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20)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20화(520/599)
[520화] 초원의 용이라노레프의 눈이 두려움을 넘어 경악으로 물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하다못해 간단한 물리 방벽이라도 깔려 있었다면 그대로 튕겨 나왔겠지. 그랬다면 저 꼬리 공격이 또 이어지길 기다리거나 다른 방법을 시도해야 했을 테니 또 뻔질나게 뛰어야 했을 것이다.
이제는 부질없는 가정이었다. 뻐킹 레이시스트 드래곤 이라노레프는 이대로 뒤질거니까.
[이게 진짜 되네!]에스테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라며 대놓고 들떴지만 당연한 결과였다.
얼마나 오래 살아왔는지 몰라도 수인족이 이 땅에 자리 잡는 그 시절부터 오체 멀쩡하게 살아왔던 놈이 불과 몇십 분 사이 짝날개에 짝다리, 짝눈이 된 것이다.
심지어 방금 제 얼굴에 들이민 것과 똑같은 행동에서 비롯된 빔 공격은 더럽게 아픈 걸 넘어서 다리 하나 날려 먹게 된 가장 큰 요인이다. 안 쫄면 겁대가리를 상실한 걸 넘어서 그냥 돌대가리지.
하지만 옛 선인들께서 회피는 패턴을 제대로 보고 사용하라 하셨다. 패턴 안 보고 막 피하다가 스태미너 다 빠지면 요단강 건너는 건 국룰이니까.
점차 가까워지는 나를 보며, 이라노레프는 아주 잠깐 동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눈치였다.
하지만 꼴에 용이라고 내가 에스테 빔을 쏘지 않고 방어막을 그냥 지나쳤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방 이해했다.
다급하게 벌어진 놈의 입안에서 아직 제대로 형태도 갖추지 못한 브레스가 나에게 쏘아지기 위해 일렁인다.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미 늦은 결정이었다. 이라노레프의 아가리에서 시뻘건 브레스가 튀어나온 건, 내가 그 옆을 지나쳐 놈의 등 위로 착지한 뒤였다.
그와 동시에 딱히 신호를 주지 않았음에도 에스테는 알아서 쌓아 놓은 신성력을 터트리며 검신을 전개했다.
에파가 님의 눈을 떠올리게 만드는 푸르스름한 빛과 함께 조각조각 나뉘어져 있는 검신이 퍼져나가는 광경은 비록 찰나에 불과했음에도 가슴이 웅장해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에스테 빔을 쐈을 때보단 약하지만 지금은 이걸로도 충분했다.
마력 그라인더를 얹어 놈의 비늘과 가죽에 균열만 만들면 전기톱이 아니라 믹서기로 바꿀 거니까. 제아무리 용이라고 한들 약해진 상태로 이걸 막을 재간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라노레프는 내 공격이 닿고 나서 대응하는 대신 닿기 전에 막고자 개수작을 부렸다.
-촤자자작!
잘린 날개의 절단면에서 피가 꿀렁거리는 걸 발견했을 땐, 이미 피로 이루어진 수십 갈래의 창이 나를 꿰뚫은 뒤였다.
[주인?!]맞고 보니 창보다는 한겨울에 이파리가 다 떨어진 나뭇가지와도 같은 공격이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심지어 그 공격은 잘린 다리에서도 솟구치며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급소를 노리고 날아든 것도 아니고, 즉사할 정도로 위력적인 공격도 아니다.
철저하게 움직임을 봉쇄하는 게 목적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렇다고 해서 안 아픈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예상 범위 내의 반응이었기에 경악하는 에스테와 달리 나는 이번에도 웃을 수 있었다.
“예로부터 똑같은 거에 두 번 당하면 병신이랬다.”
어금니에 끼운 회복 구슬을 힘껏 깨물자 ‘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신성력이 퍼진다. 상처가 회복되고, 원래 내 몸에 있으면 안 되는 피의 가시들이 파괴되어 흩어진다.
비록 그 힘이 피에 담겨 있던 악신의 잔재까지는 없애지는 못했지만 그건 우리 잘난 에스테가 절찬리 흡수중이니 상관없었다.
