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18)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18화(518/599)
[518화] 초원의 용내 평생 가장 큰 고통이었다.
대체 무슨 빌어먹을 마법인지 몰라도 용이 사용한 마법의 불길은 갑옷과 옷은 내버려 둔 채 내 살갗부터 잡아먹기 시작했다. 피부가 타들어 가는 그 순간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후회하게 만드는 격통은, 뒤늦게 전생의 지식이 떠오르면서 쇼크사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가득 채울 정도로 끔찍한 순간을 선물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순간만큼은 나에게 스페어 목숨 세 개를 선물해준 자폭 성녀가 성녀 테네아시로 느껴질 정도로 고맙기 그지없다.
아카데미에서도 자폭 성녀를 통해 직접 테스트 해 봐서 알고는 있었지만 회복 구슬은 단순히 상처를 회복하는 수준을 진즉에 넘어선 물건이었다. 하얀 안개가 퍼짐과 동시에 타들어 가는 걸 넘어 문드러지려는 몸뚱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원래대로 돌아가는 걸 직접 겪고 나니 새삼 감탄만 나온다.
원리를 따지려는 행동이 불경으로 취급되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의 기적. 심지어 주변에 흩어진 하얀 안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외부에서의 위협을 막아주는 장벽의 역할까지 해줬다. 사용자의 생명을 갉아먹는 외적 요인까지 원천 차단하려는 그 움직임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문득, 조금만 더 빨리 터트렸으면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방어막이 되어 주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치솟았지만 당장은 머리털과 옷가지들이 싹 다 잿더미로 산화하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날개를 베어내기로 했다.
근육이 경직되고 손잡이에 피부가 늘러붙어 떼고 싶어도 뗄 수 없었던 방금까지의 상황이 착각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평소와 같은 감각 속에서 힘을 주니 확실한 손맛이 느껴진다.
제 눈도 치료하지 못하는 놈이 완전히 잘린 날개를 고칠 리는 만무했으니 그대로 지긋지긋한 놈의 등에서 벗어나 정겨운 대지를 향해 뛰어내렸다. 워낙 덩치가 덩치인지라 높이가 좀 있긴 했지만, 잦은 비룡 다이브로 인해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높이가 아닌 내 몸 상태에 있었다. 회복 구슬의 성능이 굉장하긴 했지만 그 짧은 순간에 전신 화상과 다를 바 없는 꼴이 되어 버린 몸뚱이를 완전히 회복시켜준 건 아니었거든.
피부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만으로도 고통에 몸부림치고 싶어지는 내 몸과 정신을 붙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은 에스테였다.
[주인. 지금까지 상대했던 악신의 잔재와는 수준이 달라! 이거면 가능할지도!]통증 때문에 돌아버릴 것만 같았던 머리가 멋대로 굴러간다.
에스테를 바라보니 검은 불길에서 추출이라도 한 것처럼 검은 기운을 청소기마냥 빨아들이는 중이다. 아마 멀리서 본다면 검은 꼬리가 사방으로 솟구치는 걸 에스테가 억지로 붙잡고 끌어당기는 것처럼 보이리라.
의식보다 본능이 먼저 반응하며 기어이 올 게 왔다고 경고한다. 그래, ‘찌꺼기’가 있다면 제대로 된 ‘결과물’도 존재하는 법이겠지.
“잘 머금고 있어라. 저 새끼 잡으려면 큰 거 한 방 필요할 거 같으니.”
어렸을 적 주워들었던 공간을 베는 검사의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당시엔 그 정도면 마법의 경지인데 너무 멀리 갔다고 여겼다. 지금은 하도 오만가지 인간군상을 마주하다 보니 그딴 짓이 가능한 놈이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느낌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감상이 바뀌었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의식은 아직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는 방향으로 흘러 갔다. 그게 있으면 저 용 새끼가 하늘에서 니가와를 시전하든 뭘 하든 간에 그대로 목을 베어버릴 수 있었을 텐데.
배부른 소리였다. 스스로도 종종 까먹는 사실이지만 나는 이 세상에 사출된 지 15년을 겨우 넘긴 놈에 불과했으…
…아니 씨발? 생각해 보니 억울하네?
