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01)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01화(501/599)
[501화] 이유있는 폭력죽은 악신의 잔재로 만든 실패작, 속칭 ‘찌꺼기’는 마왕군의 버림패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착용해도 똑같은 괴물로 변해 주변을 공격할 뿐만아니라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게 되는 물건이다. 마왕군은 일반 병사조차 일정 수준의 강자이다 보니 이들을 일회용 소모품처럼 운용한다는 건 사령부도 원치 않았다.
허나, 그렇다고 그냥 버리기에도 아까운 부산물이었다. 그래서 군은 누구나 ‘똑같은’ 괴물이 된다는 점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처음으로 나온 의견은 이를 무기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상처를 입히는 것만으로 무기에 담긴 악신의 잔재가 대상에게 전이하여 변이와 괴사를 일으키는 형태의, 어떤 관점에서보면 질병과도 같은 무기.
돌이킬 방법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즉효성이고, 안전성을 보강하는 게 아니라 되려 떨어뜨리는 방법을 통해 빠르게 육체의 붕괴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게 밝혀지자마자 제작에 착수하게 된 무기는 마왕군의 뒷공작에 매우 유용한 도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관리가 용이하지 않아 대량 생산이 힘들었다. 칼날은 사람을 가려가며 찌르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때 새로운 착안점을 제시한 게 바로 지금은 명을 달리한, 탑을 쌓는 자 칼레시였다.
일반 병사가 아까우면 병사조차 되지 못한 자들을 버리면 된다는 발상.
그들의 자발적인 행동은 기대하기 힘드니 행동을 제어한다는 발상.
사람의 정신에 깊게 개입하여 주무르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고 있던 그녀다운 발상이었고, 군은 이를 승인했다.
어차피 마족령에는 한 번 쓰고 버리는 정도의 가치밖에 지니지 않은 수감자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반역자 역시 써먹을 수 있고, 생포한 적들에게도 써먹을 수 있다.
무엇보다 마도구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착용자가 높은 확률로 죽거나 반신불수가 된다는 문제점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칼레시가 제안한 ‘제어’조차 어렵지 않았다.
-삐이익!
마왕군은 찌꺼기의 희생양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으니 실로 완벽한 조건이었다.
“뭐야, 갑자기 하나가 죽었는데?”
그렇게 탄생한 것이 잔재가 깃든 마도구를 착용한 대상을 강제로 제어할 수 있게 만드는 군중 제어 마도구.
통칭 ‘공방工房’.
당연히 모든 마도구를 제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병사들 사이에서는 이제 개 목걸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는 전용 마도구에 억압된 이들만이 공방의 통제를 받는다.
뿐만 아니라 일일이 대상을 끌고 와서 마력으로 연결을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며 최대 스무 개까지만 관리가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찌꺼기의 강력한 위력을 감안했을 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죄수로 편성된 버림패들이 병력으로 인정받고, 이를 관리하는 마법 병과가 따로 탄생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며칠 전에도 한 마리 죽었다며. 슬슬 발악할 때가 되긴 했지.”
“이 새벽에?”
공방의 완성과 함께 발족發足된 ‘인형사’ 소속의 환영 마법사 아르세 디풋은 그렇게 공방 조종사로 전선에 투입된 환영 마법사들 중 한 명이었다.
며칠 전 갑작스레 침식체 하나가 죽어 버린 탓에 2인 1조 3교대로 밤낮없이 공방에 연결된 마도구의 상태를 확인하게 된 그와 같은 조원들은 이제 막 졸음이 쏟아질 무렵에 울린 경고음에 절로 구겨지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공방을 살폈다.
렌기에 에파가시에라의 광신도들이 새벽에 갑자기 미치기라도 한 것인지 개체의 생사를 알리는 불빛 하나가 정말로 꺼져 있었다.
“보통 아침에만 싸웠잖아. 혹시 밤에 취약하지 않을까 싶어서 나온 거 아니겠어?”
“씨발 하필 내 근무 때 지랄이야…”
그들 역시 칼레시와 그녀의 휘하 부대원들이 사용했던 마도구를 착용하고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완성도에서 차이가 나는 물건이었기에 출력과 안전성에서 차이가 났다.
이미 죽은 존재라 하더라도 엄연한 신. 그런 존재를 가공해 마도구로 만드는 과정이 순탄할 리 없다. 전투에 직접적으로 엮이는 이들이 아니면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물건을 받는다.
저항하는 죄수의 마도구를 강제로 조종해서 저 성벽까지 가게 만드는 것과 거기서 마도구의 안전장치를 해제하는 것만으로도 심혈을 기울여야 할 정도로 말이다.
비록 그 사실을 모르는 다른 병사나 간부들은 그들을 죄수들이나 끌어다가 초원에 풀어놓는 게 전부인 할 거 없는 잡부 정도로 인식하고 비웃었지만, 실수 한 번 하면 마도구의 찌꺼기가 역류해서 마법을 시전하는 인형사까지 같이 휘말릴 수 있다는 건 인형사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 내용은 아군에게도 유출하면 안 되는 기밀이었기에 말을 못 할 뿐이지. 그래서 인형사들은 오늘도 푸념이 가득했다.
“좋게 좋게 생각하자고. 그래도 네가 실력은 제일 좋잖아.”
“그냥 등신 머저리처럼 굴었어야 했는…”
-삐이익!
귀를 찌르는 경고음과 함께 천막 안에 있던 세 사람의 움직임이 멈추기 전까지는.
낄낄 거리며 남 일처럼 말하던 동료도, 그에게 이를 갈며 욕을 한 바가지 해주려던 아르세도, 반쯤 졸며 그 모든 상황을 방관하던 다른 동료도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하며 서로를 바라보다가 다시 공방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며 당황했다.