“넌 병신이라서 죽는 거야.”
덕분에 빛의 검처럼 되어 버린 에스테를 놈의 목을 향해 휘두르는 동작이 오늘 처음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기운 넘쳤다.
놈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부디 알아들었길 바란다.
명색이 용이라는 새끼가 악신한테 넘어갔으면 죽는 순간까지 속이 뒤집히다가 죽어야지.
-카가각!
빛이 시야를 가득 채운 와중에 놈의 비늘과 가죽이 썰려 나가는 광경은 생각보다 아무런 감흥도 안겨 주지 않았다. 그저 에스테가 파고드는 타이밍에 맞춰 마력의 운용을 바꿀 뿐이었다.
그러자 전기톱이었던 마력의 흐름이 미쳐 날뛰는 믹서기로 변질되며 아주 약간의 빈틈에 불과하던 놈의 상처를 찢어발겼다.
[으가가가각!]에스테가 정신없다는 듯 비명을 지르는 것만 제외하면 효과는 굉장했다. 온몸을 실어 날개를 잘라야 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손쉽게 놈의 목이 갈려 나갔다.
나를 막기 위해 놈이 만들어낸 것 같은 마법진들이 사방에서 생겨났지만, 목이 그냥 잘리는 것도 아니고 아예 곤죽이 되어가는 와중에 제대로 된 마법이 구현될 리 만무했다.
되다만 마법진들 사이에서 내가 할 일은 잘드는 믹서기를 빠르게 휘두르는 것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놈의 목은 순식간에 잘렸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불안정하게 일렁이던 마법진들도 사라졌다.
[해, 해치웠나?!]에스테가 멋 모르고 지껄이는 부활의 주문이 들려오고, 이라노레프의 피와 살점이 솟구치는 것을 뒤로하며 거대한 머리통이 땅으로 향하는 순간.
하나뿐인 눈깔이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도 내가 느낀 건 드디어 끝났다는 감상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저주를 막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성법을 펼친 건 뭔가 느껴서가 아니라 순전히 과거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반사적인 행동에 불과했다.
대악마가 지저분하게 군 것도 이유였지만, 용을 죽이고 특수한 능력을 얻는 클리셰만큼이나 죽어 가는 용에게 저주를 받아 나락으로 떨어지는 클리셰가 많다는 게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용인데 그렇게까지 하겠냐 싶은 생각이 머릿속 한 켠을 스쳐 지나가긴 했지만, 반대로 죽어 가는 마당에 악신의 기운까지 처먹은 놈이 뭔들 못할까라는 생각도 들어서 취한 행동이었다.
-파지직!
그래서 성법이 저주와 부딪쳐서 깨지고,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던 반지에 익숙한 이질감이 느껴진 순간.
눈알이 빠질 것처럼 놀라며 떨어지는 용 대가리를 보는 나의 시선은 한없이 침착하고 냉담할 수 있었다.
“…구질구질한 새끼.”
분노와 억울함이 가득 찬 채 빛을 잃어가는 노란 눈깔을 향해 양손 중지를 들어 보이는 건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다행히 두 번은 없었다. 놈의 목이 바닥을 나뒹굴 때쯤엔 주인을 잃은 몸뚱이도 힘을 잃어 천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누가 보더라도 정말 끝난 게 확실했으나, 그래도 방심할 수 없었다.
뒈지기 직전에 쏘아 올린 저주를 기어이 또 경험하고 말았는데 어떻게 마음을 놓을 수 있겠어.
“용사님!”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저주 막이의 성법을 차례대로 펼치면서 마력시를 통해 놈의 시체를 예의 주시하는 사이 거리를 두고 엄호를 해주던 데오니 성녀님과 에밋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 나는, 과감하게 손을 들어 두 사람을 제지하며 외쳤다.
“더 다가오지 마십시오! 이 구질구질한 새끼 또 무슨 개수작을 부릴지 모릅니다!”
“…예?”
