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53)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53화(553/599)
[553화] 엘드미아야 그게 무슨 말이니변경백으로서 활동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표정 관리에 능숙해졌다고 자부하는 라그니스였지만 이번만큼은 솟아나는 당혹감과 의아함에 몸을 맡겨야 했다.
“대체… 무슨 수로?”
쌩뚱 맞아 보이지만 라그니스에게 있어서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나마 마왕군의 수작질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질문조차 하지 않은 것은 레비엥의 병사들과 레니사가 그 정도 확인은 당연히 했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주변일대를 정리했다고 해도 레비엥은 여전히 마왕군과의 전면전을 이어 나가는 중이다. 레비엥 주변엔 전진 기지와 감시 초소가 한가득이고, 그 앞에 위치한 마왕군 역시 마찬가지인 게 당연하다. 상식적인 선에서 레니사의 말대로 ‘엄청나게 많은 물자’를 끌고 오려면 마왕군을 가로 질러 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게 아니라면, 감시망에 구멍이 생겼을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당혹감을 걷어내며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라그니스의 얼굴이 대번 심각해지는 것을 확인한 레니사가 급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 짐말이 아니라 산양과 비슷한 부류로 보이는 짐승들을 대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인들이 직접 봇짐을 짊어지기도 한 걸 보면 길이 아닌 곳을 타고 넘어온 듯 합니다. 협곡과 절벽을 타고 왔다고 증언했는데, 그 말대로라면 충분히 마왕군을 피해서 도착할 수 있겠더군요.”
마왕군이라고 길이 없는 곳까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건 아니니, 레니사의 말대로라면 감시망을 피해 레비엥에 도착하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감시망의 허점은 레비엥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이곳의 장벽이 산 전체를 두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몰래 지나가서 행상인인 척 해도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인데 왜 굳이?
…들을수록 납득하기 힘들어지는 설명이다.
“아무래도 직접 봐야 할 거 같네.”
결국 앉은 자리에서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판단한 라그니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셰릴과 아실리에를 바라보았다.
“음… 같이 가보지 않을래요? 수인 행상이라는 게 보기 흔한 건 아니잖아요.”
느낌 상 일이 빠르게 해결될 거 같지도 않아서 아쉬운 마음에 던져 본 제안은 흔쾌히 수락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옷을 갈아입어야겠다고 발버둥 치는 셰릴을 붙잡고 레니사를 따라 이동하게 된 사람은, 레비엥의 외성 관문소에 모여 있는 수인들을 보기 전까지는 화목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보기 전까지는.
“…레니사?”
“예. 저들이 맞습니다.”
레니사의 표현은 굉장히 정확했다. 수인들은 정말 엄청나게 많은 물자를 대동한 채 정숙한 분위기 속에서 라그니스의 허가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는 그 물자를 옮기기 위한 수인들과 산양을 세 배 정도 키워 놓은 듯한 정체불명의 짐승들의 숫자가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투가 불가능할 정도로 잔뜩 실린 짐만 없었다면 군대라고 여겼을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사실 그마저도 인족의 기준일 뿐이고, 저들은 저 상태로 길 아닌 산길과 절벽을 타고 왔으니 언제든지 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갑옷을 입고 나오라고 하지 그랬어.”
무기 하나 없어도 위협적이기 그지없는 거구와 발톱을 보면 볼수록 진짜로 가능할 것만 같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살짝 위축되는 감이 있어서 레니사에게 가볍게 농담을 던져 본 라그니스였으나, 돌아오는 반응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진실의 수정구 앞에서도 아무 문제 없었기에…”
“으으음, 거기까지 했는데 갑옷을 입고 나오면 오히려 이쪽이 실례이긴 하지.”
제국의 마도갑옷을 입은 기사들 옆에 서도 꿀리지 않는 수인들은 주변을 위협하는 일 없이 매우 조용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인족으로서는 위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제는 마족들 앞에서조차 태연하기 그지없는 병사들도 살짝 기가 죽은 모습을 바라보며 라그니스는 최대한 어깨를 폈다. 이럴 땐 결국 위에 선 자가 당당해야 했다.
“오, 그대가 이 도시의 주인인가?”
하지만 묵묵히 자리에 앉아 있던 수인들 중에서도 큰 덩치를 자랑하는 수인이 입을 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보며 저도 모르게 주춤거릴 뻔했다. 저 수인 앞에서는 엘드미아도 평범한 덩치로 보이지 않을까?
“갑작스럽게 이렇게 방문하게 되어 미안하군. 나는… 에이, 이미 들었을 거 아닌가? 대족장 레델이라고 하네. 일족의 일원이자 친구인 자와 나눈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대들의 수도로 향하는 길이지. 지나가도 되겠나?”
대족장이라는 말에 순간 오크 게이트 사건이 떠올랐다.
수인과 오크가 같을 수는 없겠지만 결코 적은 규모의 무리는 아닐 게 분명하다. 그런 무리를 이끄는 자가 직접 물건을 옮긴다고?
습관적으로 어깨와 목을 풀며 자신을 레델이라 밝힌 수인 앞에 선 라그니스는 침착하게 주변을 훑어보며 대답했다.
“…이곳의 영주인 라그니스 리엔 다 레비엥이라고 하오. 그대들에게 적의가 없다는 이야기는 전해들었으나, 나 또한 왕국의 방패로 불리는 도시를 이끄는 자이기에 흔쾌히 허가할 수 없음을 이해해주었으면 하는군.”
