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02)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02화(502/599)
[502화] 이유있는 폭력성문을 열자마자 달려드는 괴물을 봤을 때, 나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괴물의 수가 하나로 끝나지 않고 셋으로 불어났을 때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에스테를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놈들을 상처에 소금이 뿌려진 것처럼 펄쩍 뛰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이미 란기에에 처음 입성하는 날 확인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증을 견딜 줄 모르는 놈들은 몸에 틀어박힌 에스테의 조각이 안겨주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손쉽게 목을 내어주었다. 이 역시 상정내였고, 그랬기에 놈들을 순식간에 도륙내는 내 모습에 대기중인 기마대가 환호성을 지르는 걸 들으면서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힘이 넘치는 기분이 든다!]그렇게 모든 일이 다 예상대로 흘러간다고 여기고 있었기에.
[주인! 나의 유용함을 보고 감탄하라고!]나는 열 마리의 언럭키 헐크를 참살하기가 무섭게 뜬금없이 부들거리는 에스테의 외침을 너무나도 가벼이 여기고 말았다.
“뭐? 갑자기 뭔 소리야?”
[거리가 잡히면 보여주지! 내가 끌어모은 힘을!]나는 말에 오르는 대신 그대로 에스테를 고쳐쥔 채 저 멀리 보이는 마왕군의 숙영지를 향해 내달렸다.
내 역할은 단순히 언럭키 헐크들을 처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단기간에 마왕군과의 거리를 좁혀 기병대의 돌격에 대응하지 못할 혼란을 야기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연히 빠르게 적진에 도착할수록 아군의 진입이 수월해지는만큼, 굳이 저 거리 좁히겠다고 말을 타는 것보다 조금 무리해서라도 속도를 높혀 두발로 뛰는 게 나았다.
[어머니 에파가께서 보여주셨던 권능의 편린을 맛보여주지!]이젠 전력질주하다가 돌뿌리에 발이 걸려 자빠질 걱정을 할 필요도 없는 몸이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바닥이 파이고, 어중간한 돌은 짓밟거나 걷어차는 것만으로 터져나간다. 마력으로 강화된 신체 위에 신성력을 통한 가호까지 얹어진 결과는 가히 엄청났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에스테가 내뱉는 중2병스러운 말의 맥락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 주인! 이제 검을 치켜드는 거야! 랜스처럼!]“이, 이렇게?”
[그러면 옆구리 터져! 앞으로 뻗어야지!]너무나도 당당한 녀석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검을 옆구리에 바짝 붙이며 물어보니 에스테는 어이가 없다는 듯 정정한다.
‘그럼 랜스가 아니잖아.’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가면서도 녀석의 자신감의 원천이 무엇일지 궁금해 고분고분 따르고만 것이 나의 실수였다. 적당히 마왕군 진형을 향해 팔을 뻗기가 무섭게 잔뜩 흥분한 것같은 에스테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신벌!]그러자 묵직한 반동과 함께 내 손안에서 섬광탄 한 박스가 터지는 것같은 익숙한 빛줄기가 솟구쳤다.
“미친, 마스터 스파크냐고…!”
아차하는 사이 어두운 평원에 한줄기 빛을 그어버린 그건 신성력이 뭉쳐진 거대한 에너지 포에 가까웠다. 아무런 예고도 없었기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동에 걸음을 멈춘 것도 잠시, 나는 뒤에서 달려오는 아군 기마대로 인한 땅울림을 느끼면서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때! 이게 나야!]땅이 갈려나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평원 위에 있던 눈과 풀들은 굵직한 열선이 휩쓸고 간 것처럼 지글거리며 길고 긴 길을 만든 상태다.
그리고 그 길은 마왕군의 숙영지까지 이어지며 밤중에도 알아볼 수 있을만큼 명확한 구멍을 만들어냈다.
“이, 이걸 아무렇게나 막 쓸 수 있다고?”
솜털까지 쭈뼛 일어날 정도로 막강한 위력에 처음으로 ‘힘’이라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려는 찰나, 방금까지의 들뜬 텐션은 어디갔는지 더할나위 없이 침착해진 에스테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이젠 못 써. 모은 힘 다 썼거든.]“…뭐?”
태연자약하게 심각한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다는 듯 떠드는 에스테 때문에 순간 인지부조화가 올 뻔 했다.
나도 긴장했나봐. 순간 에스테가 1회용 초필살기를 제멋대로 써버렸다고 말하는 줄 알았지 뭐야.
[도시에서 모은 거랑, 저 침식체들에게서 빼앗은 거랑 어머니 에파가께서 힘을 발휘하실 때 넘치지 않았던 힘들까지. 다 썼어. 다시 채우기 전엔 못 써.]빌어먹을. 그게 맞았다.
“야이 정신나간 것아! 그걸 왜 이렇게 멋대로 써!?”
[구, 군대잖아! 기선제압을 확실히 해야 주인이 안 다치지!]“그러면 최소한 지휘소를 노리고 날려야지!”
[아…하?]내 잘못이었다. 에스테가 지닌 보편적 상식과 지식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내 잘못.
…일 리가 있나!
“후우… 일단 전투 끝나고 보자.”
싸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기에 에스테에게 딱밤이나 먹이며 멀뚱히 서 있을 시간은 없었다.
결국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개같이 달려서 길을 마저 여는 거였다.
◈
결과부터 말하자면 전투는 정말 말도 안되게 빠르고 쉽게 끝났다.
“…어이가 없네.”
