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45)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45화(545/599)
[545화] 불의 마녀특작부가 떠나고 교단이 나타나면서 라이토르의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되기 시작했지만 놈들이 남기고 간 침식체로 인해 뒤처리만큼은 순탄치 않았다.
그냥 날뛰는 것만으로도 큰 피해를 야기하는 렌기에 에파가시에라의 침식체들보다 약하다고는 해도 평범한 마족보다는 강하다. 이곳이 인족보다 마족 및 이종족의 비율이 훨씬 더 높은 마족령이라서 다행이었지, 아마 놈들이 인족들 사이에서 날뛰었다면 순탄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막대한 피해를 입고 말았을 것이다.
물론 그 특유의 오염 능력 때문에 대처를 잘못하면 마족 역시 피해를 보는 건 매한가지였으나 우리에겐 이미 수차례 놈들을 상대하며 익숙해진 라이토르 백작과 그의 병력들이 있었기에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었다.
특작부를 일망타진하는 과정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고 있지 않던 그는 특작부가 침식체의 폭주를 최후의 방패로 쓰며 도주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고, 마왕군 지지자들을 교단과 함께 쌈 싸먹자마자 이를 대비하기 위해 자신의 병력을 과감하게 나눠 교단에 합류했다.
결과적으로 상황은 그의 예상대로 흘러갔고, 교단은 숙달된 백작군의 도움 아래 인명 피해를 최소화 하며 침식체를 몰아낼 수 있었다.
그게 벌써 닷새 전의 이야기다.
“라이토르 백작은 매우 유능하더군요. 역시 소문이라는 건 쉬이 믿을 게 못 되는 모양입니다.”
그 모든 과정을 내게 친절하게 설명해 준 데오니 성녀님은 들고 있던 문서를 탁자 위에 올려 놓더니 책망하고자 하는 의지가 가득한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침상에 드러누운 상태로 꼼짝도 못 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성녀님의 얼굴에 걱정하는 빛이 어리는 것도 잠시, 성녀님은 의지를 가짐과 동시에 실천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행동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감정 없는 어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용사님께서 ‘무리하게’ 특작부와 소하 시노어를 상대하고 ‘홀로’ 추격까지 시도한 끝에 그의 부관으로 추정되는 주요 인물과 다수의 특작부원들을 포획한 것만큼 큰 성과라고 하기엔 한없이 부족하고 나태한 결과이겠지만 말이죠.”
정정.
아주 약간의 짜증과 화남 및 서운함이 내포된 어투다.
“그, 그건 아무래도 좀 잘못된 평가가 아닐지…”
“아뇨, 겸양하지 않으셔도 됩니 다. 라이토르 백작과 휘하의 병사들을 필두로 소위 ‘감염체’라 부르기로 결정한 형태의 침식체를 상대한 끝에 극소수의 사망자와 경상자만으로 사태를 마무리 지은 것은 사실이지만, 용사님께서 이 정도를 ‘성과’라고 여기셨다면 그들과의 공조 없이 홀로 특작부를 들이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이건 용사님께 신뢰를 드리지 못해 홀로 움직이게 한 것에 대한 벌충에 불과합니다.”
‘왜 혼자 움직이고 무리해서 이렇게 드러누웠냐?’라는 말을 눈앞에서 빙빙 돌리면서 말하는 성녀님은 아주 아주 화났다는 흉내를 내려고 노력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으나, 이미 그녀가 진짜 화나면 무슨 행동을 하고 어떻게 분노하는지 목격한 내 입장에서는 많이 어설픈 연기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말이 틀린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행동이 많이 독단적이긴 했으니까. 감시만 하며 아군의 합류를 기다렸다면 소하를 잡거나 처단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말이지.
“죄송합니다.”
팔이라도 멀쩡했으면 머쓱하게 뒤통수라도 긁적였을 테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조차 까딱하기 힘든 상황이라서 꼼짝없이 눈만 굴리며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자 깊은 한숨과 함께 성녀님의 얼굴이 아주 조금 풀어졌다.
“…하아, 대체 왜 혼자 움직이신 겁니까.”
책망보다는 걱정과 우려가 더 많이 담긴 한 마디에 차마 ‘그게 기습이니까.’ 라고 말할 수 없었다.
기습을 성공한 것과 별개로 소하 시노어라는 변수와의 정면 대치 후 놈을 살려 보낸 바람에 다 엎어져 버렸으니까.
놈과 대치하는 상황, 놈의 실력, 내가 뒤늦게 시도한 신성력과 마력의 폭주, 부관 놈이 쓴 단검의 힘까지 뭐 하나 예측이 들어 맞은 게 없다. 이래서는 그냥 눈감고 휘두른 검이 적에게 맞길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꼴이다.
이래 놓고 어떻게 당당히 계획대로 움직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특작부 포획이라는 어중간한 성과라도 거뒀으니 망정이지, 그것조차 없었으면 내가 애써 쳐왔던 블러핑만 까발려지는 속 터지는 상황이 펼쳐졌을 것이다.
심지어 진짜 큰 문제는 교단과 합류한 다음에 터졌었다.
“용사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제가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특작부의 뒤를 자연스럽게 밟는 건 용사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했을지언정 그 다음부터 일어난 일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찌 마신님과 용사님을 따르고자 헌신하는 이들을 믿지 못하시고 불확실한 위험 속에 불나방처럼 뛰어드신단 말입니까.”
