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43)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43화(543/599)
[543화] Berserker서두를 것 하나 없는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용사는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이어진 것은 압도적인 폭력이었다. 폭주한 소하와 대치했을 때조차 보여 주지 않았던 움직임으로 부하들을 ‘무력화’시키는 광경을 보며 올바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분명 놈에게 있어서도 소하와의 전투가 여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폭발적인 힘을 이제서야 낸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직면한 상황에 대한 견적은 금방 나왔다. 이제 남은 건 결단을 내리는 일뿐.
“대장을 보호하고, 마법이 완성됨과 동시에 무조건 퇴각해라.”
마법은 아직 끊기지 않았다. 허나 이 자리에 있을 경우 또 놈의 원리를 알 수 없는 투사체가 시전자를 죽일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한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며 전투 태세처럼 마력을 폭주시킨 올바의 손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으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용사가 올바를 향해 달려들었다.
분명 다른 부하들이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가 쥔 단검이 가장 큰 위협이라는 듯 주저 없이 방향을 트는 용사를 보며 올바는 이를 갈았다.
“제기랄!”
저건 분명 단검의 존재를 알기에 나오는 반응이다. 대체 어떤 빌어먹을 자식이 놈으로 하여금 특작부의 기밀을 알아차리게 만든 것인지 몰라도 예상 밖의 상황이었다.
아직 거리가 있긴 하지만… 갑자기 달라진 용사의 움직임과 마도구로 짐작되는 투사체를 생각하면 거리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어떻게든 즉사만 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몸을 움직인 올바를 구한 것은 그의 육체가 아니라 바닥에 널브러진 돌이었다.
용사의 착지와 함께 균열이 일어나며 박살 난 대로의 돌에, 다리가 걸렸다. 평소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실수였지만 그 실수가 올바의 목숨을 살렸다.
“어이가 없네.”
눈 깜짝할 사이에 정확히 올바의 미간이 있던 자리를 향해 창을 찔러넣으면서 그 광경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은 용사의 중얼거림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게 마치 자신들을 바라보는 마신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 같아, 올바의 눈에도 독기가 어렸다.
자신의 심장에 단검을 찔러 넣는 행동을 서스럼없이 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 독기 덕분이었다.
“마신의 꼭두각시가!!”
소하를 보좌하기 때문에 특별히 지급된 최후의 수단은 찌꺼기와는 궤를 달리하는 효과를 보여줬다.
-콰드득!
신체가 변형되는 일도, 이성을 잃는 일도 없이 솟구치는 힘에 몸을 맡기며 균형을 잡기 위해 올바가 내디딘 발이 바닥에 닿자 마치 용사가 뛰어내렸을 때처럼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니넨 할 줄 아는 말이 그거밖에 없냐?”
용사를 밀치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 다리가 창에 꿰뚫리고, 기껏 몸에 닿는 줄 알았던 팔은 검에 잘려 나갔다.
차라리 오만하기라도 해서 그대로 무기를 박아 두고 멈췄으면 좋았으련만. 한 손으로 시도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확하게 다리를 관통했던 창은 어느새 회수되었고, 검은 올바의 목을 날리기 위해 방향을 트는 중이다.
그러나 이번엔 올바가 상체를 숙이며 용사의 공격을 피하는 게 더 빨랐다. 어쩌면 두 팔이 팔꿈치부터 잘려 나간 탓에 균형을 잃어버린 것일지도 몰랐으나 그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대로 용사에게 몸통 박치기를 시도한 올바는 잘린 두 팔로 용사를 붙잡고는 앞으로 달렸다.
어차피 버린 목숨, 시간만 벌면 됐다. 용사를 붙잡았다고 확신한 순간부터 올바는 외부의 자극을 모두 무시한 채 오직 달리기에만 집중했다.
평범한 마족이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악신의 힘은 그걸 가능케 만들었다. 베이고, 찔리고, 부딪치며 온갖 충격이 올바를 강타했지만 그의 걸음을 멈추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귀찮게 만드네 진짜.”
적어도 용사의 짧은 중얼거림과 함께 그의 등에 묵직한 충격이 느껴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웃기지도 않는 새끼들. 그 꼴로 에파가 님을 욕하고 자유를 운운해? 악신에게 현혹되어 네놈들 대가리에 바람구멍이 났다는 게 더 현실성 있는 주장 아니냐?”
허리 아래로 감각이 사라진 이유를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 와중에도 용사에게서 손을 놓지 않은 올바는 돌아왔다 사라졌다 하는 감각 속에서 뒤늦게 자신의 상태를 돌아볼 수 있었다.
복부엔 몇 개나 되는지 알 수 없는 단검들이 부러진 채 꽂혀 있다. 그의 두 팔은 팔이 아닌 팔 비스무리한 무언가로 변질되어 재생된 거였으며, 언제 뚫렸는지조차 알 수 없는 가슴에는 등 뒤에서부터 새하얀 창이 솟아나 있었다.
결국 다리를 움직이는 건 실패했다. 용사의 몸을 붙잡는 것으로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던 올바의 상체는 용사가 뒤로 물러나자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비단 상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에게 박힌 검과 창이 자꾸만 악신의 기운을 중화시키는 게 원인인 듯했다.
“멀쩡히 신들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새끼들이 배가 불러가지고, 뭐? 신이 필요 없어? 지랄을 해라 아주.”
이렇게나 무력화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용사는 그를 지나쳐 소하를 향해 달려가지 않았다. 그 반응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벽에 구멍이 난 건물들 너머로 원래 그가 있었던 위치가 눈에 들어왔다.
