 마왕군의 마도구를 찾는 과정은 꽤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쪽! 이쪽이야!]…사실 정말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들의 호응보다도 갑자기 말문이 트인 유사 성검의 네비게이션 능력이 엄청난 성과를 낸 결과였다.
어쩌면 녀석이 말문이 트인 게 아니라 내 말귀가 트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녀석의 수다와 방향 지시를 따라가면 무조건 마도구가 튀어나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성검이 떠드는 소리가 제대로 들린다는 걸 드러낼 수는 없었다.
[아 진짜! 이쪽! 이쪽이라… 오? 눈치가 좀 생겼는데? 이 몸의 힘이 강해진 덕인가?!] [그래 거기를 좀 더… 그렇지! 다른 건 몰라도 역시 뭘 부술 때는 주인만한 게 없다니까!] [에헿, 에헤헿. 스며든다… 강해진다…]자신의 말을 아무도 못 듣는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한시를 가만히 있지 않고 떠들어 대는 시끄러운 성검 때문에.
내가 자기 말을 알아듣는다는 걸 알자마자 무슨 참사가 일어날지 감도 오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모르는 척 하는 중이다.
“역시 성검의 힘을 키우는 게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용사님. 마도구를 찾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군요.”
이런 고충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기에 내 속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성녀님은 처음 신상을 부술 때 내가 했던 고민을 덜어 줄 요량으로 ‘역시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만 반복하고 계신다.
정작 지금 내 표정이 뚱한 이유는 그런 과거의 고민 때문이 아닌데 말이지.
[그럼! 당연하지! 역시 성녀가 뭘 좀 안다니까!]그럴 때마다 정신 나간 성검은 들리지도 않을 말을 떠드며 성녀님의 영특함을 칭찬한다. 물론 그 뒤엔 주구장창 자신의 우월함을 설파할 뿐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귀에서 피가 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한평생 모르고 살았는데 이젠 알 거 같다.
첫 신상에 숨겨져 있던 마도구를 찾아낸 이후로 반나절 가까이 밥도 안 먹고 움직이는 건 그러려니 할 수 있었지만 고막이 아니라 머릿속에 박히는 듯한 성검의 수다는 사람을 녹초로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 용사님? 혹시 흉물의 힘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어딘가 부담이 있으셨던 겁니까? 많이 수척해지신 거 같습니다만…”
[흥, 멍청한 주인이 고생할 건 전혀 없다고! 기껏 해봤자 내가 움직이기 위해 아주 야아악간의 마력과 신성력을 가져다 쓰는 건데 뭐가 피곤하겠어?]그로 인해 동행들이 걱정할 정도로 말이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정신 나갈 거 같다. 양쪽 귀에 각각 다른 이어폰을 꽂은 다음, 음악 네 개를 동시에 틀어 놓고 그걸 다 따로 들으라고 강요받는 기분이다.
그래도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참아야 했다. 언젠간 닥치겠지.
“아뇨, 그냥 배가 조금 고플 뿐입니다. 일단 여기서 마무리 짓고 저녁 식사부터 할까요?”
[안 돼! 더 먹을 거야! 아직 한참 부족해!]비타민이 부족한 사람처럼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 속에서 최대한 온화하게 대답하자 망할 성검을 제외한 모두가 공감했다. 반응을 봐서는 악신의 흉물을 파괴한다는 일에 심취해서 식사를 걸렀다는 사실조차 깜빡한 모양이었다.
“중간부터 속도가 붙은 터라 저도 모르게 조금 들뜬 모양입니다. 일단 신전으로 귀환하도록 하죠.”
“맞는 말씀입니다. 아직 도시의 반도 둘러보지 못했으니 식사 후 야간에 몇 군데 더 확인한 뒤 나머지는 내일 둘러보면 될 것 같습니다. 용사님은 괜찮다고 하시지만 피곤하신 기색이 역력하니까요.”
