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54)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54화(554/599)
[554화] 엘드미아야 그게 무슨 말이니뒷목을 잡고 쓰러진 아실리에로 인한 소란은 소란조차 아니었다.
“형이 용을 잡았다고?!”
워낙 짐이 많아서 수인들이 엘드미아의 업적을 흥얼거리며 보따리를 푸는 것만으로도 한 세월인 게 화근이었다. 대체 어디서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몰라도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달려 온 지크프리트의 외침에 라그니스는 순간 자신의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되집어야 했다.
분명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하지 않았나? 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자진해서 동생이 된 거지?
“형? 자넨 엘드미아의 동생인가?”
그런 그의 등장에 반응한 건 라그니스만이 아니었다. 대족장 레델은 매우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쓰다듬으며 지크프리트에게 고개를 돌렸고, 짐을 풀던 다른 수인들 역시 엘드미아의 동생이라는 이야기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졸지에 모든 수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크프리트는 참으로 당당했다. 분명 잠깐 당황한 게 보였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악수를 위해 손을 내미는 모습은 절로 혀가 내둘러질 정도다.
“아, 의형제죠 의형제! 반나서 반갑습니다. 지크프리트라고 합니다. 용사죠.”
저 정도 배짱은 있어야 용사를 하는 것일까. 엘드미아가 평소 보여주던 모습을 떠올려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라그니스가 생각하는 사이 동그랗게 눈을 뜨며 놀란 레델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자네가 그 에테의 용사라고? 우리 용살자가 발이 참 넓구만! 반갑네! 여덟 발자국의 대족장 레델이라고 하네!”
“하하, 저도 반갑습니다. 그보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자세한 이야기를 좀 듣고 싶은데…”
여전히 여러모로 뻔뻔하면서도 태연한 것처럼 레델과 대화를 나누는 지크프리트였지만, 어째서인지 이번만큼은 그의 행동에서 절박함이 묻어나는 듯했다.
라그니스가 아실리에와 셰릴을 다시 집무실로 돌려보내고, 병력과 함께 물건을 확인하는 동안 레델에게서 엘드미아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수록 안색이 미묘해진 그는 조금 늦게 모습을 드러낸 에셀루아 황녀가 뒷덜미를 잡고 끌고 가는 그 순간까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떠들었다.
“아니, 진짜라니까? 이대로 형이 돌아오면 무조건 날 놀린다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니까? 그래서 그런데 어디 근처에 만만한 용 없을까? 나 진짜 용 잡아야 해.”
“용이 무슨 뒷산 멧돼지인 줄 알아욧?!”
라그니스는 상식적이지 않은 말을 입에 담는 지크프리트에겐 어이없음을 느끼고, 어떻게든 그런 그를 단번에 휘어잡고 사과와 함께 사라지는 에셀루아의 모습에서는 강한 부러움을 느꼈다.
그래, 저게 맞는 말이지. 용이 무슨 길 가다가 마주치는 산짐승도 아닌데 대뜸 잡거나 맞서 싸운다는 게 가당키나 하는 말인가?
당장 입으로는 용을 잡아야 한다고 절박하게 떠들면서도 에셀루아의 손길을 거부하지 못하는 지크프리트의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엘드미아가 저 반만큼만 잘 따라줘도 얼마나 마음 편할까.’ 라는 생각을 하고만 라그니스는 진지하게 턱을 괸 채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휘어잡고 사는 건지 한번 조심스럽게 물어볼 필요가…”
“음? 뭐라고 했나?”
“아, 아무것도 아니오!”
저도 모르게 본심이 흘러나와버린 라그니스는 황급히 자세를 고쳐 잡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흠, 흠! 전부 용의 부산물임을 확인했소. 협조에 감사드리오 레델 대족장.”
비록 잠깐 딴 곳에 정신이 팔리긴 했지만 사실이었다. 그만큼 레델과 지크프리트의 사담이 길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꽤 한참을 혼자 떠들었음에도 지친 기색 하나 없는 레델은 여전히 호탕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인족의 영역에서는 응당 인족의 법을 따라야 하는 거 아니겠나. 하하하.”
매우 유쾌하고 원활한 대화였으나, 아직 끝이 아니다.
“허나… 당장 그대들을 통과시키기엔 무리가 있소. 괜찮다면 내 그대에게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할 수 있도록 시간을 할애해주겠소?”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넘어 어지럽기까지 한 경험이었다. 분명 말도 잘 통하고 협조적으로 흘러가는 상황인데 왜 앞이 막막해져야 하는 것일까.
사실 고민할 것도 없다. 당연히 엘드미아가 용을 잡은 탓이다.
“음? 어째서인가?”
“그…… 엘드미아가 실은 이곳 이티스엘에서도 좀 많이 유명한 편인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이대로 들고 갔다간 엘드미아가 돌아오기도 전에 중간 경유지에 가까운 도시에서 침을 흘리며 부산물을 노릴 거라는 점?
많은 귀족들이 자신처럼 예의 바른 태도를 보이기는커녕 온갖 이상한 핑계와 이유를 대며 부산물의 일부나마 갈취할 거라는 점?
그렇게 어찌저찌 수도에 도착하더라도 어쩌면 귀족원의 수작질에 엮여 부산물을 두고 치열한 신경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점?
그 모든 사달이 한 번에 일어나면 마족령에서 돌아온 엘드미아가 마왕군과 싸우는 게 아니라 그 귀족들의 골통부터 반으로 쪼개고 시작할 수 있기에 레비엥에 있을 때 미리 사전 준비를 마쳐야 뒤탈이 없다는 점?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모든 걸 다 말할 필요가 있었다.
“용살자의 전리품에 권리를 주장하다니… 좀 과하게 용감한 거 아닌가…?”
