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0)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0화(50/599)
길드의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어 연회 수준으로 치솟을수록 우리의 이야기는 마무리되어 갔다.
생활고에 시달리기 쉬운 모험가에게 이런 할인 행사는 간만에 마음놓고 먹고 마실 수 있는 기회인건지 주변의 소란스러움은 더욱 중첩될 뿐이었다. 이래서는 작정하고 들으려해도 들을 수 없을 정도다.
“전달할 내용들은 이 정도입니다. 눈에 덜 띌 수록 좋으니 6시까지 모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이제 할 거 다 했으니 일어나려는 듯한 뉘앙스로 둘러보는 엔그림을 향해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의아함 가득한 시선을 던졌다. 가장 중요한 걸 빼먹었는데?
“금제는요?”
렐리에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엔그림은 웃어보였다.
“그런 건 없습니다.”
“예?”
“이미 금제를 걸어야한다는 조건 하에 오신 것만으로 충분하니까요. 게다가 영구적으로 의뢰와 관련된 말에만 제약을 거는 금제라니, 저희 쪽에서 감당 못합니다.”
그것마저도 시험이었던건가. 전사 넷은 허탈하게 웃어보였고 렐리에는 뭔가 불만인 듯 혀를 찼다.
“하하! 렐리에는 그 정도 금제면 엄청난 고등마법이라며 두고두고 연구하려고 했었지! 아쉽겠네!”
“손해본 기분이네요 정말이지.”
예카트리나가 렐리에의 의자 등받이를 탕탕 치며 말하는 것을 듣고 나서야 왜 그런 반응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마법사들이 다 저런지는 몰라도 그녀의 탐구심이 대단하다는 것만큼은 확실해보였다.
“그러면 내일 북문에서 뵙겠습니다. 이동을 위한 말은 저희가 준비할테니 짐은 거기에 맞춰서 챙겨오시면 됩니다.”
이동수단까지 대여해주는 맞춤 서비스를 기약하며 엔그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히 더 놀고 마셔도 상관없다고 말한 그였지만, 우리들도 나름의 준비를 해야했기 때문에 역시 여기까지만 하고 헤어지기로 했다.
그렇게 원래 같은 파티로 움직이던 렐리에와 예카트리나를 제외한 모두가 따로 따로 자신의 숙소로 향하면서 모임은 끝이 났다. 신기할 정도로 숙소가 겹치지 않았기에 나는 별 어려움없이 돌고 돌아 오가토르프 저택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어둠이 내리고 고요하기 그지없는 저택과 정원을 지나 숙소로 가려던 찰나, 갑자기 느껴진 인기척이 발걸음을 붙잡았다.
“늦어.”
어차피 준비는 항상 되어있기에 딱히 더 구비해야할 건 없던터라 돌아오자마자 씻고 자려던 나의 원대한 계획을 깨부수는 셰릴의 목소리에 난 진심으로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너 설마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거냐?”
체감상 거의 8시는 된 거 같은데 대체 몇 시간을 기다린건지 알 수 없는 셰릴이 정원에 있는 벤치에 앉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의뢰내용 전달받는 과정에 길드 사정이 엮여서 저녁부터 만났거든. 그전에는 너도 알다시피 라그니스하고 간만에 이야기 좀 했고.”
별 거 없는 하루였지만 묘하게 길게 느껴지는 하루이기도 했다. 새삼 피로를 느끼며 옆 자리에 앉자 잠시 허공을 바라보던 셰릴이 입을 열었다.
“의뢰. 얼마나 걸릴 거 같아?”
“대충 3일? 비밀 엄수가 중요한거지 딱히 어려워보이진 않더라. 다른 사람들도 한가닥 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냥 무난히 갔다가 무난히 돌아올 듯?”
“…그래.”
간결하게 대답하며 셰릴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정말 그 말을 듣기위해 기다렸다는 것처럼 쿨하게 저택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에 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진짜 존나 쿨하네.”
쟤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진짜 개상남자였을 것이 분명하다.
◈
어쨌든 셰릴이 빨리 일어난 탓에 내 숙면 계획은 큰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덕분에 새벽 5시에 일어났음에도 개운하기 그지없는 기상을 맞이한 나는 빠르게 씻고 준비한 뒤 여행장비를 챙겨 저택을 벗어났다.
내가 모험가 장비를 챙겨 떠나는 것을 보고 반응하는 사용인은 아무도 없었다. 이번에도 그냥 셰릴에게 맞추기 위해 등급 올리러 가나보다 하며 무심히 인사할 뿐이다. 참 멋진 근무 환경이라니까.
이 시간이라고 해도 모험가들을 상대로 식량을 파는 이들은 항상 움직이기에 난 북문에 도착할 때까지 어렵지 않게 약간의 육포와 아침용 빵을 구입할 수 있었다. 거대하다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바게트빵을 생으로 씹어먹으며 털레털레 걸어가자 괜히 이른 아침부터 오그웬을 거닐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알싸하게 소름이 돋았다.
2년도 안 지났는데 벌써 10년은 된 기분이었다.
“상당히 빨리 왔구만 엘드미아. 젊은 친구가 시간 관념이 제법이야.”
