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05)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05화(505/599)
[505화] 행군갑작스러운 몬스터들의 습격에도 불구하고 피해는 전무했다.
그야 당연했다. 오우거 세 마리가 다 달라붙었어도 이단 심판관들 앞에서 대가리가 깨졌을 것이다. 겨우 오크와 고블린 무리가 어떻게 할 수 있을 만큼 교단과 도시의 병력은 만만하지 않다.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습격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휴식을 맞이했고,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난 뒤 또다시 행군은 이어졌다. 전투로 인한 피로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체할 시간은 여전히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런 상황을 야기한 살아남은 오우거를 바라보는 일행들의 시선은 매우 매우 곱지 않았다.
팔다리 하나씩 잘린 놈을 포박하기 위해 밧줄을 들고 연신 움직여야 했던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악신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에스테의 발언만으로도 분위기가 험악했을 게 분명한 와중에 안 그래도 힘든 여행길에 초까지 쳤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나마 가장 감정적인 변화가 적은 건 놈을 앞에 두고 조용히 집중하고 있는 데오니 성녀님이었다. 고운 미간을 찡그린 채 손을 뻗어 한참을 확인하던 성녀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풀었다.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군요.”
오우거를 질질 끌고 갔다간 민간인들에게 괜히 혼란과 두려움만 줄 게 뻔했기에 제대로 쉴 틈도 없이 발품을 팔아 놈이 무력화된 위치까지 오게 된 성녀님이 고개를 젓는 것과 동시에 다른 이단 심판관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도 진즉에 시도했다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성검 에스테가 확신했으니 악신의 잔재에 침식된 건 분명한데… 전혀 모르겠습니다. 혹시 느껴지는 기운의 세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까요?”
“…굉장히 미미한 수준이라고는 하는군요. 침식체들과 비교했을 땐 거의 새 발의 피 수준이랍니다.”
대화를 나눌 때마다 아직 목숨만 붙어 있다시피한 오우거의 눈동자가 연신 굴러간다. 단순히 말 몇 마디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확실히 대화의 내용을 알아듣고 있음이 분명한 그 반응에, 뒤에서 가만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이단 심판관 한 명이 투구 때문에 무거울 것이 분명한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거 지금 공용어를 알아듣는 겁니까?”
“그래 보입니다. 아까도 대뜸 먹이 운운하며 공용어로 말하더군요.”
굳이 내가 말할 것도 없이 함께 싸웠던 다른 이단 심판관이 대답하자 모두의 눈초리가 다시 한번 날카로워졌다. 역시 내가 알고 있는 상식에 하자가 있는 게 아니었다.
“왜 공용어를 익혔지?”
포인트는 ‘어떻게’ 가 아니라 ‘왜’ 에 있었다.
오우거는 멍청하지 않다. 그냥 힘이 워낙 세다보니 대부분의 일을 무력으로 해결하는 게 쉽다는 사고를 지녔을 뿐이지 오크보다 똑똑한 게 일반적이다. 놈들에게 사회성이라는 게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충분히 문명을 이루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배웠는지는 딱히 궁금하지도 않다. 필요하니까 배웠겠지. 문제는 ‘왜’ 필요했는가에 있다. 살벌해지는 분위기를 느낀 오우거는 열심히 눈동자를 굴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 오크들을 부리는 데 필요해서 배웠다.”
“변명이군.”
일말의 고민도 없이 튀어나온 누군가의 확신어린 한 마디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오크를 부리는 게 목적이었다면 오크어’만’ 배우면 된다. 걔들도 언어가 있으니까. 그럼에도 굳이 공용어를 배웠다는 건, 놈의 입장에서 이것저것 따졌을 때 그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놈은 지금 우리에게 공용어를 배운 이유를 숨기고 있다.
좀 더 그럴싸한 핑계를 댔으면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일을 물리력으로 해결하다 보니 변명 제조 능력이 많이 후달렸던 모양이다.
“남은 다리도 날려 버리면 말하는 게 좀 쉬워지려나?”
주저 없이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들며 다가서는 이단 심판관은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성녀님께서 조용히 검지를 들어 올려 그를 막아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오우거를 불쌍히 여겨서가 아니었다.
“오래 걸릴 거 같으니 발가락부터 시작하죠.”
더욱 냉철하게 견적을 보고 있었을 뿐. 전직 이단 심판관 지망생이었던 우리 성녀님은 이런 점에 있어서 가차없었다.
“알겠습니다. 피가 좀 튈 테니 뒤로 물러나 계시죠.”
잔뜩 축복을 걸어 신체를 강화한 이단 심판관은 단검을 든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처음엔 겨우 발가락 하나 자르는 데 왜 저렇게 공을 들이나 싶었던 나는, 뒤늦게 그의 의도를 파악한 뒤 단검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싸구려 단검입니다. 이걸로 하시지요.”
마력을 적당히 흘려서 고의로 날을 박살 낸 다음에.
