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26)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26화(526/599)
[526화] 용살자龍殺者분위기가 무르익어가면서 알게 된 건데, 나는 술이 셌다.
어느 정도로 셌냐하면, 취기가 오른 레델이 저녁 무렵에 끌고 온 이름 모를 여덟 발자국의 모든 대족장들과 함께 주량 대전을 펼쳤는데 홀로 버틸 정도로 셌다.
덕분에 지금 내 주변은 우리가 털어낸 수많은 술통과 안색이 맛이 가버린 대족장들을 경악에 가득 찬 얼굴로 바라보는 구경꾼들로 원형 경기장이 만들어진 상태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가장 주량이 세보였던 레델은 가장 먼저 고꾸라진 지 오래다. 마지막까지 버틴 건 네 번째 발자국의 여족장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잔을 힘겹게 내려놓자마자 내가 잔에 담긴 술을 원샷 때리는 꼴을 보더니 기어이 버티지 못하고 바닥을 기었고, 관객들로부터 환호성과 감탄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용살자가 대족장들을 다 이겼다!”
게르에서 사는 것과 어울리지 않게 수인들의 술은 위스키에 가까웠다. 그나마 익숙한 술이라서 적당히 마시다가 힘들면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이게 상상 이상으로 쭉쭉 넘어가면서 나도 뒤늦게 이상함을 느꼈다.
제국에서 지크프리트와 대작對酌을 할 때도 분명 잘 마시긴 했지만 그거랑은 비교도 되지 않았다. 처음엔 술의 도수가 약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해독을 위한 성법이라도 쓴 것처럼 몸이 알아서 회복하고 있다. 대충 속도를 확인해 보니까 술 두 잔 원샷 때릴 시간이면 한 잔 정도의 취기를 없애는 듯하다.
나나 에스테가 몰래 성법을 쓴 것도 아니고 용사 버프에 이런 게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범인은 이라노레프가 신나게 흩뿌렸던 용의 피임이 분명했다.
“자네 원래 그렇게 술을 잘 마시나?”
“아뇨. 용의 피 때문인 거 같은데요.”
처음엔 흥미롭다는 듯 구경하다가 이젠 질렸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는 에밋의 질문에 덤덤히 대답하며 기억을 되새겼다. 이번엔 굳이 에밋의 지혜를 요구할 필요도 없었다. 용의 피가 가져올 증상에 대해서는 이미 에파가 님이 얼추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
에파가 님의 설명에 의하면 누군가에겐 디버프로, 또 다른 누군가에겐 버프로, 어느 사람은 피를 뒤집어쓰는 것만으로도 마력에 저항하지 못해 일종의 쇼크사를 할 수도 있는 게 용의 피라는 물건이었다.
그렇다고 에밋이 뽑아낸 피를 퍼마시고 그걸로 목욕을 한다고 해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건 또 아니다. 어디까지나 용이 살아 있는 상태로 흘린 피만이 이런 복불복 랜덤 뽑기 같은 효과를 지닌다고 한다.
용의 생명력이 마력과 너무나도 깊게 연결되어 있어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하셨는데… 원리는 들을 수 없었다. 에파가 님께서 설명하지 않은 내용은 듣는 순간 그 시간과 정신의 방에서 강제 사출 당하는 수준의 정보들이었기에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그냥 용이 지니고 있는 특성들이 옮겨질 수 있다는 게 들을 수 있는 전부였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이다. 그런 위험이 그냥 흩뿌려진 피만 맞아도 생길 수 있었기에, 에파가 님께서 아직 필멸자이셨을 당시조차 어지간히 미친놈이 아닌 이상 확실하게 대응책을 마련하고 용과 맞붙는 게 보통이었다고 한다.
그래, 맞다. 그리 말하면서 나를 바라보는 에파가 님의 시선은 영락없이 미친놈을 향한 그것이었다. 그런 지식이 있었다면 당연히 나도 조심하고 대비 했을 거라 스스로를 변호했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어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용사 버프에 마력이 끼얹어지고 기적으로 취급되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테네아시의 회복 구슬을 두 개나 터트린 덕인지 아직까지 디버프는 없었다. 어쩌면 이라노레프의 격이 낮았던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피 튈 때 좀 달려가서 맞을 걸 그랬군.”
“그랬다가 저주 같은 효과만 얻었으면 바로 계약 파기였습니다.”
에밋은 ‘그건 안 되지.’라며 낄낄 거렸고, 옆에서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자리에 없었던 걸 한 번 더 후회하던 칼 칸시는 후회를 철회했다.
“그나저나 살아있는 용의 피가 그렇게나 다른 효과를 지닌다니, 이라노레프 정도 되는 용이 잡히는 경우는 워낙 적다 보니 정보가 없었군. 이걸 알아낸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수확이야.”
구경꾼들의 취기와 열기 가득 찬 함성 덕분에 우리의 조용한 대화 내용이 남들의 귀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유사 위스키를 무슨 와인처럼 홀짝이며 이것저것 적은 에밋은 고주망태가 되어 꼼짝도 못 하고 있는 여덟 대족장들을 마법으로 들더니 숙소로 옮겨 주겠다고 자리를 떠났고, 그렇게 대족장들이 리타이어하고 나니 우리를 향해 쏟아지던 관심도 빠르게 식었다.
정확히는 이벤트가 있으면 모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가 편하게 먹고 즐길 수 있게 배려해준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새삼 수인들의 친절함에 감탄한 나는, 이런 수인들을 노예로 잡아다가 파는 씹새들을 만나는 족족 터트리겠다고 다짐하며 칼 칸시와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여기를 벗어나면 바로 라이토르로 향하겠네? 경로는 어떻게 정했어?”