15살이 반푼이라고는 해도 용이랑 싸우는 게 옳게 된 세상이야? 못해도 5년은 지난 다음에 만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착지와 동시에 발바닥부터 타고 올라오는 욕나오는 고통과 함께 내 팔자에 대한 좆같음이 곱절로 늘어났음에도 목청껏 욕지거리를 외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지근거리에서 들려온 데오니 성녀님의 목소리 덕분이었다.
“용사님! 괜찮으십니까?!”
내가 작열통에 눈이 뒤집힐 뻔한 경험을 한 것처럼 한쪽 눈깔도 잃고 날개도 잃는 환장할 경험을 한 탓에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며 염병을 떨고 있는 용에게서 빠르게 거리를 벌리니, 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데오니 성녀님과 에밋이 내 곁으로 달려왔다.
잠깐 한눈을 팔 정도의 시간은 있어 보여서 고개를 돌려보니 두 사람 다 세상 말도 안 되는 걸 본 것처럼 경악에 물든 얼굴을 하고 있다.
하긴, 상대는 용이니까 그럴 만도 하지. 대뜸 여기서 저딴 게 튀어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을 그들을 위해 적당히 분위기나 환기시키고자 최대한 가벼운 투로 대답해주었다.
“아직은 별로 안 괜찮네요. 저거 죽이고 나면 괜찮아질 거 같습니다.”
떠올리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통증의 기억을 빼면 회복 구슬의 영향으로 오히려 처음보다 컨디션이 더 좋아진 상태. 구슬도 아직 두 개나 남아 있으며 아낄 생각도 없다.
그에 비해 레이시스트 드래곤은 짝눈깔, 짝날개가 되었으니 충분히 할 만한 싸움이었다.
“주, 죽인다구요? 용을?”
“용이든 뭐든 악신의 기운까지 품고 있는 적성생물 입니다. 마족에 한해서는 악마와 다를 바 없는 놈이니 죽여놔야죠.”
어깨를 풀고 자세를 고쳐 잡는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이 빠르게 냉정을 되찾는다.
솔직히 해볼 만한 싸움인 게 맞다. 에밋은 사전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다고 겸양을 떨지만 그가 차고 다니는 마도구와 아티팩트가 멀쩡히 작동하는 것만으로도 충분이 위협적인 마법사고, 데오니 성녀님은 이단 심판관 지망생이었던 성녀였으니까.
[주인! 이 정도면 그럴싸하게 한 번 쏠 수 있을 거 같아!]무엇보다, 악신의 기운을 지닌 놈들에겐 극상성에 가까운 에스테도 있다.
혼자였을 때도 어떻게든 해볼 생각이었는데 여기까지 판을 깔아 두고 안 싸울 수는 없는 법.
-Gnil Hic Srem Efhat Leke…!
실컷 몸부림치던 용이 으르렁거리듯 내뱉는 말은 묵직했다. 나는 그래도 그 짧은 사이에 몇 번 들어서 그런지 태연하게 에스테의 번역을 기다릴 수 있었지만, 성녀님과 에밋은 눈에 띄게 위축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역겨운 잡종들이…! 라고 했어.]“저 새끼는 악신 따까리 주제에 아까부터 자꾸 사람보고 잡종이네 사생아네 떠들고 자빠졌네.”
뉘앙스만 놓고 보면 아무래도 마족이랑 연관이 있는 거 같은데…
“어디 잡종이 휘두르는 칼맛을 보고도 계속 그렇게 지껄일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지 혼자만 알고 있는 씹덕 설정으로 사람 욕하는 걸 참아주는 것도 한두 번이다. 난 금방이라도 우리를 향해 뛰어들 것처럼 자세를 잡는 놈을 향해 에스테를 겨누며 말했다.
“다리 하나만 더 불구로 만들고 시작하자.”
에스테는 한밤중에 마왕군의 진지를 관통했던 일격만큼이나 강렬한 빛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와 동시에 일말의 대응도 용납하지 않는 섬광이 놈의 오른쪽 뒷다리 무릎에 큼직한 구멍을 뚫으며 발자국 저 너머로 사라졌다.