“죽기 직전에 저주까지 날린 놈입니다. 누가 악신의 기운이 느껴지는 놈 아니랄까 봐 아주…”
저주라는 말에 성녀님의 안색이 파리해졌지만, 하필 내 마력시에 이상징후가 포착된 터라 제대로 된 설명을 해드릴 틈이 없었다.
“에밋? 용에 대해 좀 아십니까? 알면 좀 와보시는 게 좋겠는데요.”
대신 서둘러 에밋을 호출했더니 그는 굉장히 오묘한 표정으로 나와 성녀님을 번갈아 본 뒤 불만을 표했다.
“성녀님은 저주에 걸리면 안 되지만 난 된다는 겐가?”
“사실 제가 고용주니까 그런 심보도 없잖아 있긴 합니다만, 방금 막 확인 끝났습니다. 그보다 놈의 몸에 있던 마력이 흩어지다가 말고 가죽과 비늘로 퍼지는데… 이게 대체 무슨 현상일까요?”
“… 그게 눈으로 보인다고?”
반응을 보아하니 정상적인 현상인가 보군.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자 방금까지 뚱했던 에밋의 얼굴이 다시 호기심으로 물들었다.
“그렇다면 놈과 대적하면서 변화가 있는 것도 눈치챘겠군?”
“예. 상처가 늘어날수록 가죽과 비늘의 경도가 떨어지더군요.”
“정확히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을수록.’ 이라네. 용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마력과 연관되어 있거든.”
완전히 죽어 버린 이라노레프의 머리통으로 다가가 이리저리 살펴보던 에밋은 더없이 진지한 투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주문에 집중하지 못한 마법사들이 폭주한 주문에 머리통을 잃는 것처럼. 혹은 긴장한 사람이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손발을 벌벌 떠는 등의 이상 증세를 보이는 것처럼.”
갑자기 뜬구름잡는 소리를 하고는 ‘알겠나?’ 라며 바라보는 에밋에게 도끼눈을 떠주니, 주변의 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밝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잇는다.
“용들도 그렇다네.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오랜 시간 마법을 사용하며 그리 진화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용들은 육체가 전부 마력 기관이야. 마력이 원활히 공급되는 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용의 위용을 항상 유지하지.”
반대로 마력이 끊기거나 마력을 다루는 데 문제가 생기면 내가 봤던 것처럼 문제가 발생한다.
용족이라 불릴 수 있는 지성체들과 달리 격이 떨어지는 용이나 비룡같은 것들이 보여주는 극명한 격차는 거기서 비롯되는 거였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걸 넘어 아예 기관들이 그렇게 생겨 먹었어. 마력을 머금도록 말이야. 그러다 보니 용이 살아 있을 땐 의지에 따라 움직이지만, 죽고난 뒤엔 사람의 몸이 생존을 위해 지방을 쌓는 것처럼 흩어지려는 마력들을 강제로 붙잡는 현상이 일어나지. 아마 지금 베려고 하면 방금 전보다 훨씬 베기 힘들걸?”
이제는 익숙하게 내가 있는 등까지 올라와 설명해주는 에밋이었다. 궁금한 건 참을 수 없었기에 에스테를 휘둘러 비늘을 베어보니 과연 그가 말한 대로였다.
“사후 경직 같은 거라서 내일이면 마력도 다 흩어질 거라네.”
“가공과 해체는 그때부터 시작이겠군요.”
“맞네. 우리가 이 용의 시체를 알뜰하게 챙기기 위해 지금부터 저 친구들과 아주 진중한 대화를 나눠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계속 이라노레프의 시체만 살피는 줄 알았던 에밋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지팡이로 가리킨 곳은 수인들의 거주지인 발자국 쪽이었다.
나는 이라노레프의 과감한 다이빙으로 움푹 파인 곳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내는 수인들이 신성한 발자국에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에 집착하지 않길 바라며, 자신의 위대함을 찬양하라는 둥의 소리를 하는 에스테를 검집에 집어넣고 말했다.
“다리 하나를 대가로 부탁하면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회복 구슬을 씹어먹었어도 정신적인 피로는 어쩔 수 없는 영역인지라 적당히 내뱉었더니 내 말을 들은 에밋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가 고용주 보는 눈 하나는 탁월하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