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46)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46화(546/599)
[546화] 불의 마녀다행히 데오니 성녀님께 한 소리 들은 날을 기점으로 내 몸은 빠르게 낫기 시작했다.
일단 목발 짚고 움직일 수 있게 된 정도였는데, 타이밍이 너무 절묘해서 성녀님이 매의 눈으로 나를 주시하며 조금이라도 낌새가 이상해지면 바로 침상에 다시 눕히려고 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결국 어디 부러지거나 내상을 입은 게 아니니 오히려 너무 움직이지 않는 게 더 몸에 안 좋을 거 같다고 설득을 시도한 끝에 동행을 전제로한 산책이 가능해졌다.
그렇게 움직일 수 있게 되자마자 가장 먼저 찾아간 것은 에밋이었다.
마왕군 지지자들의 농성과 방어선을 뚫는 과정에서 아주 큰 활약을 해줬다길래 감사를 표하려는 것도 이유였지만 그보다는 원치 않게 미루던 일의 끝을 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서야 우리 고용주 얼굴을 제대로 보는구만.”
실상 우리들 중 가장 실력이 좋은 마법사답게 그와 관련된 여러 일들에 도움을 준 그는, 내가 쓰러진 날 마력은 알아서 회복된다는 결론을 내놓은 뒤로 교단을 돕는 일에만 치중할 뿐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병문안을 막은 적은 없습니다만.”
“병문안 오라고 고용한 게 아니잖나? 고용주 멀쩡하고 내가 더 해 줄 수 있는 게 없으면 일해야 돈값을 하지.”
“맞는 말씀이군요.”
빈말이나 변명은 아니었다. 지금도 그의 방이 아닌 다른 병사들에게 마법적인 조치를 조언하고 있던 걸 찾아낸 거였으니. 나는 모범 사원 그 자체인 에밋의 태도에 크게 만족하며 잠깐 감사를 표한 다음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침 몸도 못 움직이게 된 김에 마법 좀 알려주십쇼.”
“마법을? 자네가 이번에 보여 준 힘이면 마법은 필요 없지 않나?”
수도꼭지가 박살나서 광역 어그로를 끌 뻔한 걸 직접 봤으면서도 저리 말할 수 있는 건 그가 마법사이기 때문이려나. 당장 곁에 있던 성녀님께서 도끼눈을 떴지만 에밋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힘은 조절하게 되면 그만이지.’라고 쿨하게 넘겨 버렸다.
그가 그런 말을 할 정도로 강한 힘이긴 했지만, 신성력 폭주에 대해서는 침상에 누워 있는 동안 기억을 복기하며 많은 고민을 했기에 즉답할 수 있었다.
“아뇨. 그건 안 씁니다.”
마음 같아서는 뒈지는 일이 있더라도 안 쓰고 싶다.
인간 엘드미아가 유사 반신 언저리 엘드미아로 넘어가는 순간 아예 다른 존재가 된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극명한 변화가 생긴다.
그것도 주로 정신이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의 영역에. 당시 부관 놈의 목숨을 살렸던 돌뿌리의 형태까지 기억날 정도로 수십 수백 번을 복기한 지금이기에 확신할 수 있다.
그래서 단호하게 대답했더니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이 명백하게 갈렸다. 성녀님은 감격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에밋의 눈에는 이채가 어렸다.
“나야 자세히 모르겠지만 성직자들은 반신에 근접하는 힘이라고 결론 짓는 분위기더군.”
자신의 깔끔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갸웃거린 에밋의 얼굴에는 의문보다 흥미가 더 짙게 깔려 있었다. 그는 마치 내 심중을 알아보려는 듯 한참 눈을 마주치고 나서야 아주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날 때부터 신의 피가 흐르는 게 아니야. 설령 용사라 하더라도 자넨 그냥 인족이지. 그런 존재가 반신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건 아니지 않나?”
“에파가 님한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승천의 길이 열려 있다는 말이죠.”
짧고 간단한 대답이었지만 에밋과 성녀님에게는 충분한 설명이었다. 이에 에밋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알면서도 그 힘을 멀리한다고? 무려 신이 될 수 있는 기회인데?”
“예. 승천할 생각 없습니다”
에파가 님을 봤기에, 그리고 이번 경험을 했기에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다른 세계의 신들은 어떨지 몰라도 이곳의 신은 단순히 힘만 얻고 자기 마음대로 지내며 사는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을.
필멸자를 인도하는 의무를 지고 태어나거나, 그런 의무를 지닐 각오를 통해 승천에 도달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 거 없이도 신이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놈들은 죄다 악신으로 분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만한 힘에 의무와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면 타락으로 귀결되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
“단순히 능력을 강화시켜 주는 거였다면 얼마든지 원했겠지만, 그런 게 아니더군요. 이번 기회에 승천이 주는 변화가 어떤 것인지 미리 체험해볼 수 있었으니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감정을 느꼈지만 일반적이지 않다. 주변을 인지했지만 평소와 다르다. 분명 승천을 겪고 신이 된다는 건 아예 종種이 달라지고 생각마저 달라지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그것도 굉장히 편향된 형태로. 어쩌면 당시에 내 분노만큼은 또렷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건 지금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들이 내 의지와 다르게 변질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이야 나름대로의 이유와 사정 혹은 숭고한 대의같은 게 있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승천하는 거겠다만, 난 지금 있는 것들이 너무 소중해서 그러지 못하겠다.