서로를 배려할 줄 아는 팀원이란 항상 아름다운 법이지만, 성검의 수다에 시달리느라 유독 더 피곤했던 하루라서 그 사실이 더욱 뼈에 사무친다. 덕분에 나는 내 걱정을 해준 이단 심판관에게 미소로 화답할 수 있었다.
“배려 감사합…”
아니, 화답하려고 했다.
[안 된다니까! 너희만 먹을 거야? 나도 먹어야 살 거 아냐! 성녀!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거 배신이야!]성검이 기가 막히게 헛소리를 지껄이며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처먹기만 한 주제에 마치 지금까지 굶었다는 듯 떠드는 걸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뚜껑이 열리며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손뿐만이 아니라 입에도.
“이 양심 없는 날붙…!”
이래서 피로가 쌓이면 빨리 업무를 멈추고 쉬어야 하는 법이다.
나는 성검에 시선을 가져간 상태로 굳어 버렸고, 다른 이들은 내가 취한 행동에 놀라 굳어 버린 동안, 기묘한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성검만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주인…?]“씨발…”
[주인내말들렸어?들리는 거지?대체언체부터?!아까나때릴때부터사실들렸던거야?아니면처음먹었을때부터들린건가?!]“용사님…?”
머릿속이 정리가 안 되는 탓에 잠깐 손을 들어 유예를 둬야만 했다.
성검은 주둥이가 없다. 일종의 사념으로 의사를 말처럼 전달하는 것에 가깝다.
[와진짜섭섭하다주인!우리가함께지내온시간이얼만데모르는척반나절넘게버틸수가있어?내가싫어?귀찮아?내가주인편하게해주려고열심히강해지고자저구질구질한악신의잔재도꾸역꾸역먹는데그노력을칭찬해주지는못할망정무시를했다고?어라?그러면아까부터주인욕한것도다듣고있었다는거잖,아이.내가주인을얼마나좋아하는데.농담인거알…]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사념이 일반적인 속도로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겼다.
전혀 아니었다. 사념의 전달 속도는 순전히 성검이 자체적으로 조절하는 것에 불과했다.
“제발 부탁이니, 천천히 말해.”
[앗, 미안. 너무 흥분해 버렸네.]“세상에! 성검이 사념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입니까?!”
‘엣큥!’이라는 느낌으로 헤헤거리는 탓에 당장 내던지고 싶었으나, 성검을 바라보는 성녀님과 이단 심판관들의 시선이 너무나도 감격에 겨웠던 터라 차마 그럴 수 없었다.
◈
마신전에 돌아온 뒤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이유는 당연히 성검 때문이었다.
내게는 아가리 봉인을 걸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투 머치 토커에 가까웠으나, 표면적으로는 악신의 뒤틀린 권능마저 흡수하여 정화할 뿐만 아니라 의사까지 표현할 줄 아는 지고의 성유물이다.
비록 나 이외에 누구도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할지언정 용사와 성녀가 입을 모아 성검이 말을 전한다고 하는데 누가 의심하겠는가?
그 결과, 성검은 지금 신전의 예배당에 안치된 채 수많은 신도들의 기도를 한 몸에 받는 중이다.
오직 나만이 들을 수 있는 한심한 웃음소리와 자뻑 가득한 헛소리를 내면서.
지친 몸을 이끌고 예배당 2층에 앉아 스튜와 빵을 찍어먹으며 끊이지 않는 방문객의 행렬을 바라보던 나는 옆에서 1층에 펼쳐진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성녀님에게만큼은 사실을 말하고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건 분명 뒤틀린 황천의 성검이 분명합니다. 에파가 님께서 저런 경박한 계집같은 의지를 성검에 내리셨을 리가 없습니다.”
“…그 정도입니까?”
“지금도 자아도취 중입니다. 더욱 찬양하라, 마신을 의심하지 말지어다. 뭐 이런 소리를 하는군요.”