그렇게 묘한 고양감을 느끼며 도착한 북문에는 긴이 홀로 앉아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야말로 드워프에게 어울리는 배틀 엑스를 대충 외벽에 세워둔 채 자신의 짐을 대충 깔고 앉아 있는 모습은 참으로 모험가다웠다.
“저도 나름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언제부터 오신거에요? 마족 숭배자 머리통 쪼갤 생각에 신나서 밤이라도 새셨나?”
“껄껄껄. 그런거로 두근거리기엔 나도 나이를 먹었지. 끽해봤자 한 10분 정도 먼저 왔다네.”
저택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대충 10분에, 내가 어기적어기적 온 걸 감안해도 이제야 겨우 30분을 넘겼을텐데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해서 30분간 그냥 멍하니 있기도 뭐한 탓에 옆에 짐을 내려놓은 뒤 가방에 넣어두었던 커피가루 주머니를 꺼내 북문 경비들이 있는 경비초소로 다가갔다. 초소 문지방을 노크하듯이 두드리자 이제 막 교대를 한 것인지 한창 잠에 취한 것으로 보이는 두 경비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새벽부터 고생하십니다!”
“허어. 그 쪽도 새벽부터 고생하는구려. 검문 받으시게?”
“그건 조금 있다가 일행들이 모이면 부탁드리고 싶네요. 다름이 아니라 따뜻한 커피나 좀 나눌까 하는데, 불 좀 빌릴 수 있으려나요?”
“커피? 이미 끓여놓은 물도 드리리다!”
“이야, 역시 수도 경비는 인심도 좋다니까.”
너스레를 떨며 들어서서 주머니를 넘겨주자 두 경비 얼굴에 웃음 꽃이 피었다. 서민들의 커피라고 해봤자 끓는 물에 그냥 커피콩 가루를 같이 넣고 우려내는 쓴맛 가득한 각성제일 뿐이지만, 그마저도 마실거리 부족하고 즐길거리 없는 이들에게는 소소한 즐거움에 속했다.
경비들은 주머니 째로 받았음에도 매우 양심적으로 커피가루를 사용한 뒤 돌려주었고, 나는 그들이 빌려준 컵에 따뜻한 커피를 담은 채 밖으로 나왔다.
“일찍 일어나는 이가 커피를 마시는 법이죠.”
예상치못한 커피를 선물받은 긴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기뻐했다.
“허! 정말 넉살도 좋군. 스물 넘은 모험가도 삐딱한 놈들 투성인데 말이야!”
“다 삶의 지혜 아니겠습니까.”
“껄껄껄! 그렇지! 결국 모난 곳 없이 어울려 지내는 것이 삶의 지혜지!”
모난 곳 많기로 소문한 드워프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온다는 게 새삼스럽지만, 모험가가 되는 엘프도 나름의 사정이 있듯이 모험가가 된 드워프도 나름의 사정이 있으리라. 어쨌든 커피 덕에 한결 누그러지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우리는 느긋한 마음으로 다른 동료들을 기다릴 수 있었다.
“와. 세상에. 아침부터 커피향이 진동을 하네? 경비들이 나눠준거에요?”
5시 50분 정도가 되었을 때 도착한 건 렐리에와 예카트리나였다. 겉으로만 보면 예카트리나가 팔팔하고 렐리에가 잠에 취해 있어야 할 거 같은데, 정 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난 둘 덕에 나와 긴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예카트리나. 눈 좀 떠봐요. 잠이라도 설친 겁니까?”
“으으. 새벽에 일어나는 건 언제나 힘들어.”
결국 둘의 맑은 정신을 위해 한 차례 더 경비들의 도움을 받았다. 다행히 경비들은 십년지기 친구라도 맞이해주는 것마냥 정겹게 받아들여줬고, 그녀들이 커피를 다 마실 때 즈음에야 가엔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음? 아침부터 분위기가 훈훈하구만.”
다섯 마리의 말을 능숙하게 홀로 이끌며 다가온 그의 모습에 우리는 짧은 의아함을 느끼다가 동시에 이해했다.
“하긴. 너무 눈에 띄겠네요.”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이들과 파티를 꾸린다는 건 참 마음 놓이는 일이야.”
명색에 길드장인데 직접 오는 것도 문제고 길드원을 통해 말을 끌고 나타나 모험가들에게 말을 빌려주는 듯한 모습도 문제였겠지. 어제 바로 눈치채지 못한 게 신기할 정도다.
“나도 숙소에 들어선 뒤에야 깨달았거든. 뭐, 눈치챈 김에 가서 말하고 내가 받아오기로 했다네.”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참으로 멋있는 가엔달의 머리에 비친 햇빛이 마치 후광마냥 번쩍였다.
“시작부터 조짐이 좋네요. 놓칠 뻔한 부분을 눈치 채고, 맑은 정신으로 활동할 수 있는 커피까지 함께하다니. 모든 의뢰가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후후.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의뢰 중에서 가장 심각한 의뢰가 이렇게나 깔끔한 시작이라니. 참 역설적이네.”
정말 실례되는 이야기지만, 야만전사 그 자체인 모습의 예카트리나가 커피를 마시며 역설을 입에 담는 모습은…괴리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사실 그녀도 문명전사인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