“…또 죽었다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9개였던 불빛이 8개로 줄어든 가운데,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반쯤 졸고 있던 동료였다.
“이거 설마 지들끼리 싸우나?”
“멍청한 소리 하지마. 악신에 침식된 것들은 서로를 동류로 여긴다는 건 이미 검증…”
-삐이익!
경고음과 함께 이번엔 모두가 보는 앞에서 꺼지는 불빛. 7개의 빛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이거 뭔가 잘못…”
그리고 마도구로 따뜻하게 데워진 천막 속에서, 아르세는 극심한 오한과 함께 전신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게 되었다.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상식을 벗어난 상황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 씨발, 씨발! 아르세! 달려! 비상 사태다! 놈들이 뭔가하고 있어! 지휘관을 불러!”
방금까지만 해도 아르세를 놀리며 여유롭기 그지없었던 동료의 다급한 외침을 들으면서도 아르세는 바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겨우 그것 때문에 상황 파악이 느린 머저리라고 욕하는 건 부당한 처사였다.
인지부조화에 걸리는 게 당연하다.
저건 저렇게 꺼져서는 안 되는 빛이다.
-삐삐삐이익!
“씨발 아르세!!”
결국 3개의 빛이 동시에 꺼지는 걸 보며 동료들이 동시에 일갈하고 나서야 아르세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너, 너희는 다른 녀석들 깨워서 죄수들 연결하고 있어! 불침번! 불침번!!”
경험해보지 못했던 공포감 속에서 허우적거릴 틈도 없이 아르세는 천막을 박차고 나갔다.
-삐이익.
그런 아르세의 뒤편에서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보다 작은 마지막 경고음이 너무나도 뚜렷하게 들려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경고음은 아르세의 다리에 힘이 풀리게 만드는 원인이 됨과 동시에, 이 악물고 지휘소로 달려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으나 그가 비상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달린 덕에 이제 막 잠들기 시작했던 숙영지가 훨씬 빨리 수마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절박하게 소리를 지르는 아르세로 인해 깜짝 놀라 깼다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짜증을 부리기 일쑤였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르세는 자신을 가로막으려는 경비병들까지 제치며 다급하게 지휘소에 들이닥쳤다.
“지, 지휘관님! 비상입니다! 적들이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침식체들이 전부 죽어 버렸습니다!”
절차를 싹 다 무시한 보고였음에도 홀로 앉아 병법서를 읽고 있던 지휘관이 미간을 찡그리지 않았다.
그의 인내심이 남달라서가 아니라 공방과 인형사의 대우에 주의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속으로는 반푼이 군인과 다를 바 없는 놈이라며 아르세를 욕하면서 심호흡을 한 젊은 지휘관은 그런 짜증을 전부 숨긴 채 최대한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되물었다.
“인형사 아르세. 우선 물어볼 게 두 개 정도 있군. 전부 죽는 동안 왜 보고를 하지 않은 거지?”
“최, 최대한 빨리 보고한 겁니다 지휘관님! 믿기지 않겠지만 한 마리가 죽기 시작하더니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남은 아홉 마리가 전부 죽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울먹거리며 다급하게 말하는 아르세였지만 어처구니없는 변명에 불과하다고, 지휘관은 생각했다.
침식체가 어떤 힘을 지녔는지 그도 잘 알았다. 당장 자신이 뛰어들어도 그렇게 단시간에 놈들을 처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열 마리 전부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럴 힘이 있었다면 마신교가 뭣 하러 지금까지 도시에 박혀 수성전이나 펼치고 있었겠는가? 제대로 근무를 안 서고 잠들었다가 뒤늦게 발견한 게 분명했다.
그래도 상부의 지시가 있었으니 참아야 했다. 그는 군인이었기에.
“…후우, 좋아. 그럼 다음 질문이네. 챙겨 온 죄수의 수는 아직 충분하지 않나?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서른넷의 죄수들이 남아 있을 텐데?”
당연히 정확한 숫자였다. 그는 자신이 주도하는 전장에서 아군의 정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실패한 지휘관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생각이 추호도 없었고, 그러기 위해 매일 같이 보급 상황과 병사들의 상태를 보고 받으며 정보를 갱신했으니까.
“지, 지금 그들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휘관님! 저희 부대원들이 다 일어나서 죄수들을 모조리 연결해도 한 시간은 넘게 걸립니다! 적은 열 마리를 1분도 안 된 시간에 참살했단 말입니다!”
스스로의 철두철미함을 강조하고자 명확한 숫자까지 제시한 거였는데, 정작 아르세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 여전히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반응으로 허겁지겁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같이 나가보도록 하지.”
순간 짜증이 치솟아 욱할 뻔 했으나 근무를 대충 서고 지껄이는 변명치고는 너무나도 절박한 것도 사실이었기에 지휘관은 생각을 달리 하고 병법서를 덮었다.
사실이라면 도시에서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단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옳았다.
안절부절 못하는 아르세를 두고 느긋하게 털코트까지 두른 지휘관은 기품있는 걸음걸이로 지휘소를 나서며 아르세에게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혹여 보고에 일말의 거짓이라도 있을 경우 군법으로 엄히 다스릴 것이라는 걸 잊…”
그게 지휘관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줄기 빛이 평원을 가로 지르며 그와 그의 주변을 휩쓸고 지나가 버렸기에.
“으, 으아아아!”
졸지에 코앞에서 천막과 사람이 소멸하는 걸 지켜보게 된 아르세의 비명과 함께 숙영지에 혼돈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