잠깐 말이 없던 성녀님께서 다시금 쏟아내는 말을 듣다 보니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듦에도 불구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에 온몸이 오그라드는 기분이다. 저리 말씀하시면서 계속 신성력을 흘려 내 몸을 확인하시는 터라 죄책감이 더욱 커진다.
“지금 이 상황만 놓고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단의 기록을 적잖이 탐독했다고 자부하는 저뿐만 아니라 다른 고위 성직자들 역시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그나마 저희처럼 성직에 몸 담고 있는 이들이 함께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 말하면서 성녀님은 내 몸에서 솟아나는 신성력을 흡수했다. 다행히 내가 처음 드러누웠을 때와 달리 어느 정도 양이 줄어들어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 듯하다.
“어느 정도 안정화가 이루어진 모양이군요. 새어 나오는 신성력이 많이 줄었습니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알면 다시는 그러지 마십시오. 마력조차 분에 넘치면 사람이 죽어 나갑니다. 대체 무슨 발상을 어떻게 하면 신성력을 폭주시켜 힘을 얻는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겁니까?”
소하 시노어를 놓치고 내 블러핑이 다 허사가 된 것 정도는 ‘따위’로 만들어버리는 진짜 큰 문제.
지금의 난 인간 신성력 폭탄 내지는 성역 발생기에 가까운 상태다.
신성력을 마력 폭주처럼 써먹은 결과이자 후유증이었다. 첫날은 무리한 탓에 몸살이라도 걸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안에서부터 과도하게 흘러나오는 신성력이 몸을 좀 먹고 있는 거였다.
에파가 님께서 말씀하셨던 신성의 편린과 그분이 내게 안배해주신 권능이 맞물려 환장하는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인 듯했다. 지금까지 이런 시도를 한 사람도 없었고, 사례도 없었던 탓에 누구 하나 확신을 못 했지만… 당사자인 나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내 안에 깃든 용사의 힘은 일종의 신성력 수도꼭지였다는 것을. 이마저도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그나마 가장 그럴싸한 비유다.
이 수도꼭지를 열면 에파가 님이라는 수원지에서 신성력이라는 물이 흘러들어오는 과정을 거쳐서 힘이 발현된다. 당연히 원래는 필멸자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양밖에 안 나오게끔 안전장치 같은 것이 존재했지만 이번에 내가 그걸 박살 내버린 것이다.
거기까지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겠으나 진짜 문제는 단순히 잠금장치만 박살 내고 끝나야 하는 걸 내게 깃들었다는 신성의 편린이 아예 수도꼭지째로 뽑아버렸다는 점에 있었다.
아무리 필멸자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신성력만 흘러나오는 작은 틈에 불과하다고 한들 수원지가 마르지 않는 한 계속 흘러나오는 법. 이상을 눈치챘을 땐 이미 에스테도 나처럼 제 구실을 할 수 없는 상태로 괴상한 신음만 흘리게 된 뒤였다.
성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고위 성직자들이 잔뜩 곁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내가 죽기 전까지 정체불명의 성역이 발생하여 주변을 잠식해 나갔을 것이다.
“이런 구조인 줄 몰랐죠.”
“……이번만큼은 이해해드리겠습니다. 저희 역시 처음 알았으니.”
정말 할 말이 많다는 눈치였지만, 성녀님은 기어이 참으셨다. 하지만 가만히 있자 하니 자꾸만 잔소리가 나오려고 했던 것일까, 한참을 우물쭈물 거리다가 깊은 한숨과 함께 화제를 전환하셨다.
“라이토르 내에 있는 마왕군 지지자들은 대부분 소탕한 상태입니다. 지금은 게이트를 통해 이동할 수 있는 다른 지역을 알아보고 있죠.”
“다음 목적지는 정해져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리 멀리까지는 못 가고 산맥 인근에 있는 작은 도시의 게이트로 넘어가서 도보로 전선까지 이동한다는 계획이 떠올라 되물었더니 가벼운 끄덕임과 함께 성녀님이 답해주셨다.
“그랬습니다만, 저희의 규모가 거의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태도를 바꾼 이들이 늘었습니다. 라이토르 백작이 도시를 장악하자마자 빠르게 소문을 퍼트린 덕이죠. 이제 얼추 정리되었으니 모레 오후 무렵에 이동하게 될 거 같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움직일 수 있을까요?”
“마차는 장식이 아닙니다.”
‘마음 같아서는 짐수레에 태우고 싶습니다만…’ 이라고 중얼거리는 성녀님의 시선은 조심스럽게 눈을 돌려 피했다.
한동안 말없이 내게서 흘러나오는 신성력을 손 보신 성녀님은 이내 손을 거두더니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여셨다.
“빛의 에테가 점지한 용사 지크프리트가 마왕을 몰아내고 인족의 평화를 가져올 수는 있어도, 배교자들로 인해 생겨난 마족과 교단 그리고 마신님의 오명은 오직 엘드미아 님께서 함께 해주셔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멋대로 소환되어 쾌락없는 책임을 지게 된 지크프리트 같은 경우였다면 어림도 없을 말이었지만, 애초에 에파가 님께서 하지 말라던 용사를 자진해서 하기로 한 나였기에 성녀님의 말씀은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덕분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진 나는 그저 쭈그리 상태를 유지한 채 문밖으로 나가는 성녀님을 눈빛으로나마 배웅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