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04)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04화(504/599)
[504화] 행군대한민국 남자들 대부분이 군대를 통해 행군을 경험하는 것처럼 나 역시 그랬다. 오히려 부대 특성상 행군을 정말 지랄같이 많이 했다.
너무 많이 해서 나중엔 차라리 하루 종일 일과 안 하고 걷다가 오는 행군이 좋다는 뒤틀린 마인드까지 생길 정도로 많이 했다. 그 짓도 계속하다보니 자대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 본 20km 행군 당시엔 진짜 소풍 가는 기분이 들더라. 훈련소에서는 그것도 더럽게 힘들었는데 역시 사람은 적응하는 생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뜬금없이 당시의 기억을 끄집어낸 이유는 더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 한 번에 이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새삼 피부로 느끼는 중이기 때문이다.
약 2만. 그마저도 과반수 이상이 민간인. 개인 장구류와 군장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오만가지 물품들을 가득 실은 마차와 수레와 소와 말의 향연.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은 신앙 아래 뭉쳐진 이들이라 그런 것인지 꽤 많은 이들이 노약자를 알아서 챙긴다는 점이었다. 마치 원래부터 그럴 거였다는 듯 마차를 끌고 왔으면서도 노인과 아이들부터 태운 뒤 자신은 채비를 단단히 하고 걷는 영애도 있었으며, 원래 죄수 호송마차였을 것이 분명한 무언가는 두터운 천막이 얹어진 채 안에서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흘려보내고 있다.
그 웃음소리에 짜증을 내는 이들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현상이었지만 그게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그런 이들을 가볍게 훑어본 뒤 근처에서 조금 높이가 있는 언덕을 향해 말을 달렸다.
대열에서 이탈하는 나를 보고 의문을 표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말을 타고 있는 이들 대부분이 수시로 하는 업무에 불과했으니까.
군대에서 왜 제식이라는 명목으로 오와 열을 맞춰 걷는 것부터 가르쳤던 것인지 저절로 알게 되는 광경을 언덕 위에 올라 내려다보고 있자 하니 내면에서부터 피할 수 없는 착잡함이 기어 올라왔다.
행군 14일째.
속도가 느려진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피로 탓에 중간중간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차이가 벌어지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한 결과였다. 오히려 2주 동안 이어지고 있는 강행군에도 이렇게 잘 따라와주는 게 대단한 거다.
“쉬어야겠는데 이거.”
점점 쉬는 간격이 짧아지는 게 체감되지만 어쩔 수 없다. 군인들만 있으면 낙오가 되더라도 알아서 나중에 쫓아오도록 할 수 있지만 민간인은 별개였으니. 판단을 마치고 빠르게 데오니 성녀님을 향해 달려가는 내 곁으로 다른 기마병이 접근했다.
“용사님! 21번 관측조로부터 낙오자들이 생겨난다는 보고입니다!”
“수고했습니다. 곧 성녀님을 통해 명령이 하달될 것이니 대기하십시오.”
타이밍이 좋았다. 역시 기마대를 2인 1조로 쪼개서 움직이는 봉화처럼 써먹기로 한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짧게 예를 취하며 속도를 늦추는 기마병을 뒤로한 채 성녀님께 다가가니, 말 위에서도 열심히 지도를 보며 다른 지휘관들과 계획을 짜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 반응했다.
“회의 중에 죄송합니다. 슬슬 휴식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21번 관측조 쪽에도 낙오자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점점 짧아지는군요.”
다른 이들도 말만하지 않을 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불만이 아니라 걱정에서 비롯된 반응이었다.
“……하루 정도 지체하는 것은 어떨까요.”
정말 많은 고민 끝에 내뱉은 한 마디라는 걸 알 수 있었기에 아무도 뭐라 하지는 않았으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계속해서 속도가 늦춰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정도 자꾸만 늘어난다는 의미죠. 보급을 받지 못할 경우 물자 배급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지금은 꼬박 하루를 지체할 만큼 여유롭지 못하네요.”
말을 내뱉는 성녀님의 표정도 침통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될 걸 몰랐던 건 아니다. 이들은 이미 일반인들은 군인처럼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최대한 상정하고 준비했다.
그저 그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을 뿐이다. 그게 긴장 때문인지, 겨울의 추위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선 한 시간, 휴식을 가지도록 하죠.”
성녀님의 말에 모두가 동의하며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말이 한 시간이지 2만에 달하는 인원을 통솔하고 움직이는 입장에서는 조금도 여유롭지 못한 시간이다. 주변을 순찰하며 위협 요소를 사전에 미리 제거해야 하고, 뒤처진 사람들의 합류도 도와야하며, 부상자나 다른 이상 징후까지 파악해야 했으니까.
“용사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 업무의 선두엔 내가 포함되어 있다.
나는 정말 미안하다는 듯한 성녀님께 최대한 피로를 숨긴 채 미소로 화답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당연히 내 주된 업무는 위협 요소 제거였다.
◈
칼 칸시와 여행했을 때도 느꼈지만, 마족령의 몬스터들은 확실히 내륙과 차이가 있는 편이다.