이곳에 배치된 적들의 전투 숙련도에도 하자가 있었던 게 분명했으나 가장 큰 원인은 시작과 동시에 지휘관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버린 것에 있었다.
그래, 맞다. 에스테가 쏜 눈 먼 빔이 진짜로 지휘관을 날려버린 거다.
지휘관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깔끔하게 소멸한 탓에 대부분의 적들이 명령권자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우리 기병대에 휩쓸리고, 그러다가 해안에서 치고 올라온 아군에게 샌드위치 당해 그대로 털려버렸다.
“그게 지휘소를 갈아버렸다고…?”
사실 지휘 계통이 멀쩡했어도 손쉬운 전투였을 게 분명했다. 그만큼 적들의 숙련도가 낮았다. 악신의 잔재로 만들어지는 저 뒤틀린 괴물에게 너무 많이 의존한 탓인 듯했다.
생존한 포로들의 증언으로 알게 된 지휘소가 ‘있었던’ 장소를 보며 새삼 허탈해 하는 틈을 타 은근슬쩍 자기가 해낸 거라고 기고만장해지려는 에스테의 손잡이에 마력 실은 딱밤을 달린 나는, 시체와 잿더미로 가득한 (구)마왕군 숙영지를 돌아다니며 데오니 성녀님을 찾았다.
기마병들과 함께 돌진한 그녀였지만 홀로 자신의 머리카락만큼 검은 갑옷 위에 새하얀 서코트를 걸친 탓에 성녀님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포로들을 한 곳에 모아 처우를 결정하고자 이단 심판관들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던 성녀님은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쓰고 있던 투구의 바이저를 위로 올리며 해맑게 말했다.
“안 그래도 용사님을 모셔오라고 사람을 보내려던 참이었습니다. 대체 그 신성한 빛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마치 기적을 목도한 것처럼 두눈을 반짝이는 부담스러운 시선은 성녀님만의 것이 아니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용사의 비밀 병기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으나, 결국 ‘비장의 한 수였는데 제 검이 멋대로 써버렸습니다.’ 라고 이실직고하여 그들의 기대감을 박살낼 수밖에 없었다.
“그, 그래도 배교자들의 사술을 파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형태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역시 마신께서는 저희를 굽어살피신다는 것을 다시금 확신하게 되는군요.”
‘그런 귀한 걸 왜 지금…’ 이라는 시선을 보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옹호까지 해주는 그들은 실로 인격자였다.
“그보다 용사님? 보여드릴 게 있으니 잠시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에스테가 거하게 저지른 충격적인 트롤링에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손짓하는 성녀님을 따라 도착한 곳은 다 쓰러져가는 주변과 달리 거의 유일하게 멀쩡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천막이었다.
“지휘소도 날아간 마당에 이렇게 멀쩡하게 형태를 유지한 천막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심지어 이단 심판관들이 경계까지 서고 있는 모습에 놀라 중얼거렸더니 성녀님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천막의 입구로 걸어들었다.
“운 좋게 미리 발견하고 병사들을 시켜 지키게 했습니다. 들어가시죠.”
그 뒤를 따라 들어간 천막 내부는 평범했으나 그래서인지 더더욱 평범하지 않아 보이는 물건 하나만 유독 눈에 들어왔다.
“항복한 생존자 중 괴물들을 조종하는 병과에 복무 중인 이가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인형사라 부르며 이 마도구는 공방이라 칭하더군요.”
외형만 놓고보면 마도구라기보다는 현대의 기계장치에 더 가까운 물건이다. 스무 개 가량의 램프같은 것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선들, 레버, 버튼 등이 달린 상자에는 작은 주유기처럼 생긴 도구도 같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걸로 괴물이 되기 전의 사람들을 조종해서 끌고 갔다고 하더군요.”
“…자진해서 괴물이 된 게 아니었군요.”
“예. 그들은 죄수로 분류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종종 자기들 말마따나 자유를 위해 싸운다고 지랄하는 마왕군이었지만, 그거랑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건 별개라고 여겼으니까.
같은 언럭키 헐크가 아니면 공격부터 하고 보는 녀석들을 어떻게 관리하나 했더니 아예 관리를 위한 부대를 따로 만들었을 줄이야.
“…이런 부대가 더 많다는 뜻이겠군요.”
“상대적으로 최근에 발족되었다고는 하더군요. 훈련 과정에서 침식에 엮이는 경우가 많아 아직 부대원의 수가 많진 않지만, 최소 열 개에 달하는 부대가 운용 중이라는 것 같습니다.”
“죄수로 분류된 이들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그들이 차고 있는 마도구를 분리하는 건 불가능해보였지만… 그걸 제외한다면 건강 상태가 조금 안 좋을 뿐 평범합니다.”
지휘관을 한 큐에 날려버린 것도 그렇고, 적의 기밀 기술에 가까운 걸 구한 것도 그렇고 역시 운이 좋은 편이었다.
“문제는… 결정을 못 짓겠습니다. 노획해야 할까요, 파괴해야 할까요.”
악신의 잔재과 성유물의 힘을 융합한 결과물을 마력으로 컨트롤할 수 있게 만드는 마도구.
자칫 잘못하면 또다른 신성모독을 낳을지도 모르는 흉물을 앞에 둔 성녀님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
“…가져가죠. 전부 다.”
최소한 아군의 손에 들어가면 저 흉물의 원리라도 파악해 적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가능성이라도 생긴다.
하지만 여기서 파괴하면 그냥 수많은 마도구 중 하나가 사라질 뿐이다. 그리 생각하며 내뱉은 말에 다행히 성녀님은 잠깐의 고심 끝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