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12)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12화(512/599)
[512화] 수전노守錢奴사람들이 몰린 뒤로는 여러모로 일이 순탄하게 흘러 갔다.
행렬이 시작되자마자 모든 이들이 우리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이웃이던 이들이 하나로 뭉쳐 영주를 거꾸로 매달아 버릴 기세로 목청껏 소리 치는 광경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인지 병사들은 몰라도 일반 시민들만큼은 금방 우리 편에 서기 시작한다.
뭔가 저항하려는 기색을 내비치던 병사들조차 무너진 내성과 침묵하는 내성의 병력 그리고 에밋을 필두로 우리 쪽에 붙은 병사들을 볼 때쯤엔 의욕을 잃고 무기를 내려놓기 일쑤였다.
충분히 이해되는 반응이었다. 저들은 기사가 아니고 병사였으니까. 그들이 지키는 건 수도로 튀어서 영지의 고혈이나 빨아먹는 모기 새끼와 그 가족이 아니라 자신의 고향과 가족이지 않은가.
내성 어딘가에는 영주에게 충성하는 이들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이미 대부분 에파가 님의 곁으로 향한 지 오래다. 덕분에 우리는 중간중간 약간의 칼질을 곁들인 것을 제외하면 나름 무난하게 외성문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 무렵에는 이미 인근의 시민 대부분이 밤중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열에 합류한 상태였다. 점차 많아지는 일행들로 인해 이동 속도는 조금씩 느려졌지만 적들에겐 이 군중들이 폭력보다 훨씬 효과적이었기에 기꺼이 걸음을 늦췄다.
“용사님! 어디 계…?”
그렇게 점점 느려지는 대열에 맞춰 느긋하게 걷다 보니 저 맞은편에서 기습조의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도 검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걸 보면 나를 돕기 위해 이동하는 와중에도 전투를 치른 모양이었던지라, 새삼 비레어 영지의 병사들이 품은 용기에 감탄하고 말았다.
이리봐도 저리봐도 기사인 이들이 자그마치 서른 명이다. 검 한 번만 휘둘러도 격차를 깨닫고 도망치기 바쁠 텐데 설마 맞서 싸울 줄이야.
“고생하셨습니다. 얼추 해결했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아군의 노고를 치하하는 게 우선이었기에 진심을 담아 말하니 매우 오묘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춘 기사들의 시선이 나와 사람들과 에밋 사이에서 방황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음, 잘…?”
차마 뒤에 정의와 신앙에 심취한 군중들을 둔 채 자본주의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할 수 없었기에 던진 말은 해답은커녕 기사들의 의문만 증폭시킨 듯했다.
◈
군대의 선두에 서서 성법으로 강화된 신체를 이용해 직접 달리던 데오니는 비레어 외성 문이 터져 나가는 것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습조에 마법사는 없었는데, 저건 분명 마법이었다.
엘드미아가 마법도 배우는 중이라고는 했었으나 어디까지나 지금은 이론에 치중하여 습득하는 중이라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저런 큰 규모의 마법은 아직 쓰지 못할 텐데, 어떻게 된 영문이지 쉬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적의 마법사가 자유로운 상태라면 마왕군에 연락이 닿았다는 의미이니 계획에 차질이 생긴 거였다. 하지만 그랬다면 이미 다른 신호탄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을 터.
“하여간 용사님과 함께 다니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니까.”
뭔가 잘 풀리는 거 같으면서도 변수의 연속이다. 아예 우그러지고 박살 나서 더 이상 성문이라 부를 수 없는 것들의 잔해 속을 뚫고 나오는 네 명의 기사들을 바라보며 데오니는 혀를 내둘렀다.
그들의 어깨에 짐짝처럼 얹어진 건 비레어 백작 일가가 분명했으나 어디에도 엘드미아의 모습은 없었다. 다행히 새로운 의문이 솟아오르기 전에 선두에 있던 노기사가 짧고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용사님은 마법사와 교전 중입니다!”
주어가 없어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데도 작전 성공?
“다른 이들은 어딨습니까!”
“용사님을 지원하기 위해 이동했습니다! 내성의 병력은 괴멸! 적들에게 군의 진입을 막을 수단은 없습니다!”
설명은 충분했고,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이해했다.
선두를 달리던 다른 기사가 손짓하자 마력이나 성법을 통해 전력으로 달리던 이들이 마치 기마병처럼 움직이며 포로를 얹고 달려오는 이들을 위해 길을 열어 주었다.
기습조에게 납치된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백작 가문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군마처럼 자신들을 스쳐 지나가는 이들을 보며 입을 다무는 사이 데오니 곁에 있던 기사는 일사불란하게 부대에 명령을 하달하고, 이에 맞춰 군대가 갈라졌다.
평범한 사람은 도달할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는 이들이 큰 흐트러짐 없이 군체처럼 움직이는 모습은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그렇게 3개로 나뉜 군대는 비레어의 부서진 성문을 지나 내부로 진입하자마자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예상보다 저조한 저항에 여러모로 당황하고 말았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합니다만.”