그렇게 술 한 모금 넘기자마자 나온 건, 의외로 시시한 잡담이 아니라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쉬다 말고 일 이야기를 하는 걸 보아하니 즐길 만큼 즐겼나 보군.”
등에 업힌 사람들의 수가 2만에 달하다 보니 사전에 미리 대비하는 자세는 오히려 환영이었으나 칼 칸시가 먼저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시키지 않았는데 알아서 일하는 인턴 사원을 보는 사장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굉장히 의외였기에 적당히 놀리는 식으로 말하니, 그는 예의 넉살 좋은 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어차피 손님의 전리품은 부족 사람들이 알아서 따로 보내준다고 했잖아. 그렇다면 못해도 이틀에서 사흘 정도 뒤엔 출발한다는 소리인데, 길잡이 입장에서는 시간이 촉박하단 말이지.”
역시 직업 의식이 투철한 친구답다. 안 그래도 점심부터 저녁까지 이러고 있는 것도 슬슬 지겨워진 터라, 나는 데오니 성녀님께 들었던 내용을 최대한 되새기며 칼 칸시와 정보를 공유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렌기에 에파가시에라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들려왔던 라이토르의 반란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변화라고 할 만한 건… 수비측이었던 마신교 지지자들이 예상보다 많이 밀리기 시작했다는 점 정도. 칼 칸시가 들은 정보에 의하면 공격측인 마왕군 지지자들에게 새로운 조력자가 나타났다는 모양이다.
“당연히 길 가던 마왕군 지지자가 손을 거들었을 가능성보다는 마왕군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커. 어쩌면 소문의 특작부가 개입했을지도 모르고.”
특작부.
간과할 수 없는 이름이었다.
“혹시 그 특작부라는 놈들에 대한 소문 좀 있어?”
“소문이야 많지. 마왕의 직속 병력이다, 피도 눈물도 없다, 군 고위 장성조차 특작부가 나타나면 머리부터 숙인다더라 등등. 아, 개중에는 사실 용사가 특작부 소속이라는 이야기도 있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말이야. 하면서 되도 않는 공작이라 여기는 칼 칸시와 달리, 나는 그 마지막 소문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소문, 그냥 낭설에 불과한 거야? 아니면 뭔가 그럴싸한 목격담이라도 있는 거야?”
“뭐야, 진짜 용사인 손님이 그렇게까지 신경 쓸 줄은 몰랐는데?”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뜨던 칼 칸시는 쓸데없이 이유를 물어보는 대신 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열심히 기억을 되새겼다.
“아, 기억났다. 목격담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했었지만 그 뒤로 소문이 퍼졌으니 아마 맞을 거야. 이티스엘하고 전쟁이 발발한 지… 3년? 4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는데, 당시엔 아직 전대 마왕의 사상과 정책을 따르던 마족들이 많이 남아 있었거든.”
인족들과의 평화로운 교류를 주장했던 전대 마왕의 평가는 딱 중간 정도였다고 한다.
평화를 위해 노력한 전대 마왕의 마음가짐은 나도 높게 사는 바이나,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역사를 통 틀어서 친했던 시기보다 서로 물어뜯는 시기가 더 길었을 테니 지지율이 중간이라도 된 건 대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대부분 다 제압되거나 사라졌지만, 내가 말하려는 시기엔 그래도 그런 반란군이 좀 남아 있었거든? 그것도 꽤 큰 규모가 수도 코앞까지 치고 들어갔었는데… 한 방에 절반 가까이 병력이 날아가고 무조건 항복을 한 사건이 있었다고 해.”
“확실한 소문은 아닌가 보네.”
“그렇다기보단 내용이 너무 허무맹랑해서 다들 쉬쉬한 거지. 창든 꼬맹이 하나가 튀어나와서 그 창을 휘둘렀더니 병력의 절반이 사라졌다고 했었거든.”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칼 칸시였으나 나는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창?”
“엥? 꼬맹이라는 말보다 창에 더 신경을 써?”
“에파가 님께서 사용했던 무기가 성창 에스테잖아.”
“허, 과연 마신교의 용사님다워. 역사 공부도 했구만. 맞아, 그래서 당시에 그 소문을 들었을 때도 마왕군의 뻔한 공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 교단은 지금과 달리 침묵하던 시기였는데, 마왕군에게 성창을 내줬다는 건 전폭적인 지지를 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잖아. 그러기엔 너무 조용하니 앞뒤가 안 맞았어.”
꽤 날카로운 추론을 통해 마왕군이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퍼트린 소문이라고 판단한 칼 칸시였으나, 이번만큼은 틀린 듯하다.
짭용사일 가능성이 너무 높다.
“그 뒤로는?”
“일정 간격으로 꾸준히 들려오긴 했었지. 근데 특작부 자체가 워낙 비밀스러운 놈들이라서 믿을 만한 게 없어. 무엇보다 이젠 교단이 마왕군에 반기를 들 뿐만 아니라 전장에서 손님이 거하게 한 방 터트렸잖아. 진짜 열렬한 마왕군 지지자들이 아니면 안 믿어. 그치들은 교단이 가짜 용사를 만든 거고 진짜 용사는 마왕군에 있다고 말하는 미친놈들이라서 별 의미도 없고.”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인 칼 칸시는 ‘지금은 뭐가 됐든 안 마주치는 게 최선이지.’라며 웃어넘겼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애초에 그 새끼들은 내 고향이 날아간 원인을 제공한 새끼들이었으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만나는 게 최선이었다.
그게 짭용사를 포함하고 있는 일이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