그 소중한 것들을 지키겠다고 이 지랄 이 고생을 하는 건데 어떻게 포기하겠어.
“막강한 힘과 영생과 다를 바 없는 삶 그리고 늙지 않는 몸을 지니게 되는 건데도?”
하지만 그런 내막까지는 알 수 없는 에밋이었기에 정말 신기하고 진귀한 동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자꾸 귀찮게 질문을 던졌다. 그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때가 아니라 내가 마법을 배워야 할 때였다.
“혹시 어디서 신이나 반신 만나 보셨습니까?”
그래서 가불기를 걸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어… 아니? 아직 만난 적 없네만.”
“전 간접적으로 대면했을 뿐만 아니라 유사한 형태로 체험까지 해봤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렇다고 하는 거에 자꾸 본인이 생각하는 이유 붙이면서 질문하지 마시고 마법이나 알려주십시오.”
만난 것도 나고 경험한 것도 나인데 뭘 자꾸 물어 봅니까? 당사자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도끼눈을 뜨며 귀찮다는 기색을 내는 것도 빼먹지 않자 에밋은 벙찐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터트렸고,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성녀님은 빵 터졌다.
덕분에 대체 어디서 저렇게 빵 터질 포인트가 있었던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나와 에밋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말았지만 성녀님의 웃음은 그 뒤로도 한참을 그칠 줄 몰랐다.
◈
정체불명의 폭소와 함께 혼자서 만족한 성녀님을 뒤로한 채 시작된 에밋의 마법 교실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내 수강료는 비싸다네.”
대뜸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그의 뻔뻔한 행태 때문이었다. 난 진심을 담아 뒷목까지 잡아가며 항변했다.
“아니, 저한테 고용됐잖습니까?”
“뭔 소린가? 당연히 그랬지. 그러니까 일을 하고 있었잖나? 안 그랬다면 놀고 있었을 걸세.”
“그런데 또 추가금을 달라니, 이건 무슨 기적의 계산법입니까?”
지난번엔 나보고 날강도라고 하더니 그걸 담아 두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심지어 성녀님조차 뭐 이런 마족이 다 있나 하는 눈으로 에밋을 바라보는 중이다.
하지만 에밋은 세상 당당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시선을 보내는 나와 성녀님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기까지 했다. 심지어 혀까지 차면서.
“그건 노동력을 파는 거래고, 이건 지식을 파는 거래 아닌가. 당연히 별개의 거래지.”
“……어라?”
에밋 가라사대, ‘엘드미아를 돕는다.’ 라는 건 어디까지나 마법사 에밋 렐 오트녹이 지닌 모든 능력을 동원해 외부 문제를 해결하는 업무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법이라는 건 그가 쌓아온 독자적인 지식이고 이를 공유하는 건 업무가 아닌 자신의 밑천을 드러내는 것이니, 별도의 대가를 받는 게 정당한 계산법이라는 주장이다.
“일리가… 있어…!”
“난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돈 받는 취미가 없다네.”
대체 왜 그런 걸 납득하냐는 듯이 성녀님이 바라봤지만 현대 사회를 경험한 내게 있어서는 충분히 납득이 되는 설명이었다.
결국 물건을 파는 것과 원천기술을 파는 것의 차이다. 우리의 첫 계약은 전자였고 지금 내가 요구한 것은 후자였으니 에밋의 주장은 분명 정당하다.
심지어 전자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기대 이상으로 잘 해주고 있었으니, 그 유능함의 기반이 되는 원천기술인 마법의 수강료가 높게 책정되는 것 역시 이치에 맞았다.
문제는 그 가치가 짐작도 안 되고 당장 그만한 액수를 지불할 능력도 안 된다는 점이로군.
여기로 넘어오면서 받은 돈도 이곳 저곳에 쓰느라 거의 다 떨어진 상황이라 어떻게 방법이 없나 고민하자, 에밋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왜 능력이 안 되나? 자네가 제일 부자인데.”
“예?”
“용 있잖나 용. 그 정도 가치를 지닌 현물이면 내 친히 후불로 받아 줄 의향이 차고 넘친다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도 성녀님께 지도자의 마음가짐을 알려 줬네 뭐네 하면서 용의 피를 요구했었지.
들어 보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던 데다가, 그가 용의 사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준 것도 있어서 본인이 제시한 검지 손가락만한 플라스크 용기 하나 분량의 피를 줬었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 말하는 걸 보아하니 정작 본인은 사체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건 고용되었으니 하는 업무에 불과하고 피는 정말 조언값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좋습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저야 편하죠.”
그걸 떠올리며 너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일까.
“…내가 고용주를 속이는 취미가 없어서 하는 말이네만, 자네 용의 사체와 피가 지니는 가치를 모르고 있는 건 아니지?”
처음엔 능글맞은 태도를 보이다가 내가 수락하고 나니 되려 ‘지금이라면 용의 부산물 주요 소비층이 어느 직종이기에 가치가 높고, 그렇기에 대략적인 가치 환산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적절한 지식을 저렴하게…’ 라고 말하는 에밋이었다.
처음엔 그 모습에 다른 의미로 뒷목이 땡길 뻔 했으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들어둬서 나쁠 건 없었기에 그것도 포함해서 배우기로 결정했다.
옆에서 진짜 이상한 사람들 다 보겠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있던 데오니 성녀님을 제외하면 모두가 만족스러운 거래가 성사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