이제는 익숙한 놈의 외침은 날개를 자를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우렁찼으나, 처음에 느꼈던 것만큼의 공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덕분에 주저없이 모든 강화를 몸에 때려 박고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회복 구슬 하나를 입에 넣은 채 놈에게 달려들 수 있었다.
-Der Ni Bich Grinok Des Seniw Iranoref!!
[나는…]“저건 번역 없어도 알겠다.”
오만하게 등장했다가 개처맞은 놈이 제 이름을 운운하는 게 무슨 의미일지 너무나도 뻔해서 해석조차 필요 없었다. 결국 용이나 사람이나 오만과 자만 속에서 고꾸라지는 놈들은 다 똑같다는 걸 느끼며, 나도 맞받아쳤다.
“나는!”
마력과 성법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것 위로 또 다른 성법이 얹어지는 게 느껴지고, 내 뒤를 향해 방대한 마력이 움직이는 게 시야에 들어온다.
마법사와 성직자 그리고 올레인지 어택이 가능한 싸움꾼이라는 조합이라, 이 정도면 용사파티로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용들에게도 신이 있거나 저승이 있다면 어디 가서 쪽팔리게 한 명한테 뒈졌다고 말할 일은 없겠어.
“엘드미아!”
이라노레프 역시 마법을 시전한다.
수많은 마법진이 토나오게 펼쳐지는 걸로 그치지 않고 놈의 입은 브레스라도 뿜을 작정인지 잔뜩 벌어지고, 그걸로도 부족한 것인지 앞발은 나를 직접 찢어 버리기 위해 번개처럼 움직인다.
수십 수백 개의 총구가 겨눠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참 좆 같은 광경이지만… 마력시를 통해 마력을 포착하고 시전을 방해하는 게 일정 수준 이상의 존재에겐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는 확실한 계기라고 생각하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경험이다.
에스테와 성녀님 그리고 내가 스스로에게 건 강화까지 중첩되고 나니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중에서 내가 못 피할 마법은 없다.
온 세상이 느려지는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주변 풍경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며 뒤로 흘러간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십수 미터는 나아가며 당장 내 머리 위로 쏟아지려는 수많은 마법들을 피하기를 세 번.
그동안 열 개의 벼락을 피하고 세 개의 화염구를 건틀릿의 방어막으로 쳐 냈음에도 네 개의 얼음 창과 바닥에서 솟아난 자잘한 바위의 창들이 나를 찌르며 충격을 안겨 줬으나, 에스뮈에가 챙겨 준 갑옷은 제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갑옷이 안 닿는 곳은 어쩔 수 없었지만, 움직일 수 없을 수준의 상처는 아니니 당장은 상관없다.
“…에가다!”
그래도 아주 잠깐 주춤 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놈의 앞발은 그 찰나의 순간을 노리고 나를 찢기 위해 발톱을 세운 채 날아들었다. 보기보다 치밀한 새끼였다. 물론 나도 싸울 땐 나름 치밀한 놈이었기에 일부러 쓰지 않고 있던 이중 가속을 사용하여 놈의 발톱을 피해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미 과도한 강화 중첩으로 순식간에 몸이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지만 죽는 것보단 나았다. 놈의 하나뿐인 눈이 부릅 떠지는 걸 제대로 감상할 틈도 없이 바람구멍이 나버린 뒷다리에 도착한 나는, 날개를 베었을 때의 감각을 떠올리며 에스테를 휘둘러 부위파괴를 시도했다.
부서진 에스테의 검신을 강제로 퍼트리되, 신성력으로 결속하는 형태로 강제로 검신을 키운다. 부서진 검이 뻗어나가고 그 사이를 푸르스름한 빛이 채워 만들어진 빛의 검신은 내 예상보다 훨씬 화려했다.
정상적이라면 무언가를 벨 수 있는 형태가 결코 아니었지만 마력 그라인더가 있으니 충분했다.
단단한 가죽과 비늘이 뭉텅이로 날아간 놈의 한쪽 다리는 조금 억센 저항을 끝으로 깔끔하게 잘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