하지만 매우 진중한 태도로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한 레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고, 라그니스는 결국 세금에 대한 개념부터 레델에게 설명한 뒤 그걸 핑계로 약탈아닌 약탈을 시도하는 자들에 대해 부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말을 하면서도 자괴감이 들 정도로 물욕에 눈이 먼 자들을 염두에 두는 설명이긴 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보이지 않는 용살자보다 눈앞의 용이 더 우선인 자들이 많은 것을.
그렇게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레델을 납득시킬 뿐만 아니라 매우 정중한 태도를 보이며 요구에 순순히 따라주는 레델과 수인들이 묵을 숙소까지 배정하고 나서야 갑작스러운 방문으로 인한 혼란을 일단락 지을 수 있게 된 라그니스는 집무실 소파에 누워 이마에 물수건을 얹은 채 끙끙거리는 아실리에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따금 ‘용은 아니지 엘디… 아무리 그래도 용은 아니야…’ 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아실리에의 옆에는 어째서인지 굉장히 시무룩해져 있는 셰릴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의기소침해 있다. 빈말로라도 밝다고 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홀로 이성의 끈을 놓지 않은 라그니스는 새롭게 차를 우려내며 차근차근 앞으로 이어질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저 물건들이 제국으로 향하는 거였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이티스엘의 국민들은 전쟁 이전부터 제국에게 별다른 악감정이 없는 편에 속했다. 과거 수많은 정복 전쟁을 이어 나가며 에슈누아 왕국이 제국으로 커지는 그 순간에도 이티스엘은 안전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속내는 서부 왕국 지대를 방치했던 것처럼 마족 침공이 있을 때마다 이티스엘을 방파제로 쓰기 위함이었지만, 그저 방치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인 지원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평가가 나쁠 수 없었다는 게 더 알맞은 표현이다.
그런 제국을 향해 용의 부산물이 움직이는 걸 막거나 넘볼 수 있는 명분을 지닌 권력자는 이티스엘에 없다.
최근 들어 용사 파견을 비롯해 더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제국이었기에 더욱 그랬고, 분명 엘드미아는 얼마든지 그 상황을 유리하고 안전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당장 에스뮈에에게 연락 한 통만 했어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 테니까.
하지만 엘드미아는 그러는 대신 수도에 있는 자신의 아담한 집을 목적지로 정했다.
“이 정도면 그냥 관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건지 구분이 안 간단 말이지…”
단순히 주변의 권력을 제것처럼 등에 업고 날뛰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상황이 싫은 것일 수도 있으나, 어차피 그가 부탁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주변이 알아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피바람이 분다.
라그니스야 그런 피바람이 불어도 관심이 없는 편에 속하지만… 엘드미아가 목숨을 걸고 얻어낸 전리품에 날벌레들이 달라붙는 게 달가울 리 없다. 그래서 미리 수도에 언질을 넣었다.
무려 라드넬반데스의 도움을 받아 긴급으로 전달했으니 지금쯤이면 소식이 닿았을 것이다.
“좀 따라잡았나 싶으면 또 한참을 나아가는구나…”
마음 같아서는 직접 왕실의 답변을 듣고 조치를 취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설령 왕실이 최단 기간 내에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귀족원은 자신들의 이익을 얻고자 무조건 반대의 목소리를 낼 테니까. 나머지는 차후에 레니사가 잘 해결할 수 있기만을…
-똑똑.
상념을 끊는 노크 소리가 어째 익숙하면서도 어색하다.
“…? 들어와.”
이번에도 어김없이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잠시 휴식을 취할 것이니 저녁 식사 전까지는 오지 말라고 레니사에게 언질을 넣어 둔 라그니스였다. 혹시나 싶어 다른 업무들도 미리 앞당겨 정리한 상태였는데…
“그, 아가씨. 왕실의 이름으로 서신이…”
“어떻게 벌써…?”
대체 하루 만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더 일어나야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어째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드는 라그니스였지만 일단 손짓을 통해 레니사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녀가 건네주는 서신의 내용을 확인하고는 자신의 두 눈을 비볐다.
“왕실은 용살자의 탄생을 축하하며, 전리품에 대한 방랑 기사 엘드미아 에가의 완전한 권리를 인정하는 바이다…?”
라그니스가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건 내용 때문이 아니다. 16살에 용살자가 된 정신 나간 업적을 세운 자에게 밉보일 이유는 없으니, 이 내용 자체는 예상했다. 지금은 과정이 문제였다.
국왕이나 슬하의 공주 혹은 왕자도 아닌, 왕실의 이름으로 서신이 왔다는 건 결국 엘드미아에게 품고 있는 왕실의 호의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사표명이다.
그리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엘드미아 정도의 실력자가 왕실과 우호적인 관계를 다진다는 것은 귀족원 입장에서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당연히 조금이라도 이득을 얻어내고자 질질 끌 거라고 여겼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라는 마법의 한 마디만 반복해도 일주일은 넘게 끌 수 있을 안건이다. 왕실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는 핑계로 어떻게든 과도한 요구를 하게 수정해서 관계를 서먹하게 만들고자 힘 쓸 수도 있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어떻게든 빠르게 일을 진행시키고 싶은 왕실의 발목을 잡아 자신들에게 유익한 걸 얻어내는 게 귀족원이다.
그렇게 왕실이 뭔가 하나를 가져가면 반드시 하나를 빼앗아 균형을 맞추는 게 목적인 이들이, 그런 집단의 수장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안건을 통과시켰다고…?”
차 한 잔에 조금은 풀리는 듯했던 피로가 다시 쌓이는 것을 느끼며 라그니스를 미간을 찡그렸다.
라위네라 공작과 왕가의 유착 관계를 알 리가 없었기에, 그 고민은 결국 결론을 내놓지 못한 채 한참을 더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