“…그,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문제는 저 성검의 말뽄새에 있을 뿐.
거기까지는 입에 담지 않았지만 내 뚱한 표정을 본 성녀님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챘는지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가 바로! 어머니 에파가께서 현세에 내리신 축복의 상징! 에스테 파이렐 리 아가스야! 더욱 찬양해!]“…자기 이름이 에스테 파이렐 리 아가스 라고 하는군요.”
“으음, 그게 사실이라면 반박의 여지가 없는 성물입니다.”
나도 모르게 ‘진짜?’ 라는 표정을 짓고 말았지만 다행히 성녀님은 그걸 뭐라 하지 않으셨다. 대신 조용히 내 옆에 앉아 설명을 이어 나갔다.
“마신께서 승천하시기 전까지 사용했다고 알려진 무기가 성창聖槍 에스테 파이렐 리 아가스입니다. 경전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고, 실제로 성물로 보관되고 있죠,”
“…그러니까 에파가 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저 수다쟁이를 창에 넣고 싸우셨단 말씀이십니까?”
“어, 조금 다릅니다. 에파가께서 신격을 얻어 승천하시는 그 순간까지 함께 했던 무기였기에 격이 올라 자아가 생겼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설령 그렇다고 해서 저 경박한 에고ego가 대체 어디서 샘솟은 것인지 도무지 믿기 힘들다고 투덜거리며 빵을 씹어 먹으니 성녀님이 자신의 왼쪽 뿔을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교단의 역사와 함께 한 용사님들은 모두 성창 에스테를 사용했거든요. 다른 무기에 축복이 내려 성물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전대 용사들이 성물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기록도 없고 말이죠.”
순간 1층에서 신도들의 기도를 받고 있는 저 성검이 진짜 짭검인가 하는 의구심이 샘솟았으나… 내가 그런 걸 의심할 처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깨를 으쓱였다.
“흠, 신기하긴 하지만 인족에서 용사가 나온 마당에 새삼 놀라울 건 없다는 느낌이긴 하네요.”
“후후후,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군요. 사실 이례적인 걸로 따지면 엘드미아 님이야말로 최초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내용은 나중에 에파가 님을 한 번 더 뵙게 되면 물어볼 기회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아래로 시선을 내리니, 좋아 죽을 것처럼 웃어대던 성검이 내게 말을 걸었다.
[보고 있어 주인? 이게 나야!]덕분에 한 가지 이해가 안 되기 시작했다.
저거 분명 몸에서 완전히 떨어졌는데 어떻게 말을 걸고 있는 거지? 설마 신성력을 흡수하면서 영향력이 커진 부작용인가? 그럼 평생 저 수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인데?
밥 먹다 말고 세상 심각한 상황에 집중하며 녀석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내 시야에 이빠진 검신이 들어왔다.
“…하, 저거 머리 굴리는 거 봐라.”
여전히 수복이 덜 된 상태였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있어야 할 조각 하나가 빠져 있는 검신이. 그걸 보자마자 마력을 운용했다.
[아앗! 일부러 남겨둔 건데!]아니나 다를까 마력을 운용해서 몸을 훑자 검집 안에 달라붙어 남아 있던 검조각이 딸려 올라왔다. 그걸 손가락으로 튕겨 성검을 향해 날리고 나니 머릿속에 들려오던 녀석의 말소리가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앞날이 막막하다 정말.”
잔머리 쓰는 성검이라니, 한숨이 절로 튀어나온다.
내가 튕긴 검조각은 모두가 고개 숙여 기도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성검으로 날아들어 빈자리를 채웠다.
그러자 녀석은 대화 수단이 막혔다는 것에 투정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물리적으로 몸을 떨었고, 기도하던 사람들은 그걸 보며 성검이 축복을 내린다며 더욱 기뻐했다.
참 많은 오해가 뒤섞였지만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었기에 나와 성녀님은 한동안 조용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