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55)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55화(555/599)
[555화] 엘드미아야 그게 무슨 말이니스산하다.
느닷없이 그런 느낌이 들었다.
갑작스레 몰려드는 오한에 놀라 몸을 떨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다.
“왜 그러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갑자기 뭔가 오싹해서…”
“감기라도 걸린 거 아닌가?”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데오니 성녀님과 성직자들의 보살핌 아래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지만 아직 완쾌한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감기 한 번 걸려본 적 없는 튼튼한 몸이었지만 이번에 무리를 하면서 면역력이 떨어졌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라이토르였다면 이불 잘 덮고 땃땃하게 잠이라도 잤겠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달리 방도가 없다.
“어째,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나? 아직 며칠은 더 가야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으니 건강을 챙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네만.”
“괜찮습니다. 몸을 많이 쓰는 것도 아닌데요 뭐.”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자 에밋은 두 번 물어보는 일 없이 바로 마법을 시전한다. 그러자 거기에 맞춰 은근슬쩍 우리 주변에 모여 있던 마족들의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다.
라이토르를 떠나 다음 경유지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한 뒤에도 꾸준하게 이어진 수업을 대학 과목 도강하듯 살펴보며 어떻게든 뭔가 얻어내려는 마법사들이었다. 처음엔 돈 안 내고 배우려고 든다고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에밋조차 무관심으로 대응하게 된 이후로는 그냥 평범한 하루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저들에게 공짜로 가르침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일념 하에 속도를 조절하는 것도 없이 순식간에 완성되는 마법이지만, 이제는 스스로도 놀라울 만큼 빠르게 분석을 마치고 디스펠을 위해 술식에 간섭할 수 있게 되었기에 아무 상관없다.
아직 완성된 술식을 분해하여 역으로 디스펠의 완성에 써먹을 수준은 아니지만 개입만큼은 수월하다. 내 의도에 맞춰 실시간으로 무너지는 술식을 바라보는 건 일방적으로 마력을 끊어 마법의 완성을 방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카타르시스를 안겨 줬다.
계획대로 결과가 나오는 것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물론 상대가 에밋이다보니 내 디스펠은 아직까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체스 그랜드 마스터랑 이제 막 체스를 시작한 사람의 대결보다도 극심한 차이가 있으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내 디스펠을 역으로 뒤집고 방어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된다. 책상에 앉아 마법 서적만 읽을 때보다 훨씬 흥미로우면서 재밌기도 하고.
“원래 그거 좀 본다고 공부가 되면 안 되는 건데 말이지. 너무 유능한 의뢰주를 두는 것도 곤욕이로군.”
말은 난처하다는 듯하면서도 자신의 기술을 펼치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에밋이다.
그의 말이 완전 빈말이 아니라는 건 우리를 통해 배움을 얻고자 몰려 있는 마법사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수업의 강도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올라가지만, 매번 끝날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에 기뻐하는 이들보다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몰라 쩔쩔매거나 머리를 싸매는 이들이 더 많았으니까.
에밋의 말대로 유독 내가 빠르게 배우는 거였다. 덕분에 이제는 마력시를 쓰든 말든 신경도 안 쓴다. 이 정도면 눈이 트인 게 확실하다나? 그렇게 좀 하다보니 많이 익숙해져서 이젠 중간중간 대화를 시도할 여유까지 생겼다
”그런데 주구장창 디스펠만 해도 괜찮은 겁니까?”
“마법의 기초조차 모르면 술식부터 익히는 게 맞지. 하지만 자네처럼 지식만 쌓인 상태면 차라리 디스펠이 낫다네. 마법이라는 건 결국 유연한 사고 속에서 더욱 발전하는 법인데, 디스펠만큼 제격인 훈련이 없거든.”
교과서대로 배우면 딱 교과서 수준에 머문다는 게 에밋의 지론이다. 그게 정말 맞는 말인지 그의 주관적인 판단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나에게는 유용하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저녁 무렵 야영지 한 켠에서 이루어지던 수업은 라이토르에 머물렀을 때와 달리 딱 한 시간에 맞춰 막을 내렸다. 동시에 마법사들의 끙끙거림이 흘러나왔지만, 우리는 조금도 개의치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자리를 피했다.
이런 야외 수업도 벌써 닷새째다. 처음엔 수십에 달하던 마법사들 중 남은 건 대여섯뿐. 내가 익숙해지는 과정도 빨라지니, 쏘르와 게이트가 연결된 도시에 도착할 때쯤이면 전부 포기하고 알아서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컸다.