소하도, 마법사도 없었다. 처음엔 용사의 마도구에 당한 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났지만 시체조차 없는 걸 보면 무사히 도주에 성공한 게 분명했다.
성공했다. 밀려오는 안도감에 고통마저 잊어버린 올바는 문득 자신이 방금 들었던 말을 떠올리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크흐흐, 어떤 미친놈이 신이 필요 없다고 해?”
“뭐?”
단검에 담긴 힘은 무궁무진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군.
이제는 제대로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진 올바는 힘겹게 몸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려 했으나, 검과 창 때문에 실패하고는 그냥 그대로 널브러진 상태로 고개만 움직였다. 그렇게 시선이 닿은 곳엔 더 이상 눈이 빛나지 않고 있는 평범한 인족이 있었다.
“아, 전장에서 좀 굴렀었지. ‘자유를 위하여.’ 이거 때문에 그딴 미친 가정을 한 건가? 용사라는 놈이 참 끔찍한 생각을 하는군.”
“…무슨 개소리야?”
“우린 우리에게 관심 없는 ‘마신’이 필요 없을 뿐이다. 대신 새로운 신을 섬기려는 거지.”
어쩌면 이렇게까지 우리를 적대하는 이유가 저 오해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일말의 희망 속에서 올바는 의혹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인족 용사에게 말했다.
“인족과 마족의 전쟁. 마왕과 용사. 그 불합리함 속에 우리를 방치한 채 침묵하는 마신을 왜 계속 따라야 하지? 그깟 성법 몇 개와 예언 그리고 계시 조금을 얻기 위해? 그런 신은 이쪽에서 사양하겠다는 거다. 우리는, 우리를 지켜 줄 신을 원한다.”
안전하게. 그리고 지긋지긋한 전쟁을 강요받지 않을 수 있도록.
“허, 말은 잘한다. 그 대단한 신념을 가지고 하는 게 악신의 힘 악용하기랑 남의 성유물 강탈하기냐?”
“뒈진 놈의 유품이 산 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응당 그래야지. 성유물도 마찬가지고. 지금까지 우리의 믿음에 배신해왔는데 겨우 성유물로 끝나면 싼 거 아닌가?”
목숨이 사그라드는 순간이었지만 놀랍게도 웃음이 나왔다. 제대로 된 저항은커녕 겨우 잠깐 발을 묶은 게 전부임에도 올바는 자신의 죽음이 마왕군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는 확신을 가졌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뿐이다.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면, 머릿속이 꽃밭이거나 마신한테 단단히 심취한 거겠지.”
“들을수록 어이가 없네. 무신론자도 울고 갈 개소리를 거기까지 당당하게 말하니 기가 찬다. 멀쩡한 사람을 괴물로 만들면서까지 새로 섬기고 싶은 신? 뭔 크툴루라도 섬기니?”
“어차피 너도 그저 인족이지 않나. 겨우 용사라는 이유로 교단을 감싸고 마신을 숭배할 이유가 어딨지?”
처음 들어 보는 신의 이름이 나왔지만 어차피 관심 없었고, 상세한 내막까지 말할 생각도 없었다.
용사는 변수 그 자체다.
내막을 안 뒤에도 계속 마왕군을 적대하고자 마음먹은 상태에서 자신들이 섬기려는 신의 정체를 알게 되면 또 무슨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계획을 어그러뜨릴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올바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순수하게 자신의 의문이나 입에 담아보기로 했다.
“한 종족이 반푼이 신에게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기회와 가능성을, 네가 무슨 자격으로 가로막는 거냐?”
용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옘병, 간만에 질의응답 잘 진행된다 싶었더니 또 동문서답이네.’ 라고 중얼거릴 뿐.
“하여간 어설프게 아는 새끼들이 신념을 가지면 지랄이 난다니까.”
짜증이 난 것처럼 뒤통수를 긁으면서 올바를 내려다보는 용사의 시선은 더없이 차갑다. 거기서 환멸이나 분노가 아닌 세상 멍청한 새끼 다 보겠다는 듯한 한심함을 느낀 올바는 다 죽어 가는 와중에도 기분이 살짝 나빠지고 말았다.
“니네 개똥 신념과 사상은 어차피 차차 알아가면 되니까 내 알 바 아니다만, 아가리가 씹창이 났어도 말을 똑바로 해야지.”
용사의 손이 움직이자 그의 허리에 감각이 돌아왔다. 어차피 악신의 기운이 다 사라진 터라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올바는 용사의 반응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너희를 막아선 게 아니라, 너희가 날 먼저 건드린 거야.”
천천히 허리 숙이는 용사의 손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리구슬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네 잘난 신념은 이단 심판관들 앞에서나 떠드셔.”
“무, 무슨…!”
이상을 눈치챌 틈도 없이 용사는 그 구슬을 올바의 입에 쑤셔 넣고는 강제로 이빨 사이에 물렸다. 그와 동시에 몸에 박혀 있던 창이 빠지고, 심장에 꽂힌 단검조차 용사의 손에 뽑혀 나갔다.
뭔가 잘못됐다.
-빠악!
그런 생각이 들며 입에 들어온 구슬을 뱉어내려는 순간, 용사의 발차기가 그의 턱을 강타했다.
“하아, 진짜 존나 아깝네.”
입안의 유리구슬이 깨지는 감각과 용사의 중얼거림을 마지막으로 올바의 의식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