“하하, 물론이지. 최대한 협조하겠네. 아, 하지만 우리의 짐 일부를 통행료로 내놓고 가라는 제안만큼은 피해줬으면 하는군. 저건 우리 물건이 아니거든. 금전적인 형태로 지불하라는 건 얼마든지 동의하지만 말이야.”
당연히 귀족의 예법에는 맞지 않은 대화였으나, 상대를 배려하려는 의도는 확실히 느껴지는 말투였다. 그런 레델의 태도에 호의를 느끼면서도 라그니스는 그가 한 말을 되집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대들의 물건이 아니다? 어마어마한 대상단이라고 해도 믿을 수준인데…”
“하하하, 약속을 나눈 자가 영광과 함께 챙긴 전리품이지. 우린 그저 배달만 할 뿐이라네.”
순간.
라그니스와 아실리에 그리고 셰릴 사이로 싸한 기류가 흘렀다.
비록 라그니스는 뒤를 돌아볼 수 없었으나 아실리에와 셰릴은 반사적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시선을 교환했다.
에이, 설마.
“그 제안에는 동의할 수 있으나, 정체불명의 물건을 왕국으로 무작정 들이는 것은 불가능하오. 무엇을 옮기는 중인지는 알려주지 않겠소?”
“물론 그래야지. 용의 부산물일세.”
이번엔 세 사람의 눈썹이 거의 동시에 꿈틀거린다.
그나마 아실리에와 셰릴은 입을 꾹 닫고 있었기에 감정적인 동요를 쉽게 감출 수 있었지만 직접 대화를 나눠야하는 라그니스는 그렇지 못했다. 레델은 인족의 표정 변화를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 탓에 눈치 못 챘을 뿐, 주변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라그니스의 미소에 짧은 경직이 일어나는 걸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 수인, 분명 방금 전에 ‘영광과 함께 챙긴 전리품’이라고 했다.
“…그것…참… 놀라운 이야기군. 그대들을 의심하는 바는 아니오나… 혹시 괜찮다면…”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지? 그렇게 하세. 다만 워낙 귀한 물건이다 보니 이곳에서 해주었으면 하는데, 괜찮겠지?”
“지당한 말씀이.”
정신이 혼미해지려는 것과 다르게 과연 수인 무리를 이끄는 대족장이라서 그런가 말이 잘 통했다.
여러모로 당혹스러운 추측이 난무했지만, 일단 상대방이 흔쾌히 협조한다는 점만으로도 어떻게든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된 라그니스는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아가며 말을 이어나갔다.
” 그래서, 용의 부산물이라는 짐은 어느 것이오?”
인족의 예법을 완전히 아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대족장 레델 역시 최대한 자신들 나름대로 예의를 갖추며 라그니스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아마도 활짝 웃는 게 분명한 얼굴과 함께 대답했다.
“전부 다라네.”
아무런 악의도 없는 대답이었지만, 어떻게든 다시 이를 악물고 평정을 유지하던 라그니스의 얼굴에 또 한 번 경직이 일어나고 이번엔 누가 먼저라고 할 것없이 병력 전체가 술렁였다.
수인들의 수, 그들이 짊어진 짐. 그리고 짐승에게 실린 짐까지.
“…지금, 전부…라고 하셨소?”
하나같이 상단을 방불케하는 양인데 이게 모두 용의 부산물이라는 건…
“맞네. 초원의 풍왕 이라노레프를 홀로 죽이고 용살자의 위업을 달성한 친구가 정당하게 얻어낸 전리품들. 우리가 가져온 물건은 전부 이라노레프의 부산물이라네.”
일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다른 수인들에게 짐을 풀어서 내려놓으라고 지시하는 레델의 말을 들으면서도 라그니스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주인의 의사와 별개로 그녀의 입만큼은 뇌가 내린 추측이 틀리길 기도하며 말을 내뱉었다.
“……그, 아주, 대단…한… 위업…을 남긴… 수인이군.”
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
“하하하! 아쉽게도 아니라네. 그는 수인이 아니라 인족이거든. 참 대단한 전사지.”
“……이름.”
“음?”
“그, 인족의, 이름을, 알려줄 수, 있겠소?”
수인들이 빠르고 정확하며 조심스럽게 용의 부산물들을 펼치는 과정을 보면서, 레델은 인족들의 영주는 말을 참 특이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투는 둘째 치고 그 뒤에 있는 엘프나 다른 여인도 그녀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그냥 그게 정상적인 반응인가 보다라고 여겼다. 적어도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으니 이런 위업은 널리 알리는 게 친구에게도 좋은 일임이 분명했다.
“하하하! 그의 이름은 엘드미아 에가, 위대한 용살자이자 진실된 신앙인들의 구원자라네!”
그래서 진심으로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말해주었다.
“초원의 공포였던 풍왕의 폭정을 하루 만에 끝내고 발자국을 지킨 엘드미아!”
“수인들의 자랑스러운 친구! 엘드미아 에가!”
그리고 그건 짐을 풀던 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으, 으아아! 아실리에에!!”
하나같이 웃음꽃을 피우며 노래부르듯 엘드미아를 찬양하는 수인들의 모습과 뒤에서 들려오는 셰릴의 목소리를 들으며, 라그니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엘드미아야… 이게 무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