라이토르 백작과 그 휘하의 병력뿐만 아니라 교단을 따르는 시민들까지 가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이동은 굉장히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물론 중간중간 몬스터의 습격이라든가 의도치 않게 무리에서 이탈하는 그룹이 발생하는 불상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왕군의 직접적인 습격이라는 최악의 사태에는 단 한 번도 직면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다고 해서 마왕군이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건 아니다. 게이트를 통해 라이토르를 벗어나고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우리를 감시하는 병력이 붙었으니까. 확실하게 거리를 둔 채 이쪽에서 어떤 형태로든 접근할라치면 주저 없이 빠져 버리는 탓에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놈들의 동향을 살핀 라이토르 백작은 머지않은 시일 내에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을 대비하여 우리의 이동 경로 위에 마왕군의 기습이 있을 만한 장소를 물색한 끝에 총 세 군데를 지목했다.
다행스럽게도 그중 두 개는 허탕이었고, 이제 한 곳만 남은 상태였다.
“내일도 이 속도에 맞춰 이동한다면 오후가 되기 전에 마지막 세 번째 위치에 도달할 겁니다.”
수업을 마치고 시간에 맞춰 합류한 지휘소에서 주요 인사들을 모아둔 채 브리핑을 시작한 데오니 성녀님의 시선은 한 차례 좌중을 흝다가 내게 고정되었다.
“요 며칠 경과를 지켜봤지만 아직 용사님은 전투에 임할 수 있을 만큼 회복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니 만약에 내일 마왕군과의 교전이 시작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용사님을 제외한 채 전투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사전에 숙지했던 형태로 병력을 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주인, 뭔가 쓸모없어졌네…]나도 내 몸 상태를 알기에 억지를 부리는 대신 성녀님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으나, 간만에 정신을 차리고 주둥이를 놀리기 시작한 에스테의 망언은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사안이었기에 나중을 기약하며 명부에 적어두기로 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어지간한 병사들 정도는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회복된 상태다.
하지만 내 잘못으로 인해 얼굴을 깐 상태로 소하를 놓쳐 버린 탓에 구체적인 인상착의가 놈들 손에 들어갔으니, 이 상태로 전선에 나선다면 나를 요단강 너머로 보내고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마왕군 정예들에게서 안전하기 힘들 거라는 게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내린 결론이었다.
그나마 마력은 이제 멀쩡하니 마법을 통해 원거리 지원이라도 해 보고자 열심히 배우는 중이라지만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결국 나는 회의가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 그냥 손가락이나 빨고 있었야 했다.
그렇게 최대한 용건만 간략하게 전달하고 마무리 지어진 회의 끝에 정기 검진이라는 이유로 성녀님과 함께 둘이서만 남게 된 나는 언제나처럼 성녀님이 살펴보시기 편하게 의자에 앉았으나, 정작 성녀님은 주변의 인기척이 없어지는 것을 확인한 뒤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내셨다.
“사실 오늘은 더 이상 검진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전황에 대해 추가적으로 들어온 정보가 있다 보니 이를 전달드리고자 핑계를 댔을 뿐입니다.”
“제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만 하는 내용이라도 있습니까?”
어차피 이번엔 말 잘 듣는 엘드미아답게 어지간한 사달이 아니고서야 얌전히 안전한 장소에 짱박혀 있을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뭔가 달리 부탁할 일이라도 있나 싶어 진중하게 여쭤본 거였는데 어째 돌아오는 건 성녀님의 도끼눈과 차가운 시선이었다.
“그보다는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은 최대한 줄이는 게 낫다고 여겼을 뿐입니다. 본디 저만 알고 있을 생각이었으나 괜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다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또 무리하실 가능성이 다분하다 보니… 하긴,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용사님이 알고 있어야만 하는 내용이긴 하군요.”
어째 내 상태가 안 좋아진 이후로 말 한마디 한 마디가 굉장히 신랄해지신 성녀님의 뼈아픈 일침과 함께 날아온 것은 꼬깃꼬깃 접힌 흔적이 가득한 작은 서신이었다. 혹시라도 찢어질까 조심스레 받아 읽어 본 서신의 내용은 실로 놀라웠다.
본디 마왕군의 보급로에 위치해 있던 일부 도시들이 교단의 군세가 점점 커짐에 따라 마왕군에게 대항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레비엥의 병력이 그들과 협력하여 주변에 위치한 마왕군과 전진 기지를 제압하며 내려오고 있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 속도가 범상치 않은 덕에 이대로라면 일주일 안에는 쏘르 인근까지 당도할 게 분명했다.
“제국에서 온 게 아니라 저희들의 연락책을 통해 얻은 정보라 자세한 내용은 많이 누락되어 있지만, 마왕군의 대처와 반응을 보면 적들의 통신 수단을 파괴하며 최대한 소리 소문없이 움직이는 듯합니다.”
성녀님의 부가 설명을 들으면서도 신기해서 몇 번이나 읽고 말았다. 내가 아는 레비엥에는 이만한 병력이 없었는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라그니스가 정체불명의 힘에 눈이라도 뜬 건가?
“무슨 생각을 하시느라 실실 웃으시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저희가 매우 유리한 상황이니 절대 나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모처럼 이어지는 희소식에 살짝 웃었을 뿐인데 영 이상하게 곡해해서 받아들이는 성녀님이셨다.