“세상에, 역시 용사님이십니다. 감사히 쓰겠습니다.”
자신의 의도를 순식간에 이해하고 도구까지 준비해주는 내게 바이저 너머로도 느껴지는 감격을 표한 이단 심판관은 정중히 내 단검을 받아들고는 오우거의 엄지 발가락을 톱질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고문이라는 것에 내성이 없는 오우거의 괴성이 숲속에 울려 퍼졌다.
◈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시간이다 보니 고문 역시 과감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그나마 이단 심판관이 전직 이단 심문관이라는 고문의 프로페셔널이었기에 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오우거는 진즉에 쇼크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얻어낸 결과는 만족스러우면서도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잔뜩 튄 피를 닦아내는 이단 심판관뿐만 아니라 이를 바라보고 있던 우리도 똥 씹은 표정으로 곧 죽을 것처럼 숨을 내쉬는 오우거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먼저 입을 연 것은 직접 고문하던 이단 심판관이었다.
“저 배교자들이 무슨 저의로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인지 감도 안 오는군요.”
고블린을 부리는 오크들은 부산물에 불과했다. 오우거가 공용어를 배우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마왕군과의 거래를 위해.
심지어 그 거래 물품에는 무기와 식량을 비롯해 놈이 품은 악신의 잔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걸 소량 얻는 것만으로도 다른 오우거들보다 강해졌다고 하는데… 왜 그걸 얻고 멀쩡할 수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문제는 그 대가로 마왕군이 부를 때 언제든지 와서 전투에 합류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는 점이다.
지금도 전선에는 몬스터들이 없는데 대체 언제 써먹으려고 그런 조건을 내걸었을까? 간만에 일천하고도 하나의 엘드미아들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가설을 짜내기 시작했다.
“신민들을 배척하고 되려 몬스터들을 포섭하다니. 악신의 힘을 잘못 사용하여 단체로 미쳐 버린 게 아닐까요?”
“솔직히 이젠 저도 확신이 안 섭니다.”
“대체 무슨 의도일까요.”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 온 것처럼 관자놀이를 누르는 성녀님의 반응도 이해는 됐다. 나도 몬스터를 포섭하고 이용한다는 발상까지는 해 보지 못했으니까. 그게 될 줄도 몰랐고.
그러나 발상을 못 했을 뿐이지 그걸로 뭘 하고 싶은지는 집단 엘드미아의 지성으로 빠르게 짐작할 수 있었다.
“에파가 님과 싸우려는 거겠죠.”
이번엔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쏟아졌다.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기에 덤덤히 있자, 이제 막 피를 대충 다 닦아낸 이단 심판관이 먼저 질문했다.
“지금도 이미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아뇨. 그건 저희와 싸우는 거죠. 교단을 등지고, 죽은 신의 권능을 이용하고, 몬스터들까지 끌어들여 군대로 삼으며 현존하는 성유물을 죄다 긁어모아 제멋대로 도구로 만들어 써먹는 짓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놈들은 저희와 싸울 수 있었을 겁니다.”
자유 운운하는 놈들, 신을 우습게 여기는 놈들, 악신의 잔재 등등.
전생에서는 의외로 흔한 레퍼토리였으나 신실한 이 세계에서는 신벌만큼이나 생소한 개념을 입에 담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놈들에게 있어 우리는 과정일 겁니다. 최종 목표는 에파가 님을 끌어내려 살신殺神을 저지르는 게 목표겠죠.”
그러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신의 힘을 제 것처럼 사용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신따윈 개뿔도 신경 쓰지 않을 몬스터들을 이용해 먹으려고 들며 신을 거부하는 사상을 퍼트린다.
나름 타당한 추론이라 여겼지만 정작 듣는 이들은 너무 놀라 뒤로 두세 걸음은 물러날 지경이었다.
“어, 어찌 그런 끔찍한 발상을…”
심지어 성녀님은 그런 말을 입에 담은 나를 책망하는 듯한 시선까지 보내고 계신다. 그 심정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기에 난 최대한 가벼운 어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신실한 신자로서 그런 시선은 가슴 아프니 그만 보내시고, 일단 놈들이 저지른 짓부터 돌이켜 보십시오. 아직 미약할 뿐이지 악신의 권능까지 흉내 내는 놈들입니다. 악하다고 한들 결국은 신의 힘인데, 그걸 제대로 써먹게 된 놈들이 단순히 필멸자들 간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으로 만족하겠습니까?”
말하면서 떠오른 건 뤼밍스에게 들었던 무게추의 이야기였다.
용사 둘이 한쪽 저울에 올라갔을 뿐만 아니라 원래는 하나로 합심해야 하는 마족이 신앙 아래 분열되었다. 이게 그녀가 알려 줬던 것처럼 세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라면, 그 반대편에는 뭐가 얹어져 있는 걸까?
잘은 몰라도 신살자 타이틀을 얻으려는 미친놈 정도는 올라가야 균형이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