지휘관의 떨떠름한 중얼거림에 데오니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민심이 바닥났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들은 평범한 삶을 영위하던 이들에게 있어 도시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침략자에 가까웠다. 심지어 사전에 이야기된 것도 없는 완전한 기습이었는데…
“마신께서 용사님과 함께 하신다!”
“돼지같은 비레어의 폭정은 막을 내릴 것이다!”
…어째서인지 사방팔방에서 자신들을 옹호하고 비레어 백작의 권위를 짓밟는 외침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런 시도가 가능하지 않을까 고민한 적이 있긴 하지만, 시간이 촉박해서 실현할 수 없었던 내부 혼란이 제멋대로 펼쳐진 광경을 보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데오니는 일단 엘드미아부터 찾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그가 신성력을 제대로 다루기 시작한 뒤로는 손쉬운 일이었다. 강대한 신성력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하면 거기에 있었으니.
그렇게 수많은 군중들의 선두에 서서 기사들과 처음 보는 노신사를 곁에 둔 채 느긋하게 걷고 있는 엘드미아를 발견한 데오니는 그냥 생각을 포기하기로 했다.
“적당히 잘 끝났습니다.”
투구를 꺼내 쓴 채 말하는 엘드미아의 목소리가 어쩐지 묘하게 눈치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
비레어의 장악은 허무하리만치 손쉽게 진행되었다. 차라리 내성에서 몰살당하다시피한 병력들의 시체를 치우는 게 더 손이 많이 갈 정도로 말이다.
비레어가 작은 영지인 것도 아니었기에 우리가 목표로 한 외성 입구를 제외한 다른 구역에서 잠깐 반발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이미 많은 시민들이 우리 편에 선 탓에 큰 무력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거기엔 에밋의 급여뿐만 아니라 기사에게 줄 봉급조차 아까워서 값싼 병력으로 머릿수만 채운 채 실질적인 고급 병종은 대폭 줄여 버린 비레어 백작의 공이 매우 컸다.
그야말로 무타구치 렌야에 버금가는, 마족령의 신앙투사라 할 수 있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영지가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부탁에 제깍 제깍 군대를 보내 준 마왕군과 그가 자신의 허영을 충족시키기 위해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주변 도시 영주들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데… 결국 마법사를 쳐서 통신을 빠르게 끊는 게 관건이라 여겼던 우리의 판단이 정확했다는 소리였다.
희소식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작전 회의 때 팀시브 백작이 언급했던 정기 보고 누락으로 적들이 도시의 이상을 눈치챌 가능성이 에밋의 활약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거 원래 내가 했었으니 그대로 하면 된다네.”
태연하게 회의에 껴서 아무렇지도 않게 엄청난 말을 덤덤하게 내뱉은 탓에 성녀님과 다른 지휘관들이 묘한 시선으로 해명을 요구하는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안할 수 있을 만큼 큰 이득이었다.
“에밋! 네놈이 감히!”
도시의 주인이었던 비레어 가문 사람들은 그런 에밋을 매국노 취급하며 아득바득 발광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개뿔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좋은 일을 끝으로 편한 휴식이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갑자기 2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도시에 밀려들어왔으니 아무리 내성을 개방해서 사람들을 묵게 하더라도 강제로 큼직한 건물들을 징발해야 했고, 그런 건물들은 대개 돈 좀 만지는 상인들의 것이었다.
정당한 대가의 지불을 요구하는 그들의 주장은 합당하다 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교단에 돈이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교단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알아서 물자를 구하라고 할 정도로 매정하지 못하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천문학적인 돈이 깨지는 게 교단의 군대였다. 실상 비레어 백작 가문의 재산을 탈탈 털어 비용을 충당하다시피 했지만 실권자인 백작이 상당한 금액을 끌어다가 수도에서 쓰고 있던 탓에 그리 풍족한 상황도 아니었다.
결국 정당성을 유지하며 휴식을 취하는 것조차 돈이 드는 일이었다.
“괜히 군대가 약탈을 일삼는 게 아니긴 하지.”
자신이 원하는 가격이 아니면 가게 건물을 내주지 않겠다고 고개를 내젓는 술집 주인을 바라보며 껄껄거리는 에밋의 말에 나는 격하게 공감했다.
그냥 살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단순한 영지전도 아니고 신의 뜻을 관철하고자 움직이는 교단에게 그런 건 선택지조차 되지 못했다.
비레어에서 하루 묵을 때마다 강행군에 지쳐 있던 민간인들의 낯빛은 좋아졌으나 성녀님을 비롯한 지휘부들의 얼굴은 초췌해져만 갔다. 그나마 도시에서 불경한 마음을 품는 이들을 찾아다가 죄다 몰수하는 형태로 긁어모으고는 있었지만 가장 부유한 영주의 금고마저 다 털어 버린 마당에 털 게 얼마나 있겠어?
결국 그렇게 나흘가량의 휴식을 가졌을 무렵, 우리는 만장일치로 도시를 벗어나 이동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