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10)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10화(510/599)
[510화] 수전노守錢奴작전의 완벽한 성공을 알리는 하얀 신호탄이 밤하늘에 쏘아지는 것을 본 순간 데오니는 성녀라는 직책조차 잊은 채 큰 소리로 감탄사를 터트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뒤늦게 후회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의 감탄사는 그녀보다 먼저 환호성을 터트린 군대의 거대한 함성 속에 파묻혀 버렸으니까.
기습조를 따라잡기 위해 민간인들과 그들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둔 채 거의 구보에 가까운 행군을 한 탓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묘한 긴장감과 피로로 지쳐 있던 이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함성이었다.
“전투 준비! 외성 문이 열리면 전력으로 치고 들어간다!”
이미 기정사실처럼 외치는 지휘관이었으나 누구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실상 내성 습격이 가장 큰 난관이었는데 거기서부터 하얀 신호탄이면 외성 돌파는 일도 아니라고 엘드미아가 호언장담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대를 저버리기는커녕 항상 그 이상을 보여주는 믿음과 신뢰의 용사다. 도시의 병사, 용병, 모험가 등등 죄다 제각각의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군대였음에도 그의 말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저 멀리 보이는 비레어 내성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을 때도 ‘조금 과도하게 화려하지 않나?’ 라는 의문 정도만 표했다.
이상을 눈치챈 것은 그 폭발 너머에서 새로운 신호탄이 솟구치는 걸 관측병이 발견한 다음이었다.
“서, 성녀님! 새로운 신호탄 확인! 파란색! 파란색 두 개입니다!”
이상 발생. 긴급 이동.
고개를 돌려 지시를 내리던 데오니를 비롯한 모두가 당황하는 가운데 순차적으로 폭발이 일어나며 외성에까지 소란이 번졌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전개에 짧게 사고가 정지하고 말았지만 해야 할 일이 바뀐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데오니는 황급히 정신을 다잡으며 멀리서 솟아오르고 있는 먼지 구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군대를 향해 외쳤다.
“전군, 전진!”
갑자기 변하긴 했어도 결국 작전은 성공했다. 변수로 인해 서둘러야 할 뿐.
그렇다면 지금은 아군을 믿으며 적들의 신경이라도 분산될 수 있도록 빠르게 외성에 도착해야 했다.
◈
번거롭다.
수전노 에밋을 상대하며 계속 느껴지는 건 지독할 정도로 끈질긴 마법에서 비롯되는 번거로움이었다.
마법의 시전은 빠르고, 임기응변은 놀라울 정도이며, 비레어 영지에서 눌러앉아 고문의 역할로만 수십 년을 해먹은 주제에 오만가지 형태로 준비성이 철저하다.
근데 이것도 가격 흥정을 위한 PR에 불과하다는 거잖아? 아예 상대를 못하겠다 싶은 수준인 건 아니었으나, 비레어 백작 가문이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서 그를 고용했다면 마왕군에게 통신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역시 이 세계의 늙은이들은 늙음이라 적고 살아남음이라 읽는 게 맞다. 마법사는 더 그렇고.
소란스러워지다 못해 이젠 나를 향해 활까지 쏟아 내는 비레어 외성 수비 병력의 공격을 대충 막아 내며 에밋이 날린 불꽃 화살을 건틀릿의 방어막으로 튕겨 내니 저 위에서 여유롭게 날아다니던 에밋이 입을 열었다.
“검이 그 꼴인데도 참 잘도 싸우는군. 하긴 대부분은 그 투사체로 상대하고 있으니 검은 별 의미 없나?”
“내친김에 한 번 더 구경하시죠.”
둥둥 떠다니는 에밋을 쫓기 위해 연신 위치를 바꿔가며 고정시키는 여덟 개의 바늘을 쓸 순 없었기에 화살을 장전하는 병사의 목을 막 꿰뚫고 나온 대바늘의 방향을 틀어 전력으로 에밋에게 날렸다.
사교도들이 쓰던 화살막이의 가호와 흉갑마저 일격에 꿰뚫어 버렸던 전적이 있는 대바늘은 분명 아무런 제약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쉽게 에밋의 방어막에 막혔다.
“좀 살살 쏘게나. 이젠 슬슬 무섭군.”
아닌가? 좀 쫄리긴 하나? 말만 저러는 게 아니라 표정도 조금 바뀐 거 같은데 정신이 없어서 이젠 확신이 잘 안 선다.
설령 쫄렸다고 한들 그의 마력이 고갈되는 게 아닌 건 분명했다. 에밋의 주변을 맴도는 비눗방울 같은 방어막 안에 갇힌 에스테의 파편들은 아직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니.
대바늘도 똑같이 묶일 수는 없었기에, 다른 수작을 부리기 전에 빠르게 회수하는 사이 계속 끙끙거리며 뭔가에 집중하고 있던 에스테가 중얼거렸다.
[거의 다 된 거 같은데…!]검 조각들을 쥐고 있는 방어막이 온전한 상태인 건 아니었다.
아무리 에밋이 실시간으로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 하더라도 마력 그라인더와 신성력의 조합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지금도 몇몇 조각은 열심히 방어막을 비집고 찢어서 반 가까이 밖으로 튀어나온 상태다.
하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없어서 그런가 그 속도가 많이 더디다. 꾸준히 나를 견제하면서도 계속 검조각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그의 시선에 불안감이 없는 것을 보면 아직 한참은 더 버틸 게 분명했다.
꿍얼꿍얼 거리는 에스테의 혼잣말을 흘려 들으며 주변을 둘러본 나는, 열린 내성의 성문을 지나 이제 외성을 향해 달려 나가는 아군들을 발견한 뒤 잠깐 우선순위를 변경하기로 했다.