좀 더 대가리를 쓴다고 해야 하나? 굳이 비유하면 질 나쁜 도적놈들을 상대하는 것에 가까운 기분인데, 그 수가 만만치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에도 그랬다. 뭉쳐 있는 사람이 많으면 습격을 피하고 보는 내륙과 달리 이곳의 몬스터들은 더 많은 머릿수를 동원해서 빠르게 치고 빠진다는 환장할 마인드를 기반으로 행동에 임하는 듯했다.
“용사님! 놈들이 민간인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칩니다! 추격하겠습니다!”
문제는 그래 봤자 몬스터 대가리인 놈들이 없는 지혜를 짜내며 시도하는 거라서 예측 불허의 상황이 연달아 터진다는 점이었다.
“1분대를 제외한 다른 분대는 전부 아군의 엄호를 맡겠습니다!”
“1분대도 절반만 남기고 다 가십시오! 이쪽은 곧 정리 됩니다!”
씨발 상식적으로 적진으로 튄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집단 이탈을 시도하는 고블린 새끼들과 그걸 바라보며 악을 쓰는 오크 무리를 바라보며 난 짜증을 담아 외칠 수밖에 없었다.
“돌대가리 새끼들아! 그러니까 교육을 잘 시켰어야지!”
마왕군은 아직 우리의 대규모 행군을 제대로 추적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몬스터들은 달랐다. 관측병으로부터 몬스터들이 우리를 발견한 뒤 거리를 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가볍게 여기고 넘어갔었는데, 알고 보니 놈들도 우리를 예의 주시하며 견적을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라고 하던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이 딱 그 꼴이었다. 전투 요원보다 비전투 요원이 더 많다는 확신이 생겼는지 몬스터들은 우리가 휴식을 취하기가 무섭게 습격을 시도하려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워낙 우리의 행군 속도가 느렸던 탓에 몬스터들이 우리 앞에 포진해 있었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전방에 위치한 건 대부분 군인이었고, 그들은 나 못지 않게 눈에 불을 켜며 몬스터들을 도륙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예기치 못한 변수는 계속 튀어나왔다.
“전방에 오우거! 세 마리입니다!”
“씨발.”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마족령의 몬스터들은 저들만의 공생관계가 너무 견고했다. 심지어 모습을 드러낸 오우거들은 주제에 나름 장비라고 할 만한 것까지 갖춰 입…
[음?! 냄새가 난다!]“뭐?무슨 냄새?”
무기를 놓치자 온몸을 던져가며 달려들던 오크의 목을 날려 버림과 동시에 싸우는 동안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던 에스테가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힘의 냄새!]“힘이라니…”
조심스럽게 물러나는 오크들, 도망치는 고블린들, 다가오는 오우거들을 바라보던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오우거들에게 향한다.
얘가 힘이라고 할 만한 건 악신의 잔재나 신성력 정도인데 오우거의 등장과 함께 저런 소리를 한다라.
“설마 저 새끼들한테 악신의 잔재가 느껴진다고?”
[그런 거 같아. 찔러보면 확실히 알게 될 거 같은데?]참으로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드는 에스테였지만 본질이 무기니까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그거 좋네.”
사실 심플한 확인법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말이지.
쓰러지는 오크의 시체를 그대로 걷어차 날리며 돌진하니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오우거와 나 사이에서 오크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한다. 꼴을 보아하니 고블린은 오크에게, 오크는 오우거에게 삶을 저당잡혀 왔던 것 같다.
“아주 지랄들을 해라.”
절로 조소가 튀어나오는 광경이었지만 오크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우거들은 자신들이 딱히 오크를 동료라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제 앞길을 가로막는 놈들을 거대한 몽둥이를 사용해 곤죽으로 만들며 내게로 달려들고 있었다.
딱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다. 역시 돌대가리들은 한계가 분명하다고 혀를 차려는 찰나 오우거가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한낱 먹이 주제에!”
그런 놈의 주둥이에서 튀어나온 건 의외로 굉장히 유창한 공용어였다.
오우거가 굳이 공용어를 터득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었기에 먼저 입을 연 놈만큼은 살려 둔 뒤 나머지를 조지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팔다리 한두 개 정도는 없어져도 상관없으니 손속을 두지는 않았다. 가장 앞서 달려온 놈의 몽둥이가 허공을 가르는 것과 동시에 휘둘러진 내 검이 놈의 굵은 팔 하나를 허공으로 날려보냈다.
“크아아아악!!”
[음! 악신의 맛!]그 짧은 순간에 확실하게 체크한 에스테에게 속으로 칭찬하며, 잘린 절단면을 잡고 울부짖는 오우거의 어깨 위에 올라타 전력으로 놈의 관자놀이에 발차기를 날렸다.
오우거 놈들 두개골이 단단한 건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힘 조절은 완벽했다. 천천히 무너지는 놈의 위에서 뛰어내리니 열심히 뒤따라 달려오던 오우거들이 주줌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몇번 상대했기에 놈들이 우물쭈물거리는 꼴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이 왔다. 방금 잡은 놈이 대장이라는 감이.
나머지는 필요 없다는 뜻이기도 했기에, 그대로 투구를 꺼내 쓴 뒤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이 날 오크들은 오우거 대가리 두 개를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