“일단 문 좀 열어 두고 마저 거래합시다!”
내성의 성벽에 바늘을 박아 타고 오르며 화살을 쳐 내고 뒤를 노리고 날아드는 얼음 창을 우측 견갑으로 흘리며 내성의 성벽 위에 올라서자, 이번에는 마력시로만 보이는 거대한 거미줄 같은 무언가가 내 몸을 붙잡았다.
어김없이 발동되는 과정은 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성벽에 설치한 마법진같은 게 있어서 그걸 발동시킨 모양이었다.
진짜 준비성이 너무 좋다. 그런 주제에 이 모든 걸 월급 좀 깎였다고 그대로 방치하는 것도 골 때린다.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할인을 위해 자네가 할 일 아니겠나?”
더 골 때리는 건 저 마인드고.
“그러려고 합니다.”
어디에 추진기라도 붙어 있는 건지 전력으로 달렸음에도 금방 나를 따라온 에밋을 보며, 에스테의 남은 검신을 쪼갰다.
에밋에게 직접 날리는 실수를 또 저지르지는 않았다. 대신 나를 옭아매는 마력 함정과 에밋의 주변을 날아다니는 비눗방울 방어막을 공격해 무효화시켜 에스테를 다시 원상 복귀 시킨 다음 그대로 성벽에서 뛰어내렸다.
에밋이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를 보일 뿐이지 내 상황도 같이 여유로운 건 아니라서 고민할 시간조차 아끼고자 한 행동이었는데, 막상 뛰어내리고 나니 생각보다 높이가 얼마 안 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조금 당황했다.
아무래도 비룡 위에서 너무 자주 뛰어내리다 보니 감각이 맛이 갔나보다. 일단 회수한 대바늘을 낙하산처럼 쓰며 적당한 지붕 위에 안착하자 마침 주변에 모여 있던 비레어 영지의 병력들이 나를 가리키며 뭐라 떠들더니 활을 꺼내 들었다.
“뭔 개나 소나 활을 들고 다녀?”
무슨 지나가던 선비도 아니고, 장비를 보면 분명 궁병일 리가 없는데 활을 꺼내 들고 쏴재끼는 황당한 놈들이었다. 아직 내성이 위치한 언덕을 내려오는 중인 이들을 위해 싹 다 정리할까 싶기도 했지만 여전히 집요하게 나를 쫓아오는 에밋을 생각해서 그냥 냅다 달리기로 했다.
갑자기 번져나간 혼란을 뒤 따르듯 서서히 밝혀지는 횃불들이 도시와 건물의 윤곽을 드러내준다.
뭔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내밀었다가 허공을 날아다니는 화살을 발견하고는 식겁하며 창문을 닫는 여인, 아직도 상황 파악 못 하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가 병사와 부딪쳐 거하게 나뒹구는 노인, 그런 혼란을 술집의 스윙 도어 너머로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는 정신 나간 주정뱅이들 등등.
서부 지대에서 도시를 돌파했을 때나 레비엥의 외성을 넘을 때와는 사뭇 다른, 생활감이 넘치는 풍경이 굉장히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이 전투가 끝나도 저들은 도시를 점령할 우리들로 인해 한동안 강제로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되겠지.
열심히 화살을 쳐 내고 대바늘도 날리고, 점점 규모는 작아지는 대신 예리해지는 에밋의 마법도 파훼해가며 좀 더 생각해 보니 우리와 뜻을 같이 해서 합류하는 자들이 생겨도 문제고, 그렇지 않고 반발이 생겨도 문제였다.
이런 문제들로 괜히 고민하고 싶지 않아서 정치랑 전쟁하고는 담을 쌓고 살고 싶었던 건데 결국은 이렇게 흘러간다.
부디 우리의 모습이 저들에게 있어 무자비한 점령군으로만 남는 일이 없길 바라며 짧게 한숨을 내쉬니, 어느새 공격을 멈춘 에밋이 내 머리 위로 날아오며 말했다.
“이제 슬슬 쫓기가 버겁구만. 가격은 좀 정했나?”
“드디어 끝난 겁니까?”
“사실 야심차게 준비한 대부분의 것들이 날아가서 억지로 짜낸 거였다네.”
빌어먹을 영감탱이. 레스롬 공작도 그렇고, 나는 노인을 공경하기 위해 애쓰는 유교 드래곤의 후예인데 왜 이렇게 도와주질 않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의 실력이 확실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마신교가 아니라 절 도와 준다면 교역 상단 금화로 20개까지 제공하겠습니다. 그러니 15개로 하죠.”
“그건 무슨 기적의 계산법인가?”
“쫓기 버겁다고 먼저 말씀하셨잖습니까. 만족했다는 뜻이니 금화 다섯 개 정도는 깎을 만큼 뛴 거 아니겠습니까?”
스스로 말해 놓고도 굉장히 뻔뻔한 대답이었지만 그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그만한 가치가 있기도 했고, 에밋이 처음 자기소개를 했을 때 말했던 말이 떠올라 떠본 것도 있었다.
돈을 버는 만큼 쓴다는 말.
어쩌면 그는 상대의 ‘눈’을 시험하고 싶은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용사가 아니라 순 날강도였군.”
그런 내 가설이 맞아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헛웃음을 터트린 에밋은 쥐고 있던 지팡이를 흔들어 마법을 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시 봐도 놀라울 정도로 순식간에 완성한 화염구는, 내가 아니라 굳게 닫혀 있는 비레어의 성문을 향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